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기억이 안 났지만, 눈을 떴을 때는 벌써 아침이었다. 침대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섰다. 어제 억지로라도 일찍 잠을 청한 덕인지 안색이 좋아 보였다. 그러나 그와는 별개로 표정은 좋지 않았다. 입꼬리를 올려 웃어 보려다 어차피 연회가 시작되면 질리도록 웃을 것이라는 생각에 힘을 풀었다.

나는 매일 하던 호르몬 갈무리도 하지 않은 채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방에서 나와 숲을 향했다. 오늘 같은 날은 쉬고 싶기도 했지만, 앞으로 한동안은 못 나올 테니 어쩔 수 없었다.


"아직 반은 안 왔나.."


내가 일찍 도착한 탓이겠지만, 언제나 나보다 일찍 도착하던 반이었기에 조금 신기한 기분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오늘은 굉장히 일찍 나오셨네요."

"아, 반. 좋은 아침입니다."


반가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인사했다.


"그냥, 앞으로 한동안은 못 나올 수도 있으니까요."

"흠... 그렇네요. 벌써 오늘이 그날이군요."

"..."

"뭐, 그만큼 오늘은 더 성심성의껏 대련에 임해야겠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반의 예고대로 오늘은 평소보다 배는 힘들었다. 나는 땀을 훔치며 말했다.


"이제 가봐야겠네요.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으니까요. 성실하신 호위 기사님의 감시도 있고..."

"예, 그럼 다음 훈련 때 뵙겠습니다."


나는 반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를 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돌아와 보니 란이 벌써 목욕 준비를 해놓은 상태였다.


"바로 들어가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두었습니다."

"고마워, 란."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쉴 틈 없는 치장이 시작되었다. 연회는 저녁 때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전에 성년식이 있었다. 성년식은 보통 이른 오후에 치르는 경우가 일반적이기에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해야 제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다 됐네요. 오늘도 참 아름다우십니다."

"고마워."


무거운 액세서리와 화려한 옷, 그리고 화장을 한 내 모습은 익숙해지질 않는다. 거울 속의 내가, 참 낯설었다.


"벨리에 경이 보시기엔 어떻습니까?"


나의 반응이 마뜩잖았는지 란이 옆에 서 있던 벨리에 경에게 물었다.


"... 아름다우십니다."


벨리에 경은 란의 눈초리에 못 이겨 대답했다.


-똑똑


"이제 출발하실 시간입니다."


"나다."


단 두 글자로 자신이 왔음을 알리는 그를, 모른 척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들어오세요."


내 말에 문이 열리고 그가 들어왔다.


"시간이 다 되었으니 이제 출발하지."

"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그리고 이제는 그와 걷는 것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복도를 걸었다.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는 그 시간이 어색했지만, 성인식이 치러질 홀에 도착할 때까지 그 누구도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 사이의 적막을 깬 건 입장의 때를 알리는 시종이었다.


"하객 분들이 모두 입장하시면 두 분이 함께 입장하실 겁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흘려보내는 시간은 빠르게도 흐른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기다림의 시간은 영원과도 같게 느껴진다. 그 시간 속에서 그와 맞잡은 손이 불편했다. 나는 그의 손에 올려두었던 나의 손을 내렸다. 그러자 조금이나마 편해진 것 같았다.


"왜..."

"예?"

"아니, 아니다."


그가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하였지만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자, 이제 입장하시겠습니다."


때마침 우리의 입장 순서를 알리는 시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홀의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그가 다시 내 손을 잡았다. 함께 입장하는데 손을 안 잡고 각자 가는 것도 웃긴 모습이었기에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맞잡아 온 손에 힘이 실렸다.

홀의 중앙을 가로질러 황제가 있는 계단 앞에 무릎을 꿇었다. 황태자는 뒤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황제는 옆에 있던 시종에게 두루마리를 받아 펼치고선 목을 다듬고 말했다.


"쿠흐 백작가의 삼남, 하임 쿠흐는 오늘부로 성인이 되었으며, 하임 카이탄으로서 황가의 진정한 일원이 되었음을 인지하고 그에 맞는 책임과 의무를 다할 것을 맹세하는가."

"예, 맹세합니다."

"좋다. 그럼 이 시간부로 하임 카이탄은 카이탄 제국의 진정한 황태자비로 거듭나게 되었음을 세상에 공표하는 바이다."

"감사합니다."


-짝짝짝짝


박수가 쏟아져 나오고, 그렇게 성인식은 끝이 났다. 정말 힘이 빠질 정도로 짧고 의미 없는 절차였다.


"그럼 조금 있다 다시 오지."


나를 방까지 데려다준 황태자가 떠나고 소파에 앉았다.


"하임 카이탄."


나는 아직은 어색한 그 이름을 불러 보았다.


"하..."


영원히 익숙해지지 않을 것 같은 이름에 한숨이 나왔다. 정말로 성까지 받아버렸다.

성인이 되기 전에 한 결혼은 금방 파혼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러 있기 때문에 제국에서는 기혼자는 성인식과 동시에 성을 받는다.

이 부담스럽고 무거운 성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천장만 바라보았다.


"이제 일어나야지."


히트 사이클이 시작되면 한동안은 일을 할 수 없기에 그 전에 최대한 많은 일을 끝내두어야 한다. 나는 아침보다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책상 앞에 앉았다.


-똑똑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하, 접니다, 란."

"아, 들어와."


-끼익


"역시 서류를 처리하고 계셨네요. 조금이라도 쉬시지..."

"뭐, 미리 해놓으면 나중에 편한 거니까."

"예, 뭐, 그래요... 아,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것 좀 드시면서 하세요."


소파 옆 낮은 테이블에 샌드위치와 차, 여러 간식을 올려놓으며 말했다.


"... 이게 다 뭐야?"

"제 사랑이 듬뿍 담긴 특제 샌드위치, 차, 그리고 딸기 파르페죠."

"아니, 그런 건 보면 아는데, 왜 이런 걸..."

"오늘 아무 것도 못 드셨잖아요. 조금 있다 연회도 가셔야 하는데, 힘내시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어요?"

"아..."


란이 말을 듣고 보니 배가 고파왔다.


"혼자 드시는 게 외로우시면 옆에 앉아 있어 드릴까요?"

"아니, 됐어. 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그래요. 그럼 저는 나가볼 테니 편하게 드세요."

"응."


란이 음식들을 다 내려놓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나는 그런 란에게 말했다.


"고마워, 란."

"뭘요."


란이 나가고, 나는 방금 전까지 앉아 있었던 소파에 다시 앉아 음식을 먹었다. 사랑을 듬뿍 담았다더니, 그 사랑이 고기였나 보다. 채소의 맛은 하나도 나지 않고 갖가지 고기의 맛이 다 나는 게, 내가 고기를 먹는지 샌드위치를 먹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따뜻해지고, 참 힘이 나는 맛이었다.





종강을 하고 제가 돌아왔답니다! 오랜만이에요!! 요즘 덕분에 아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답니다.

여러분은 혹시 사이비에 당한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얼마 전에 전화번호까지 줬답니다... 처음에는 방송 pd라면서 새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는데 인터뷰 좀 가능하시냐고 해서 이야기 좀 했는데, 자신들이 생각하는 20대 이미지와 너무 잘 맞는다면서 나중에 약속을 잡아서 이야기 좀 더 들어볼 수 있냐고 하시더라구요. 그전까지는 '와, 리액션이 참 좋으시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다 빌드업이었던 겁니다.. 아무튼 처음에 거절을 하니까, 붙잡으시면서 막 저를 설득하시더라구요. 뒤에 약속이 있어서 그냥 대충 번호 줬는데 전화가 저한테 걸리는지 확인까지 하시더라구요. 이걸 다른 번호를 안 줘서 다행이라고 봐야 하는지, 참.... 바로 차단은 했지만, 뭔가 사기 당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서 자존심도 상하고, 기분이 묘하네요. 아무튼 다들 길거리 인터뷰 조심하세요...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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