새로 산 파자마는 가을용으로 따뜻하고 부드러운 재질이었다. 사실 하나마키는 잠결에 윗도리를 벗어젖히는 안 좋은 습관 때문에 따로 잠옷을 사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커플 파자마를 맞추자며 팔짱을 껴오는 쿠니미는 웬일인지 기분이 좋아 보였기에 그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애초에 쿠니미의 부탁이라면 제대로 듣기도 전에 뭐든 고개를 끄덕일 하나마키였지만 말이다. 꽤 의욕적으로 자기 취향의 잠옷을 골라낸 쿠니미는 그 후 결제버튼을 누르기까지 하나마키를 반짝반짝한 눈으로 쳐다봤었다. 그런 일이 있고 삼 일째, 드디어 도착한 파자마는 하나마키의 손에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쿠니미가 착용한 상태였다. 서로 키는 큰 차이가 안 났지만, 은근히 체격 차가 벌어지는 둘이었기에 처음 하나마키는 한 치수 차이 나는 거로 같은 디자인의 잠옷 두 벌을 골랐었다. 그렇지만 기어코 같은 사이즈로 사겠다며 보채는 쿠니미 덕분에 지금 그가 당당하게 입고 있는 잠옷은 체격보다 통이 좀 큰 편이었다. 짙은 남색의 파자마를 입은 채 보란 듯이 팔을 펼치는 그의 행동에 하나마키는 느긋하게 웃으며 쿠니미를 꼭 안아주었다. 부지런하게 일어나고, 착하다- 그대로 검은 머리카락에 뺨을 부비적거리니 쿠니미는 덩달아 하품을 해댔다.


두 사람이 한솥밥을 먹게 된 지 아직 일주일이 채 되지 않았지만, 그 며칠 새 쿠니미가 아침에 약하다는 걸 새롭게 알게 된 하나마키였다. 아침잠이 많은 그였지만 오늘은 그래도 평소보다 일찍―그래 봤자 벌써 해가 중천에 떠 있을 시간이었지만― 일어난 편이었다. 품 안에 안겨 서서히 잠의 마수에 빠지던 쿠니미가 보이자 하나마키는 조심스레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두피를 헤집는 손길이 기분 좋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자니 눈꺼풀 위로 조심스레 입술을 내려찍는 감촉에 쿠니미는 눈을 깜빡거렸다.


“그거 간지러워요. 하지 마….”

“별로 상관없잖아?”


키득거리며 소리 내어 웃는 하나마키가 얄미워 쿠니미는 괜히 그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푹푹 찔렀다. 꽤 간지러운지 손사래까지 치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에 잔뜩 골이 난 쿠니미는 아예 작정하고 팔을 걷어붙였다. 으악, 하지 마! 발악에 가까운 하나마키의 웃음소리에 쿠니미는 저도 모르게 그와 함께 웃음보가 터지고야 말았다. 만면에 장난기 가득한 웃음을 띠고 열성껏 간지럼을 태우다 보니 이윽고 하나마키는 그걸 참다못해 뒤로 발라당 넘어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앞에서 손장난에 열중하던 쿠니미 역시 하나마키와 함께 고꾸라졌다. 바닥에 부딪힌 충격에 잠시 멍하니 있던 둘은 금세 서로의 얼굴을 보며 또 한 번 거하게 웃어 재꼈다.


“뭐, 뭐가 그렇게 푸흡…! 웃겨요…?”

“그러면 너도 웃고 있잖아!”


누가 누구를 추궁하랴, 일단 터진 웃음보를 수습하기도 힘든 같잖은 지금의 상황이 그렇게나 우스웠다. 남들이 보면 별거 아닌 일상도 둘이 같이 있으니 오히려 무엇보다 즐거웠다. 그렇게 대판 몸을 움직이고 배가 터져라 웃고 있자니 하나마키는 슬슬 허기가 졌다. 부딪힌 게 아픈지 꼬리뼈 부근을 통통 두드리며 일어난 그는 자신을 향해 팔을 쭉 뻗는 쿠니미의 손을 잡고 힘껏 끌어당겼다. 몸을 일으키려던 그는 그 반동으로 곧장 하나마키의 품에 쏙 안겼다. 쿠니미는 그대로 그의 등 뒤로 팔을 뻗어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 모습이 귀여워 머리카락을 슬슬 넘겨주다보니 처음과 비슷한 모양새에 하나마키는 괜스레 웃음이 새어나왔다. 가만히 정수리에 코를 묻고 쿠니미의 내음을 느끼던 그는 일순 웃음이 식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쿠니미 어제 저녁에 머리 안 감았지.”

“머리 말려줄 하나마키 선배가 늦게 와서 안 감았죠.”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그가 썩 밉지 않았다. 그렇지만 말이야~ 하나마키는 장난스레 말끝을 늘였다.


“오늘 애들 오는걸.”

“그냥 안 와도 된다고 해요.”

“유감! 이미 와 버렸는걸!”


순간 현관에서 들려오는 경쾌한 목소리에 쿠니미는 인상을 찌푸렸다. 소리의 근원지를 따라 하나마키가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왔는지 오이카와를 선두로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씩 집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거북하다는 티를 팍팍 풍기는 쿠니미의 표정에 오이카와는 주저 없이 불만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쿠니미쨩, 너무해! 오이카와 씨가 이렇게 집들이 선물까지 챙겨왔는데!”

“고기 사 왔다. 냉장고 어디야?”

“잠깐, 이와쨩! 예의 없게 멋대로 들어가는 거 아니야!”

“오이카와 네가 제일 먼저 신발 벗고 들어갔잖아.”

“맛층 너무해!”


시끌벅적한 그들의 소란에 하나마키는 뒷목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아침에 편의점 갔다 왔을 때 도로 문 잠가놓는 걸 깜박한 듯싶었다. 이미 식을 대로 식어가는 쿠니미의 얼굴에 그는 그저 헛웃음만 지을 뿐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집안이 그들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시끌벅적하게 변한 게 아무래도 기가 차는 모양이었다.


“여어- 쿠니미! 잘 지냈어?”

“……방금 전까지는.”


오랜만에 만난 탓에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킨다이치는 쿠니미의 말에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할 뿐이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쿠니미는 그저 한숨을 내쉬며 하나마키의 옷소매만 꾹 쥐었다. 아무래도 시끄러운 하루가 될 것 같은 예감에 쿠니미는 벌써부터 피곤함이 느껴졌다.



2015.11.19 하이큐

지인분 생일 때 드린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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