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월 8일 케일 헤니투스, 김록수의 생일을 축하하며. 

:: 다소 급하게 준비한 글이지만 케일을 사랑하는 마음은 가득 담았습니다 :)

:: 내용 중 비교적 최신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열람을 주의해주세요.

:: 케일 사랑해!











“케일 너무너무 미운 건데!”

 

 눈에 커다란 눈물방울을 단 온이 케일의 심장에 직격탄을 날리며 그대로 몸을 돌렸다. 케일이 미처 잡을 새도 없이 달려 나간 온이 그대로 맞은편에 있는 작은 방으로 쏙 들어가 문을 쾅, 닫아버렸다.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서 있는 케일의 곁에서 라온과 홍이 시무룩한 얼굴이 되어 차례로 입을 열었다.

  

“인간아… 나였어도 서운했을 것 같다아….”

“나도 누나만큼 지금 속상한데… 그치만 누나가 너무 화나서 나까지 화낼 수가 없는데….”

  

케일은 난감한 표정으로 온이 닫아버린 문을 바라보았다. 저 방은 온이 혼자 있고 싶을 때 들어가 있는 온의 아지트인데 마지막으로 저 방에 들어간 건 몇 달 전 케일이 무리하지 않는다고 해놓고 또 혼자 모든 것을 다 하려 들다가 평균 9세의 앞에서 피를 토하고 기절했을 때였다.

 

 “한동안 저 방에 들어간 적이 없었는데….”

  

케일이 눈썹을 잔뜩 늘어트리며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온이 저 방에 들어갔다는 건 이 일이 결코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란 선포나 다름이 없었다. 복잡한 심정을 뒤로 하고 케일은 온처럼 바로 티를 내진 못했으나 아쉽고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마찬가지일 홍을 가만히 당겨 품에 안고선 ‘미리 얘기 못해서 미안해.’ 하고 속삭였다. 어쨌든 일을 이렇게 만든 건 자신이었고, 온과 홍은 지금 케일에게 충분히 화를 내고 속상한 티를 낼 자격이 있었으며, 케일은 성심성의껏 그들을 달래줘야 할 의무가 있는 보호자였다.

  

“다시는 안 그럴게.”

  

이제는 눈물까지 그렁거리기 시작한 홍의 뺨을 서툴게 어르며 케일이 연신 사과의 말을 늘어놓았다.


김록수.

그 존재를 라온이 알게 된 후 한참이 지난 후가 되어서야 케일은 온과 홍에게 비밀을 털어놓았다.

그것도 11월 8일. 최한의 생일이라고만 알고 있던 바로 그 날에 벼락처럼.

 

그 말을 들은 온은 처음에는 믿기 어렵다는 듯 커다란 눈을 그저 깜빡이기만 하다가, 자신보다 먼저 알게 된 사람이 있냐고 물어서 케일의 마음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가, 최한과 라온, 그리고 알베르는 이미 알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마치 죄를 고하듯 꺼낸 케일의 앞에서 처음으로 ‘케일이 밉다’는 말을 하고선 자신의 아지트에 몸을 숨겼다.

 온의 마음처럼 꽉 닫힌 문을 바라보는 케일의 표정이 드물게 어두웠다. 그 어떤 강한 적을 앞에 두고서도 언제나 담대하고 자신만만했던 케일과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는 표정이었다.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일을 겪었고, 지나치게 어른스러우며, 지나치게 똑똑한 온은 언제나 케일이 가장 조심스럽게 대하는, 정말로 특별한 아이였으므로. 아무래도 이 일은 하얀별을 잡는 일 따위보다 비교도 안 되게 어려운 일이 될 것이 분명했다.

 

 

 

 

 


 

특별한 오늘을 우리에게,

- 케일 헤니투스의 생일을 축하하며

 

 

 

 


 

 

온은 언제나 자신이 케일의 유일한 무언가가 될 수는 없다는 걸 알았다. 늘 한 몸처럼 움직이는 홍과 라온은 차치하고서라도 케일의 곁에는 언제나 그를 아끼는 사람들이 넘쳐났고, 가족은 늘어갔다. 사실 그들은 온에게도 마찬가지로 소중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온 역시 달리 케일에게 유일한 존재가 되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하지만 온은 적어도 케일에게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고는 생각했다. 남들보다 조금 더 친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다른 가족들에게는 하지 못할 이야기를 은밀하게 나눌 수 있는. 조금 더 여린 부분을. 아픈 부분을 이야기하고 들을 수 있는 그런 사이 말이다. 실제로 온은 홍과 라온에게조차 할 수 없는 많은 이야기를 오로지 케일의 귓가에만 속삭였다.

 그래서 온은 속상했다. 서러웠다. 다른 것도 아니고 케일의 진짜 생일을. 케일이 케일이 되기 전에 가지고 있던 이름을 자신이 여태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었다. 최한이 알고, 라온이 알고, 심지어 알베르까지 알게 된 후에야 자신이 알게 되었다니. 그래서 여태 케일의 생일이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축하한다는 말 한 마디조차 해주지 못했다니.

 섭섭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밀려들어 온은 머리끝까지 덮은 이불 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코를 훌쩍였다. 이내 닫힌 문을 똑똑, 하고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으나 온은 그저 침대에 고개를 파묻을 뿐이었다.

 

 

* * *

 

 

케일은 노크를 한 후 숨을 죽이고 방 안쪽의 기척을 살폈다. 안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잡아 은근히 돌려보니 문을 잠그지는 않았는지 손쉽게 돌아간다. 딱딱하게 굳어있던 케일의 입가에 그제야 작은 안도의 미소가 어렸다. 쾅, 소리를 내며 문을 닫기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는데 잠그지 않은 걸 보니 그래도 아예 꼴도 보기 싫다는 뜻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케일은 문에 입을 가까이 가져다댄 후 안에 있을 온이 놀라지 않게 너무 높지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온아. 들어갈게.”

  

안에서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으나 케일은 개의치 않고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온이 문을 잠그지 않았고, 들어오지 말라고 소리치지도 않았으니 그간 온과 자신이 보내온 시간들에 미루어 짐작하건대 온은 케일이 안으로 들어오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닐 것이다.

 방안으로 들어선 케일은 조용히 문을 닫곤 저만치 침대 위에 뽈록 솟아있는 자그마한 이불꾸러미를 바라본다. 그 안에서 혼자 몸을 웅크리고 있을 온을 생각하니 조금 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자신의 멱살을 쥐고 싶어진 케일은 눈꼬리를 시무룩하게 늘어트리며 천천히 온에게 다가갔다.

  

“온아.”

  

다시 한 번 그 이름을 불렀으나 되돌아오는 말은 없다. 온이 케일의 말을 무시하는 건 웬만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 예를 들면 케일이 혼자 위험을 자처해 다쳤을 때라든가 - 쉬이 있는 일이 아니었다. 눈치를 보는 고양이처럼 살금살금 다가간 케일이 이번에는 침대에 아주 조심스럽게 걸터앉았다. 볼록한 이불꾸러미가 작게 움찔하는 것이 보였으나 웃을 일은 아니었다. 케일은 그저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처음엔 아무 생각이 없었어. 나는 이 세계로 넘어와서 그 누구와도 깊이 가까워질 생각이 없었거든.”

  

아무 것도 뜻하지 않았다. 케일은 그저 몇 가지의 일을 막은 후. 책 속에서 보았던 너무나도 안타까운 몇몇의 삶을 조용히 구한 후 헤니투스 가의 망나니가 되어 남은 생을 편하게 흥청망청하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론이나 비크로스, 최한과 동료가 되겠다는 생각 같은 게 없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거니와 영웅의 탄생에서는 보지도 못했던 어린 두 명의 묘족과 이다지도 깊은 인연을 맺게 되는 일은 절대로 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니 케일은 나의 비밀을 감추느니 무어니, 그런 것조차 생각할 이유가 없었다는 말이다.

  

“다음에는 굳이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지. 이 세계는 더 이상 소설 속이 아니라 나의 현실이었고, 지금의 현실에서 나는 김록수가 아닌 케일 헤니투스였으니까.”

  

김록수가 읽었던 다섯 권의 영웅의 탄생 속 이야기는 화살처럼 빠르게 흘러갔다. 케일이 뒤튼 이야기들이 전혀 다른 양상을 만들어냈고, 죽었어야 할 이들이 살아 가족이 되었으며, 그 사이에 케일은 홀로 생각에 잠길 때도 자신을 김록수가 아닌 케일 헤니투스로 부르고 있었다.

 

 “당연히 너희에게는 언젠가 모든 것을 다 말해주어야겠다고 다짐하긴 했지만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이런 이야기까지 털어놓고 싶진 않았어. 전쟁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고 나면. 그러면 좀 더 느긋하게 전부 다 이야기해주고 싶었거든.”

  

이불을 뒤집어쓴 온에게서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이 없었지만 케일은 그 작은 아이가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수없이 많은 낮과 밤을 함께 하며. 많은 웃음을 나누고 밤을 속삭이던 날들을 보내며 케일과 온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온을 품에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꾹꾹 참으며 케일이 말을 이었다.

 

 “미안해, 온아. 내가 생각이 짧았어. 이렇게 미루지 말았어야 했는데.”

 

 구구절절 말을 늘어놓긴 했지만 결국 케일이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였다.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 생각했다고. 그래서 너를 서운하게 만들었다고. 그러니 나를 용서해줄 순 없겠느냐고.

 그제야 꽉 닫힌 이불 속에서 서러움이 가득 찬 목소리 하나가 흘러나왔다.

 

 “그치만 최한이랑 라온은 벌써 알고 있었잖아.”

“…응.”

“알베르 저하도.”

“그랬지.”

“나는 몰랐는데. 나는… 나는 여태 모르고 있었는데….”

  

솔직히 온은 정말로 정말로 아주 아주 관대한 마음으로 백 번 천 번 정도 양보해서 최한과 라온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들은 거의 온과 비슷하게 케일과 알아왔고, 그들 역시 온의 가족이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쪼오금 아쉽고 쪼오금 속상해도 어떻게 넘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 어린 온이 생각할 때, 황궁의 왕세자저하보다 자신이 늦게 알았다는 건 어떻게 생각해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보다 자신이 훨씬 더 많이 케일과 함께 있는데. 나는 아주 많은 밤을 케일의 침대에서 함께 잠들었는데. 우리는 더더 많은 시간동안 이야기를 나눴는데.

 알베르 역시 이제는 온에게 너무나도 가깝고 소중한 사람이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온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너무나도 어려웠다.

 케일의 대답을 기다리는 온의 몸이 더더욱 작게 말렸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케일이 너보다 왕세자 저하가 더 믿음직스럽고 가까운 사람이라 먼저 말을 한 거라고 대답할까봐 두려웠다.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걸 알았다. 설령 정말 그것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케일은 결코 자신에게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데도 온은 자꾸만 심장이 뛰고 무서워 몸을 웅크린다. 온은 아주 강하고 어른스러운 누나였으나 동시에 아직 작고 어린 아이이기도 했다.

 그때 온은 이불 위에서 자신의 머리를 가만히 쓰다듬어주는 케일의 손길을 느꼈다. 직접 닿은 것도 아닌데 신기하게 따스함이 전해졌다. 불안해 쿵쿵 뛰던 심장이 케일의 손길을 따라 조금씩 가라앉았고 울고 싶은 마음도 언제 그랬냐는 듯 가라앉는다. 마법 같은 일이었다. 케일이 말했다.

 

 “최한에게는 죽음의 신이 나의 과거를 멋대로 보여줬어. 최한은 그것을 보고 내가 자신이 보았던 기억 속 ‘김록수’가 나인 것을 단번에 알아채더라고. 나도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이제는 추억처럼 말할 수 있게 된 그 날의 기억이 불현듯 떠올랐다. 안 그래도 하얀별 때문에 정신이 없는데 최한은 자기가 최정수의 당숙어르신이래지 정말 어찌나 기가 막히던지. 그래도 자신이 속인 것 때문에 안 좋은 소리를 들을 것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는데 선선히 납득하고 넘어가주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몰랐다. 하여간에 최한은 그때나 지금이나 너무 순해서 탈이었다.

 천천히 떠오르는 날들의 기억 속에 입꼬리가 씰룩거리기 시작한 것을 스스로는 모른 채로 케일은 말을 이었다.

 

 “라온은 그 당시 함께 있었기 때문에 미리 말을 해줄 수밖에 없었어. 너와 홍이에게는 내가 직접 말해주고 싶어서 라온에게는 너희 둘에게도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고.”

“…….”

“알베르 저하는… 온아. 내가 혼자 봉인된 신의 시험을 받았던 때를 기억해?”

  

봉인된 신의 시험.

그 말을 듣자마자 온이 몸을 크게 움찔했다. 여전히 온에게는 생각도 하기 싫은 때의 기억이었다. 죽은 듯 잠들어서 미동도 하지 않은 채 홀로 위험한 시험을 치르고 있던 케일을 보며 얼마나 초조하고 불안했던가. 온은 이불 속에서 은근슬쩍 케일 쪽으로 몸을 붙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때 나는 김록수의 모습으로 시험을 치르고 있었거든. 근데 저하가 나를 도우러 그쪽 세상으로 오게 되는 바람에 들킨 거야.”

“먼저 직접 말한 게 아니구?!”

 

 저도 모르게 지나치게 커다란 목소리로 불쑥 말을 꺼낸 온이 합! 하고 두 손으로 저의 입을 틀어막았다. 최한과 라온에게도, 그리고 알베르에게도 단순히 들킨 거였지 케일이 먼저 나서서 알려준 건 아니라는 사실이 너무 반가워 말이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런 온의 반응에도 케일은 온을 비웃지 않고 차분히 말을 이었다.

  

“응. 그런 건 아니었어.”

“일부러 나에게만 숨긴 건 아닌 거네에….”

“당연하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온에게만 왜 이런 걸 숨기겠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 말이 순식간에 나풀나풀 거대한 솜사탕이 되어 온을 가득 감싸 안았다. 그 말이 온에게는 꼭 케일에게 자신이 아주아주 특별한 사람이라는 말처럼 들려 괜히 불안했던 감정들이 언제 온을 괴롭혔냐는 듯 사라졌다. 케일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도 미안해. 다른 사람들이 알았을 때 빨리 온에게 달려와 이야기를 해줬어야 했는데. 너무 놀라지 않게 차근차근 설명하고 싶은 욕심에 온을 속상하게 만들었네. 정말 미안해.”

“아니… 아닌데…. 케일이 잘못한 건 아닌 건데….”

  

온 특유의 말투가 나오기 시작하자 케일은 그제야 한결 가벼워진 얼굴로 웃었다. 역시 온은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다정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다. 케일이 이번에는 두 손으로 이불 채 온을 가만히 끌어안아주려니 퐁, 하고 이불 속에서 튀어나온 온이 와락 케일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혹시나 온이 많이 상처 받았을까봐 불안했던 마음에 저의 품에 마구 뺨을 부비는 온의 행동에 서서히 사그라졌다. 온이 말했다.

 

 “케일…. 그치만 그동안 내가 케일 생일 몰랐다는 건데…. 그래서 축하도 해주지 못했는데….”

“…….”

“혹시… 혹시 그래서 서운하지는 않았냐는 건데….”

  

사실 온이 느낀 가장 큰 불안과 서러움은 그것이었다. 케일은 이제 온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고, 온의 세상을 다시 따뜻하게 만들어준 기적이며, 온과 홍을 세상 모든 나쁜 것으로부터 지켜줄 보호자였다. 그렇게 소중한 사람인데. 무엇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을 사람인데 온은 그동안 자신이 케일의 생일을 한 번도 제대로 축하해주지 못했다는 것이 너무나도 미안하고 속상했다.

 온의 작은 머리 위에서 푸흐흐, 하는 케일의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봄바람처럼 다정하고 따스한 웃음이었다. 온은 고개를 들어 케일을 바라보지 않았지만 그가 지금 얼마만큼 아름다운 얼굴로 웃고 있을지를 너무나도 선명하게 그릴 수 있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다시금 온의 뒷머리를 가만가만 쓰다듬어주었고, 이내 케일이 말했다.

  

“그게 뭐가 서운해. 온 너를 만난 이후로. 온이 네 덕분에 나는 매일을 세상에서 가장 어여쁜 선물을 받은 기분으로 살았는데.”

  

온과 홍을 만난 순간이 케일에게는 이 세계에서 케일로서 새롭게 태어난 순간이나 다름없었다. 그때가 김록수였던 이가 케일로서 이야기를 처음 써내려가기 시작한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망나니 도련님이 떠도는 어린 묘족 남매를 만났던 그날 이 세계는 아주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온에게 케일이 그러했듯 케일에게도 온은 기적이나 다름이 없었다.

  

“온이 네가 내 곁에 있어주고, 나를 아껴주어서 나는 매일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생일을 만난 사람 같았어.”

 

 그러니 아직 어린 소녀가 그 순간, 그토록 다정한 케일의 말을 들으며 어찌 와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가 있었겠느냔 말이다. 온의 두 팔이 케일의 목을 가득 끌어안았다.

 

 “…아까 밉다고 한 건 진심이 아니었단 건데.”

“그래그래. 알고 있어.”

  

마음이 여리기 그지없는 온의 목소리로 케일의 웃음이 다시 한 번 부서졌다. 온은 케일을 끌어안은 두 팔에 더더욱 힘을 주며 속삭였다.

 

 “케일. 생일 축하해. 정말 정말 축하해. 앞으로는 내가 항상 제일 먼저 축하해줄 건데…!”

“그래그래. 앞으로는 언제나 온의 축하를 제일 먼저 받을게. 축하해줘서 고마워.”

  

아주 오랫동안 외롭고, 고독하고, 서러웠던 삶들이 서로를 만났고, 온기를 나누며, 여기까지 함께 했다. 세계가 변하고, 얽히고, 흐르며 이제는 더 이상 외롭지도, 아프지도 않은 날들이 바로 여기에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하여 수많은 시간을, 눈물을, 고통과 추위를 지나 비로소 함께 맞이하게 된.

 

 





 

아주 특별한 오늘을 우리에게,

 

 

 

 

 

 

 

 

 

 

 

 

- 1108, 시리도록 아름다운 계절의 초입에서 사랑을 담아.

 

 



 

 

 



좋아하는 것을 씁니다. 판소 덕질 중. 트위터 @blanket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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