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아- 따뜻한 입김을 불자 유리창에 하얀 김이 서렸다. 그대로 행주로 쓰윽 닦아냈지만 창문의 지문이나 먼지들은 깨끗이 없어지지 않았다. 영 마음에 차지 않는 지 몇 번이고 쓱쓱 문질러대는 쿠니미였지만 먼지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상자들을 옮기다 그 모습을 발견한 하나마키는 잠시 상자를 옆에 내려다 놓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더니 이내 유리세정제를 찾아가지고 왔다. 자, 여기. 하나마키가 건넨 유리세정제를 빤히 내려다보던 쿠니미는 왜 이제야 갖다 줬냐는 표정으로 볼을 살짝 불리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런 쿠니미의 모습이 귀여운 지 쿡쿡 웃어대던 하나마키는 곧이어 자신의 옆구리를 꾹 꼬집는 쿠니미의 행동에 금세 웃음이 비명으로 바뀌었다. 아악, 악-! 쿠니미 아파, 그만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되는 쿠니미의 손장난에 하나마키는 두 손으로 그의 팔을 붙잡으며 겨우 막아냈다. 재미있는 반응이었는데……. 어딘가 아쉬워 보이는 쿠니미의 표정에 하나마키는 봐달라는 표정으로 쿠니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


“아직 정리할 거 투성이니까 나중에 놀아줄게~”

“아하어 하아아히헌해.”


아파요, 하나마키 선배.


잡힌 볼이 불편한지 한껏 인상 쓴 채로 웅얼거리는 쿠니미의 모습이 하나마키에게는 사랑스럽기만 했다. 그도 벌써 고등학교를 졸업해 대학생활을 보낸 지 2년 째 되었다. 그동안 열심히 돈을 모아 드디어 학교 근처의 작지만 깔끔한 빌라에 세를 얻어 출가를 하게 되었다. 본가와 학교가 꽤나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항상 통학하기 불편했던 그로서는 잘된 일이었다. 한편 그런 하나마키와 교제를 시작한 지 마찬가지로 2년 째가 되어가는 쿠니미는 곧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였다. 휴일을 맞이하여 하나마키의 이사를 도우러 온 그는 내내 어딘가 불만인 표정이었다. 그동안은 하나마키가 통학을 해 둘이 만날 시간이 꽤 있었지만 그가 이사를 해버렸으니, 그나마 만나던 시간이 줄어들 생각에 쿠니미로서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의 대학 생활도 중요하긴 했지만, 이사 직전까지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던 그가 갑자기 불러내 하는 말이 “집 청소 도와줄래?”라니. 밀려오는 섭섭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하나마키는 청소 중이라 제대로 씻지도 않은 손으로 쿠니미의 볼을 만지작거렸다. 아니, 이 사람이 진짜. 순간 짜증이 나 그 손을 뿌리치려고 생각한 쿠니미였지만 또 삐졌다니 어쨌다니 칭얼거리며 우는 척을 할 하나마키 생각에 기운이 빠졌다. 하여간 오이카와 선배랑 같은 학교로 진학하더니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가지고 와서는. 쯧, 하고 혀를 차는 쿠니미였다.


“아직 정리할 거 투성이니까 놔주세요.”

“쿠니미가 원한다면.”


씨익 웃으며 그대로 손을 내린 하나마키는 아까 하던 짐 정리를 다시 하기 위해 상자 더미로 향했다. 계속 주물러진 탓인지, 쿠니미는 어느새 따뜻하게 데워진 자신의 볼을 스윽 문지르고는 다시 창문 닦기에 돌입했다. 평소 집에서도 자기 방이 아니면 집안 청소를 잘 하지 않았던 쿠니미였기에 이런 대청소는 생소한 것이었다. 긴 팔을 쭉 뻗어 창문 제일 윗면까지 깨끗하게 닦은 그는 문득 오전에 널어두었던 빨래가 떠올라 안방 쪽과 이어져있는 베란다로 향했다. 어느새 뽀송뽀송하게 말라 건조대에 널려있는 옷들을 바구니에 대충 걷어내고는 베란다에 걸려있는 이불을 들어다 안방 바닥에 내려 놓았다. 개 놓는 게 좋으려나, 잠시 고민하던 쿠니미는 이내 팔을 걷어 부치곤 옷을 개기 시작했다. 키는 별로 차이 안 나는데 이렇게 큰 체격이었구나. 하나마키의 옷을 들어 자신에게 대어보던 쿠니미는 자신보다 커다란 그의 옷에 새삼스레 신기함을 느꼈다. 옷을 대충 다 개어 바구니에 쌓아둔 쿠니미는 한 쪽으로 치워둔 이불을 개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쿠니미는 이불을 들어 두 번 접고는 그대로 이불과 함께 바닥에 풀썩 누워버렸다. 기분 좋은 햇살 냄새. 낮 시간 동안 계속 널어둬서인지 아직까지도 따뜻한 햇살의 온기와 포근한 감촉에 괜히 노곤해지고 정신이 멍해지는 기분이었다. 5분만. 5분만 이렇게 누워있자. 스스로 그렇게 정하며 쿠니미는 슬쩍 눈을 감았다.



“……면 뽀뽀할거야.”


희미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서서히 잠에서 깨어나려던 쿠니미였지만 이윽고 쪽, 하고 이마에 와 닿은 감촉에 잠이 확 달아나 눈을 번쩍 떴다. 눈을 뜨자 바로 앞에 보이는 하나마키의 얼굴에 쿠니미는 살짝 인상을 썼다.


“잠든 사람한테 그러는 취미 있어요?”


그거 성추행이에요. 쿠니미는 이불에서 기댄 상체를 일으키며 손으로 눈가를 비볐다. 하아암- 절로 나오는 하품과 잠에 취해 여전히 멍한 얼굴로 하나마키를 올려 보던 쿠니미는 그를 향해 두 팔을 뻗었다. 일으켜 줘요. 그런 쿠니미의 손을 붙잡고 힘껏 끌어당긴 하나마키는, 그대로 자신의 품에 폭 안긴 쿠니미를 꼭 껴안으며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쿠니미 충전~”

“오늘따라 더 달라 붙는 기분이네요.”


아직 잠이 덜 깬 쿠니미는 그의 품에 안긴 채 연신 하품을 해댔다. 졸려? 바로 귓가에 속삭이는 하나마키 탓에 간질간질한 귓구멍이 신경 쓰이는지, 쿠니미는 한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응, 졸려요. 나른한 쿠니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더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나 할 말 있는데, 이것만 듣고 자자. 나머지 청소는 내가 할게.”

“음. 그럼 들어 줄게요.”


하나마키는 그렇게 말하곤 품에 안고 있던 쿠니미를 놓아주고선 그가 곱게 개 놓았던 이불을 펄럭 펼쳤다. 순간 이는 먼지에 쿠니미는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내 드는 폭신한 감촉에 그는 살며시 눈을 떴다. 어느새 쿠니미의 머리에 이불을 덮어씌운 채 그를 향해 살짝 웃어 보이던 하나마키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너 졸업하면 나랑 같이 살자.”


네?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정말이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쿠니미를 향해 하나마키는 키득거리며 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가져다 댔다.


“지금 청혼하는 거야.”

“……그럼 이 이불은 면사포에요?”


정답! 하나마키는 작은 소리로 외치곤 그대로 눈을 꼭 감았다. 어라, 별로 좋아하는 거 같진 않네? 그가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쿠니미를 향해 따지자 이윽고 쿠니미는 감겨 있는 하나마키의 눈가에 쪽 소리 나게 입을 맞췄다. 예상치 못한 쿠니미의 행동에 놀랐는지 하나마키는 눈을 크게 뜨곤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런 하나마키를 향해 쿠니미는 생긋 웃어보였다.


“기뻐요.”


그러고는 자신의 행동이 민망한지 쿠니미는 어느새 붉어진 고개를 숙이곤 이불로 얼굴을 가리며 그대로 방을 나가버렸다. 여전히 어리벙벙한 표정의 하나마키는 쿠니미가 나가버린 방문을 바라보다가 터져 나오는 웃음에 뒷머리를 긁적였다.


“오히려 내가 당했네.”



2015.06.07 하이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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