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사관학교는 여러 연례 행사가 있었다. 입학식, 방학식 등도 있겠지만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마니또였다.

 웬 마니또야 싶겠지만 이것은 개교했던 연도부터 시작되었던 행사였다. 사실 마니또래봤자 거창한 것이 오고 가진 않는다. 학생이 돈이 있다면 어디 있겠으며 '값비싼 선물'은 하지 말 것이 또 규칙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미래의 전우가 될 수도 있는 이를 한 번 더 살펴보며 선물과 함께 한 해를 기분 좋게 시작하라나 뭐라나...

 때문에 해군 학교 1기생인 여주는 이 행사를 3번째 치를 예정이었다. 그러니 올해도 누군가에게 적당한 선물... 뭐 군용 양말이나 핫팩이나 사다 줘야지. 하고 생각했던 그녀는 그러나 그 생각을 접게 된다.

 

-여주의 마니또: 사카즈키-

“헐...”

 

여주는 눈을 깜빡인다. 길쭉한 사물함 벽면에 붙은 쪽지는 그대로였다.

 

“어째서...”

 

 해군학교에는 몇 명의 괴물이 있었으며 그중 하나가 바로 사카즈키였다. 체술은 기본이요 육식도 잘한다. 악마의 열매까지 먹어서 열매 다루는 법도 따로 배운다. 게다가 남다르게 큰 덩치만큼 머리도 발달했는지 이론도 빠삭한... 그야말로 교육과정에선 팔방미인인 동기였다. ‘교육과정에선’이라는 조건이 붙은 것은 그것 말고는 맞는 구석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이는 피차 비슷하게 먹었거늘 어찌나 원리원칙을 따지는지! 같이 항해를 나가거나 조를 짜서 훈련을 하거나 하면 FM대로 하느라 죽을 맛이었다. 대부분의 동기는 잔머리를 굴리는 쪽이었으나 사카즈키는 아니었다.

 

‘대책 없군.’

‘저기 사카즈키, 다들 이렇게 하는...’

‘그런 식으로 요행을 바라지 마. 교본에 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집채만한 사람이 표정을 싹 굳히고 저러고 있으면 무서울 수밖에 없다. 

 

‘어, 그래...’

‘... 우리 사카즈키 말대로 하자.’

 

 그러니 결국 사카즈키의 주장대로 원리원칙에 따라 조별 임무를 받았던 나날들이 있었지... 여주는 흐린 눈으로 지난 날을 떠올린다.

 조교보다 더 조교같다. 완고하고 재미없다.

 

“그런데... 사카즈키는 뭘 좋아하지?”

 

 그냥 존재감 없는 동기거나 하면 식권 다발 같은 것을 줄 텐데 유명인사인 사카즈키가 되니 그건 좀 아닌 것 같다. 어쨌든 자신이 주는 선물도 다들 지켜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좋아하는 것을 주자니 사카즈키가 좋아하는 것이 있었나? 틈날 때마다 각종 병법서를 읽고 훈련만 하는 동기가? 아니 일단 호불호나 관심사를 알 정도로 친하지도 않다. 

 

“아...”

 

대충 주려고 했더니 예상외로 귀찮아지겠다.


 “일단... 이것부터 치우자.” 


 여주는 누가 볼세라 사물함 벽에 붙은 쪽지를 떼어냈다.

 어차피 오늘은 12월 1일이고 마니또 선물은 한 달 이내로 준비하면 된다. 음... 계속 생각하면 하나정돈 생각나겠지. 그녀는 쪽지를 주머니 안쪽으로 밀어 넣었다.

 


*



 연말이니만큼 해군학교는 점차 들떴으나 오늘은 유독 왁자지껄한 것이 왠지 마니또 때문인 것 같았다. 평소보다 시끄러운 학생식당 사이에 여주는 자리를 잡았다. 곧이어 보르살리노도 마주 앉는다. 

 

“시끄럽네에...”

“그러게. 마니또 때문인가 봐. 애도 아니고...”

“오... 여주 너도 최근까진 기대했다고~”

 

 아. 맞다. 어제까진 그랬었지. 누군가에게 받는 선물은 기분이 좋으니까. 여주는 아차 싶어서 서둘러 수습했다.

 

“어어 뭐... 오늘 좀 기분이 안 좋아서 그래. 그래! 너는 마니또 확인했어?”

“아무래도~”

“선물은 생각했어?”

“적-당히... 하면 되지 않을까...”

 

“비싼 건 필요 없으니까아...?” 생선가스를 썰면서 보르살리노가 쳐다본다. 하긴 그동안 농담이랍시고 선물로 핫팩 이야기를 했었는데...

 

“그렇지. 적당히... 적당히...”

 

 그 ‘적당히’를 모르겠어... 라곤 말 못 하지. 여주는 맞장구를 치며 타르타르 소스에 생선가스를 푹 찍었다. 튀김옷이 사라지고 있었다.

 

“여자야?”

“응~ 너는?”

“남자야.”

“그렇구나아.. 그럼 핫-팩이지...”

 

 열매를 먹어서 몸이 뜨거운 것 같은데 어쩌지? 사카즈키는 지금도 민소매에 반팔 남방을 입었다. 외투를 입어봤자 상당히 가벼워 보이는 야구 잠바 비슷한 것을 잠그지도 않고 ‘걸치고’ 다닌다. 그니까... 음... 지금도 가슴팍 내놓고 다니는데 핫팩은 아닌 것 같아... 여주는 가볍게 고개를 젓는다.

 

“핫팩은 계절 한정이니까 성의 없어 보여서 다른 거 하려고.”

“오... 그-래?”

“어어. 그래도 마니또잖아.”

 

 여주는 하얗게 코팅된 생선가스를 씹었다. 대형 급식답게 생선은 말라비틀어졌지만 소스가 맛있으니 그럭저럭 넘어간다. 

 

“그럼 식-권 다발이나 해줘... 돈 아끼고 좋잖아...”

 

 있잖아 몸 관리를 한다고 도시락을 싸 들고 다녀... 마린컬X인지 어디서 식료품 크게 사다 먹는 것 같아. 지금도 풀 씹고 있어... 드레싱도 없이...

 여주는 슬쩍 눈알을 굴렸다. 사카즈키는 오늘도 근엄한 얼굴로 샐러드를 먹고 있었다. 해군사관학교는 학생들의 자유를 존중해서 강요하지 않았지만 대부분 급식을 먹었다. 훈련에 찌든 생도들은 잠자기 바쁘지 도시락을 쌀 여력이 없었다. 사카즈키만 지금까지 도시락을 싸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부지런함은 인정할 만했다.

 

“아아 식권. 그거 먹으면 사라지잖아. 일시적이라 좀 그래서...”

“영양소는 신체의 일부가 된다고... 영원할걸.”

“그러네.”

 

 여주는 고개를 끄덕거리며 이젠 샐러드를 포크로 휘적거렸다. 새콤한 소스로 입가심을 좀 하고 싶었다.

 

“조교라도 걸렸나아... 선물에 고민이 많은 것 같아...”

“어? 아니야. 그냥...”

 

“이왕 선물 사는 거 잘 주면 좋잖아.” 여주는 적당히 받아넘겼다. 음. 얘는 좀 맛있네. 여주는 이제 단무지를 입에 넣었다.

 

“오... 친구한테나 잘 하는 게 어때?”

“우리 사이좋잖아. 과제도 서로 공유하는데.”

“뭐... 그렇지.”

 

 점심을 다 먹었다.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적당히 유용하면서 받으면 기분이 나쁘지 않고 나름 생각한 티도 나는 비싸지 않은’ 선물을 찾기 위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지. 이에따라 여주는  사카즈키의 정보수집을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정보 1. 근면한 사나이


 사카즈키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연병장에서 혼자 구보를 뛴다. 동절기라 해도 늦게 떠서 어두컴컴한데 겁도 없지. 그렇게 깜깜한 연병장을 꽤 빠른 속도로 뛰는데 쳐지지도 않는다. 전에 눈이 온 적이 있는데 역시 똑같았다. 그렇게 땀 한번 시원하게 빼고 다시 기숙사로 돌아온다. 

 이후 수업에 들어가는데 1교시를 해도 꾸벅거리긴커녕 앞에 앉아선 허리를 꼿꼿하게 펴곤 수업을 듣는다. 

 마치 지금처럼.

 여주는 살짝 떨어져서 봐도 아주 잘 보이는 덩치를 보았다. 머리는 언제나 보송하다. 스포츠머리로 깎아서 그런가 봐. 여주는 턱을 괸다. 모자 밑으로 드러난 새까만 뒤통수가 당구공 같다. 동그래선... 

 

“어...”

 

 동그란 당구공에 눈코입이 생겼다. 헐? 그렇게 고개를 돌릴 정도로 오래 쳐다봤나. 여주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시선을 옮긴다. 눈을 마주쳐봤자 더 어색할게 뻔하고 웃는 것은 생각만 해도 돌이 될 것 같았고... 그러니 못 본 척 하는 것이 제일이다.  

 다행히 당구공은 곧 제자리로 돌아갔다.

 

“진짜 무섭게 생겼다.”

 

 눈썹이 어떻게 저렇게 올라갔냐. 두꺼운 데 각도가 장난 아니야. 목탄으로 그은듯한 이목구비를 떠올리던 여주는 낙서를 한다. 모자나 사줄까... 머리 사이즈는... 주문 제작인가...?

 3M에 육박한 생도가 많지는 않으니 이것도 주문 제작이겠군.

 

“이건 안 되겠다.”

 

 찍찍. 선물 후보 목록에 줄이 그어진다.

 아침에 맨날 달리기에 운동화를 사줄까 했다가 발 사이즈도 모르고 비싸서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자신이 여자친구도 아닌데 이런 선물은 아니었다.

 군용 나시를 영혼의 단짝처럼 입고 다녀서 사줄까 하여 보르살리노에게 지나가듯 물어봤더니 주문 제작이란 소리를 들었다. 사이즈가 특수한 생도들은 매 달마다 주문을 따로 받는단다.

 

‘혹시 여주가 내 마니또이려나~?’

‘아냐.’

 

 그러면 당사자 관찰도 안 했고 이렇게 머리 복잡하게 생각도 안 했을 거야!!!.물론 말은 할 수 없으니 속으로 삭였다.


‘그럼 이렇게 큰 동기일까...’

‘뭐래. 아니거든. 궁금해서 그래.’

‘커다란 남자를 향한 뜨거운 짝사랑?’

‘보-르살리노... 나는 독신으로 살 거야. 연금 쓰면서... 골드 미스 모르니?’

‘아아... 그으랬었지~ 알지~’

 

 눈치는 더럽게 좋아서 꼬치꼬치 캐물어서 아니라고 대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알겠다며 넘어갔지만 이후 보르살리노에게 사이즈를 묻는 것은 포기했다. 사이즈뿐만 일까. 사카즈키에 관해선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로 다짐했다.

 자타 공인 모범생인 사카즈키니까 필기구를 사줄까 했는데 학교 매점에서 파는 검빨파 3가지 볼펜만을 사용했다. 그걸 몇 다스를 사주는 것도 웃긴 모양새였다. 만년필을 사줄까 하다가 언뜻 본 사카즈키의 필기노트를 생각했을 때 쓸 일이 전혀 없겠다 싶어 역시 보류했다.

 

“... 생각보다 어렵네.”

 

 비싸지 않고 생각한 티도 나면서 유용한 선-물...에 걸맞은 것을 찾기가 이리 힘들다니. 벌써 2주가 지났는데 얻은 소득이 없다. 물론 아직 2주가 남았지만... 여주는 낙서를 계속한다. 선물 목록에 별을 몇 번 그려보다 다시 당구공으로 연필을 옮겼다. 이제 당구공은 입을 소리치듯 벌리곤 눈을 치켜뜬 얼굴을 했다. 여기에 눈썹을 그려줘야지...

 

“눈썹 진짜 진하다.”

-찍찍

“그래도 생각보다 예쁘게 났던데.”

-찍찍-찍

“숯검댕이긴 하지만... 살짝 갈매기같ㅋㅋㅋㅋ”

 

 어느새 동기가 공책 구석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공부나 해라!” 환청이 들리는 것 같다. ㅋㅋㅋㅋ 여주는 킬킬대며 웃다가 낙서를 지웠다.

 수업이 다 끝나가니까 짐이나 싸자. 여주는 필통에 연필을 집어 넣었다. 


“자 오늘의 수업은 여기가 끝이다. 질문 있는 사람?”

 

 다들 사카즈키를 본다. 끝나는 시간이 임박하니 엉덩이가 들썩거리지만 사카즈키는 아니었다. 그는 쉬는 시간이든 어떻든 상관없이 질문이 생기면 턱턱 던졌고 예리하고 깊어서 사카즈키의 질문은 쉬는 시간을 우습게 잡아먹곤 했다.

 

“오, 그래 사카즈키 생도?”

“아까 전쟁무기의 역사를 말씀하시며 컬버린과 캐논포를 말씀하셨는데...”

 

 오늘도 그럴 모양이다.  오, 씨발... 같은 수업을 듣는 학생들 몇몇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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