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필님과의 연교


네더브레인을 무찌르고 난 후 올챙이가 사라지자마자 아스타리온은 화물 뒤에 숨어야했다. 햇빛이 주는 포근함은 어디에도 없었고 화살처럼 날카로운 따끔함밖에 없었다. 렌시아는 서둘러 아스타리온의 뒤를 쫓았다. 화물 뒤에서 아스타리온은 최대한 햇빛 쪽으로 가까이 붙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여전히 햇빛을 갈망하는 뱀파이어 스폰의 참담함에 가슴이 아렸다. 렌시아는 아스타리온의 타들어가서 생긴 갈라진 틈을 어루만지며 한 가지 맹세를 했다.

"너가 햇빛 아래에서 설 수 있게 해줄게."

아스타리온이 어이 없다는 듯 살짝 웃었다. 어쩌다 보니 코가 단단히 꿰인 아스타리온의 사랑스러운 연인은, 가끔 대책 없는 말을 꺼내고, 어떻게든 그 말을 지키곤 했다. 몇 년이 걸리든 이 무모한 하이엘프는 자신이 한 약속을 지키고 말 것이다. 아스타리온이 렌시아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괜찮아, 난 그림자 속에서 살아도 돼, 달링. 이게 내 자유의 댓가니까. 아니. 난 너에게 완벽한 자유를 줄 거야. 너가 다니는 동안 기다리라고? 렌시아가 고개를 저었다. 어딘가에, 햇빛을 완전히 막을 수 있을만한 천이 있을 거야. 달링... 욕심이라고 해도 좋아. 난 너랑 함께할 거니까. 올곧은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났다. 빛나는 눈망울을 한 렌시아를 막을 방법은 없단 걸 아는 아스타리온은 조금만 더, 연인의 고집에 놀아나기로 했다.

피가로가 구해준 천 덕분에 햇빛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옷을 제작할 수 있었다. 값은 따로 치르지 않았다. 바알에게서 구해준 것도 모자라 발더스 게이트까지 구한 영웅에게 돈을 받을 생각이 없다고 말한 덕분에 금액을 치를 필요도 없었다. 감사의 마음을 담아 렌시아가 하루 동안 피가로의 옷집 앞에서 리라를 연주하며 사람들을 모았다. 그 옆에서 아스타리온은, 햇빛이 완전히 들지 않는 옷이란 참 덥구나, 라는 시덥잖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렌시아는 타고난 정보꾼이었다. 바드란 직업이 다 그런지 모르겠지만, 렌시아는 자주 버스킹을 했다. 그녀의 리라는 그녀답게 청아한 선율을 자랑하며 듣는 사람의 기분을 들뜨게 만들었다. 사람들은 1골드를 바닥에 던지며 하루종일 렌시아의 연주를 들었다. 종종 렌시아의 팬을 만나 함께 밥을 먹었다. 렌시아는 팬들에게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도 늘 붙임성 좋게 대했다. 그러면서도 햇빛을 막는 아티팩트의 정보를 묻는 걸 잊지 않았다.

"왜 그런 아티팩트를 찾고 있는 거예요?"

렌시아가 옆에 앉은 아스타리온을 흘깃 보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햇빛 알레르기가 있거든."

해맑게 웃으며 렌시아는 아스타리온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옆에 있는 분은 누구예요?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 부끄러운 기색 없이 말하는 렌시아의 옆엔 언제나 사람들을 매섭게 노려보는 아스타리온이 있었다. 후드에 가려지지 않아서 보이지 않았지만, 예민한 사람들은 매서운 눈길을 본능적으로 눈치 채고 자리를 피했다. 이미 한 번 내 것이 된 이상 아스타리온은 자기 것을 빼앗길 생각이 없었다. 렌시아는 아스타리온의 태양이었다. 햇빛을 갈망하는 뱀파이어 스폰에게 있어 걸어다니는 태양은 그야말로 신이 준 선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아스타리온은 굳이 이 사실을 렌시아에게 말하지 않았다. 완벽한 자유를 선물하고 싶은 연인의 욕심이 귀여웠고, 무엇보다 자신을 위해서 어두운 길을 꿋꿋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는 사실이 기뻤다. 언젠가 햇빛을 막는 아티팩트를 구하게 되면... 상상하기 싫은 결말이 미래에 기다리고 있는 걸까. 아스타리온은 평소처럼 거리에서 연주하는 렌시아에게 속삭였다.

"만약 아티팩트를 찾게 된다면..."

답지 않게 망설이는 아스타리온을 보고 렌시아가 연주를 멈추고 귀를 쫑긋 세웠다. 아스타리온의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렸다.

"같이 다니는 것도 끝인 거야?"

그 말을 듣자마자 렌시아가 아스타리온의 머리를 매만지며 푸핫 웃었다.

"그럴 리가 없잖아. 아스타리온. 그때부터 시작인 거야, 모험이."

뭐야, 고민하던 게 겨우 그거였어? 해맑게 말하는 렌시아가 리라를 퉁겼다.

"난 말야. 지금 이렇게 아스타리온이랑 다니는 게 너무 행복해. 그래서 리라를 퉁기는 거야. 이 행복을, 모두에게 전하기 위해."

아아, 내 연인은 이렇게나 대책 없는 사람이었지. 아티팩트뿐만이 아니었다. 렌시아는 그저 사랑하는 연인과 다니는 모험이 너무나 좋아서, 행복해서, 연주할 뿐이었다. 아스타리온은 오랜만에 렌시아의 연주를 편안하게 들었다.

잡덕인 만큼 여러 가지 많이 써요. 낡은 작가지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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