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저우의 휴대폰은 계속 연결되지 않았다. 1분에 한 번씩, 30분에 한 번씩, 짐을 싸면서도 끊임없이 걸어봤지만, 전화는 무심하게 음성사서함으로 연결될 뿐이었다.

앞으로도 두 사람을 이어줄 건 이 손바닥만 한 기계뿐인데, 정작 필요한 순간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화해의 말도, 넘치는 감정도, 보고 싶어 하는 마음도 전할 수가 없다.

새벽이 되어도, 그리고 지사 쪽에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나가는 시간에도, 전화는 닿지 않았다. 천룽과 인사를 하면서도 내 신경은 온통 울리지 않는 휴대폰에 가 있었다.

“중요한 연락을 기다리시는 건가요?”

천룽의 말에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어 올리자, 천룽이 웃고 있었다.

“아, 아닙니다.”

“저희는 황 과장님 도움을 꽤 많이 받았는데, 아쉽네요.”

“…저도 이렇게 한 달이 빨리 지나갈 줄 몰랐네요.”

“본사에 돌아가셔서도 많은 지도편달 부탁드리겠습니다.”

“…별 말씀을요.”

지사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웨이저우의 회사에 들렸다. 다시 한 번 사람들과 인사를 한 다음 릴리에게 부탁해 웨이저우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하루 중 대부분의 시간을 웨이저우가 보내는 곳. 언젠가 다시 와보긴 하겠지만, 그 땐 이렇게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도 없겠지. 책상을 한 번 돌아보고 밖으로 나가려는데 전화기 옆에 아무렇게나 놔둔 메모지만한 작은 액자가 눈에 띄었다. 그 액자엔……준 기억이 없으니, 아마도 회사 측에서 보냈을 내 증명사진이 들어 있었다. 언제부터 이 자리에 있었을까.

웨이저우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얼마나 깊고 컸는지, 나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웨이저우가 시간을 막무가내로 멈춰버린 8년 간. 묻어버린 그 마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나는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며칠 전 장난처럼 웨이저우가 한 말이 떠올랐다.

- 내가 더 많이 사랑했으니까, 이젠 니가 보상해.

자신은 없지만, 더 많이 사랑하도록 노력할게. 조그마한 액자를 바라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릴리로부터도, 웹사이트로부터도 산불에 대한 이야기는 확인했다. 종잡을 수 없는 상태라 도로는 불통 상태가 계속되고 있고, 기상악화로 비행기를 하루 종일 띄우지 못한 공항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마비 상태라며 ‘사상 최악의 교통 대란’이란 뉴스만이 사이트를 채우고 있다.

지금 중국으로 돌아가면 가장 빨리 돌아오는 건, 웨이저우의 여름휴가 정도다. 그 때까지 우리가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잘해나갈 수 있을까. 고작 산불로, 기상악화로 마지막 며칠을 이렇게 허비해버린 우리들이.


웨이저우를 처음부터 제대로 붙잡지 못한 나에 대한 벌일까. 조금 더 웨이저우를 소중히 대하라는 경고일까.


전화는 계속 닿지 않았다. 분명히 웨이저우는 다시 돌아올 것이다. 늦더라도. 그저 길이 막혔을 뿐이니까. 사고가 일어나거나 한 건 아니니까.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길을 아는 것도 아니니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웨이저우의 집에서 이렇게 혼자 불안해하며.

잘 알고 있긴 하지만 무서웠다. 이대로 얼굴도 마주하지 못하고 돌아가야 하는 건 아닐까. 웨이저우와 간신히 이어갔던 마음이 끊어지진 않을까. 가까스로 움직이게 된 우리의 시간이 다시 멈춰지는 건 아닐까.


그렇게 멀어져갔으면서도 끝내 나와는 헤어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웨이저우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고 생각은 했을까. 나와는 달리, 웨이저우는 기다렸을 것이다. 내가 정말 오든 안 오든. 어떤 형태로든 이렇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정말로 헤어지려고 했든, 다시 만나고 싶었든, 계속해 내가 자신을 찾아주기를. 하지만, 어떤 심정이었는지, 이렇게 무작정 찾아오는 그리움과 불안을 어떻게 버텨냈는지는 모른다. 8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이렇게 다가오는 상실감과 아픔을.

어째선지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저 가슴을 짓누르는 것처럼 아팠다. 아주 잠깐, 울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전화가 연결되긴 했지만, 전화를 받진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다. 릴리에게 연락하고 싶어도 너무 이른 시간이다. 그런 상황과는 달리 공항으로 향해야 할 시간은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도 나는 거실에 앉아 문이 열리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문을 그저 바라만 보고 있었다. 기다리고 싶었다. 8년간 웨이저우가 나를 기다렸듯이. 무작정 기다려볼 생각이었다.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 웨이저우가 저 문을 열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싶었다. 다시 듣고 싶었다. 집에서 기다려주는 것이 너무 좋다는, 부정적인 감정 같은 건 한 순간에 사라지게 하던 그 한 마디를.


비행기가 이륙해 한참을 떠났을 시간 즈음에도, 웨이저우는 집으로 들어와 주지 않았다. 불안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닐까.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웨이저우에게 전화를 걸어야겠다고 생각해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기의 전원이 들어오지 않는다. 당황해 휴대폰 전원 버튼을 다시 누르려고 할 때였다.

“철컥.”

며칠 동안 기다리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현관으로 달려 나가자, 옷매무새가 엉망인 웨이저우가 나를 유령이라도 보듯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어떻게…….”

“왔네. 드디어.”

그 한 마디를 하자마자, 웨이저우가 달려들어 내 가슴을 때렸다.

“너 왜 여기 있어? 내가 공항까지 어떤 심정으로 달려갔는데? 공항을 아무리 뒤져도 넌 보이지도 않고! 전화는 꺼져 있고! 그대로 날 두고 가버린 줄 알았어! 이 나쁜 자식아!”

속사포 같은 말에 결국 울음이 섞였다. 그런 웨이저우를 품에 안았다. 그리웠던 웨이저우의 체취와 온도로 휩싸인다. 사흘만이다.

“됐어! 필요 없어!”

웨이저우는 내 몸을 밀어냈다. 그런 웨이저우의 팔을 붙잡았다.

“기다렸어.”

“뭐?”

 “계속 널 기다렸어. 여기서. 네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어. 네가 그랬던 것처럼.”

“…….”

웨이저우의 눈물 어린 눈이 나를 말없이 들여다보았다.

“넌…어떻게 8년을 기다렸어?”

“…무슨 소리야?”

 “난 네가 어떻게든 올 거라는 걸 알고 기다렸는데도 불안했어. 사흘도 안 되는데. 넌 대체 어떻게 8년을 기다렸어? 힘들지 않았어? 내가 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데, 널 미워하고 있을 게 뻔한데.”

 억지로 참고 있는 것 같던 웨이저우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피곤으로 거칠어진 뺨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차가운 눈물이 손에 가득 묻어났다.

 “오겠지만, 당연히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래도 무서웠어. 그런데 넌 어떻게 참았을까. 어떻게 견뎠을까. 그 생각만 했어.”

 웨이저우는 대답 대신 내 몸을 끌어안았다. 서글프게 떨리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8년이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리고 날 다시 선택해줘서 고마워. 그 말을 해야 했어. 꼭.”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웨이저우는 내 허리만을 세게 안았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이젠 내가 기다릴게. 널 기다리게 하는 일은 없을 거야.”

웨이저우는 대답이 없었다.

“웨이저우, 내가 약속했지. 어떤 형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든 너와 있을 거라고. 네가 싫다고 할 때까지, 아니 그렇게 네가 말해도 난 널 기다릴 거야. 그러니까 싫어도 다시 와줘.”

“…그게 뭐야. 똑같잖아.”

귓가에 웨이저우의 웃음과 울음이 섞인 목소리가 울렸다. 피곤해서 제대로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은 웨이저우의 입에 입을 맞췄다. 마른 듯한 입술이었지만, 커피의 잔향이 남은 웨이저우의 혀는 뜨거워서 나도 모르게 열중해버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웨이저우의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근데…너, 11시 10분 비행기 아니었어?”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품 안에서 웨이저우가 물었다.

“응.”

“오늘 안 가?”

몸을 떨어뜨리며 웨이저우가 물었다.

“기다렸다고 했잖아.”

말이 끝나자마자, 웨이저우가 다시 주먹으로 내 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그럴 거면 미리 말해!”

“…전화 니가 안 받았잖아.”

“죽어라 때려밟으며 운전하는데 어떻게 받아!”

“너 운전했어?”

“…몰라. 어떻게든 와야 하니까 산불 영향 없는 곳으로 돌아서, 돌아서 7시간이면 될 줄 알았는데…….”

웨이저우의 눈이 감길 듯 말 듯 했다.

“…일단 너 좀 쉬어.”

웨이저우의 어깨를 끌어안고 걸음을 옮겼다. 한층 마른 어깨가 달라붙어왔다.

“…이번엔 양보해줬네.”

웨이저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응.”

“괜찮겠어?”

“네가 기다려준 만큼은 아니겠지만,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야 너도 불안해하지 않고 믿어줄 수 있을 거라고. 그래서 어떻게든 기다리고 싶었어.”

“…응.”

웨이저우는 가만히 내 허리에 팔을 둘렀다. 허리에 닿은 손을 쓰다듬었다. 고작 며칠 떨어져 있었던, 그리웠던 온기.


자기 싫다는 웨이저우를 억지로 씻기고 침대에 눕혔다.

“…나 자고 있는 사이에 도망가려고 그러지? 비행기 사실은 저녁이지?”

졸음이 몰려와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으면서 웨이저우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나 그렇게 못 믿어?”

“…안 하던 일을 하니까 안 믿기잖아.”

“내가 지금 너한테 거짓말하는 거면, 평생 나 미워해도 돼.”

웨이저우의 뺨에 입을 맞추고, 눈을 감겼다. 버티던 웨이저우는 이내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들었다. 지금 잠들면 저녁에나 일어날 테고 뭐라도 먹일 걸 사러 갈 시간은 충분할 것 같아 집을 나왔다.


위가 약하니, 피곤한 상태로는 뭐가 들어가지도 않을 것 같아서 근처 슈퍼마켓에 갔다가 차이니즈 레스토랑으로 움직였다. 차를 움직일 수 없으니 생각보다 조금 시간이 걸렸다. 바쁘게 아파트로 돌아가자, 불도 켜지지 않은 방에 웨이저우가 우뚝 서 있었다. 천천히 돌아서는 웨이저우의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멈칫하고 섰다.

“…나 평생 너 미워해야 하나 하고 있었어.”

웨이저우가 힘없이 입을 열었다. 웨이저우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웨이저우가 울음을 터뜨렸다.

“정말……그대로 가버린 줄 알고……. 여기에 다시 혼자 두고 간 줄 알았어…….”

그런 웨이저우를 품에 가두고 등을 쓸어내렸다. 나는 말없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공항까지 달려오던 웨이저우는 내가 가버렸을까 얼마나 불안해했는지 또 다시 깨달았다. 피곤하면서도 그게 불안해 금방 깨어났다는 건, 여전히 웨이저우는 나를 믿지 못한다는 뜻인지도 모른다.

“말없이 나가서 미안해.”

웨이저우의 귀에 속삭였다. 미안하다고. 웨이저우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어디 갔다 왔어?”

조금 진정이 됐는지 웨이저우가 물었다.

“…너 아무 것도 못 먹었잖아.”

테이블에 음식을 올려놓으며 말하자, 웨이저우가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나 잠든 사이에 나가? 내가 배고픈 게 중요할 거 같아?”

“…그래도…….”

“기다려주겠다며. 그럼 잘 때도 깰 때까지 기다려야지.”

“…그래도 굶길 수는 없잖아.”

웨이저우는 눈을 흘기며 의자에 앉았다. 역시 얼굴이 많이 상했다. 뺨에 손을 가져다 대자, 핼쑥한 얼굴이 쏙하고 손에 들어온다.

“내가 먹여줄게.”

“숟가락 들 힘은 있어.”

“먹여주고 싶어서.”

웨이저우가 소리내어 웃었다. 그리곤, 내 몸을 끌어안았다.

“그럼 입으로 먹여줘.”

귀여운 유혹이긴 했지만, 그 전에 꼭 해야 하는 일이 있다.

“그러고 싶은데, 그 전에 할 일이 있어.”

“뭐?”

주머니에서 며칠이나 기다려야 했던 상자를 웨이저우 손에 쥐어줬다.

“주고 싶은 게 있어.”

웨이저우는 손에 든 상자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의아함에서 옅은 미소로 얼굴이 바뀌었다. 그런 웨이저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우아한 레스토랑 이런 것도 아니고, 집에 죽 사와서는 프로포즈야?”

“프로포즈 아닌데.”

“그럼?”

“우리가 같이 할 수 있을 때까지, 조금만 더 서로를 기다리고 믿자는 약속.”

웨이저우가 고개를 들어 올려 시선이 마주쳤다. 커다란 눈이 금방이라도 눈물을 다시 쏟을 것 같았다.

“…넌 왜 안 꼈는데.”

“거기에 한 쌍 다 있으니까.”

“…그럼 내가 안 나타나면 안 끼려고 그랬어?”

“아니, 같이 끼고 싶었어. 네가 날 믿어주겠다고 하면.”

“…못 믿겠다고 하면?”

웨이저우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다시 물었다.

“정말 못 믿어?”

대답 대신, 웨이저우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그리곤, 아주 느릿하게 웨이저우가 상자의 하얀 리본을 풀었다. 민트그린의 상자 속에 내가 골랐던 반지 한 쌍이 그대로 들어 있다.

“…넌 나 믿어?”

웨이저우가 물었다.

“앞으로 내게 나쁜 말만 하고, 욕을 해도.”

“바람 피워도?”

“…나 두고 피울 거야?”

웨이저우는 대답 없이 내 왼손을 잡아끌고는 조금 더 큰 사이즈의 반지를 상자에서 꺼내 내 약지에 밀어 넣었다.

“이젠 네가 먼저 와줘. 많이 기다리게도 하지 말고.”

“응.”

웨이저우가 자신의 왼손을 내게 들이밀었다. 아름다운 손이란 생각이 들어서 먼저 손가락에 입을 맞췄다. 놀라 움츠러드는 손을 그대로 붙잡았다.

“…갑자기 뭐야.”

“기다리지 않게 할게. 불안하게 하지도 않을게.”

말이 없어진 웨이저우의 약지에 반지를 끼웠다. 예상대로 잘 맞았다. 신기한 듯 손을 들어 올리는 웨이저우의 몸을 끌어안았다. 이제야 조금, 아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나의 웨이저우.

“매일 노력할 테니까…….”

그 다음 말은 하지 못했다. 웨이저우가 자신의 입으로 내 입을 막아왔다. 떼어내려고 했지만, 웨이저우의 혀가 그럴수록 깊숙하게 파고 들어왔다. 서로의 혀를 몇 번이나 얽어내며, 몸을 감싸고 있던 옷을 하나 둘 떨어뜨렸다. 입술이 교차하는 소리가 감미로운 소리로, 그리고 달궈진 체온으로 상기된 소리로 물들어간다.

“…침대로 갈래.”

내 목을 끌어안으며 웨이저우가 어리광을 부리듯 입을 열었다.

“오늘은 묶으면 안 돼.”

웨이저우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를 들으며 웨이저우를 들어올렸다. 웨이저우의 입술이 이마에 닿았다.

“…그럼 오늘은 잠들지 마. 내일 공항 가기 전까지 안 자기야.”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웨이저우의 왼손이 내 왼손 안에 들어와 있었다. 어젯밤 서로 나누어 낀 반지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하고 빛나고 있다. 웨이저우의 손을 살짝 쥐자, 몸 안에 있던 웨이저우의 몸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일어났어?”

잠에 아직 취한 듯한 웨이저우가 물어왔다.

“…응.”

“…어떤 미래라도 좋아. 너만 곁에 있어준다면. 그러니까 기다릴 수 있어. 8년 전처럼. 정말 올 지 어떨지 알 수 없어도.”

잠꼬대처럼 말하는 웨이저우의 몸을 끌어안으며 다시 울었다. 여전히 기다려주는, 때때로 지나칠 정도로 무심한 나를 받아들여주는, 이 사랑스러운 단 한 사람 때문에. 어떻게 사랑해도, 더 많이 사랑하려고 노력해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이 사람 때문에.

“…울어?”

“…내가 널 더 많이 사랑할 기회는 대체 언제 줄래?”

웨이저우는 몸을 돌려 내 뺨에 입을 맞추며 미소를 지었다.

“나한테 그걸로 이길 생각 같은 거 하지 않는 게 좋을 걸.”


모래시계 Fin.




156일. 모래시계의 첫 연재로부터 벌써 이런 긴 시간이 흘렀습니다. 무척이나 덥던 여름, 리맨물이 보고싶다며 칭얼거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드디어 오늘에서야 끝을 맞이했습니다. 


모든 글을 끝낼 때마다 한 번씩 직전에 슬럼프를 겪는데 모래시계는 유독 컸네요. 정말 오랜만에 장편을 연재하고 끝내는 과정이어서일까요. 


엔딩에 대해선 여러 생각이 많으시리라 생각되지만, 모래시계 엔딩은 지금 버전이 한 5,6번째 쯤 되는 듯 합니다. 원래 처음 글 쓰기 시작할 때는 엔딩까지 어느 정도 정하고 들어가지만, 모래시계는 엔딩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었어요. 그러다보니 흐름에 따라 몇 번을 수정하다가 맘에 들지 않아 바꾸고... 결국 무엇하나 결론나지 않은 채, 두 사람의 '언젠가는 함께 하겠다'는 약속을 나누는 오픈엔딩으로 끝내게 되었습니다. 


연애라는 과정의 끝은 무엇일까. 가끔 저는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결혼? 이별? 사실 그 무엇도 끝이라고 하기엔 또 다른 단계가 펼쳐지기 때문에 결국 연애라는 건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연애소설도 연애의 끝을 그려내기는 쉽지 않지 않을까 하고. 


모래시계는 사실, 연애의 끝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이 서로의 이야기를 이해해가며 다시 사랑에 빠지는 연애의 무한루프 같은 개념으로 생각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지금의 이 엔딩이 모래시계 본편의 엔딩으로 맞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강요)


둘이 붙어서 행복하고 달달한 이야기를 보시고 싶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처음부터 연애의 끝에서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라는 컨셉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편에선 거기까진 다루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후일담도 곧 써서 올릴 거 같아요. 물론, 달달하다곤 안했습니다. 


모래시계를 통해 정말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었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좋아해주셔서 행복했습니다. 저는 그저 망상을 풀어놓을 뿐인데, 여러분들 덕분에 많이 웃고 즐거웠습니다. 이런 작업을 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10년 이상 연재를 묻어두었던 절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게 한 징위와 웨이저우 두 사람에게도 미안함과 감사함을 전합니다. 


개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사족으로 덧붙이자면, 모래시계가 생각보다 페이지가 많이 나오는 관계로 다른 단편을 붙이면 너무 책이 두꺼워지고, 책의 구성을 고려할 때 별권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가격이 올라가더라도 모래시계와 단편집을 별권으로 2권 1세트로 만들 예정입니다. 모래시계만 내도 좋았겠지만 단편집을 또 내는 이유는, 지난 해의 단편을 한 번 정리할 필요성도 있었고, 무엇보다 개인지 한정용 중편을 작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지를 낸다면 뭔가 새로운 것도 함께 내보여야 하는게 아닐까 하는 조그마한 고집이기도 하구요. 


그리고 완결을 겸해, 개인지 제목도 살짝 알려드립니다. 모래시계+어디에도 없는 낙원. 어디에도 없는 낙원은 개인지 한정의 중편 제목이자, 단편집의 컨셉이기도 합니다. 


현재 2월 말 배송을 목표로 원고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부끄럽지 않게...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긴 시간 함께 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새롭지 않아요.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쓸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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