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독한 슬럼프였다.


***


지난 시즌 그가 이끄는 팀이 준우승에 그쳤다.

그리고 결승전, 그 코트 위에 그는 없었다.

준결승에서 그는 비상하는 새처럼 날아올랐고, 사냥당한 새처럼 추락했다.

다행이 크게 다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주장으로서 팀의 에이스로서 당연히 있어야 할 곳으로 비상하지 못했던 새는 점점 더 깊은 어둠으로 추락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그는 끊임없이 울었다. 눈물을 흐리며 코트 위에 왜 서지 못했냐며 내 목을 조르던 그를 나는 말릴 수 없었다. 그 눈에 나는 내가 아닌 과거의 그였기 때문이다.

그게 너무 애달파 막을 수 없었다.


나의 유일한 속죄였고, 내가 받는 벌이었다.

그가 아플 때 나는 그의 옆을 지키지 못한 죄인이었고, 못난 연인이었다.


***


그가 부상을 입었을 당시, 나는 갓 사회에 내던져진 사회초년생이었다.

편안하고 안락했던 온실을 벗어나 길거리로 내쳐졌던 나는 모든 것에 예민했으며, 쉽게 지쳤다. 그것은 내 사랑스러운 연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무력감에 집에만 있던 그를 위로하는 것도 점점 벅찼고, 그 무력감이 나마저 침식하려던 순간, 나는 참지 못했고 그는 더욱더 침잠했다.


몸 관리가 철저했던 그가 술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수가 낮은 술이었기에, 모른 체했다. 그저 한 번씩 안주를 만들어주곤 했다.

어느 순간 점점 도수가 높아져갔다. 그것도 몰랐던 내가 안정을 찾고 그를 봤을 때는 늦었다. 맥주였던 술이 압생트가 되어있었다. 마약성분이 들어가 환각을 일으킨다던 술이었다.

이를 알고 말리려던 그 날, 나는 처음 목이 졸렸다.


그동안 외면했던 그의 아픔이 느껴졌다. 내 몸의 작은 생채기에도 안절부절 못 하던 그였는데, 그의 손에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다. 그 때야 깨달았다. 그가 과거의 자신을 보고 있는 것을, 그리고 그 과거의 자신을 얼마나 원망하는지도.


숨이 막히고, 시야가 어그러졌다.

내 숨통을 죄이는 손을 치우려 그의 손을 잡았을 때,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차라리, 거기서 고꾸라져 죽어버리지...”

그의 손을 떨쳐낼 수 없었다. 점점 숨이 막혀와 사고가 이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의 손을 잡고 있는 게 내 최선이었다.


“코트에 서 있지 못하는 나는, 쓸모가 없어...”


그의 말이 내 정신을 일깨웠다.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 몰랐다. 그저... 악재가 겹쳐 슬럼프가 왔고 슬럼프를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줄만 알았지 저렇게 자존감까지 떨어져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언제나 자신감 있고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망가졌음을 그제서야 알았다. 생리적인 눈물이 아닌 감정이 섞인 눈물이 흘러나왔다. 울음이 흘렀다.


내 울음이 닿았는지 그제야 그의 눈이 나를 보았다. 그의 손에 힘이 빠지고, 내 위에서 내려오는 그의 얼굴은 혼란스러움이 가득했다. 그리고 이내 경악으로 물든 얼굴로, 차마 내 목에는 손조차 못 대고 그저 잘못을 빌기만 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하지 못했다. 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목소리가 목을 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어쩌면 그의 고통과, 외면했던 내 죄가 더해진 고통이었을지도 몰랐다. 계속해서 고통 섞인 신음만이 흘러나와 그의 죄책감에 무게만 더해, 이내 말하기를 포기했다. 웃으려 노력했으나 웃었는지는 모르겠다. 눈이 가물가물해져 그의 표정도 살피질 못했고, 그렇게 의식이 멀어져갔다.


의식을 되찾았을 때, 그는 방 한구석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의 표정은 두려움을 안고 있어 의아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흠칫하며 나를 피해 멀어졌다. 그를 불렀다. 아프긴했지만 소리를 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목소리가 흉하게 갈라져 듣기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런 내 목소리를 들은 그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내가,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야? 내가 너한테... 나한테 다가오지마. 제발. 더 이상 너를 상처 입히고 싶지 않단 말이야...”


내가 다가가자 점점 통곡 수준으로 우는 그에 나는 다가가는 것을 멈췄다. 그렇게 방 한가운데 서서 거울을 보았다. 당연한 수순으로 그의 손자국을 따라 멍이 들어있었다. 그것을 보며 드는 생각은 어떻게 가리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가 딱히 밉다거나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가 내 목을 졸랐던 것은 내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얼마간의 상념이 끝나고 회사에 출근해야 한다는 것이 생각났다. 마음 같아서는 병가를 내고 싶었지만 가뜩이나 바쁜 시점에 입사한지 얼마 안 된 햇병아리가 병가를 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나마 겨울이었고 복장규제가 없는 직장이었기에 폴라티를 입었다. 아슬아슬했지만 유난히 목 부분이 높이 올라와있는 디자인이었기에 가려졌다. 퇴근길에 옷을 좀 더 사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오늘은 늦을 수도 있다고 일러두곤 평소처럼 인사하고 집을 나서려 했다. 그런 나를 부르는 그였다.


“잠, 잠깐만. 오늘 쉬어야 하지 않을까? 쉬면 안돼?”


걱정하는 그를 보며 옆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곤 집을 나섰다.


여느 때와 다름없었다. 여전히 회사는 바빴고, 막내인 나는 더욱 바빴다. 쉴 틈도 없이 정신없이 일하다 보니 점심때였고, 점심을 먹으러 가자는 회사 사람들에게 목이 아파 오늘은 건너뛰겠다고 그렇게 텅 빈 사무실에 혼자 남아 휴식을 취했다. 잠시 쉬면서 숨을 돌리고 나니 생각이 그에게 닿았다. 슬럼프 전에는 서로 연락할 수 있는 점심시간을 기다렸는데, 이제는 점심시간도 무심히 보내고 있었다. 예전 같았으면 전화를 했겠지만, 오늘은 문자를 했다.

[점심 꼭 챙겨 드시고, 술 드시지 마세요.] 그러나, 답은 없었다. 하염없이 답을 기다리다 보니 점심시간이 지났고, 나는 다시 정신없이 뛰어다녔다.


퇴근길, 잠시 옷가게에 들러 옷을 사곤 먹을거리를 사서 들어갔다. 원래는 내가 요리를 했지만, 바빠지기 시작하면서 요리는 사치였다. 문을 연 순간 술 냄새가 훅 끼쳤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부엌으로 들어가니 아니나 다를까 안주도 없이 술만 마신 흔적이 그득했다. 그를 부르자 그가 느릿하게 고개를 들어 나를 봤다.


눈이 죽어있었다. 오늘도 나는 그에 눈에 존재하지 않았다.


아침에는 손도 못 댔던 그가, 다시금 분노에 차 내 목을 쥐었다.


“왜 살아, 왜 사냐고. 상처 입힐 바에야 내가 죽었어야해....”


그렇게 중얼거리는 그를 봐라보기만 했다. 말릴 자격이 나에겐 없었다. 겨우 힘을 짜내, 괜찮다고 했다. 손을 들어 그의 손을 감싸 쥐고 다독여 주었다. 설마 그가 진짜 죽이기야 하겠냐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 믿음은 옳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손에 힘이 풀리고 그는 내 위로 쓰러졌다. 나는 그제야 몸을 일으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그에게는 미안하지만 그를 옮겨줄 힘은 남아있지 않아, 그저 두꺼운 이불을 가져와 깔고, 덮어주고 베개를 넣어주고 보일러를 틀어주는게 다였다. 그를 이불에 감싸놓고서야 부엌의 참사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내 문자를 보긴 보았는지 점심을 챙겨먹으려는 노력의 흔적이 보였다. 그러나 정작 먹은 것은 없는지 접시에 담긴 그대로였고, 술잔과 술병만이 그의 하루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제선 술잔도 잘 쓰지 않고 병나발을 부는 지 술잔은 메말라있었다. 쳐지는 몸을 추슬러가며 겨우 부엌을 치우고 의자에 앉아 쉬자니 그제야 눈물이 흘렀다. 그가 너무 안타까웠다. 한동안 그를 보다 겨우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준비를 하고 그의 옆에 누웠다. 아침이면 다시 멀어져갈 그가 눈에 훤해서, 지금이라도 곁에 있고 싶었다.


시끄러운 소리에 눈이 떠졌다. 알람소리는 아니었다. 겨우 눈을 뜨자 빈 이부자리만이 보였다. 다급히 일어나 주위를 살피자 오늘도 어김없이 구석에 쭈그려 울고 있는 그가 보였다. 아마 어제보다 더 심해진 멍자국을 보았나보다, 폴라티를 입고 자기엔 너무 답답해서 평소 입었던 옷을 입어서 훤히 보였을 테다. 작게 한숨을 내쉬자 그가 움찔하며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는 구석에서도 몸을 뒤로 빼려 움직인다. 괜찮으니까 이리로 오라는 말은 듣지도 않고, 내가 다가갈수록 더욱 통곡하는 그에 오늘도 나는 멀리서만 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울음이 멎고 잠시 진정되길 기다려 조금씩 움직였다. 그에게 다가가는 것은 불가능했기에 평소처럼 아침을 준비했다. 그리고 그가 먹을 점심과 저녁을 준비해 냉장고에 넣어놓곤, 데우는 법을 일렀다. 그에게 아침을 먹으라 하곤, 출근할 준비를 했다. 출근할 준비를 마쳤음에도 부엌 구석에 있는 그에게 다소 강경책을 내놓았다. 아침을 먹지 않으면 다가갈 거라는 어이없는 협박에 그는 두려움에 움직였다. 허겁지겁 먹는 그에게 출근하니 천천히 먹고 꼭 점심과 저녁도 챙기라 한 나는 출근길에 올랐다.


이런 하루가 반복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딱히 해결책이 생각나지 않았다. 중독센터나, 정신과에 생각이 미쳤지만, 집에서 나오지도 못하는 그를 생각하자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일단, 집 밖으로 그가 나와야 했다. 거기까지는 자신이 해야 할 과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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