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1. 


희수는 결국 여행 3일차 아침에 못 일어나고 끙끙대는 영인의 허리에 파스를 붙여 주었다. 오늘은 일요일, 벌써 휴가의 반이 지났다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영인은 옆에서 "금요일 밤부터니까 1/3 지난 거지 이 바보야"라며 위로아닌 위로를 해 줬다. 하루만 사는 여행계획을 세우고 온 두 사람이라, 오늘은 강릉을 간다는 것 외엔 특별히 정해 놓은 게 없었다. 영인은 희수의 손을 잡고 누워서 닭강정 하나를 우걱우걱 씹었다.


"야."

"왜?"

"그냥. 같이 느긋하게 있으니까 좋다."

"응. 좋다.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나중에 은퇴하면 강원도에 살까."

"좋은 생각인 것 같아……."


그런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 받으면서 희수는 무언가 기분 좋은 위화감을 느꼈다. 그렇지만 정체를 확실히 알 수는 없어 굳이 내색을 하진 않았다. 


"너 수영 좋아하니까 가서 굴 따와."

"뭐래……."

"으아. 강릉 꼭 가야 할까? 가 봤자 순두부밖에 없는 거 아니야?"

"예쁜 카페도 되게 많대. 순두부 안 좋아해?"

"좋아하지. 순두부 젤라또도 팔더라."

"응. 호수도 보고. 바다 보고…. 아. 무슨 해안 산책로가 생겼대. 정동진에."

"해 뜨는 거 보러 가는 데 아니야? 정동진? 간 거 같은데."

"응. 맞아. 우리 막 대학교 2학년 때 갔지. 기억 나?"

"어. 청량리에서 밤에. 무슨 일출열찬가. 아직 있나?"

"없어졌다고 들은 거 같아."

"하여간 낭만적인 건 다 없어진다니까. 저번에도."


옛날 얘기를 끄집어 내며 일어날 생각을 않는 영인의 손목을 붙잡고 희수는 겨우겨우 일으켰다. 영인은 투덜거리면서도 희수의 손에 끌려 세수를 하러 갔다.




"이야. 순두부 개미친놈이다."

"무슨 칭찬이 그래. 영인아."

"엄청 고소해. 와이씨."

"짬뽕 순두부도 맛있다."

"반찬도. 맛집이네."

"그렇네. 민수 쌤한테 고맙다고 해야겠다."

"아, 알려 준 사람?"

"응. 강릉 사람이거든."


영인은 순두부를 후루룩 다시 먹으며 고맙다고 해야겠네 짧게 덧붙였다. 그리고 말 없이 음식을 비워 냈다. 어지간히 초당 순두부가 마음에 든 모양이라고 희수는 생각했다.

희수는 올챙이 배를 통통 두드리는 영인의 옆에 쪼르르 가서 섰다. 그나마 꼼꼼한 편인 희수가 총무를 자처했기 때문이었다. 길고 긴 토론(말싸움) 끝에 한 끼씩 식사를 사는 것 외에는 숙소며 나머지 여비는 반씩 나누기로 합의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액수 줄이면 혼나."

"나 정직한 거 제일 잘 알면서."

"그건 그렇지만. 또 은근 전략가잖아."

"내가?"

"응. 젤라또 먹으러 가자."

"응. 영인이는 무슨 맛 먹을 거야?"

"순두부맛. 반씩 되면 인절미맛도 먹어야지."

"…오늘 강릉 안 왔으면 어쩔 뻔했대?"


팔짱을 끼면서 웃는 희수를 영인은 걸음 속도를 맞춰 주며 의뭉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그러게 하고 덧붙였다. 젤라또 가게에는 주말이라 사람이 적지 않았지만 그만큼 알바생도 많았는지, 두 사람은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고 아이스크림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맛있었는지 표정이 밝아진 영인이 귀여워서 희수는 자신의 인절미 젤라또도 한 술 떠 내밀었다. 조금 창피해하려나 싶었지만 영인은 전혀 거부감 없이 앙 받아먹었다. 그리곤 자신의 순두부 아이스크림 역시 한 술 떠 희수에게 내밀었다. 돌아오리라곤 예상 못했던 희수였지만 기쁘게 받아 먹었다. 


"으음!"

"어때. 난 맛있는데."

"신기하다. 와. 진짜 두부맛이야."

"맛있진 않지?"

"아, 아니야."

"얼굴이 말해 주고 있어요~"

"…콩맛이 많이 나."

"좀 콩비린내 같으려나. 호불호 갈릴 것 같아."

"인절미맛이 더 맛있어."

"너도 대중없네."

"응?"

"순두부 아이스크림은 콩맛 나서 싫고. 진짜 순두부는 괜찮고. 콩고물 맛 아이스크림도 괜찮다니."


한방 먹였다는 듯 우쭐한 표정을 짓는 게 어제 꽤나 억울했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제 불안을 다시 한번 잠재워 주고 싶었든가. 희수는 파안하고선 그러게 나도 좀 대중없네 대답을 했다. 



48.2. 


"걷기 싫었는데 오니까 좋네."

"그러게. 되게 잘 되어 있다!"

"해안산책로 대명사 올레길의 고향 제주도민으로서, 여기는 몇 점이야?"

"푸하하. 그게 무슨 타이틀이야. 말해 뭐해. 100만 점이지."

"점수가 너무 후한데?"

"너랑 같이 걷는데 어디든 만점이야."

"와. 진짜 사람 할말 없게 만드네."

"노렸어. 한방 먹었지?"

"응. 심장에 화살 하도 맞아서 구멍이 숭숭."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가슴에서 화살을 뿅 하고 뽑아내는 시늉을 하는 영인이 웃겨서 희수는 배를 잡고 웃었다. 사실 별로 웃기지도 않았는데 그냥 둘이 좋은 곳 와 있으니 웃음이 절로 났다. 

가족들끼리 부산에서, 제주에서, 질릴 만큼 많이 본 바다였는데도 영인과 보니 또 왜 이렇게 예쁜 건지. 몽글몽글 차오르는 행복감이 편안했다. 익숙하고 편안해도, 지겹거나 지루하지 않았다. 그게 신기했다. 9년간 봐 온 영인이었지만 조금도 그렇지 않다는 게. 정말 평생 이럴 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이런 사람을 만났을 때. '그런 생각'이 드는 거구나. 




주하와 희수와 함께 있던 취업 스터디에는 2살 언니인 수경이 있었다. 사오 년 전. 수경의 청첩장 모임에서 당시에 지금의 (남편이 아닌) 남자친구를 막 만나기 시작했던 주하가 눈을 빛내며 수경에게 물었더랬다. 


"진짜 달라요? 이 사람이다 싶어요? 막 후광이 있나?"

"무슨 남자친구가 신이니? 후광이 있게?!"

"그럼 뭐 특별한 건 없어요? 있을 것 같은데!"

"있기는…. 있지! 있기는 해. 그냥 근데 그런 생각이 문득 들게 되는 거야. 이 사람이다!! 막 이런 것보단."

"뭔데요? 약간 전 아직 잘 모르겠어. 희수도 그렇지?"

"응? 맞아요. 저도 궁금해요."


재석과 만난 지도 몇 년 안 됐었고, 20대 중반이라 결혼 생각은 거의 없던 희수였기에 낯설게만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오히려 자신이 결혼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을 가졌기에 타인의 결정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그냥 내일도 모레도, 10년 뒤, 20년 뒤에도 늘 편하고 즐거울 것 같았어."

"와. 진짜요?"

"응. 연애하면서 처음이었거든. 매일 만나도 안 질리고 편할수록 더 좋아지는 사람은."

"그렇구나."




그 짧은 대화는 희수의 뇌리에 꽤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 재석과의 연애는 시간이 지날수록 편하고 익숙해졌다. 즐거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결코 매일 만나서 더 좋은 건 아니었다. 동거를 시작하고 오히려 더 안 맞는 부분이 생겼고, 조금씩 무언가가 소모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그건 누군가와 맞춰 함께 산다는 게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바다 예쁘네. 너 같다."

"또 왜 나 같아."

"……음. 쿨톤이야."

"뭐래. 진짜."

"쪼기 전망대 가서 사진 찍고 돌아가자."

"응. 많이 힘들면 지금 돌아가도 돼."

"운동 좀 해야지. 느낀 바가 많다~"

"응? 어디 안 좋아?"

"여자친구를 밤에 충분히 만족시켜 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

"뭐, 무슨. 아, 아니야아!!"

"더 오래하고 싶었던 거 아냐?"

"그건 맞지만…. 너한테 불만 없어. 그, 엄청 좋았구. 진짜야. 나 불만 없어."

"그럼 더 잘하기 위한 노력으로 하자."


손을 꼭 잡고 웃는 모습에 희수는 어떻게 이런 소리를 대낮에 해도 안 싫을까.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수경의 말을 모두 만족하는 사람을, 희수는 이번에야말로 찾은 것 같았다.


"영인아."

"응. 희수야."

"나 매일 만나는데. 안 질려?"

"어. 그리고 뭐 매일 만나. 요새 바빠서 얼굴만 겨우 보고 뽀뽀만 겨우 했는데."

"나는 너 매일 만날수록 더 좋아져."

"내가 좀 매력덩어리긴 하지."

"응. 진짜 신기해. 편한데…. 어떻게 이렇게 좋지…."

"되게 신기해하네. 지금 자기가 얼마나 예쁜 말 하고 있는지 알아?"

"고마워. 항상."

"왜 이래 진짜. 어디 아파?"


장난스럽던 표정을 굳히며 멈춰서서 이마에 손을 얹는 영인에 희수는 활짝 웃었다. 찾았다. 결심했다. 


"영인아."

"왜. 열은 없는데."

"내년 연초에는."

"응?"

"제주도 올래?"

"제주도? 놀러?"

"응. 그리고……."


지나다니는 행인에 부딪힐 뻔하자 영인은 희수의 어깨를 안고 사이드로 빠졌다. 부딪힐 뻔한 사람을 째릿 째려보고선 다시 희수를 바라보았다. 그 말간 얼굴에 희수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부모님께 너 소개시켜 드리고 싶어."

"……이미 아는 사이잖아. 너희 부모님이랑?"

"그런 뜻 아닌 거 알잖아."

"무리 안해도 돼. 나는 원래 커밍아웃을 했었고, 네가 그런 부담 가질 거면 전주도 안 가도 괜찮아. 괜히 내가 할머니 때문에 급히 말해서…."

"아니야. 부담 아니야. 그냥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래."


평생을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이해해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누군가는 너무 낙관적이라고 할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정말 신중하게 생각해."

"응. 많이 생각하고 말한 거야."

"너는 은근히 대범한 구석이 있어서는……."

"2월에 갈래? 유채꽃 예쁠 거야."

"너네 부모님 언제가 제일 안 바쁘신데. 유채꽃 예쁘면 바쁘시잖아."

"2월 말은 그래도 좀 나아!"

"어휴. 알았어." 


한숨을 푸욱 내쉬는 영인에 희수는 자신이 너무 밀어붙인 건가 싶어 걱정스레 올려다보았다.


"미안. 너무 갑자기 말했지?"

"어. 놀랐잖아."

"부담스럽겠구나. 미안해."

"안 부담스러우면 이상하긴 하지. 그래도."

"응?"

"언젠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괜찮아. 미안해하지마. 괜히 보냈겠어? 양갱."

"아하하. 그런 거였어?"

"어. 내가 보낸 거라고 똑바로 얘기했지?"

"응. 엄마 아빠 다 너무 좋아하셨어. 고맙대. 너 무지 칭찬하시더라."

"설에도 뭐 보내서 점수 좀 따야겠다. 뭐 보내지…."

"아. 설에 갈래? 같이?"

"……봐서."


볼을 긁적이며 쑥스러워하는 모습에 희수는 마음이 따뜻한 무언가로 꽉 차는 기분이었다.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만큼 (절대로 지르진 않겠지만) 행복했다. 



48.3. 


산책하고 정동진에서 바다도 구경한 두 사람은 다시 강릉시내로 돌아와 뷰 좋은 카페에서 커피도 마시고, 유명하다는 책방에 들러 책도 구경했다. 


"아. 민수 쌤이 톡 보냈네. 푸딩도 먹으래."

"푸딩?"

"응. 한번쯤 먹어볼 만하다고. 까먹었다고 방금 알려 줬어."

"웬 푸딩. 계란이 유명한 곳도 아니잖아."

"그러게. 내가 단 거 좋아해서 알려 줬나."

"하긴 가 볼까? 이 근처네."

"응. 좋아!"


조수석에 앉은 영인은 내비게이션에 주소를 입력했다. 생각보다 시큰둥한 태도에 희수는 조금 의아했지만 영인이 뚱한 건 하루이틀 일이 아니기에 일단 푸딩집으로 향했다. 

저녁 먹고 디저트로 먹을 푸딩을 사고선 영인이 노래를 부르던 오리백숙집으로 향했다.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배틀트라벨 촬영 기념사진이 살짝 거슬리긴 했지만 맛은 기가 막혔다. 또 약간 민망해하며 좋아하는 영인의 모습이 퍽 보기가 좋기도 했다.


"맛있지?"

"응. 국물도 찐하고 맛있다."

"아. 보면서 엄청 먹고 싶었거든."

"많이 안 느끼하네. 오리는 기름 되게 많은데."

"그렇지?"

"칼국수 사리 추가할까?"

"조희수."

"응?"


진지하게 자신을 부르는 영인에 희수는 눈이 동그래져서는 영인을 바라보았다. 영인은 한껏 진중한 표정으로 엄지를 척 들어 보였다.


"너 역시 배운 사람이구나."

"푸하하. 무슨 소리를 하나 했어!"

"다 먹을 수 있겠지. 아 난 왜 배가 작을까."

"많이 먹으면 더부룩하잖아. 조심해."

"소화제 먹어야겠어."

"진심이네. 공영인. 사장님. 저희, 칼국수 하나만 주시겠어요?"


희수가 지나가는 직원에게 사리를 주문하는 걸 지켜본 영인은 오리다리를 뜯으면서 말했다.


"상냥하네."

"내가? 보통이야!"

"아냐. 뭔가 좀 사근사근해."

"그런가. 사실 집에선 내가 추가주문 잘 안 하지만."

"아 하긴. 너네 집은 그럴 만도 하다."

"응. 우리 엄마나 민서는 거의 사장님이랑 베프 먹어."

"진짜 어떻게 그러시지? 우리 가족은 10번 간 식당도 사장님 얼굴도 몰라."

"그래도 그 팥죽집 사장님은 영인이 예뻐하시잖아."

"그게 뭐가 예뻐하는 거야. 너를 훨씬 좋아해. 내가 올려 준 매상이 얼만데. 진짜 어이없어."

"그렇게 억울해할 일이야?"

"뭐 맨날 너랑 가면 되니까 상관은 없지만."


아. 위화감이랄까. 의식하지 못했는데 느껴진 감각이 뭔가 했는데. 희수는 그 정체를 깨달았다. 영인이 먼저. 영원을, 우리의 미래를, 당연하게 말하고 있었단 걸. '은퇴하면 강원도에 살까' 하는 말이 그저 혼잣말로 들리지 않았던 이유. 자신에게 묻는 말이라는 확신이 이미 제 안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영인아. 사랑해."

"……!? 나도. 근데 아까부터 왜 그래?"

"그냥……. 뭔가 벅차 올라서."

"왜지. 단골가게 사장님에게 싸가지 없게 구는 내 모습에서 반항아적인 면모를 느꼈나?"

"싸가지 없게는 굴지 말자."

"방금도 너는 그 아줌마 있지도 않은데 주체높임 쓰길래. 아 나는 이래서 안 되는 건가? 싶었어."

"뭐…. 영인이 버릇없게 굴진 않잖아. 어른들께."


'엄청 깍듯하고 예의바른 건 아니지만' 그래도 자신의 부모님께도 말도 걸고 반응도 잘해 줬던 영인이었다. 사장님과도 티키타카가 잘 오가는 편이라 오히려 희수는 그게 신기했다. 


"아무튼 대단해. 존경해."

"별걸 다. 쑥스럽네."

"익숙해지라고. 아, 저. 김치 좀 더 주세요."

"영인이도 잘하네. 뭐."

"네가 훨씬 상냥해."


불필요한 친절이나 과잉이라는 말 없이 그저 자신을 긍정해 주는 영인이 고마웠다. 이런 면이 영인의 상냥한 부분이었다. 사실은 겉으로 웃는 조희수보다 뚱한 표정으로 챙기는 공영인이 더 상냥한 사람인데. 아무리 설명해도 이 고집쟁이는 인정하지 않거나 장난스레 넘길 게 분명해 희수는 그냥 웃으며 칼국수를 국물에 넣어 주었다. 




"오. 야. 희수야."

"응? 왜애?"

"잠깐만. 여기 차 세울 곳 있나…."


식당이 설악산 근처에 있어서 두 사람은 희수의 경형 SUV을 타고 꼬불꼬불 산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었다. 가로등이 많지 않아 하이빔을 켜고 운전을 하고 있던 희수는 주차할 곳을 찾는 영인에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서도 넉넉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오. 마침 넓은 갓길이 있군."

"왜 영인아?"

"잠깐만 내려볼래? 그, 차 조명 끄고."

"으으응?"


희수는 영문을 모른 채 영인에게 끌려 차에서 내렸다. 지나다니는 차가 많지 않아 살짝은 으스스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영인이 어깨를 꽉 안자 그 느낌은 금새 사라졌다. 영인은 손바닥으로 희수의 눈을 감겨 주었다.


"어둠에 눈 좀 익숙하게 하자."

"아, 응! 동공 열기!"

"연다고 열려? 웃기네. 조희수."

"이제 눈 떠?"

"아직. 잠시만."


영인은 희수의 볼을 쓸어내리곤 턱을 잡고 들어올렸다. 키스라도 하는 건가 싶었는데, 키가 3m는 되지 않고서야 이 각도로 키스할 순 없어 그건 아닌 것 같았다. 마치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자세. 하늘? 아. 


"눈 떠 봐."

"와아!!"

"오늘 날이 좀 춥더니. 맑나 봐."

"별 정말 많다. 와…. 와!!"

"예쁘지."

"응! 와아…."


한참을 말이 없이 별을 구경하고 있으니 영인이 별 보러 가자는 음악까지 틀어 주었다. 희수는 푸스스 웃으며 고개를 내려 영인을 바라보았다. 


"별 봐. 나 그만 보고."

"아하하. 응. 목이 좀 뻐근해서."

"주물러 줘? 요구사항이 많은 고객님이네."

"아니야. 그냥 좋아서. 어떻게 알았어?"

"아. 평창 쪽에 뭐 별구경 하는 데 있대서, 갈까 했는데 동선이 안 나오더라고. 근데 여기도 불빛 없길래."

"아 그렇구나. 진짜 너무 예쁘다. 고마워. 영인아."

"고마우면…."


또 무슨 신박한 부탁을 하려나 싶어 희수는 다시 고개를 내리고 영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영인의 입에서 나온 건 뜻밖의, 전혀 예상치 못한 이름이었다. 


"최민순지 김민순지랑 연락하지 마."

"뭐어?"

"짜증나니까."

"아하하. 신경쓰였어?"

"어."

"아하하하. 아. 웃겨."

"강릉 사람이면 뭐 해? 이런 곳도 안 알려 주고."

"아 진짜 웃겨. 영인아아. 진짜 사랑해."

"나도 사랑해. 그건 그거고."


봐 주지 않겠다는 듯 눈을 부릅뜨는 모습이 웃겼다. 종일 아무 말 없다가 이렇게 오밤중에 뜬금없이 견제하는 게, 영인답다면 영인다웠다. 


"이민수 씨. 민수 쌤."

"어. 개싫어."

"딸이 둘인 애엄마셔."

"……."

"질투했어?"

"이름을 왜 그딴…. 아오."

"미안. 질투했어?"

"조용히 해. 아. 쪽팔려. 아이씨."

"아. 진짜 좋아해. 공영인. 아 웃겨. 아하하."

"웃지 마. 아 진짜."


결국 영인 역시 어이가 없었는지 웃음이 터져서는 한참을 마주 웃었다. 그리고 별빛 아래에서 몰래 뽀뽀 몇 번 하고, 별 보면서 소원도 빌고 두 사람은 다시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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