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한 샬럿과 마를렌이 등장합니다. 샬마로 보아도 마샬로 보아도 무관합니다.

 

1

 

 

오늘따라 시내엔 사람들이 붐볐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고 앞을 보고 뒤를 봐도 온통 사람들 천지였다. 샬럿이 사는 곳에 비하면 시내는 언제나 사람이 많은 편이었지만 오늘은 날이 더했다. 능력자 전쟁이 끝난 날이나 유명한 귀족이 내려올 때에도 이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이 더운 날씨에 잘도 나왔다.

하기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거나 멀게 느껴지는 일과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할 일은 다르다. 공감의 범위도, 이해도, 깊이도. 다.

 

한때는 그게 제 현실이었으니까, 지금은 믿지 못할 얘기지만. 샬럿은 쓰게 웃었다. 샬럿, 얼른 와! 이러다 미아 된다. 얼른 이것만 팔고 너도 놀러 가야지! 잠깐 생각에 잠기자 그와의 거리가 조금만 늦어도 놓칠 만큼 순식간에 벌어졌다. 네, 금방 갈게요! 영차, 샬럿은 큼직한 과일상자를 품에 안고 그를 따라갔다. 발 빠르게 걸음을 옮기느라 미처 보지 못한 사과 한 알이 바닥을 뒹굴었다.

 

* * *

 

“이런 중요한 때에 드렉슬러 아저씨는 어디 간 거예요!?”

“사람 많은 곳은 싫다면서 숙소에만 있겠다더군... 어차피 굳이 나가서 할 일은 아니지 않냐면서.”

“정말, 늘 그런 식이니까 타라 언니에게 매번 혼나는 거라고요! 이런 사람 많은 곳이야말로 안타리우스의 잔당이 숨어들기 좋은 장소죠. 처음부터 경계를 강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구요.”

“좋은 생각이지만 그런 얘기는 좀 더 작게 말하는 게 좋겠군, 마를렌 양.”

“으으, 어차피 여긴 사람이 많아서 잘 안 들릴 텐데. 로라스 아저씨도 참...”

“어이, 이봐! 거기 핫도그 하나만 줘봐!”

“...... 흠흠, 이미 낮췄다구요.”

 

자기 목청이 좋단 걸 굳이 남에게 자랑하고 싶을까. 투덜거렸지만 바로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마를렌은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지 않아도 로라스의 말은 너무 고지식하다는 것 빼고 딱히 틀린 말은 아니라 들을 생각이었는데. 이러면 꼭 뒤늦게 고치는 것 같잖아. 속으로 불평하며 마를렌은 선글라스를 고쳐 썼다.

두 사람, 아니 이 자리에 없는 드렉슬러까지 포함하여 세 사람은 안타리우스의 첩자들이 이곳에서 안타리우스의 부활을 도모한다는 신고를 듣고 찾아왔다. 물론 거의 다 헛소문에 불과했지만 질기도록 이어진 그 결집력을 생각해보면 만일의 가능성은 늘 생각해두어야만 했다. 이렇게 셋이 모일 정도로 신빙성 있는 정보도 가끔 있고. 좀 전의 활기 넘치는 목소리와 달리 입을 꾹 다문 마를렌이 군중이 모인 광장을 응시하며 결 좋은 단발을 쓸었다.

 

마를렌이 기억하는 거의 매 순간은 전쟁터였다. 평화로운 유년 시절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지만 마를렌은 11살이라는 나이에 전장에 나갔고, 그것은 능력자 전쟁이 끝난 비교적 최근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최근은 아닌가, 3년 정도 전이었으니.

하지만 능력자 전쟁이 끝났다 해서 모든 일이 해결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이 목표로 한 문이 닫히고 구심점을 잃어도 결집력 있는 사람이 남아있는 이상 사람은 끊임없이 썩은 동아줄이라도 잡으려 모여들었다. 그것이 잠잠해지기 시작한 게 최근. 이제는 대부분 헛소문이거나 이렇게 정황이 있는 소문이어야 사람이 투입될 정도로 얌전해졌다.

하지만 그건 이 사람들이 모르는 일이다. 3차 능력자 전쟁은 거의 브뤼노 올랑이 복제한 메트로폴리스 안에서만 이루어졌고, 능력자의 존재는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위협으로 다가왔다. 글쎄, 제가 보기엔 다 똑같은 치들이지만.

샬럿, 그 아이도 이런 사람들 틈에서 고통 받고 있지 않을까?

 

7년 전, 제 실수로 놓쳐버리고 말았던 그가 생각나 마를렌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렇지만 이제부터 그런 일은 없을 거다. 마를렌은 단 한 번도 샬럿을 포기한 적이 없으니까.

꼭 찾아서, 다시금 전처럼 웃게 해줄 거야. 마를렌이 앞장서 걸어갔다. 먼 길을 와서 그런지 피곤하네요, 얼른 둘러보고 보고서 쓰러 가죠. 원래 여름축제는 저녁부터가 본격적이라고요~ 변덕스러운 마를렌의 태도에 로라스가 옅게 한숨을 쉬었다. 사실 여정도 여정이지만 헬리오스에서 변덕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두 사람이 모였으니 가는 길에 다들 로라스를 향해 힘내라고 한 마디씩 하고 갔다. 그러니 이 정도는 예상한 바였다. 두 사람이 들었으면 저희보다 고집이 센 사람이 할 말이냐며 대번에 소리쳤을 생각을 하며 로라스는 마를렌의 뒤를 따라갔다.

 

“음...?”

 

누가 사과를 떨어트리고 갔나 보군. 로라스는 이미 발자국 하나가 찍힌 사과를 주워들었다. 누가 밟으면 미끄러질 수도 있으니까.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처리하는 게 좋겠다.

 

2

 

 

"오늘치 일도 끝났고 저 양반도 간만에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술 마시러 가는데 여기 있어도 되니, 샬럿?"

“저야 뭐 만날 사람도 없는걸요. 이렇게 느긋하게 쉬는 게 더 좋아요.”

“그래도 이런 기회가 흔치는 않잖아. 나도 곧 나가고.”

 

들려오는 제 이름에 동그랗게 눈을 뜬 샬럿이 이어지는 말에 푸스스 웃었다. 걱정 어린 말을 듣고 있노라면 저를 아껴주는 부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기쁘다.

그는 제가 현재 머무르고 있는 과일상의 주인 중 한 명이다. 이름은 웰턴, 웰턴 스미스로 샬럿은 그를 웰턴 아주머니, 하고 부르곤 했다. 슬하에는 아들이 한 명 있는데 현재는 시내에 일자리를 구해 적적하던 차에 일자리를 구하던 저를 들였다.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건 안다. 자신은 성도 없고 머무를 곳도 없었으니까. 샬럿이 지내는 마을에 머무르는 젊은 사람이라 하면 대부분 자신과 같은 처지였지만 그렇다고 해도 찾아보면 마을에 알고 지낸 사람들도 많다. 유대감도 있고 그런 이들을 그냥 데려오는 경우가 훨씬 많다. 샬럿이 살았던 빌로 시티가 그렇듯, 폐쇄적이고 배타적이다.

하지만 그는 우물쭈물 망설이던 샬럿을 눈앞에 두고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숙식제공은 물론이고 월급도 줄 테니 같이 일해보지 않겠냐고 했다. 그리고 제가 같이 일할 사람 하나는 잘 뽑았다며 두고두고 얘기하곤 했지. 쑥스러웠지만 샬럿은 그 사소해 보이지만 쉽지 않은 친절이, 그들의 상냥함이 좋았다. 왜 저를 고른 거냐는 물음에 그냥 잘 맞을 것 같아서, 라고 답한 게 좋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해선 특별한 조건이 필요하지 않는 것 같아서. 마를렌이 절 데려왔을 때를 생각나게 해 좋았다.

 

그래서 샬럿은 저를 걱정하는 그들에게 유독 물렀다.

 

“그럼 저녁에 조금만 구경하고 올게요.”

“그래, 잘 생각했어. 그래도 억지로 둘러볼 필요는 없으니까 피곤하면 굳이 안 나가도 괜찮은 거 알지? 이제 너도 성인인데 일일이 간섭하기도 그렇잖니. 이틀 정도 있다가 들어올 거니까 그 전에만 들어오렴.”

“네, 아주머니.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그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 알기에 샬럿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그는 얌전한 샬럿을 곧 잘 걱정했지만 언제나 강요하진 않았다. 오히려 그의 남편도 제가 없는 새에 무어라 할까봐 몰래 꼭 한 마디씩 덧붙였다.

좋은 사람이다. 늘 제 세계에만 갇혀 사는 자신을 어느 샌가 알아채고 더 넓은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려는 사람. 샬럿은 그를 보며 이게 좋은 어른이 아닐까 생각했다. 만나본 사람이 많지 않기에 확신할 순 없는 일이지만.

 

저녁에 산책을 하러 나가봐야겠다. 배가 고프진 않지만 슬슬 바람도 선선하고 이 지역의 불꽃축제는 유명하니까 한 번쯤 보고 싶었다. 사람들이 적은 자리로 가면 잘 보이진 않겠지만 보이는 거에 의의를 두면 된다.

샬럿은 정리된 짐들을 바라보다가 침대에 털썩 드러누웠다. 어깨를 넘어간 머리카락이 목을 간질였다. 그가 떠난 방안에서 눈을 감자 순식간에 잠이 들었다.

 

* * *

 

오늘은 정말 되는 일이 없다, 라고 마를렌은 생각했다.

지나가다 밟을 뻔한-사실 정말 밟고 넘어질 뻔 했다- 사과에, 어느새 한눈을 팔았더니 사라진 로라스와 드렉슬러에, 혼자서라도 구경하겠다며 돌아다니다 소매치기까지 만나서 지갑까지 잃어버렸다. 별로 살 것도 없고 들고 온 게 그게 다는 아니었지만 누가 감히 제 것을 건드렸다는 사실에 마를렌은 화가 났다. 대체 이 지역은 치안 관리를 어떻게 하는 거야. 나중에 돌아가면 책임자를 불러오라고 해야지, 다짐하며 마를렌은 한숨을 쉬었다. 처음에 그 자식을 잡겠답시고 쫒아온 것 까지는 좋았는데. 쫒아올 것 정도는 각오했는지 범인은 상당히 재빨랐다. 인파를 헤치고 달려가더니 인적이 드문 골목길로 빠져나가 마지막으로 들어간 곳은 막다른 길이었다.

 

“나중에 잡히기만 하면 가만 안 둘 거야!”

 

그래도 분한 건 분한 거라 마를렌은 주변에 그가 있는 양 소리쳤다.

전쟁 이후 3년 간 제법 어른스러워졌다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쉽게 안 변한다는 얘기를 이런 데에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당당하고 구김 없는 성격은 여전하단 뜻이다. 마를렌은 제 까만 단발을 한 손으로 쓸고 뛰느라 엉망이 된 원피스를 털었다. 코가 반질거리는 구두는 가볍게 두어 번 바닥을 향해 두드렸다. 능력을 쓴다면 씻는 건 문제가 안 되지만 달리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임시방편으로라도 이렇게 해야지.

 

다행스럽게도 옷에 얼룩이 지거나 머리가 엉망이 되는 일은 없었다. 본격적인 축제는 내일부터라지만 귀찮은 일이 하나인 것과 하나 더 느는 건 큰 차이가 있다. 어차피 직접 말릴 건 아니지만. 직원이 세탁하면...

아, 오늘따라 지지리도 많이 생각난다. 마를렌은 치마 끝을 매만졌다. 남색 원피스에 물방울무늬가 있는 하얀 앞치마를 걸치고 해맑게 웃던 소녀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능력 조절을 어려워하던 아이였는데 사라진 뒤로 물과 관련된 사건이라면 모조리 찾아가보았지만 몽땅 허탕이었다. 얘기를 하면 달라질까 싶어 사설탐정까지 고용했지만 어디에 숨어버린 건지 아직도 못 찾았다.

아니, 이건 다 그 사람들이 무능해서 그래. 여기 근처에서 봤다는 정보도 받았으니까 이번에는 꼭 찾을 수 있을 거야. 마를렌은 부정적인 생각으로 빠지지 않게 고개를 흔들었다. 느긋하게 집으로 돌아가면 지저분한 옷을 갈아입고 하얀 김이 우러나오는 고소한 스프를 먹는 거야. 그 다음에 내일 해야 할 일이 적힌 서류를 한 번 더 확인하고 따뜻한 물에 몸을 누이는 거지. 욕조를 가득 덮는 거품에 묻히면 기분이 한결 나아질 거다. 엇갈린 두 사람이 있긴 하지만 뭐, 그 아저씨들이야 알아서 잘들 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챙겨줘야 할 아이는 아니니까.

하지만 그리 생각하며 한 걸음 내딛었을 때, 마를렌은 다시금 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샬럿...? 너 샬럿 맞지?”

 

가을 하늘처럼 선명한 하늘색 머리카락이 흔들렸다. 머리를 반 정도 묶은 하얀 벨벳 리본이 시야 너머로 사라지고 무릎을 덮는 나풀나풀한 롱스커트가 반 바퀴 정도 빙글 돌았다. 마를렌, 언니...? 목소리도, 키도, 뒷모습도 모두 기억보다 성숙해졌지만 못 알아볼 레야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마주한 순간 시간이 멈춘 것처럼 아무런 말도 못하고 그저 그 모습을 응시하기만 했던 마를렌은, 샬럿의 말과 동시에 시선이 마주치자 한달음에 달려갔다.

 

“계속, 계속 널 찾았어, 샬럿. 같이 돌아가자.”

 

미안해, 너를 오랫동안 혼자 둬서. 보고 싶었어. 할 말이 너무 많았지만 꼭 끌어안은 샬럿을 향해 겨우내 입 밖으로 꺼낸 건 그게 다였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야 만났으니까. 다 못한 말들은 천천히 같이 하면 될 거야. 마를렌은 저보다 조금 작은 손에 약하게 깍지를 꼈다.

 

3

 

 

“다녀왔습니다.”

“어머, 샬럿 왔니? 마침 잘 준비하려던 참인데 잘 됐다. 어서 씻고 오렴.”

“네, 가는 건 내일이라고 하셨죠?”

“그래, 혹시 마음이 바뀌어서 더 머무르고 싶으면 며칠 정도는 더 괜찮아. 여태까지 우리 가게에 일하면서 휴가 한 번 안 갔잖니.”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오늘 밤하늘이 너무 예쁘길래 구경하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어요. 아저씨는요?”

 

몇 시간 전에도 들었던 정겨운 목소리가 온기가 가득 찬 집처럼 반갑게 맞이한다. 샬럿은 귀 기울여 들으며 들고 간 가방을 내려놓았다. 샬럿, 왔니? 네, 아저씨도 아주머니랑 잘 다녀오셨어요? 물론이지, 시간 가는 줄 몰라서 저 사람이 얼마나 재촉했지 뭐냐. 그럼 밤새 놀 일 있수? 수건을 꺼내려는 차에 다른 방에서 목소리가 들리고 낮게 깔린 저음은 투덜거리는 목소리와 거슬리지 않게 섞여든다.

당연한 일상이다. 또한 샬럿이 이곳으로 돌아왔다는 건, 샬럿이 마를렌의 제안을 포기하고 이런 일상을 선택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흠, 그렇구나. 어쨌든 슬슬 잘 준비하자. 내일도 할 게 없으면 우리랑 같이 돌아다녀도 좋단다.”

“아, 내일은 약속이 있어요. 다과회에 와달라고 해서...”

“약속? 누구랑? 큼, 아니지. 내가 너무 주책이었네. 잘 다녀오렴.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하고.”

 

네, 그럼 씻고 올게요. 들뜬 목소리를 뒤로 하고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챙긴 샬럿은 욕실 문을 닫은 채 잠깐 동안 몸을 기댔다. 마를렌과 같이 있기 싫어서 같은 이유는 아니다. 샬럿은 여전히 마를렌을 사랑한다. 그건 해가 서쪽에서 뜨고 겨울 뒤엔 봄이 찾아오는 것처럼 당연한 전제요, 정언(正言)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 현실은 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도, 제가 원하는 건 언제나 손에 쥘 수 없다는 것도. 마를렌의 제안은 어린아이 시절 받았던 사탕이나 처음 본 무지개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매력적이고 눈부셨지만 끝내 제가 닿을 수 없는 세계다.

 

다만 빠져나오면서 온전히 청산하지 못한 잔재가 남아있을 뿐이다. 샬럿은 여관방에 들어오기 직전을 떠올렸다. 심호흡 했던 것과 달리 방문은 아주 손쉽게 열려서 샬럿은 맥없는 웃음을 지었다. 어차피 웃음의 의미를 알 사람은 여기엔 아무도 없다.

 

“다과회, 라......”

 

작은 중얼거림이 물소리에 파묻혔다.

일주일에 한 번, 단 둘만 있는 다과회를 열게. 지금 같이 따라갈 수 없는 사정이 있다면 이것만이라도 들어줘. 그럼 얌전히 돌아갈게. 어떻게 만났는데 샬럿 너를 이대로 두고 갈 순 없으니까. 그건 샬럿이 마를렌의 제안을 거절하기 위한 유일한 방안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를렌은 샬럿이 같이 갈 때까지 전혀 움직이지 않을 기세였으니 말이다.

샬럿은 망막에 새겨져 사라지지 않을 것 같은 마를렌의 모습을 회상했다. 10년이란 세월이 저를 변화시켰듯 마를렌 역시 기억과 많이 달라져있었다. 사랑스럽게 묶은 양갈래는 묶기 힘들 정도로 잘랐고, 앳된 티가 나던 양볼의 젖살이 빠지며 날렵한 느낌을 주었다. 그 정도로 겉으로 봐서 샬럿이 기억하는 마를렌은 찾기 어려웠다.

하지만 싫은 변화는 아니었다. 마를렌은 보다 멋있어졌고, 그가 말한 대로 정말 강한 어른이 된 것 같아서 기뻤다. 그 변화를 곁에서 지켜보지 못한 지난 시간이 아쉬웠고, 당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그래서 샬럿은 실수로라도 마를렌을 따라가겠다고 하지 않기 위해 머릿속으로 계속 되뇌어야만 했다.

아니면 놀란 듯 저를 쳐다보는 눈빛에 휩쓸려 따라가겠다고 말했을 테니까.

 

아, 제 뜻대로 될 때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는 고집도 여전했지. 물방울 모양 보석으로 만든 금빛 테두리의 브로치와 흑단 같던 검은 머리카락도. 하여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매주 한 번씩 마를렌의 집에서 하는 다과회에 참가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낼 때까지 놓아주지 않지 않았던가. 샬럿은 절로 번지는 웃음을 부러 참지 않았다.

하지만 내 곁에 있어선 안 돼. 그러면 또 상처 입히고 말 거야.

샬럿은 목걸이의 보석을 꼭 쥐고 그 위에 입 맞추었다. 입맞춤은 가벼웠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를 대하듯 아주 조심스럽게 보석을 쥐었다.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샬럿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니 아쉬울지언정 후회하지는 말자.

그 끝에 남는 건 미련일 뿐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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