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다시! 조금 더 리듬 타서!”
“랩퍼가 이렇게 리듬을 못타서 어떻게 해?”

녹음실에 있던 다니엘은 ‘다시’라고 외치는 저 인간 때문에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다. 지금 자신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인간은 바로 연인인 재환이었다.

세운이 곡을 못준다고 난리친 사건은 그날 오후 둘의 화해로 쉽게 수습되었다. 세운이 다른 사람과 착각해 오해가 생겼다며 너무 죄송하다고 대표에게 직접 전화해 사과했기 때문이다. 사실 곡을 못받아서 아쉬운 건 소속사였으니, 맘에 안들고 배알이 꼴리더라고 웃고 넘길 수 밖에. 세운이 아무래도 타이틀이니 자기가 디렉팅을 보겠다고 대표에게 말을 건내자, 대표의 표정은 도대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변한 건.. 비밀이라고 치자.

녹음을 하던 날, 사무실에 등장한 건 세운과 재환 모두였다. 재환을 보고 다니엘은 미소를 지었고,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란 표정으로 쳐다보았지만, 소개와 동시에 베일에 싸인 작곡가가 이렇게 등장하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하는 당황스러움이 스쳐지나갔다.

“세운이가 오해때문에 실례를 해서 같이 사과를 드려야 할 듯 해서요. 인사도 드리고, 제가 다니엘씨 팬이라 같이 왔어요. 불편하신건 아니죠?”
“아.. 아닙니다.”

우와.. 역시 서비스업을 해본 사람이네.. 저렇게 모르는 척, 말을 잘도한다.

“니엘이형.. 형.. 지금 웃을 때 아냐...”

다니엘의 옆에 서있던 세운이 들릴듯 말듯 말했다. 다니엘이 고개를 돌리며 입모양으로 ‘왜?’라고 물었다. 세운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welcome to hell”

이라고 말할 뿐.


그랬다. 정말 지옥이었다. 메인 보컬의 녹음을 보던 재환은 ‘정말 그렇게 밖에 못해요? 나도 그 정도는 해요. 메인 보컬이면 좀 달라야 하는 거 아냐?’라며 자신이 더 멋지게 불러 신경을 긁었다. 그래.. 네가 그 정도 하는 거 알지.. 아는데.. 그거 되게 잘하는 거야... 재환아.. 하고 말해주고 싶었다.

“우리 재환이형 또.. 나왔네, 완벽주의. 하하하.. 조금만 쉬었다 할까요?”

옆에서 세운은 재환과 멤버들, 소속사 엔지니어의 눈치를 보느라 애써 웃으며 휴식시간을 가지자며 나섰다.

“야.. 나좀 봐..”

다니엘은 조용히 세운을 불렀다. 저렇게 예민하고 까칠한 재환은 또 처음이라 직접 말하기 겁이 났다.

“재환이 왜 저래?”
“이래서.. 내가.. 혼자 디렉보러 다닌거라고. 일할 때는 맨날 저래. 평소에는 만두같이 귀엽기만 한 인간이 일할 때만은 저렇게 지랄이라고. 귀는 예민하지, 깐깐하지.. 그리고 말은 또.. 얼마나 막하는데.. 형이라고 안심하지 마. 애인이라고 안봐줄걸. 더 잡으면 잡았지.”
“아.. 야.. 그리고 너 자꾸 왜 우리 재환이형이라고 해. 우리라고 하지마. 그리고 너 지랄이라고 했다고 재환이한테 이를거야. 어디 싸가지없이!”
“아.. 지금 이 상황에서도 그러냐..진짜 지랄이셔..”

세운이의 말을 가슴에 세겨야 했는데.. 그래.. 설마, 설마.. 우리 어제도 뜨거웠고, 오늘 아침에도 나한테 애교부리며 ‘자기 녹음하는 거 보러간다니까 엄청 좋다. 나 뭐 입고가지? 사람들한테 좋은 인상 남겨야 하는데’ 설레어 했으니까. 뭐... 좋은 인상은 이미 물건너 갔지만.

“.. 하.. 그래요.. 일단 이건 넘어가고. 그 마디 끝에 한숨 한번 넣는 건 어때요? 한번 틀어줄게 해봐요.”
“하..한숨이요?”
“네. 그게 뭔지 설명은 안해도 되죠?”

네..네.. 한국어가 모국어라 이해는 하죠. 그치만 너님이 그걸 한번에 넘겨줄 거 같지 않네요... 재환은 정말 한숨만 30분을 시키더니 결국엔..

“다니엘씨 한숨을 아주 맛있게 쉬네... 한숨 마스터네..”

하고 깐죽거리기까지. 아오!!!!빡쳐!!!!!! 저 인간이 진짜 내가 알던 김재환인가. 완전 이중인격이네.
나머지 녹음이 어떻게 끝났는지 모르겠지만, 멤버들의 표정은 정말 탈진 직전이었고, 해는 이미 져서 밖은 어두워졌다. 그래도 작곡가라고 모두 녹음실을 떠나는 세운과 재환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다니엘도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가는 둘을 창문 밖으로 쳐다보다 전화를 했다.

-다니엘, 왜? 나 뭐놓고 간 거 있어?”
-너.. 지금 누구 팔 잡고 있냐? 얼른 안놔?
-푸하하하하하학.. 다니엘.. 너무 귀엽다. 오케오케, 놓을게. 근데 그러다 나 넘어지면 어쩌려고?
-거기 있어. 내차 타고 가자.

차를 타고 가는 내내 다니엘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덩달아 뒷자리에 타고 있는 세운 역시 아무말 못꺼내고 있었다. 오직 이 상황에 재환만 종알거리고 있었다. 생각보다 멤버들 실력이 괜찮은 거 같고, 너도 오늘 고생했고.. 가끔씩 이렇게 나와서 디렉을 봐야겠다는 둥, 기분이 좋다는 둥..

“야.. 괜찮으면 칭찬을 해줘야지, 왜 애들 자존심을 긁어놔?”

재환의 얘기를 듣던 다니엘이 결국 확 질러버렸다.

“쪼면 더 빨리 끝나.”

헐.. 재환은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을 했다. 그리고 그 뒷말이 더더욱...

“너도 내가 한번씩 뭐라고 하면 밤에 허리힘이 달라.. 읍...”
“야! 니는 뒤에 아 있는데서 못하는 말이 없노!!”

다니엘이 급하게 핸들을 잡고 있던 한 손으로 재환의 입을 막았다.

“저.. 일단 애가 아니고요... 그래도 말은 좀.. 가려주길 바랄게. 우리! 재환이형.”
“니는 내가 우리 재환이라고 부르지 말라캤다.”

으캬캬캬캭, 하고 재환은 다니엘의 말에 고음 웃음을 발사했다. 이렇게 질투심을 숨김없이 드러낼때마다 재환은 기분이 좋은 것을 감추지 않는다. 그 웃음에 다니엘도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의 멤버들에게 까칠하게 대했던 재환에 대한 서운함이 많이 사라지게 되었다. 에효.. 이런게 사랑인가보다.. 하고 나즈막히 혼자 중얼거리는 수 밖에.

“환아.. 집에 파스 있나?”
“왜? 춤연습 하다 어디 삐끗했어? 내가 좀 만져줄까?”
“아니.. 니가 오늘 내 엄청 쪼았으니까.. 나도 니 좀 쪼아볼라고. 오늘 밤에 힘들테니 준비는 해놔야지..”
“아이.. 자기는.. 세운이 있는데 못하는 말이 없어..”

재환의 얼굴은 붉게 물들다못해 터질 것 같아졌고, 다니엘은 그런 재환의 모습을 쓱 한번 보곤, 신호대기로 정차한 틈을 타 재환의 턱을 당겨 입을 맞췄다. 그 상황이 못마땅한 건 세운 한 명 뿐.

“저기요.. 여기 사람 있어요.. 잊은 거 같은데..”
“아.. 니 여기서 그냥 내릴래?”
“헐...”

다니엘은 세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바로 길가에 정차를 했다. 에효.. 내가 진짜.. 애인 없는 내가 등신이지.. 하며 중얼거리며 세운이 차에서 내리자 잘가라는 인사도 없이 차는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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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하님의 요청에 따른 에필로그입니다. 

재밌긴 하신지..ㅎㅎㅎ 이런 요청이 첨이라 들뜬 마음에 급하게 막.. 쓰게 되었어요. 오늘이 낮이 아니면 다음주까지 쓸 시간이 애매해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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