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키오카 츠무기의 술버릇은 영 좋지 못했다. 그가 술에 취했을 때마다 일어나는 기행들의 역사는 끝이 없었다. 평소 애정을 담아 키우던 식물들의 애칭을 부르며 길거리의 가로수를 끌어안는다거나, 높이가 낮은 미끄럼 방지 표지판을 쓰다듬으며 자비의 이름을 중얼거린다거나 하는 건 이미 타스쿠에게 있어 익숙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츠무기의 이런 주사를 알고 있는 건 그와 어렸을 적부터 알고 지내던, 지금까지 룸메이트로 지내고 있는 타스쿠 뿐이었다. 술을 조금만 마셔도 금방 취해버리는 탓에 평소 술을 잘 안 먹기도 했지만, 사람들 앞에선 좀처럼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아 안 좋은 버릇이 드러나는 건 유일하게 타스쿠 한정이었다.


여느 때처럼 아르바이트인 과외를 하기 위해 나선 츠무기는 평소와 같았다. 다만 과외 덕분에 성적이 급격히 상승한 학생의 집은 꽤나 호탕한 가족이었고, 부모님은 어느 쪽도 애주가였다. 과외 수업 후 집을 나서려는 츠무기를 붙잡은 건 다름 아닌 학생의 아버지 쪽이었다. 크흠, 헛기침을 하며 저녁 식사를 권하는 그 모습에 그는 어쩔 수 없이 식탁 앞에 앉을 수밖에 없었다. 원래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성격이었지만 그 상대가 연상인 경우엔 더욱 그랬다. 조금 어색하기는 했지만 간단히 식사만 하는 거라면 괜찮겠다는 생각에 자리에 앉은 것까지는 좋았다. 하지만 츠무기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길고도 짧은 제 인생에서 그렇게 갖가지 종류의 술을 보게 될 거라고는.



츠무기가 학생의 집을 나서자마자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연락이 온 건 타스쿠였다. 분명 저녁을 먹고 들어간다고는 했지만 생각보다 늦은 귀가에 걱정이 된 건지 통화 연결이 되자마자 들려온 건 그의 까칠한 목소리였다.


“츠무기. 너무 늦는 것 같아서 연락했다.”


학부모 앞에선 힘껏 다잡고 있던 츠무기의 마지막 이성 줄이 끊어진 건 그 순간이었다. 익숙한 낮은 음성에 츠무기의 입꼬리는 금세 곡선을 그렸다.


“타~쨩~?”

“……츠무기?”


평소와 달리 잔뜩 풀어진 츠무기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타스쿠는 그대로 기숙사를 박차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너 지금 어디야? 취했어? 다급한 그의 목소리가 무색하게 츠무기의 말꼬리는 길게 늘어졌다.


“음… 그러니까 오늘 과외는~ 하나미쨩~이었으니까~! 여기가… ◯◯구에…뭐였더라?”

“하……. ◯◯구면 저번 주에 데려다준 곳?”

“맞아, 지금 큰 길로 나왔어~”

“큰 길? 거기서 움직이지 말고 기다려. 금방 갈 거니까.”


느슨한 그의 목소리에 걱정이 앞섰지만 타스쿠는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안전벨트를 매는 것도 잊은 채 시동부터 건 그는 재빨리 액셀을 밟았다.


하필이면 자신과 같이 없을 때 대량으로 술을 마시다니. 물론 평소의 츠무기는 타스쿠가 없는 술자리에선 자신의 한계를 인지하고 적당히 음주를 조절하는 편이었다. 타스쿠도 그걸 알기 때문에 츠무기가 술을 먹는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츠무기의 목소리는 그가 지금껏 들은 주정 중 가장 멍청하게 늘어지는 목소리였다. 짧은 통화만으로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라면 실제로는 더 고약하게 쩔어 있다는 소리겠지. 하필이면 이 추운 겨울에 무슨 난리란 말인가? 입만 열면 나오는 한숨에 타스쿠의 미간에는 저절로 깊은 주름이 새겨졌다.


제발 어디 돌아다니지 말고 가만히만 있어라.



타스쿠가 츠무기를 발견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난주에 데려다주던 기억을 더듬어 들어선 주택가는 그렇게까지 커다란 동네는 아니였기 때문에, 큰 길이라곤 앞으로 곧게 뻗은 2차선뿐이었다. 도로를 따라 쭉 내려가다 보니 한 가로등 밑으로 보이는 남색 머리통은 누가 봐도 제가 아는 츠키오카 츠무기였다. 곧바로 그 옆에 차를 세운 타스쿠는 그대로 문을 벅차고 나갔다. 잠이라도 들은 건지 고개를 푹 숙인 채 편하게 바닥에 앉아있는 츠무기의 모습에 그는 지금껏 쌓였던 걱정은 그저 큰 한숨이 되어 나왔다. 하- 누가 보면 여기가 집인 줄 알겠네. 타스쿠는 불만스러운 얼굴로 투덜거리며 츠무기를 내려다보았다.


“어이, 츠무기. 일어날 수 있겠어?”

“으응, 타-쨩, 좋은 아침.”

“……정신 차리는 건 안 바랄 테니까 얼른 일어나.”

“타-쨩이 일으켜줘.”


뭐라고? 타스쿠는 제 앞으로 두 팔을 내밀어 보이는 츠무기를 언짢은 얼굴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그냥 내가 네 보호자라도 되는 줄 아는 구나. 다 큰 성인 남성이 길바닥 앉아 술주정을 부리고 있는 걸 보면 이보다 더한 코미디는 없을 것이다. 추운 밤기온과 더불어 오를 대로 오른 취기에 발갛게 달아오른 츠무기의 두 뺨은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런 제 모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베시시 웃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츠무기의 모습에 타스쿠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이지, 너만큼 손이 많이 가는 녀석도 없을 거다. 길게 뻗은 팔을 잡고 쭉 당기자 츠무기의 몸은 가볍게 타스쿠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


“술도 약하면서 주는 대로 받아 마시지 말라고 했잖아.”

“이렇게 타-쨩이 잘 챙겨주잖아?”

“오늘은 그나마 내가 아는 곳이라 다행이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이러면 어떡할거야?”

“그래도 타-쨩은 나 찾아줄 거잖아.”


답답한 제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실없이 웃는 목소리에 타스쿠는 츠무기의 뒷머리를 헤집었다. 하여간 이상한 데에서 자신감 넘치는 녀석이다. 그것도 자신에 관한 일이라면 더욱 더. 그런 츠무기의 언행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불안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 보면 유일하게 자신을 향해서만 쏟아지는 무한한 신뢰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제 머리를 헤집는 무성의한 손길이 마음에 들기라도 하는지 더욱 제 품안으로 파고드는 츠무기의 몸짓에 타스쿠는 옅은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이 녀석 나름대로 마음 놓을 수 있는 상대라는 거겠지.


“추운데 얼른 돌아가자, 츠무.”

“타-쨩 지금 츠무라고 불렀어~?”

“얼른 차에나 타라.”


비틀거리는 츠무기를 품에서 떼어 겨우 조수석에 앉혀 놓고나서야, 타스쿠도 다시 차에 탈 수 있었다. 단단한 제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던 부드러운 머리카락의 감촉을 되새기며 타스쿠는 운전대를 바로 잡았다.



2018.02.01 아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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