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소는 눈치가 빠른 사람이었다. 혹은 직관력이 뛰어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지도 모른다. 그는 예지로운 사람이었고 남들보다 통찰력이 배는 뛰어났다. 그것은 비단 사건에만 그치지 않고 사람을 관찰할 때도 해당이 되었는데 의도적이라기보다는 저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버릇 같은 것이었다. 그러니 이따금 제 뒤에서 느껴지는 린신의 시선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 그가 모를 리가 없었다. 때로는 몰랐으면 좋을 법한 일들이 있다. 바로 이것이 그러했다. 마음 가는 것을 어찌 막을 수 있겠냐만 길이 아닌 것을 알면 멈추는 것이 옳음이라 모르는 척 하다보면 자연히 수그러지리라 여겼다.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끝없이 쏟아지는 감정은 둑으로 막아도 넘치는 것이 하릴없었다. 차라리 그 시선을 눈치 챘을 때 미리 거절의 말을 늘어놓았더라면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터였다. 이제와 들추어내기에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모르는 척 눈을 가릴 수밖에 별 도리가 없었다.

 

 “종주.”


 상념에 잠겨 잠시 멈칫했던 손이 다시 움직였다. 용건만 적은 짧은 서신을 마무리 지어 건평에게 넘기며 장소는 일말의 죄책감을 느꼈다. 그간 연락 한번 주고받지 않은 탓이었다. 랑야각의 명성에 걸맞게 금릉의 소식을 누구보다 빠르게 접하고 있을 터였고 제 소식이야 안의원이 틈틈이 서신을 띄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니 그걸 핑계로 장소는 부러 손에 붓을 잡지 않았다. 본래 그리 살가운 성격도 아니거니와 안부를 주고받기에 린신은 지나치게 건강했고 장소는 지나치게 허약했다. 이 이상 그에게 전달할 말이 무엇이며 더는 제 일에 끼어들어 랑야각의 명성에 흠이 가게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지금도 과한 호의와 도움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벗이라는 이름으로. 벗- 그랬다. 린신의 장소의 벗이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 했다. 지난 13년을 돌이켜보면 그것이 그저 마음을 달래기 위한 비어(飛言)에 불과함을 알았으나 그는 이보다 나은 처방을 찾지 못했다. 린신의 눈빛이 무엇을 말하는지 깨달은 지도 꽤 오래되었다. 깨닫지 못했던 시간은 헤아리고 싶지 않았다. 알아서 무엇 하랴. 마음만 다칠 것을. 이따금 장소는 린신이 보고 싶었다. 그보다 좋은 벗은 두 번은 만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아니 한 명 있었다. 소경염, 제 주군의 이름 석 자를 곱씹으며 장소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러나 경염은 임수의 벗이지 매장소의 벗이 아니었다. 그러니 제 속을 털어 놓을 친구는 린신이 유일했다. 보고 싶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허나 그것은 벗으로서의 감정이기에, 매장소는 그의 벗이기에 장소는 그를 부를 수 없었고 안 보는 만 못했다.

 몇 년을 공들여 계획했던 일도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달았다. 아버지, 형님 그리고 7만 적염군의 한은 풀어낼 수 있으리라. 또한 죽은 임수의 한도. 매장소로 살아가기로 마음먹은 그날 임수는 죽은 자가 되었다. 때론 죽은 자가 산 자의 자리를 침범하고자 무던히 애를 썼으나 장소는 그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안될 일이었다. 책장을 넘기는 손이 희게 질렸다. 이제는 익숙해 질 법도 한데 차갑게 굳은 손이 제 손이 맞나 의심스러웠다. 검 한번 들어보지 못한 서생의 손이었다. 장소는 펼쳐보던 책을 덮은 뒤 화로 위로 손을 올렸다. 열기가 손끝을 타고 전해져 왔다. 그러나 희게 질린 손은 쉬이 온기를 품지 못했다. 온 몸을 휘감는 한기에 가슴까지 시렸다.


“소거거!”


 비류가 뚱한 얼굴로 쿵쾅쿵쾅 소리를 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마음먹고자 하면 발소리 하나 내지 않고 들어올 수 있을 것을 저리 기척을 내는 것은 단단히 뿔이 났다는 표식이었다. 장소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으며 모르는 척 왜 그리 뿔이 났느냐 물었다. 비류는 잔뜩 성을 내며 건평이 나쁘다 짧은 단어를 하나 둘 내뱉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일각 전 보낸 서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도 제가 비둘기를 잡았다는 이야기를 할 때는 목소리가 줄어드는 것이 영락없이 어린아이가 제 죄를 고하는 꼴이라 장소는 너털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장소는 그리 린 형이 보기 싫냐 물었다. 비류는 고개를 끄덕이며 싫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으며 보고 싶다고 아주 작은 목소리로 다시 답했다. 아직 그리움이 뭔지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가 빈자리의 쓸쓸함을 인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러나 그 허전함마저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아이는 어리지 않았다. 그로 인해 필시 상처받을 것이 분명했다.


 “비류야.”

 “응?”

 “괜찮을 거다.”


 비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장소는 비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빌었다. 괜찮을 거다. 너는 괜찮을 거다. 내가 없어도 너는 괜찮을 거다. 착잡한 속내를 숨기며 장소는 애써 미소 지었다. 비류는 장소의 속도 모른 채 그저 쓰다듬어주는 손길이 좋아 방실방실 웃기만 했다.

 행궁에서 돌아온 뒤 장소는 침상에서 좀처럼 움직이질 못했다. 수하들의 걱정과 안의원의 엄한 호통 속에 좋으나 싫으나 자리를 보존해야 했다. 사람들 사이에서는 행궁에서 돌아온 소철이 병이나 몸져누워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 허약한 서생이 행궁에서 큰일을 겪었으니 병이 나도 단단히 날 법 하다며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금릉바닥에서 소철은 입에 올리기 쉬운 상대였다. 입을 잘못 눌린다고 목이 달아날 상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가 강좌매랑, 강좌맹의 주인임을 아는 이들에게는 그렇지 못하였으나 적어도 그 신분을 모르는 자들에게 소철은 구설수에 오르기 딱 좋은 상대가 아닐 수 없었다. 세기의 책사, 간교한 모사꾼. 그 어느 말이 맞는지는 몰라도 하나는 분명했다. 소철은 뛰어난 책략가였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의 행보가 궁금했다.

 주인의 병환을 이유로 소택에서는 객의 방문을 정중히 거절하였는데 친분이 있는 몇몇 사람이 병문안을 이유로 찾아오는 것은 막진 않았다. 낮에는 예황군주가 소택을 방문했고 저녁에는 몽통령이 찾아왔다. 예황의 경우 정문을 이용해 당당히 걸음 하였고 몽지는 밤손님마냥 담장을 넘어 들어온 것이 차이점이긴 하였다. 담을 넘어 들어오는 몽지의 기척을 느낀 비류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익숙한 발자국 소리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비류는 몽지의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는 뚱하니 고개를 돌렸다.


 “내각에서 발표가 났다. 6월 16일에 정왕을 태자에 책봉한다는구나.”

 “놀라운 소식도 아닌데요.”

 “그래도 어찌됐건 좋은 소식이 아니냐. 정왕이 태자가 되면 국정을 넘겨받게 될 거고 네 오랜 염원이 이뤄질 참인데 기쁘지 않아?”


 장소의 뒤를 쫒아 안으로 들어서며 몽지는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정왕의 태자책봉 소식을 전하는 몽지의 목소리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들어있었다. 반대로 장소는 별 반응도 없이 침착하기만 했다. 몽지의 눈에는 어느 때와 같이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하며 자리에 앉는 장소의 모습이 이상하게 보였다.


 “기쁩니다.”


 장소를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하동누님을 빨리 꺼내 오시면 더 기쁠 것 같은데요.”


 장소가 약하게 미소 지으며 입을 다물자 몽지의 표정이 구겨졌다. 안 그래도 그 일로 골치가 아프던 참이었다. 장소가 추천한 채전이 형부를 맡은 이후 감옥 경비가 날이 갈수록 삼엄해 져서 일을 처리하기가 쉽지 않았다. 형부가 제대로 굴어간다는 증거였고 분명 기뻐할 일이었건만 하동과 궁우를 맞바꾸는 일이 어렵게 되어 힘에 부치자 원망의 마음이 살짝 치솟으려던 참이었다. 장소에게 좀더 하소연을 늘어놓으려는 찰나 때마침 려강이 안으로 들어서며 녕국후의 죽음을 알려왔다.


 “검주에서 전서구가 왔는데 녕국후가 죽었답니다.”


 몽지가 놀란 표정으로 어찌된 일이냐 캐물었다. 장소는 한참을 입을 다문 채 둘의 이야기를 들었다. 녕국후가 죽었다. 옷자락을 움켜쥐는 장소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녕국후의 죽음 앞에 장소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짤막하게 눈앞을 스치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어찌 막을 수가 없었다. 한때는 그를 가족으로 여기던 때의 아주 짧은 기억이었다. 애도를 표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지금 장소의 머릿속을 채우는 것은 이제 때가 무르익었다는 사실 하나 뿐이었다. 이제야 겨우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다.

 하강은 도망쳤고 황상은 연로하며 정왕의 명망은 날이 갈수록 높아만 갔다. 이제 곧 정왕은 태자가 될 것이고 국정을 물려받아 힘이 더해지면 그를 막을 사람은 없어진다. 줄 곳 이 때를 기다려왔다. 사건을 들춰낼 계기. 그것이 녕국후의 죽음이었다. 그의 죽음이 사고는 아닐 것이다. 그 뒤에 누가 있는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라 장소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의 죽음이 아주 쓸모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었다.

 장소는 리양 장공주에게 있는 녕국후의 친필 진술서를 그리며 그것을 언제 꺼내면 좋을지 그려보았다. 녕국후의 죽음이 금릉까지 알려지려면 최소 한 두 달은 걸릴 것이다. 아직 생각할 시간은 남아있었다. 장소에게 일렬의 이야기를 들은 몽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비류는 왜 저런답니까?


 함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려강이 뚱한 비류의 표정을 보며 궁금증을 표했다. 입술이 닷 발은 나온 것이 무언가 단단히 마음에 들지 않는 듯 했다. 려강의 물음에 비류를 바라본 장소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비류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는 대게 한 사람이 원인이었다.


 “온 종일 심통이 난 것을 보니 린 각주가 왔나 보네.”


 처음 듣는 이름에 몽지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장소의 얼굴을 바라봤다. 려강은 장소의 입에서 린 각주라는 말이 나오기 무섭게 눈썹을 찌푸리며 불만을 토로했다.


 “린 공자도 너무 하십니다. 종주께서 기다리고 계신 걸 알면서 왜 늑장을 부린답니까.”


 려강의 투덜거림에 장소는 그저 웃었다. 남이 부른다고 제 발로 찾아 올 위인도 아니거늘 제 부름에 남초에서 예까지 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천하의 린신을 부려먹을 수 있는 이가 저뿐임을 장소는 모르지 않았다. 몽지는 드물게 온화한 눈빛을 하는 장소와 투덜거리는 려강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환기시켰다. 도통 두 사람이 말하는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대체 누구 얘기를 하는 건가?”

 “강호 의원인데 섭봉 형님 치료 때문에 제가 불렀습니다.”

 “그거 잘됐네. 드디어 섭봉을 치료할 수 있게 됐구나. 행궁에서 돌아온 이후로 네가 얼마나 우울해 했냐. 한데 너는 섭봉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정왕도 요새 우울해 보인단 말이지. 정왕은 왜 그런 거냐?”


 섭봉의 이름이 나오자 몽지가 단박에 환해진 얼굴로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러다 정왕의 얼굴이 떠오르자 단박에 표정이 구겨지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어깨에 짊어진 짐이 얼마나 무겁겠습니까. 저는 형님과 형제들이 있어 속내라도 털어놓지만 정왕 곁에 누가 있습니까? 귀비마마가 계신다 해도 자주 뵐 수도 없잖아요.”


 정왕의 속이 어떨지 짐작은 갔다. 지금 정왕의 머릿속은 적염군 사건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머리만 복잡한 것이 아니라 하루에도 수십 번 애간장이 녹았다가 데일 듯 타오를 것이다. 슬픔, 분노, 원망, 그리고 미안함에 매일 밤을 뜬 눈으로 지새우고 있을 지도 몰랐다. 제가 겪은 그 감정을 고스란히 느끼고 있을 그를 생각하며 장소는 마음이 무거웠다. 변하지 않는 사람, 세상이 다 변해도 변하지 않을 사람. 정왕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그를 믿었고, 그를 밀었고, 그를 이용했다.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외로워진다 하였나. 그 말이 맞았다. 그는 앞으로 점점 더 외로워지고 고독해 질 것이다. 장소는 누군가 제 심장을 바늘로 찌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심장을 옥죄어 오는 따끔한 통증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몽지를 배웅한 후 장소는 잠시 정원을 거닐었다. 린신이 금릉에 들었다니 늦어도 내일은 소택에 들를 터였다. 랑주를 떠나며 건네 준 약을 다른 이에게 내어주고 대신 제가 앓아누운 일을 알게 되면 린신의 잔소리가 꽤나 시끄러울 것이라 생각됐다. 받은 약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서신에 한 줄도 적지 않았지만 건평이건 려강의 서신을 통해 이미 전달되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두 사람은 장소의 건강에 관한 일이라면 거짓하나 없이 린신에게 고하곤 했다. 신경을 많이 쓴 탓이지 때가 된 것인지 장소의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져갔다. 조금만 더 가면 끝이 보이는 데 그때까지 이 몸뚱이가 버텨줄 수 있을지 그것이 걱정이었다. 버석하게 마른 입술 사이로 한숨이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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