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울림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들어온 선생님은 중간고사에 대해 간단한 안내사항과 청소당번을 말하고는 바로 나갔다. 어지간히도 급해보이는 모양새에 선생님도 급한 약속이 있으신가, 하고 추측만 했다.


책상 위에 있던 교과서를 서랍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고 급히 교실을 나섰다. 교과서가 들어있지 않아도 가방이 잔뜩 부풀어있었다. 갈 길이 바빴기에 그녀는 반 아이들이 하는 인사에는 손만 흔들어 대답을 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교문을 나서면 몇 명인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목적은 단순한 귀가인가 혹은 흑심일까. 고민하다가 자신도 남들이 보기에는 저들과 같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들이 향하는 곳, 유메노사키 아이돌과의 교문 앞에는 당연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일반계 고등학교 귀가부 학생들이야 이 시간이 하교시간이지만 유메노사키 아이돌과의 학생들은 부활동이다 연습이다 바쁜 몸들이다. 아직 데뷔를 하지 않았더라도 일단은 아이돌 지망생이니까.


얼마 전부터, 그러니까 작년 가을쯤부터 유메노사키 학원에서는 ‘드림페스’라는 행사가 시작되었다. 방청권이 있는 사람은 유메노사키 학생들 뿐. 근처에 있는 학교에는 그 권리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마이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안타까운 비명을 질렀다. 한동안 전 체스였던 집단들이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듀얼이라는 이름의 콘서트를 개최했었기에 드림페스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다나. 그럴 리가 없잖아. 아무래도 여고라서 그런지 다들 그런 것에 열을 올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래도 모든 드림페스가 유메노사키 학원 재학생 한정 관람 가능이 되었을 때에는 그녀도 조금 아쉬워했더랬다. 제 소꿉친구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으니까. 무대 위에서의 모습을 여동생인 루카에게 전해 주는게 소소한 즐거움이었는데. 정작 당사자인 소꿉친구는 현재 등교거부 중이라 무대에 설 일은 없었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었다.


올해로 10년. 마이와 제법 오랜 시간을 함께한 옆집의 소꿉친구, 츠키나가 레오는 현재 꽤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눈물을 등에 업고 제 방 안에 틀어박혀 있다. 그리고 그 덕분에 마이는 츠키나가 남매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있었다. 뒤치다꺼리라고 해도 제 동생을 소중히 여기는 레오가 했을 법한 행동을 하며 루카를 달래주는 것 뿐이지만.


유메노사키 학원 근처 공원에서 옷을 갈아 입었다. 어제 레오에게 받은 그의 교복이었다. 루카가 레오에게 부탁받았다고 하는 서류도 마이의 가방 속에 들어있었다. 그녀의 목표는 단 하나. 나이츠를 찾아가 그 서류를 전해주는 것 뿐이다. 세나가 직접 왔다면 좋았을텐데.  이루어지지 않을 일을 중얼거리며 그녀는 두꺼운 후드를 껴입은 후 마이까지 걸치고 머리카락을 정리해 묶었다. 


며칠 전 세나가 가져온 서류를 받은 레오는 서류에 도장찍기를 망설였다. 그 결과 마지막의 마지막이 되어서야 도장이 찍힌 서류가 생겼는데,  학기 초에 레오를 대신해서 유닛의 대부분을 준비해야하는 세나는 바빴다. 전달역할을 할 루카는 부활동이 겹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마이가 나섰다.


교문을 들어설 처음에는 걸리면 어쩌지, 고민했는데 학생증을 꺼낼 것 까지도 없이 교복만으로 통과할 수 있었다. 한창 인구이동이 많을 시간이라 오가는 학생이 많은 덕분이었다. 하지만 난처한 것은 세나가 방음 연습실로 오라는 말만을 남기고 연락이 되지 않는 점이었다. 타학교 학생인 마이가 방음 연습실이 어디에 있는지 알 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정말 바빠서 세나가 그런 기초적인 부분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결국 지나가는 학생 하나를 붙들었다. 빨간 넥타이의 소년이었다. 레오가 1학년 때 저런 넥타이를 했었으니 눈 앞의 소년은 1학년일 것이라고 마이는 추측하며 입을 열었다.


“미안한데, 방음 연습실이 어디인지 알아요?”

“네?”

“Knights 쪽에 용건이 있어서...”

“아! 그런거라면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가는 방향도 같으니까요.”

“고마워요.”


마이는 친절한 학생에게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여보였다. 1학년 학생은 손을 살래살래 휘저으며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쫓아가는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 한가지 여쭈어봐도 괜찮을까요.”

“네. 뭔가요?”

“2학년인데 왜 건물 위치를 모르고 계시는겁니까?”

“...2학년인데도 길을 못 외울 수도 있죠.”

“...그렇습니까.”

“그런거에요.”


그 후로는 다시 정적이었다. 들킬까 철렁했던 가슴을 쓸어내린 마이는 그가 저기입니다. 하고 문을 가리키고서야 긴장을 조금은 풀었다. 여기까지 오면 이제 세나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싶었다. 애초에 그를 위해 심부름을 왔으니 그 정도는 해주지 않으면 곤란했다.


“여기까지 왔으면 괜찮아요. 원래 가려고 하셨던 곳이 있지 않았나요?”

“아뇨... 그, 저도 Knights 라서.”

“신입이에요?”

“카사 군! 늦어! 유닛 연습 시간을 완전히 무시할 생각? 제정신이야?”


1학년 학생이 대답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안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쏟아져나왔다. 그녀에게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그녀가 찾는 사람이기도 했다.


“세나 씨.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제가 길 안내를 부탁해서 그래요. 신입 기사님은 친절하시네요.”

“히비키? 어쩐 일이야? 그 옷은 또 뭐고.”

“루카가 오늘 부활동이 있어서요. 대신해서 왔어요.

“그 바보는.”

“여전하구요.”


마이는 가방에서 챙겨온 서류를 꺼내 건넸다. 세나는 한숨을 쉬며 그녀가 내민 서류를 받아들었다. 그래도 조금 안심한 것 처럼 보이는 것은 아마 초조했던 것이 아닐까? 정답에 가까운 생각을 하며 그가 서류를 잘 챙기는 것까지 보곤 가방을 다시 둘러 맸다. 할 일은 끝났으니 돌아갈 생각이었다.


“어라. 이즈미 쨩, 그 앤 누구야? 히비키라니, 그 히비키?”

“아냐. 다른 히비키. 카사군 데리고 연습시키고 있어 나루군. 데려다주고 올테니까.”

“괜찮아요. 혼자 갈 수 있어요.”

“여자아이잖아, 그 애.”


걸음을 멈춘 것은 다른 사람의 목소리였다. 세나가 돌아오지 않는 것에 의문을 품은 것인지 무엇인지 세나의 뒤에서 툭 튀어나온 사람은 독특했다. 주로 말투 쪽이. 그래서 그가 누구인지 알아봤다. 안경을 벗고 염색도 했지만 얼굴이 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까.


“나루카미 아라시 군?”

“어머머. 내 이름, 어떻게 알고 있어?”

“체크메이트 무대도 봤었고... 레오가 말해줬어요.”


마지막 말에 공기가 조금 무거워졌다. 역시 그렇구나. 싶었다. 상처를 입은 사람이 레오 하나 뿐일 리가 없었다. 이 자리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는 1학년 신입생 뿐이었다.


마이는 흐린 웃음으로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문을 열었다. 세나가 데려가준다고 말하는 것을 사양하며 그녀는 재빠르게 연습 열심히 하세요! 하곤 문을 닫았다. 노력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다른 용건도 있었다.


마이는 두 번째 약속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가든테라스가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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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친구 모에는 언제나 쿨타임 차면 돌아온다.

유성제 끝나니까 살 것 같다. 복각 천천히 뛰어야지

지나가던 오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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