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그 일이 터진 것은 아침이었다. 터졌다, 라고 칭하기에 큰일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작은 일도 아니었다. 사실 세상에 특별한 일은 많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시목은 항상 생각해왔다. 매일매일 뉴스거리가 넘쳐나고 사건이 흘러나는 틈새 사이에서도, 검사로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품에 붙들고 놓지 못하던 남녀가 화가 나서 거칠게 삿대질을 하고, 금실 좋은 것으로 동네에 유명하던 잉꼬부부가 가정폭력으로 이혼하러 오고, 잘나간다는 집안의 작은아들이 사고를 쳐 잡혀 온 것을 풀어달라고 무릎을 꿇고 비는 대학교수와 인생 밑바닥을 전전하다가 금전을 이유로 한 존속살해 등으로 검찰청에 당도한 별별 인간군상이 다 있었지만, 그래도- 시목은 그렇게 생각해왔다. 결국, 평소와 다를 것 없이 해는 떴고 사람들은 일어났고 학생들은 학교에 갔으며 직장인들은 일을 나갔다. 그와 함께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서부지검 평검사 황새목이,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업무 처리에 열중해 있다가도 날아온 태수의 연락을 받은 것은 그날 아침 열 시가량이었다. 

[나 다쳤어]

심플하면서도 묵직한 무게를 가진 네 글자에, 화면을 보자마자 그는 바로 펜을 쥐던 손을 멈추고 전화를 들었다. 반쯤은 습관적인 반응이었다. 이름 몇 개 없는 주소록에서 그녀를 찾아 누르자 따르릉하고 맑은 통화음이 울렸다. 귀에 가져다 대고 조금을 기다렸건만, 너머에서 날아오는 목소리는 없었다. 평소에는 잘만 받더니 문자를 보낸 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 후 몇 번 다이얼이 울리고 나서야 여보세요, 하고 물어오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인사치레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어디."

[황 검사님, 점심 혼자 드셔야겠어요. 나 다쳤습니다.]

"어디를 다쳤습니까?"

[나 지금 급하니까 잠시 전화...]

"어딜 다쳤느냐고...!"

소리를 질렀다고 보기에는 과장이지만, 목소리가 평소보다 높게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반사적으로 입을 꾹 다물고 닫힌 사무실 문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아무 반응이 없는 것을 보니, 밖에는 들리지 않았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컸다. 

[트럭에 쾅.]

"트럭...말입니까?"

[네. 25톤 트럭에 길 건너다가 쾅.]

25톤...

"...살아 있습니까?"

[지금 죽으라고 저주하시는 건가요?]

이것도 반사적으로 나온 말이었다. 시목은 고개를 내내 저었다. 의자 등받이에 걸린 재킷을 집어들었다. 데리러 갈 셈이었다. 트럭이라니. 사고는 당하지 않을 성격이면서 잘도...

"지금 가겠습니다. 어디야."

[안 와도 되거든. 나 벌써 병원이고, 이렇게 전화까지 하는 거 보면 모르겠어? 정말로 멀쩡합니다. 혼수상태 같은 거 아니에요.]

"아니... 지금 어딥니까."

[정말 괜찮아. 황 프로, 일 안 합니까?]

"지금 어디 있고 어딜 얼마나 다쳤고 얼마나 쉬어야 하고 보상은 받았는지 대답하면 저도 일하겠습니다."

[너 진짜 까다롭다. 나 정말로 괜찮아서 곧 퇴원해도 되거든요?]

"대답."

[...상국대 병원에 있고, 한 이틀 쉬다가, 사실 하루만 쉬어도 되는데, 회사 나갈 거고 보상은 지금 절차 밟고 있고 경찰은 왔다 갔고 그러니까 황 프로도 나 신경 안 쓰고 일해도 되지 않을까?]

평소에는 가벼운 감기만 걸려도 엄살을 그렇게 부렸는데, 이렇게까지 괜찮다고 신신당부를 하는 것을 보니 더 수상하다. 게다가 트럭에 치인 것 아닌가. 25톤. 25톤 트럭이 저를 박았다면서 문제없다는 것은, 총알도 살살 맞으면 안 아프다는 논리나 다름이 없다. 그는 열이 올라오는 속을 누르며 다시 한번 물었다. 와중에 목소리를 낮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얼마나 다친 건데."

[...부쉈어. 별건 아니고 팔을 한 짝?]

팔을 한 짝... 팔이 궤짝도 아니고, 물건 취급하는 것을 보니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부쉈단다. 그걸 부쉈단다. 별로 두껍지도 않은, 그 가는 팔을. 그가 애써 성대를 긁어낸 목소리로 물었다. 저 너머로 듣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나름 조곤조곤한 어조였다.

"최 검사는 팔 하나가 별 게 아닌가 보죠?"

[그, 부순 것도 아니고 금 간 거거든요? 아니, 금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심하지만. ...의사가 나보고 기적이라고 그랬어요. 트럭에 치이고 이렇게 멀쩡한 건 십 갑년 전에 아파트에서 떨어지고 다리 하나 부러진 중학생만큼 기적이라고...]

"떨어진 중학생은 관심 없으니까 거기 있으십시오. 지금 가겠습니다."

[아 진짜 오지 마! 나 진짜로, 그러니까 엄청나게, 매우, 대단히도 괜찮아. 번거롭게 오지 말...!]

"다쳤잖아!"

결국 터져버린 그의 목소리가 작은 사무실을 부술 듯 울렸다. 황시목은 소리를 지를 줄 아는 사람이다. 아무도 모르지만. 밖에 들리든 말든, 이제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짜증이 났다. 저 너머에서도 단단히 화가 난 것을 아는지 말대꾸가 없었다.

"제자리에 딱 기다려. 지금 갈 거니까."

대답은 듣지 않았다. 사무실을 나가면서 영 검사가 놀란 얼굴로 무어라 말했지만, 대화를 나눌 겨를은 없었다. 





놀라 누가 다쳤느냐고 묻는 김 계장과 최영을 지나고, 시비를 거는 서 검사를 건너뛰어 병원까지 차를 끌고 가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응급실은 평일 낮임에도 사람으로 붐볐다. 접수대로 뛰어가서야 그는 숨을 고를 수 있었다.

"최태수 환자 어디 있습니까. 오늘 교통사고로 들어왔습니다."

"잠시만요, 최태수 환자... 저쪽이요."

그는 간호사가 안내하는 대로 병상들을 스쳐 지났다. 아픈 사람들을 휙휙 지나서, 한 침대 앞에서야 다리가 멈추었다. 가만히 올려다보는 여자를 바라보다, 병상 옆 의자에 앉은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최태수."

"진짜 오셨네, 황시목. 내가 오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했는데."

"보호자세요?"

"예." "아니요."

질문이 튀어나오자마자 누구는 고개를 끄덕이고, 누구는 단칼에 부정한다. 태수가 가로저었고 시목이 긍정했다. 간호사가 서로 다른 대답에 머뭇거리고 시목이 한번 쏘아보고 나서야 태수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자 맞아요, 웅얼거리는 목소리였다. 어쩌면 부정하고 싶어하는 목소리였다. 그가 간호사가 건네는 서류에 대충 서명을 하고 침대 옆 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녀가 반발이라고 보기에는 미약한 목소리로 희미하게 항의했다.

"오지 마라니까."

"왜 오지 말라는 건데."

대답이 없다. 호기롭게 한마디 뱉어 놓고는 그 뒤를 잇는 게 없다. 눈치만 보는 그녀를 앞에 두고 할 말이 있었는데, 막상 마주 보니 입을 열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다. 팔. 나직하게 말하자 그녀가 조심스레 오른팔을 그에게로 내민다. 반깁스를 덧댄 팔이 조금 부어있다. 지금까지 어느 팔을 다쳤는지조차 듣지 못했구나, 싶어 속이 더욱 불편했다. 안 아픕니까? 대답이 없다. 아프다고 말하면 잔소리가 이어질 것 같고, 아프지 않다고 말하기엔 거짓말이라 어느 선택지도 고를 수 없는 모양이지. 그때, 하얀 가운을 입은 남성이 다가왔다. 

"아이고, 최태수 님 보호자 되시는가볘요."

"예."

"아주 운이 좋았어요. 25톤 트럭에 치이고 팔 한 짝 뿔로는 거면 아주 럭키지, 럭키. 내가 십삼 년 전에 본 중학생이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졌는데 멀쩡한 거 아니어요. 잉, 뭐 그러면... 일단 이래 가셔도 되기는 하는데, 조심하셔요. 막 들고 설치다간 심해지니까. 아유, 불편하다 그려서 반깁스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조심..."

"불편해서 반깁스한 겁니까?"

"예. 일하는데 힘들다 그려서. 또 검사님이라 그러싱께 얼마나 공사가 다망 허시겠어요."

고개를 돌려 노려보면 이미 시선을 피한지 오래다. 아주 할 말이 많다. 지위를 이용한 직권남용. 

"이만 가봐도 됩니까?"

"예, 가보셔도 돼요. 아, 술·담배는 끊으셔야 하구, 또 물도 웬만하면 안 닿게 하셔요. 한, 사흘 후에 또 오시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가죠, 최 검사."

"...네."

다행히 별 탈 없이 응급실을 탈출한 두 사람은 얌전히 시목의 차에 올랐다. 부자유한 오른팔을 안고 걷는 그녀가 남은 한 손으로 가방을 집어들려는 것을 그가 먼저 낚아채겠다. 차라리 다리를 다쳤으면 휠체어라도 끌 텐데, 팔을 다쳤으니 제대로 도울 수도 없다. 조수석에 얌전히 앉아만 있으면 좋으련만, 그가 아는 최태수는 그럴 인물이 아니다.

"황 프로. 지금 회사 가죠?"

"예."

"그럼 나도 데려가 주세요."

"싫습니다. 넌 집에 가서 쉬어."

"나 오늘 진짜 업무 많은데, 나 없으면 내 일 누가 다 해요."

"내가 합니다."

"너 그러면 정말로 오늘 집에 못 들어와. 차라리 나도 일하고 너도 일해서 둘 다 정시퇴근하고 네가 나를 집까지 데려다 주는 건 어때?"

"안돼."

그녀 입장에서야 나름의 회심의 딜인 것 같은데, 그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단칼에 거절한다. 한숨 소리가 절로 났다. 

"집에 가서 쉬어. 일 마치고 보러 갈 테니까."

"그러니까, 그럼 일을 못 마치잖아."

"너는 그럼 한쪽 팔로 일 할 수 있어?"

정곡이다. 서류 넘기는 게 일인 검사들은 골무까지 끼고 하건만, 하물며 오른팔을 다친 사람이 업무를 볼 수 있을 리가 없다. 서류는커녕 펜도 제대로 못 쥘 게 뻔한데. 그녀는 대답이 없고, 그는 질문이 없다. 서로 노려보던 정적을 깬 것은시목이었다. 그는 말없이 조수석 쪽으로 몸을 숙여 안전띠를 잡았다. 검은 끈을 그대로 당기자 매끄러운 줄이 뱀처럼 튀어나왔다. 철컥, 소리와 함께 마치 결박된 듯 자리에 앉아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벨트도 못 매면서 오기 부리지 마. 평소에는 조금만 아파도 엄살이면서 오늘 왜 이래?"

"...벨트는 맬 수 있거든. 왼손도 있어."

"오른손이 없잖아."

"아, 진짜..."

"집에 가서 쉬어. 내일도 나오지 말고."

또다시 정적. 그는 입을 닫았고, 제자리에 앉아서 항의만 이어가던 그녀는 말을 멈췄다. 서로 노려본다. 그녀가 몸을 기울여, 앞의 글러브 박스에 머리를 올리고는 휙 옆을 바라본다. 그래서 검은 머리가 산발이다. 그는 얼굴을 구기고 미동도 없이, 그저 눈으로만 그녀의 행동을 쫓았다. 

"시모가."

"...왜."

다음 단어가 느릿느릿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는 미간이 구겨지는 것을 느낀다.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생각해보면 나올 말은 많다. 

"지금 나 걱정해?"

"....아니."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 걱정하면서."

"그게 아니라..."

그녀가 멀쩡한 왼팔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가 흘겨보자 입가에 걸린 미소가 선명하다. 차라리 왼팔을 다치면 오른팔은 운전석과 머니까 장난도 못 칠 텐데. 그가 애써 해명하려 했지만 결국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눈에 선명했다. 이어지는 그녀의 웃음소리. 우는 것보다야 웃는 게 좋긴 좋은데 그 웃는 게 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까다로운 것은 알지만 그랬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아직도 팔을 쿡쿡대는 손가락을 한 번 노려보고, 저릿한 팔을 다시 살폈다가, 예고 없이 차를 급출발시켰다. 내 걱정도 해주...꺄악! 당연히 차체에 작은 머리를 기대고 있던 태수의 몸을 크게 흔들렸다.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 유유자적 차를 몰고 주차장을 나서는 시목에 그녀가 소리쳤다.

"야, 야! 너, 미쳤어, 진짜...!"

"제대로 앉아, 다쳐."

"교통사고 난 사람한테 지금...!"

씩씩거리던 그녀도 충분히 보복위험을 느꼈는지 이후 입을 꾹 다물었고, 조용한 상태로 두 사람은 그녀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퇴근하겠습니다. 두 분도 들어가세요."

"안녕히 가세요 검사님."

아주 오랜만에 정시퇴근(은 아니었다. 태수가 말한 대로 일이 밀려서 조금 초과하기는 했으니까)을 한 시목은 시간을 확인하며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결국, 그 때문에 태수는 월차를 썼고, 오늘은 나오지 않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낮에 팔 한 짝으로 어떻게든 해낼 거라고 하는 얼굴이 아직 선했지만 별로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다리를 다쳤으면 집에서 얌전히 있기나 할 텐데, 이곳이고 저곳이고 막 돌아다닐 것을 생각해야 한다니. 

띵동-

초인종을 눌렀지만, 대답이 없다. 한 번 더 눌렀는데도 대답이 없다. 이 정도면 합리적인 의심이 들만 하다. 그는 다시 한 번 더 튀어나온 버튼을 눌렀다. 맑은 기계음이 울렸음에도 문이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고, 익숙한 손짓으로 비밀번호를 눌렀다. 

철컥-

집 안이 조용하다. 이른 시간인데도 켜진 불이 하나 없다. 혹시 밖을 나간 것은 아닐까 생각했지만, 함부로 나돌아다녔다간 그에게 먼저 몰매를 맞을 것을 알 텐데. 그는 집을 더 돌아보기로 마음먹는다. 주방, 비었고, 서재, 비었고 거실도 비었으니 있을 곳은 침실밖에 없다. 시목이 무의식적으로 발걸음 소리를 줄이며 조심스럽게 침실 방문을 열었다. 아니나다를까, 침대 위 희미한 실루엣이 비쳤다. 

평소 같았으면 문을 닫고 나와, 잘 있구나 휭 집에 돌아가면 될 일이건만, 오늘은 심하게 다쳐서 그런가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묻고 싶었다. 그는 문득 깨달았다. 저녁은 먹었는지, 약은 챙겼는지, 팔은 어떤지, 아픈 곳은 없는지... 평소의 그가 묻던 질문이 아니었다. 그녀가 그에게 던지던 말들이었다. 그는 잠을 깨우지 않으려 천천히 방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정작 침대 옆에 서고서도, 꾹 감긴 두 눈과 흩어진 머리칼을 보면서도 깨우지 못할 것을 알았는데도 그렇게 했다. 

혹시, 잠에서 깨면 어떻게 할까, 아파서 깰까? 선잠을 잤으니 새벽에 눈을 뜰지도 몰랐다. 어쩌면 저녁을 먹지 않아서 배고파한다든가, 그러면 다친 팔로 혼자 움직일 수 있을까? 그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요하게 잠든 그녀의 옆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혹시 그렇다면 어떡하지. 

옆에 있어야 할까.

시목은 조금 더 규칙적인 호흡에 귀를 기울이다가, 마음을 먹고 움직였다. 목도리와 코트를 살짝 벗어 바닥에 내려놓고, 흔들리지 않게, 이불 한 자락 움직이지 않고 그녀의 옆, 침대 아래 바닥에 주저앉고 나니 숨소리가 더욱 크게 들렸다. 그는 눈을 떠 어두운 천정을 응시했다. 신경은 온통 등을 향해 있었지만. 그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는 분명 걱정하고 있었다.





글을 맞춤법 검사기에 넣고 돌려보니까 시목이 이름이 다 땔나무로 바뀌어있음ㅋㅋㅋㅋㅋㅋ 왜 그런가 보니까 이것ㅋㅋㅋㅋㅋ

다음번의 이야기는 최태수와 황땔나무의 이야기 임니다. 다음에 봐요.


글러지만 글러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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