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글, 사뭇 노잼진지일 수 있으니 감안하고 읽기 바라며… 

아침에 코로나19 수도권 재확산 뉴스 접하고 심란해하던 중에, 엄마가 갑자기 할 이야기가 있다며 나를 거실로 소환했다. 덜컥 겁부터 나서 무슨 일인가 물었더니, 아빠도 내가 게이인 줄 알고 있으며, 생각보다 이를 쿨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았고, 다만 자기한테 만나는 사람을 소개시켜주는 것까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게 그 요지였다. 토요일 아침부터 이게 뭔 어안 벙벙 시츄에이션인지. 

엄마는 몇 년 전부터 마음속 편견과 우려를 미처 다 지워내지는 못한 채, 아들이 가진 게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옹호적(advocative) 시각을 최대한 받아들이려 노력해왔다. 남동생이야 청소년기 내내 이층침대를 공유했다는 점에서 당연히 내가 게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테지만 굳이, 이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지도 내색하지도 않으며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아빠는 홍석천 씨만 봐도 쌍욕을 줄줄 읊는 전형적인 포비아 아재라, 게이인 것을 들켰을 때 집에서 쫓아내지는 않을지 걱정스러울 지경이었다. 이 와중에 예상과 다르게 아빠의 인정(?)이라는, 커밍아웃의 두 번째 코너스톤이 내 앞에 떡하니 놓여버린 셈인데… 이상하리만치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만큼 아빠라는 존재가 내 삶 속에 차지하고 있는 지분이 적어서일까? 아빠를 한사코 닮지 않기 위해 부단히도 애써온 역사(daddy issue) 때문일까? 

저녁에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대뜸 또 폭탄 같은 말을 쏟아내는 엄마. 네 방에 있던 책을 봤는데 보다가 너무 힘들어서 넘겨버렸다, 너도 만약 취향이 그런 쪽이라면 그냥 분가해서 사는 게 좋겠다… 그 책이라는 게, 유성원(섯버) 씨가 쓴 ⟪토요일 외로움 없는 삼십대 모임⟫이었는데… 나도 읽다가 힘들어서 중간중간 쉬어가며 읽었던 그 책을, 호모도 아닌 엄마가, 읽다가 못 읽고 뒤쪽의 서평까지 찾아 읽으며 간신히 소화해냈다는 사실이 어찌나 놀랍던지. 하지만, 당시에는 엄마의 선언을 듣고 나도 모르게 화부터 나버려서, 그 말이 나에게 얼마나 폭력적으로 들리는지 하나하나 짚어가며 따지고 들었다. 엄마는 화가 나면 눈물부터 흘리는 사람이라, 책을 읽고 느꼈던 불편함에 대해 울먹거리며 토로하기 시작했다. 

횡설수설 들리는 부분을 (직업정신을 살려) 명료화하다 보니, 엄마가 느낀 불편함은 게이라는 정체성에 대한 문제라기보다, 분별 없는 섹스에 대해 느끼는 불쾌감과 거부감에 기인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엄마가 두서없이 늘어놓던 말을 기억 나는 대로 옮기면: 사람은 누구나 뭔가를 받아들이는 데에 한계를 지니며, 나 또한 살면서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나마 넓어진 게 이 정도다, 네가 그런 식으로 문란하게 산다고 해서 널 아들로 보지 않고 존중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다, 다만 같이 살다 보면, 심지어 네가 샤워하러 들어가는 모습만 봐도 그런 장면이, 이미 읽어버렸으니 자꾸만 떠오를 것 같아 괴롭다, 그렇게 너와의 관계마저 해치느니 차라리 따로 사는 게 맞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어느 정도 이야기가 정리된 후 방으로 들어왔는데, 문득 내가 왜 그렇게 화를 낼 수밖에 없었는지 궁금해졌다. (직업병…) 표면적으로는 내가 마치 찜방이라도 다니는 양 멋대로 가정하고는 그럴 거면 나가라는 식으로 답까지 정해놓은 후 그 여부를 확인하려 드는 엄마의 태도 때문에 화가 났다… 는 식이었는데… 감정의 흐름을 천천히 정리해보니 그것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결국, 나 또한 아직까지 찜방을 가보지 않았을 뿐 그곳에 대한 일말의 호기심과 욕망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늘상 세이프 섹스를 하는 것도 아니며, 낯선 상대와의 casual sex를 즐기기까지 한다는 점에서, 나 또한 엄마의 시각에서 어떤 식으로든 ‘더러운 게이’라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인 존재라는 점. 말로는 열려 있다고, 게이가 가진 가장 더러운 부분마저도 긍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내가 그렇다는 오해를 받는 것에 버튼이 눌릴 수밖에 없다는 점. 사실은 나조차도 그 사람이 가진 경험을 오롯이 이해하지 못했으면서 엄마에게는 무조건적인 이해와 지지를 내심 바라고 있다는 아이러니… 

소용돌이치는 생각의 편린을 모조리 살피고 나니, 세 가지 결론에 다다를 수 있었다. 하나는, 자꾸만 자신이 가진 한계에 도전하게 만드는(…) 아들을 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해 늘그막에 부단히 노력하고 또 나와 소통하고자 하는 엄빠에 대한 고마움. 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빠는, 마치 내가 엄빠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나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없으며 그럴 필요조차 없는, 나와는 다분히 다른 독립적인 존재라는 점. 셋은, 같은 맥락에서, 나의 이기심을 조금 더 접고 떨어져 지내는 편이 양쪽 모두에게 더 나은 선택일 수 있겠다는 것. 

얼마든지 경제적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여건을 가졌는데도, 오로지 내 욕심 때문에 이렇게까지 인정투쟁을 끌고 왔다는 점이 조금은 웃프게 느껴졌다. 자기가 지닌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엄마의 모습이 새삼, 패배 선언처럼 들리기도 했다. 같이 살 날도 얼마 남지 않은 마당에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어서. 이런 거, 이제 그만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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