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uichi Sakamoto - Merry christmas Mr.Lawrance


야사록; 野史錄 09 完

마 지 막  이 야 기


전 정 국  X  김 태 형
W.  B  A  E  B  A  E .




*



태형이 궁에 부름을 받고 부락을 떠난지 보름하고도, 태형이 다시 마을로 돌아오고도 보름이 더 지나서 정월을 코 앞에 둔 날쯤이었을 것이다. 어렵사리 지나간 열 아홉의 끝자락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정월까지 무사히 보내고 난다면, 태형의 앞에 놓여질 미래는 어떤 점사도 말해주지 못했다. 태형의 그런 심경을 이해한다는 듯 태형의 노모는 힘 없는 손가락을 펼쳐 태형의 손을 잡아주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어느새 거동마져 불편해져버린 할미의 위축된 모습에 태형은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일 뿐이었다.  깨끗한 이부자리 위에 누워 세월의 시간을 무디게 받아들이고 있는 할미의 모습에라도 태형은 의지하고 싶었다. 지금 현재로써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아가-,"



할미의 목소리가 태형의 신경을 다시 불러 모은다.



"응, 할미

왜요? 뭐 필요하세요?"


"정월이... 곧 이구나."



어쩌면 그토록 기다렸던, 정월이 이제는 막상 다가온다고 하니 부딛혀질 그 시간이 사뭇 겁나졌다. 



"아주...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태형이 너에게 전해야겠다..."



할미는, 한 자 한 자, 놓치지 않고 전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빠짐 없이 건네고자 말을 이어갔다. 순간순간 힘에 벅차 보일 때도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를 뿐, 그녀가 태형에게 전하고자 그리고 알아야 할 이야기를 건넨다. 



기억하지 못할 수 있는 너의 어린 시절이라며 이야기를 시작되었다. 태형이 스스로 걷고, 뛰고, 먹고, 말할 수 있을 나이가 되었을 즈음 신의 점지를 완전히 받아내고 신의 사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시작 된 100일기도 첫날 거스를 수 없는 운명에 얽였다고 말했다. 태형은 기억하지 못하는데 할미가 알 수 있는 이유는 아직 어린 아이를, 유일한 피붙이를 산으로 홀로 보내는 할미의 마음이 편치 않아 집안의 하인을 시켜 태형의 뒤를 밟으며 다치지는 않는지, 길을 잃지 않는지 늘 뒤 따라 다니게 했다고 고백했다. 기도를 위해 산신각을 향하는 태형이 갑자기 다쳐서 피를 흘려 쓰러진 호랑이를 보고는 지나치지 못하고 제가 가진 옅은 신력으로 그를 치료해주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것이 호령과의 인연시작이었을 거라고 말이다. 조물주도 막을 수 없는 삼신의 연줄이었다. 그 인연은 성인이 되는 날까지 이어지나 어쩌면 그 인연이 평생의 반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여 주었다. 어느날인가 호령의 반려라는 것을 묻던 날 어쩌면 너는 평생 그와 이 호산을 누비며 살아가야 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묘한 기분까지 들었다는 할미에 말에 태형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륵 떨어졌다. 걱정마라 네 연인은 그리고 너는 생각하는 것보다 무척 강하니까. 라고 희미하게 웃어보인 할미는 제 할말을 마치고는 그만 눈을 붙여야겠다며 너는 정월기도를 준비하러 가보라며 손을 내저었다. 태형은 돌아누눈 할미의 등을 보고는 벅벅 눈가의 맺힌 이슬을 털어내었다. 



"게 밖에 누구있느냐-."



별이 촘촘히 박혀진 하늘을 아래 마을에서 좀 떨어진 외딴 집은, 마치 밤이 오길 기다렸다는 듯 불이 점차 꺼지는 부락들과는 달리, 작은 집 곳곳에 불이 놓여졌다. 나갈채비를 마친 태형이 마을 어귀의 소란에 걸음을 멈추어섰다. 



"모두 물러서세요!!"


"선생님-,"


"김 선생님 아니십니까-"



실로 오랜만에 만나는 백호의 모습은, 이렇다 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씩씩-, 콧김에서 나오는 김은 지금 그가 얼마나 위태로운가를 설명하고 있었다.



"당장-, 치우세요."


"아닙니다, 만신님. 어서, 당장 비키십시오!, 저 사특한 것이 결국 만신께도 해(害)를 입힐 것이옵니다!!!!!!"



태형은 물러섬이 없었다. 

뒤로 갈 곳이 없었다.

마주해야 할 인연이이었고 맺어진 반려라면 나 또한 지켜내야하는 것이 의무일 테니. 

웅성이는 마을 사람들을 들여보내고 시동마져 물렸다. 



얼마만에 마주한 정국인가.

빛나는 털의 윤기는 맥 없이 흙먼지로 뒤덮여 위용을 잃은 듯 보였다. 털끝에 비치는 미미한 혈흔에 대해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야 할지도 모른다. 






"도대체 호령이 이 곳은 어찌 내려온거야, 꿀 먹은 뭐 마냥 왜 아무말이 없어?"


"..."


"우선, 신당으로 가자."


"..."


"정녕, 밤새도록 산이 아닌 이 마을 어귀를 지키고 있을 셈이야?"


"...태형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무거운 공기에 질식될 것마같은 분위기가 두려움으로 바뀌기 전에 한발자국 용기를 내어 태형에게 다가가려했으나, 두려움보다 무서운 너의 매몰찬 거절이 답으로 돌아온다.



"가까이 오지마-,"



떨리는 목소리는 그의 복잡한 심경을 대신하듯,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내뱉어져온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은데,"



나라고 다를까,

너라고 틀릴까,

우리의 마음이 여기 이렇게 꽁꽁 묶여있는 것을-.



"보고 싶었어. 

아주, 많이 보고 싶었어, 김태형."



끝내 여린 연인의 눈가의 눈물을 보고야 말았다.

맑은 유리구슬과도 같은 방울들이 뚝뚝 떨어진다.

그를 품안에 깊이 가둔 채, 나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한다.



"나와 가자,

내 연인을 이리 둘 순 없음이다."


"정국..."


"오늘 너를 내 반려로 맞을 것이다.

너무 많이 돌아왔다. 우리."



[한낱 인간이라 할 지라도, 사신을 지킬 수 있는 영(靈)을 담을 그릇이 완성되면 천주(天主)가 그를 부를 것이고, 영겁의 저주를 받은 천년백호와 만월의 밤에 두 사람이 만나 평생의 연(緣)을 갖게 될 지어다. 또한 천년백호와 짝을 이룬 자는 그 또한 산신이 되어 산의 주인이 될지어다.]




정월의 전야, 

호령의 현신인 정국이 모습을 드러내 태형에게 손을 내밀었다. 

얼굴 곳곳 보이는 상처는 누군가와 싸운 것일까. 아니며 태형에게 모습을 보이지 않았던 그 시간만큼 그에게 오기 위해 무던히 애쓴 것일까. 



"오늘 밤, 나와 함께하여 주오. 

나의 반려여."



정국의 내민 손을 지나쳐 그의 품으로 빠진 태형의 그를 품에 꽉 안았다.

오늘 밤도, 내일 밤도 당신의 곁에 있겠다고. 저주고 인연이고 다 잊고 그저 당신의 반려로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말하며 정국의 품에 안겼다. 



"사랑하오-."



오래동안 하고 싶었는데 전해지 못했던 말이었는데. 진심으로-, 사랑하오 라고 말하는 정국의 목소리에 기어이 태형이 그 품에서 울었다. 그 따뜻함에 마음이 놓여져 터진 눈물이 정국의 얼굴을 적셨다. 우는 태형의 등허리르 다독이다가 그치지 못하는 태형의 울음에 그를 조금 품에서 떼어내어 태형의 얼굴을 두 손으로 맞잡아 자신을 바라보게 한 정국이 그래도 태형의 입술을 머금었다. 겹겹이 퍼지는 꽃입처럼 서로의 입술이 맞닿아 입안을 가로 질러 깊숙이 유영한다. 그 사이 타고 흐르는 타액인지, 태형의 눈에서 흐른 눈물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 둘은 오롯히 둘 만을 확인 할 뿐이었다. 긴 입맞춤에 태형이 눈물은 멎었고, 번들거리는 입술과 벌게진 눈으로 정국을 올곧이 바라보며 답한다.



"나도, 나도 많이 사랑해"



그의 품에 안긴다. 그를 안아든 정국이 그대로 백호로 변해 사람들 인적이 없는 깊은 산 속으로 들쳐엎고 달려들어간다. 






春水萬四澤 (춘수만사택)

봄 물은 사방 연못에 가득하고


夏雲多奇峰 (하운다기봉)

여름 구름은 기묘한 산봉우리가 많도다


秋月揚明輝 (추월양명휘)

가을 달은 밝은 빛을 드날리고


冬嶺秀孤松 (동령수고송)

겨울 산마루에는 홀로선 소나무가 빼어났도다.


<四季> - 陶淵明

 




세계적인 미술 아티스트 뷔가 문을 연 BT아뜰리에는 물론 그의 유명세로 늘 문전성시였다.  

그러나 다채로운 프로그램과 아기자기한 조형물들 자연 경관이 어우러진 작은 뜰 덕분에 늘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들이 낮 시간을 채웠고, 퇴근하고 오는 도시의 연인들을 위해서도 다른 박물관이나 전시장과 다르게 밤 9시까지 문을 열었다. 그래서 오후 시간에는 두 손을 맞잡고 서로의 감정을 교류하는 연인들이 주로 아뜰리에를 채워주었다. 



"보시는 이 작품은 특별히 저희 집안 대대로 내려온 가보와 같은 그림입니다. 

저희 아뜰리에 뒷편의 작은 뒷산은 작은 저의 아뜰리에를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변화시켜 주죠. 그리고 저의 모든 그림의 영감의 원천이 된답니다. 겨울에 산등성 위로 쌓인 소복한 눈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키고 눈이 녹고 다가올 봄을 기다리게 하죠. 그리고 햇볕이 따사로워져 내렸던 눈을 모두 녹이고 자연을 깨우는 봄이 오면 언제 얼었었냐는 듯 새싹을 틔우고 우리에게 늘 새로운 무언가를 도전하고 시작하게 합니다. 그리고 볕이 점차 뜨거워지면 앞 뜰과 뒷산은 푸르름을 내어주고 우리들에게 작은 쉼터를 마련해 준답니다. "


"쩌어기! 선생님!!! 호랭이가 웃고 있어요!"



태형의 설명 뒤로 설명을 듣던 어린 아이가 같이 온 선생님에게 그림의 호랑이를 가르킨다. 그 옆의 아이들도 그 모습을 자세히 보려는 듯 삼삼오오 조금 더 가깝게 그림에 모여든다. 꺄르륵 웃는 소리도 진짜다, 거짓이다라며 분분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 모습에 뷔는 아이의 눈 높이에 한 쪽 무릎을 꿇고는 웃으며 답한다.



"맞아요, 웃고 있을거에요. 

지금 우리 모두가 이 그림을 보고 행복하니까 저 백호 역시 분명히 우리를 바라보고 웃고 있을거에요.

그림 속 백호가 지켜준 저 커다란 산들이 가을이란 옷을 입고 아련해지기도 또 풍요를 주기도 하지요. 그렇게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을 함께 흘러가고 있는 거랍니다. "



아이는 뷔를 따라 웃으며 제 선생님의 곁으로 쪼로록 달려갔다. 다시 자세를 고쳐 일어난 태형이 오늘의 해설은 여기까지 입니다. 이후 뒷편의 그림은 자유롭게 감상하란 말을 남기고 가려는데 아이의 선생님이 아이의 손을 잡고 태형에게 와 묻는다.



"근데, 저 그림 이름이 뭔가요? 따로 이름이 안 적혀 있네요"


"이 그림의 이름은 [백호]입니다. 

조선시대 후기 야사록 [호령의 반려]라고 기록되어있기도 한 설화를 바탕으로 한 그림이구요."



아뜰리에 내 하루에 세 번 이루어지는 마지막 해설시간이 정말로 끝났다. 

마지막 조금 늦게 입장했던 한 커플이 그림을 보고있던 중이라 마감 시간보다도 조금 더 불을 켜주고 배웅하는 뷔에게 고맙다고, 백호 그림의 설명이 참 인상적이었다며 인사를 건네고는 퇴장했다. 

별들이 우수수 떨어질 것 같은 깜깜한 어둠이 어느새 내려 앉았다. 손목을 내려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아홉시 반이었다. 정문을 닫고, 중간 중간 비상구 문도 꼼꼼히 닫았다. 온 전히 이 공간은 뷔에게 향해있었다. 느릿한 발걸음으로 [백호]의 그림 앞에 섰다. 



"오늘도, 수고했어"



흰색의 도포자락의 사내가 뷔를 뒤에서 감싸 앉는다.



"응, 너도 수고했어."



감기는 그의 팔을 손으로 반기고, 뒤에 안아오는 그에게 몸을 싣는 뷔였다.



"너를 보는 일이 어떻게 수고로와.

행복하지-."


"가자, 집으로."



그가 웃는 웃음에 뷔가 따라 웃었다. 

그가 내미는 손을 부드럽게 맞잡으며 후문을 닫았다.




두 사람이 향하는 길은 아뜰리에 뒷 편에 남 모를 후문으로 나가 뒷 산 깊은 곳으로 멀리 멀리 사라져갔다. 두 연인의 모습은 신기루처럼 사라져 간다. 어렴풋이 구름에 떠있는 신선같기도, 인간의 형상이 아닌 짐승 한 쌍 같기도하다.




 전해져 온 야사(野史)에는, 성년이 되는 해의 정월 초하루, 몸과 마음이 깨끗한 미동이 호산을 지키던 천년 백호에게 재물로 바쳐져 왔다고 전한다. 또한 재물로 받쳐진 무당은 산자도 죽은자도 아닌 만신(萬神)으로 다시 태어나, 궁궐의 국무(國巫)이상의 대우를 받게 된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야사록을 조금 고쳐써야 할 지도 모르겠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은 평생의 반려이자, 연으로 두 사람은 서로를 이해하고 아끼고 배려하며 사랑하며 살고 있노라고. 


 세기를 넘어 매일 추억이 담긴 혹은 의미가 담긴 그림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부르고 추억하다 어둠이 내려 앉은 밤 그와 만나 애틋한 사랑을 확인하는 서로에게 그렇게 묶인 인연의 고리를 잘 찾아 살아가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야사록; 野史錄

- 마 지 막  이 야 기, 끝 -

W.  B  A  E  B  A  E .




야사록; 野史錄 完 (21. 10. 30 ~ 22.01.26)


안녕하세요! 내님들!

코시국에 다들 건강하시지요~? 바쁜고 힘든 혐생에 야사록은... 사실 제게 위안 같은 글이었는데 여러분께도 바쁜 일상 속 편안히 감상할 수 있는 글이었기를... 감히 바래봅니다!ㅎㅎ

항상 완결은 아쉽고 미련이 남지만 즐거운 작업이었습니다. 

다가올 새해는 모두다 건강하고 우리 모두 행복한 일만 가득하길 바래봅니다 >_<//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BY BAEB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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