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룡하난] 당신을 놓는 법

@garde15hangs



 사실 처음은, 조금 기대를 품었다. 당신은 이 세상 모두가 두려워하는 존재이기에 나를 총애하는 모습에서 기쁨을 얻었다. 나를 대하는 태도가 남들을 대하는 그것과 다를 때 마다 일말의 희망을 품고, 우습게도 우월감을 느꼈다. 어쩌면 그것이 잘못된 것일지도 모른다. 남에게 사랑받을 수 있다는 그 자만을 가지고 남을 깔보는 듯한 그 기세등등함을 느꼈다니, 나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보인다.



 "하난아. 너는 항상 그리 곧게 앉아있는구나."



 당신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고 주변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들키고 싶은 비밀이라는 말이라는 건 누가 처음 만들어낸 문장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복잡한 심리를 너무나 잘 꿰뚫고 있었다. 이 설렘을 인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당신의 눈과 손이 날 향할 때 마다 벅차고, 기쁘고, 설레이는 이 행복감을 정의내리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당신의 존재보다도 더욱 두려울 그 단어 하나가 계속해서 생각났지만, 그것이라 정의내리는 순간 내가 너무나 비참해져서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폐하의 곁을 지키는 자가 어찌 몸가짐을 바르게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되어 만나는 것과 섬기는 것이 모두 한정된 영역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기에 착각하는 것이라 믿고 싶었다. 이 뒤숭숭한 마음을 여타 인간들과 같은 마음으로 정의내리고, 그것을 자각한 후 어찌할 바도 모른 체 안절부절하고 싶지 않았다.



 "하난아 이것 좀 읽어봐. 인간들은 짝사랑이라는 것도 한대."
 "너 또 지성인이네 뭐네 하면서 이상한 책 들고온건 아니지?"
 "그런거 아니거든. 마을에서 어렵게 구해온 책이란 말이야. 엄청나게 유명해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고 싶어하는 책이랬어. 그러니 이 추국님이 읽어줘야지 않겠니."
 "...그게 뭔데?"
 "저번에 사랑이라는 것이 두 사람이 나누는 마음의 형태라고 배웠잖아. 이건, 그것을 갈망하는 한 사람의 마음이래."
 "...함께 사랑을 하고 싶어서 혼자 사랑을 하는거야? 그럼 그게 사랑이니, 반쪽 사랑이지."
 "그치만 사랑은 사랑이니까 설레이고 감동적인,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혼자 느끼면 하나도 안 좋잖아. 사랑은 나누는 거랬는데, 이건 사랑도 아니야."



 그래도 당신을 떠올리는 날이 점점 늘어났고, 원치 않아도 생각하는 날이 늘었으며, 당신을 갈망하는 날이 많아졌다. 당신의 손길이 나를 향하지 않을 때는 마음이 너무나 우울해 눈물이라도 날 것 마냥 조용히 방에 틀어박히게 되었고, 당신의 눈길이 나를 지나칠 때는 그것이 향한 상대가 부러워 시덥잖은 질투라는 것이라도 느끼는 듯 했다. 이런 마음이 나쁘다는 것을 알아도 그냥 그렇게 되었고, 어떻게 하면 당신이 날 더 바라볼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당신이 나에게 더욱 관심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었다.



 "너, 꼭 짝사랑이라는 걸 아는 것 처럼 말하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여전히 받아들이고 싶지 않다. 하지만 이렇게 밀물처럼 자연스레 치고 들어오는 마음이라면, 당신과 멀어져 나 홀로 있을 때 마다 곱씹어지는 마음이라면. 내가 인정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 마음이 사랑이 아닌 것은 아니었다.



 "봄이라서 그런가. 춘매의 미모가 유독 물이 올랐구나."
 "최고의 학자들이 빚어낸 외모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러니 춘매의 외모가 아름다운 것은 당연한 것이죠."
 "그냥 외모만이 아름다운 것이 아니야. 바라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구나. 너희가 나에게 잔소리를 하는 것을 들을 때와는 확연히 달라."



 당신의 마음에 들고 싶어 발악하게 되는 나 스스로를 자각하고 있으면 내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워 마음이 아프다. 당연히 이뤄질 리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주 작은 눈빛 하나에 커다란 희망을 걸고, 아주 미세한 손짓 하나에 내 모든 행복을 건다. 그러니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하는 당신의 확연한 눈빛과 확고한 손짓에 내 모든 희망과 모든 행복이 울렁이며 낙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네가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 얼마나 즐거우냐 춘매야. 저 잔소리쟁이들도 그렇다는 게 문제이지만."
 "제가 아끼고 폐하께서도 아끼는 사람들인데 왜 항상 그렇게 말씀하세요."
 "특히 하난이는 마음씨가 못되서 내가 조금 농땡이를 치려는 걸 못 봐준다."
 "폐하! 저, 저는 그냥..."
 "되었다 되었어. 우리 꽃놀이나 가자꾸나 춘매야. 봄이 되어 모든 생명이 만개했단다."



 사랑을 하면 설레이고, 안정감을 느끼며, 언제나 행복하다고 했다. 상대방과 작은 다툼을 하는 것 마저도 즐겁고,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인다고 했다. 짝사랑은 사랑이면서 사랑이 아니라서, 두 사람이 해야 하는 걸 혼자 하려니까 마음이 무겁고, 버겁고, 힘들고, 괴롭나보다. 확실한 마음의 전달에 설레이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한 움직임에 모든 것이 일렁이는 설렘은 행복보단 불행에 가깝다.

 짝사랑은. 그러니까 외사랑은. 시작할 때도 아무것도 아닌 것들에 온갖 마음을 메달며 시작해서인지 끝을 낼 때도 온갖 마음을 떨구며 끝내야한다.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들에 혼자 상상하고 잠시라도 행복감을 느끼고 조금이라도 설레었다고 벌이라도 받는 것인지, 완전히 나에게 향할리 없는 마음에 비참함마저 느낀다.



 "나는 지금 사랑을 느낀단다 춘매야."
 "폐하의 마음이 그렇다면 저 또한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당신을 사랑한 것도 내 마음대로였고,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도 그대의 마음대로이니, 이 사랑을 놓으면서 느끼는 슬픔도 내 마음대로이다. 이 슬픔만은 온전히 내 것으로 곱씹고 곱씹어 닳아 없어질 때까지 슬퍼하면서 당신을 놓을 것이다.

 이것이 짝사랑하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권리라면. 당신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맡닿을 수 없었음에 슬퍼하면서 그대를 놓을 것이다.

@gagru_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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