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1등급 한우, 돼지갈비. 네온사인이 각각의 색으로 반짝였다. 눈이 부셔서 그랬는지, 그 식당의 외관이 너무 진부했는지 도화는 눈을 찌푸렸다. 그러나 식당 안에서 스멀스멀 나는 냄새가 눈치 없이 도화의 침샘을 자극했다. 도화는 그저 침을 꼴깍 삼켰고, 주먹을 앙 쥐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매켄지는 여태 도화를 보고 있었다. 참 웃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 잠깐 사이에 표정 변화가 저렇게 다양하구나. 침도 삼키네. 주먹은 또 왜 쥐어. 하는 생각을 하자 매켄지는 저절로 웃음이 나왔는데, 옆에 아름이 고양이 같은 눈을 하고 뚫어져라 보는 바람에 웃던 걸 멈추고 한숨이나 쉬었다.

 

 

으응... 은영 쌔앰~

 

식당 안에는 고기 기름에 고기와 김치가 구워지는 소리가 비지엠처럼 가득했다. 아직 앉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도화는 벌써 얼굴이 아주 붉어져, 옆에 앉은 은영에 잔뜩 기대어 있었다. 은영은 불편하기는커녕, 오히려 제게 기댄 도화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메켄지는 그런 꼴을 보고 있자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처음 느끼는 이상한 두근거림이었는데 아마 화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누굴 향한 화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은영을 향한 화인지, 도화를 향한 화인지. 은영을 향한 화라면 이유를 대충 알 것도 같았다. 그러나 만약 도화를 향한 화라면 그 화의 원인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던 것이다. 그런 생각들에 머릿속이 복잡해서 주위 소리가 웅웅거릴 때에 술을 한 잔 들이켰다.

 

 

Hey, 안은영 선생님, Get your hands off her shoulders.

뭐라는 거야.

 

매켄지의 얼굴은 약간 붉었다. 매켄지가 고개를 까딱하며 말했다. 은영이 그 꼴을 보자니 좀 웃겼다. 저가 무슨 상관이람. 은영은 약오르게 웃으며, 도화를 양 팔로 꼬옥 끌어안았다. 도화가 웃으며 다 뭉개진 발음으로 은영 쌔앰, 했고 그에 맞추어 은영이 왜요, 도화 쌔앰, 했다. 매켄지는 둘을 보더니 허, 코웃음을 치고 술을 한 잔 들이켰다.

 

응? 도화 쌤 뭐라고요?

 

은영과 도화가 꼬옥 껴안고 있는 중 도화가 작은 목소리로 뭐라 중얼거렸다. 사실 그리 작은 목소리는 아니었으나, 주변이 너무 시끄러워 매켄지에게는 잘 들리지 않았다. 매켄지는 그저 도화가 뭐라고 했다는 것만 알았고 그 내용은 알지 못 했다. 은영이 도화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더니 도화의 말을 듣고는, 썩은 표정으로 매켄지를 쳐다봤다.

 

잠깐 밖에서 셋이 좀 보죠?

 

 

 

밖은 꽤 추웠다. 늦가을이자 초겨울이었다. 도화가 은영에게 기대어 서 있었고, 그 둘을 마주 보며 매켄지가 서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젤리는 뭐 그래, 그렇다고 쳐도 선생님들한테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싶은데.

What?

 

매켄지가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자 은영의 표정이 더 썩었다.

 

도화 쌤이 한 말 다 들었어.

Huh... What did she say?

 

매켄지는 여유로운 듯 눈을 데굴 굴리더니 웃으며 대답했다.

 

네가 도화 쌤 마음 갖고 놀았다며, 이 새끼야.

 

쿵. 은영이 비릿한 웃음과 썩은 표정으로 한 그 말이 매켄지의 가슴에 내려앉았다. 마음, 갖고, 놀았다며. 은영의 말이 메아리처럼 매켄지의 귀에 맴돌았다.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도화 쌤한테 내가 갖고 놀 마음이 있었던 건가? 찰나의 순간에 매켄지의 머릿속에는 예도화, 예도화, 예도화로 가득 찼다. 예도화로 가득찬 머릿속은 이유도 알 수 없이 매켄지의 입꼬리를 위로 잡아당겼다. 웃는 매켄지의 얼굴이 꼴 보기 싫었는지, 둘 사이에 뭐가 있구나를 알았는지 은영은 얼굴을 찌푸리더니 도화를 제 품에서 떼어냈다. 그대로 매켄지에게 떠넘기듯이 도화를 넘기고, 추운 몸을 잔뜩 움츠리며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도화 쌤.

 

매켄지가 도화의 귀에 속삭이자, 도화가 매켄지의 품에 저를 비비며 으응, 할 뿐이었다. 매켄지는 괜히 그 찬바람에 얼굴을 붉혔고 도화를 더 불렀다. 도화 쌤, 예도화, 도화.

 

도화 쌤, 속상했어요? 내가 선생님 갖고 논 것 같아서?

그거느은... 매켄지 쌤이 진짜루 그랬잖아요. 잘 대해 주고, 막.......

 

도화가 매켄지의 품에 안겨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매켄지는 자꾸만 새어나오는 웃음을 애써 참으며 도화를 꼬옥 안았다. 제가 추워 그런 것인지, 도화가 추울까 그런 것인지. 그러고 있던 중, 도화가 매켄지의 품에서 얼굴을 들고 매켄지의 얼굴을 쳐다보았는데, 그냥 몇 초간 그러고 가만히 있기만 했다. 그 몇 초가 매켄지의 인생에서 가장 길었을 몇 초였을지도 모른다. 곧, 도화는 다시 매켄지의 품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 매켄지는 이유도 모르게 자꾸 나는 웃음을 꾸욱 참으며 도화에게 물었다.

 

잘생겼어요?

.... 짜증 나. 그런 건 왜 또 잘 듣구 난리야, 진짜. 그런 얼굴로 자꾸 그러는데 내 마음이 어떻게 가만히 있겠냐구요.

도화 쌤.

왜요오....

Now you drink up, right?

 

도화가 숨을 헙, 참는 소리가 들렸다. 매켄지가 꾹 참던 웃음을 결국 터뜨렸다. 도화는 그 말을 듣고 오싹했다. 그 오싹함은 두근거림과 설렘을 동반한 그런 것이었다. 다 들켰는데, 들켰는데 괜히 신이 났다. 매켄지가 입을 열려던 순간 도화가 매켄지를 밀쳤다. 매켄지가 하릴없이 도화를 쳐다보았고, 도화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더니 말을 마구 내뱉었다. 도화의 얼굴은 말이 나오기 전부터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저 쌤 좋아하나 봐요. 쌤은 나 싫어요? 쌤은 나 갖고 노는 게 끝이에요? 갖고 놀면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니에요?

Hey, 도화 쌤.

 

물음표 폭탄의 말에 대한 대답으로 매켄지가 도화를 불렀고 순간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도화는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이러다가 쓰러지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다. 도화는 제 심장 소리가 저에게도 들리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도화의 귓가에 저의 심장 소리만이 웅웅거릴 때 매켄지가 입을 열었다.

 

I didn’t say I don’t love you.

 

도화는 벌겋게 된 얼굴을 하고 입술을 잘근 씹으며 매켄지를 쳐다보았다. 고깃집 네온사인 빛이 불꽃놀이 색 같다고 생각했다. 도화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아서 매켄지의 품에 그냥 폭, 안겼다. 고백도 없었고 대답도 없었지만, 결국에는 둘 다 있던 밤이었다. 찬바람이 고백이었고 네온사인이 대답이 되었던 그런 밤이었다.



장르 부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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