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우->광요도 약간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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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소가 앓아누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금광요는 어찌해야 할 지 몰랐다. 원인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을 사랑해서 잠들기 전 나란히 눕고, 나란히 깨어나길 바랐다. 그 또한 그리하길 원했지만 현실은 이렇다. 혼사가 깨진 것이다. 은인이자 첫사랑을 혼인으로 영영 제 곁에 묶어둘 수 있다는 그녀의 바람은 산산히 흩어졌다. 

사실 금광요가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도 당연했다. 파혼의 원인은 다름 아닌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사일지정의 영웅, 삼존의 막내. 그 미명도 창기의 핏줄이라는 말 앞에선 모두들 입을 가리고 기침을 하게 만들 뿐이다. 그러니 금광선의 자식으로 인정받았다 한들 양가의 규수, 그것도 한 선문 세가 종주의 금지옥엽에 대면 꽃신 옆의 짚신이 되는 것이었다.

어쩐지 일이 잘 풀린다 했지, 이리 잘 풀리면 그것이 저의 인생이던가. 금광요는 그저 웃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나도 마음을 준 여인에게 신의로 답하며 남들만큼 평범하게 살 수 있지 않느냐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그것을 꾹 눌러 참으며.


금광선 그 빌어먹을 너구리는 아니면 아니다, 기면 기다, 확실히 말하는 법이 없었다.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에 이야기하자, 등으로 대답을 회피할 뿐이었다. 이런 식으로 한두 번 당한 게 아닌지라 금광요는 진즉 그의 회피가 곧 불허와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파혼 문제에서도 그는 같은 반응을 보였다. 이런 경우는 두 번 말해봐야 반감만 살 뿐이다. 결국 그는 혼인하여 처가의 뒷배를 타 보려는 계획을 포기하고 금광선의 숙원 사업에 매달리는 쪽을 택했다. 그러면서도 진소에게 절절한 서신을 보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이유로 낭자와 백년가약을 맺지 못하게 되었으나 그 마음만은 진심이며, 자신에게 준 마음 역시 평생 잊지 않고 살테니 좋은 사람을 만나라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도 멀리서도 진소가 행복했으면 좋겠으니 울지 말고 기운을 차리라는 마무리까지. 이미 그에게 푹 빠져 있는 진소로서는 그 애타는 마음을 더욱 불태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었으니, 일종의 보험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 뒤로는 혼인 사업의 실패도 잊을 만큼 바쁜 나날이 계속되었다. 위무선의 음호부를 탐낸 금광선은 제 2의 이릉노조와 음호부를 제 손에 넣고자 했다. 덕분에 수많은 사마외도 수련자들이 알게 모르게 금린대를 드나들었고, 금광요가 추천한 소년 설양이 가장 두각을 드러낸 것은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난릉에서는 그를 위한 연구 공간으로 연시장을 지어주었고, 금광요는 일의 책임자이자 포악한 설양을 감시하는 목적으로 매일 같이 연시장에 드나들었다.

일은 다소 번거롭기는 했으나 금린대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배는 나았다. 금광선의 부인은 금자헌이 죽기 전에도 걸핏하면 금광요를 윽박지르기 일쑤였는데, 그가 죽고 난 뒤에는 이성을 반쯤 잃어 금광요가 보이기만 해도 더 심한 욕설과 폭력을 휘둘러댔기 때문이다. 애석하게도 금광요는 반항하지 못하는 입장이라, 매일 같이 오래된 상처에 새로운 상처가 더해지는 나날을 보내던 차였다. 연시장을 다니면서 금린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줄어드니, 자연히 그녀와 마주칠 시간도 줄어 그의 몸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이 정도로 평화가 찾아온다면 역시 금광요의 인생일 수가 없다. 연시장의 일이 끝나고 금린대로 조용히 귀가해도, 남편이 주색에 빠져 제 시간에 집에 들어오지 않으면 금 부인은 또 노성을 지르며 금광요를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몇 번 그의 부재로 인한 피해를 보자 이제는 연시장 퇴근길에 기루에 들러 만취한 금광선을 데리고 들어가는 것 역시 일과에 편입되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새로운 상처는 이제 거의 생기지 않았고, 오래된 상처들도 모자 속에서 천천히 아물어가고 있었다. 설양의 흉시들은 점점 빨라지고 있었으며 난릉 금씨의 선독위에 반항하는 목소리도 쥐도새도 모르게 거의 다 처리했다. 그리고, 금자헌이 죽었으니 결국은 저 뿐이다. 그러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날 아침에는 유난히도 눈이 일찍 떠졌다. 사실 기루에서 잔심부름을 맡던 아주 어렸을 적부터 일찍 일어나는 습관이 몸에 배어 무슨 일이 있어도 늦잠을 자는 법이 없는 금광요에게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지는 것은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었다. 다시 누워 잠을 청하기엔 다소 애매한 시간이었기에 그는 평소보다 조금 더 일찍 금린대를 나서기로 마음 먹고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청결하게 세안을 하고 의관을 정제한 뒤 자신의 방을 나서는 금광요의 눈에 무언가 띄었다. 누군가 금린대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이런 이른 아침에 계단을 오르는 경우는 별로 없어 이 광경은 금광요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까마득한 계단을 오르는 인영을 자세히 보니 한 명이 아니었다. 두 명이 앞장을 서고, 한 명이 뒤를 따르고 있었으며 모두 금성설랑포를 입고 있었다.

금린대에서 금성설랑포를 입은 수사를 보는 것은 산에서 나무를 보는 것처럼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임에도, 어째서인지 금광요는 아침햇살을 등지고 계단을 오르는 일행, 그 중에서도 가장 뒤에 선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 자리에 못박힌 듯 계단의 맨 꼭대기에 서서 일행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앞장 선 수사 둘이 금광요의 시선에 어쩔 줄 몰라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뒤에 선 금성설랑포의 소년은 모르는 얼굴이었다. 주변을 힐끔거리며 곁눈질하고 높은 계단을 버거워하는 것을 보면 분명 금린대가 처음이며 금단을 맺기 위한 수행도 하고 있지 않는 게 분명했다. 등 뒤로 내리쬐는 볕이 따가운듯 어깨를 움찔대던 소년은 고지가 가까워지자 고개를 들었고, 금광요와 눈이 마주쳤다. 떠오르는 태양이 금광요의 얼굴 정면에 빛을 쏘아 눈이 부셨다. 금광요는 내색하지 않은 채로 소년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보았다. 잔뜩 긴장한 눈, 거대한 금린대를 흘낏대는 시선.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처음 입어보았을 새 금성설랑포가 놀랍도록 잘 어울리는 곱상하고 귀티나는 얼굴은 필경 낯설지 않았기에,

금광요는 본능적인 위협을 느꼈다.


+)


소년, 모현우는 이 모든 상황이 낯설기만 했다. 모가장 사람들은 모현우와 그의 어머니가 선문 세가 종주의 핏줄이었기에 드러내놓고 천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인지라 뒤돌기만 해도 수군대는 소리를 모를 수는 없었다. 그렇다해도 그가 특별히 야심이 있는 것도 상황을 박차고 나갈 생각을 할 만큼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거나 기꺼워하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그가 사는 작은 마을에서는 나름대로 가장 큰 집에 살았지만, 금린대는 정말이지 그에 비할 게 아니었다. 별다른 수행 같은 것도 한 적 없는 모현우는 밤새 모가장에서 난릉까지 이동한 뒤 이른 아침부터 까마득한 금린대의 계단을 오르는 일이 제법 벅찼다. 앞서가는 두 사람들은 저를 공자님이라 부르며 높여주는 것을 보아하니 이 으리으리한 가문에서 아랫사람으로 부리는 심부름꾼 정도인 것 같았지만, 과연 신선이 되기 위한 수행을 한 사람들인 탓인지 숨이 흐트러지는 기색도 없었다. 여기서 가르침을 받으면 수사님들처럼 이 정도 계단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냐 묻고 싶었지만 숨이 차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땀이 조금씩 나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비춰오는 햇빛에 몸 뒤쪽이 노릇하게 익는 것 같았다. 흰 빛의 고급 옷감에 금실로 모란 자수가 놓인 옷은 조금만 무엇이 묻어도 쉽게 오염될 것 같아 할 수만 있다면 땀구멍을 모조리 막고만 싶었다. 될 리가 없지만. 한참을 걸어올라왔으니 거의 다 오르지 않았을까 싶어 모현우는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아침 햇살을 정면으로 받으며 서 있었다. 눈이 부셨다. 그럼에도 눈을 떼고 싶지가 않았다.

눈이 마주쳤다. 태양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로 그의 인생에서 가장 숨막히고 눈부신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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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세상연재텀... 왜이렇게 길어지지

그래도 다음편은 진짜 저의 오프 신변에 문제나 커다란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7월 안엔 올라와요 진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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