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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일 층에 카페를 차린 사장님은 환자보다 의사 선생님들이 더 환자 같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흡사 아침 일곱 시부터 여덟 시 칠 호선에 탄 직장인들을 보는 것 같달까. 덩달아 동태눈 되는 느낌이었지만 그래도 일은 나쁘지 않았다. 죄다 아메리카노만 시키셨거든. 그렇게 샷 내리는 기계가 되고 사람이 좀 빠졌을 즈음이면 간호사 한 분이 오셨다. 사장님은 익숙하게 샷 두 개 진하게 내리고 아이스티를 준비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샷 추가 한 잔이랑 아이스티에 샷 추가 한 잔으로 테이크아웃 해 주세요.”

그녀가 시키는 음료는 항상 같았다. 항상 단정하게 묶은 머리칼과 청결한 옷. 동태눈들 사이에 맑은 눈을 장착한 채 웃는 표정으로 주문했다. 사장님도 덩달아 기분 좋아지는 웃음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평소와 다를 게 있다면 사장님이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한 옷에 아메리카노를 엎었다. 아이스라 그나마 다행인 거지 따뜻한 거였어 봐. 아찔한 상황에 땀 삐질삐질 흘리며 연신 죄송하다 말하는 사장님에 간호사는 사람 좋은 웃음 보이며 말했다.

“괜찮아요. 저 커피 향 좋아해요. 옷도 하나 더 있고요.”

“정말 죄송해요. 커피 빠르게 다시 드릴게요. 아, 세탁비도.”

“세탁비 정말 괜찮아요. 커피만 주세요.”

그녀는 실로 괜찮아 보였다. 아무리 과학 기술이 발전해 예전보다 소독약 냄새가 옅어졌다지만 특유의 병원에 들어오면 나는 크레졸 소독액 냄새를 지독히도 싫어하는 김유빈은 진짜로 커피 향이 좋았거든. 애초에 대다수 병원 일 층에 카페가 있는 이유도 이것 때문이다. 커피 향은 긴장감 가득한 병원에 편안함을 넣어 주니까. ―과학적 사실이다― 콧노래를 불렀다. 오늘 온종일 기분 좋겠네. 그런 생각이나 했다. 축축히 젖어 기분 나쁜 무게감을 갖게 된 제 옷은 생각 안 한 채.

둘은 모르겠지만 그날로부터 딱 이 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아이스티에 샷 추가 한 잔 가져갈게요.”

항상 단정하게 묶여 있던 머리가 풀려 있었고, 꽤 지치고 피곤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녀와 스몰토크 정도 할 수 있게 된 사장님은 결제 카드를 받아들며 물었다.

“요즘엔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안 사가시네요.”

분명 스몰토크였는데. 카드를 돌려 줄 때 본 그녀의 표정이 썩 좋지 못해 사장님은 입을 앙 다물었다. 실례되는 질문이었으면 죄송하다고 하려 했는데 그녀의 입이 먼저 열렸다.

“남자친구가 커피를 좋아했어요. 얼마 전에 헤어져서 이제 제 것만 사가려고요.”

누군가한테 말하는 건 처음이에요. 당황하셨죠. 죄송해요. 커피 향 때문에 편안해졌나 봐요. 김유빈은 이 년 전보다 퍽 웃음기를 잃은 모양새로 아샷추 한 잔만 들고 카페를 나섰다. 갑자기 그 얼굴이 생각나 욱해서 말한 게 창피해 말도 발도 빨랐다. 요새 좀 드문드문 가던 카페를 가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기울였다.

김도영과 헤어졌다. 덕분에 커피 향이 싫어졌다. 이제 아이스티에 샷 추가도 안 할 예정이다.

 

Cynical Severance

 

내가 빅파이브에 합격하다니. 내가 진짜 간호사라고? 내가 주사기를 들어도 되는 거야? 사람 팔을 찔러도 되냐고. 말도 안 돼. 아무 데도 말 못 했다. 사 년 동안 싸질러 놓은 말이 있었고 ―간호사는 내 길이 아닌 것 같아 나 진짜 진지하게 다른 길 찾을래―, 친구들한테 말하기엔 이 병원 떨어진 애도 있었으니까. 대학 때 정말 친했던 친구 하나 붙잡고 조심스레 말했다. 나 이번에 거기 신규로 출근해. 입 떡 벌어져선 미친 새끼, 난놈, 부러운 새끼 온갖 욕을 다 하더니 말한다. 얌체 같은 새끼야. 너 간호사 될 생각 없다며. 사 년 내내 간호사 될 생각 없다더니 자리 뺏기 미쳤네? 사실이다. 실로 간호사 될 생각 없었다. 중고딩 내내 비전 없이 공부만 하고 살다가 고삼 담임선생님이랑 상담할 때 턱 결정한 과였다. 성적은 좋은데, 생기부가 텅 비어 있네. 정말 가고 싶은 과 없어? 그냥 취업만 되면 돼요. 무조건 취업 보장이면 돼요. 그럼 유교과나 간호학과 어때. 간호학과 갈게요. 이렇게 덥썩 정해도 돼? 선생님이 제시한 두 과 중 간호학과를 선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요즘 대한민국 애는 없고 환자만 늘어나고 늙어가니까. 그렇게 비전 없고 성적 좋은 김유빈은 간호학과에 오고 온갖 욕을 다 터득했다. 씨발, 씨발. 나 진짜 이 과 뜰 거야. 나 간호사 안 될 거야. 내가 선배 졸업 선물을 왜 준비해야 해? 준비해도 욕을 처먹네, 씨발. 다들 공부 똑같이 잘해서 온 새끼들인데 이런 꼰대 짓을 한다고? 이딴 새끼들 때문에 태움 문화가 있는 거 아니야. 나 여기 진짜 뜰 거야.

“그러고선 심세 가셨네요?”

김유빈이 검지 중지 약지 세 손가락을 펼쳐 보이며 숫자 삼을 만들었다. 그리고 딱 들이밀며 말한다.

“삼 년.”

“쉽지 않을 텐데.”

“임상 경력 삼 년 쌓으면 기업체, 대학 의무실이나 헌혈의 집 보험사 뭐든 대학병원보다 나은 곳으로 간다. 여기에서 삼 년만 버티면 재취업 프리패스권 따는 거야.”

친구는 김유빈의 손가락을 곱게 접어 주며 웃는다.

“그니까, 그 삼 년 버티기 힘들어서 나 지금 마라탕 집 차렸잖아.”

장난 아니고 쟤는 진짜 시류를 읽고 마라탕 집을 차렸다. 동업자는 외대 몽골어과 나온 친구였다. 역시 사람 일 모른다니까. 일 학년 때 제일 먼저 자퇴할 거라고 애들이 입을 모아 말하던 김유빈이 사 년 버텨서 빅파이브 합격할 줄 누가 알았냐고. 김유빈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삼 년 버틸라고.

“나 언어도 되고 입사 성적도 좋으니까 수술방 지원할라고.”

“보호자 때문에?”

“사람 만나는 거 진짜 못하겠어. 나 스무 살 때 교회 맞은편, 요양원 아래 빵집 알바했다가 아줌마 아저씨랑 개싸운 거 기억나지.”

“나 그때 너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했잖아. 요양병원 간호사는 안 된다고.”

그 뒤로도 훈훈한 이야기가 오갔다. 야, 진짜 삼 년만 버텨. 난 너 믿는다. 넌 진짜 할 수 있어. 그래, 나 할 수 있다. 야, 근데… SNS는 지워라. 왜? 초임 애들 죄다 가운 입고선 의학용어 쫘라락 쓴 거 존나 올라와. 예를 들면 이런 거? 새벽에 비 오는데 TA 환자 밀려 들어서 죽는 줄. CPR 진행하는데도 어레스트 자꾸 나더라고. 야, 그 정도면 양반이지. 완전 못 알아듣는 회의록 같은 거 올리면서 오늘 NS랑 ENT 컴바인 TSA OP 순환 들어갔는데 프로탁틴 수치가 얼마인 43세 여성 어쩌고저쩌고 넌 간호사 뽕 맞아서 그러지 마라. 여기는 현실이다. 의학 드라마가 아니다.

“너 병신이야? 수술방 애가 이래? 멸균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잖아! 너 지금 컨타라고, 씨발.”

그래, 의학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 나오면 안 되겠지. 이건 진짜 현실이었다. 김유빈은 눈물을 꾹 참았다. 내 잘못이다. 울 자격 없다. 울면 최악이다. 울면 병신이다. 수술방은 컨타에 정말 예민하다. 예민할 수밖에 없다. 예민해야 한다. 오염된 곳에서 수술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 외과적 손 씻기 후 무균포에 물방울을 떨어뜨린 것은 물론이오, 한 번 손에 닿았던 부분으로 다른 손을 또 닦아 버렸다. 가장 기본적인 게 가장 잊기 쉬운 법이다. 닳고 닳도록 외웠고 해 봤고 알고 있는 상식인데 첫 수술이라는 데 긴장해서 이런 실수를 했다. 진짜 무능력한 새끼. 딱, 죽고 싶었다. 이게 프리셉티 때 있었던 일이다.

신규 간호사는 병원에 입사하면 2~3주 간 교육을 받고, 전체 교육이 끝날 때 부서를 알려 준다. 전체 교육이 끝나고 약 8주 가량 부서 교육을 받는다. 이 기간을 프리셉터 교육이라고 한다. 4~5년 정도의 짬이 찬 간호사를 프리셉터, 이 프리셉터가 가르치는 신규 간호사를 프리셉티라고 한다. 4주 동안 프리셉티의 백을 봐주는 프리셉터는 원래 업무에 신입까지 가르쳐야 하니 죽을 맛이고, 예민하고, 존나 무섭다. 간혹 천사가 있다곤 했지만 김유빈의 프리셉터는 존나존나 무서웠다. 김유빈이 숨만 쉬어도 컨타라고 했다(이건 숨 쉬지 말고 죽으라는 거 아닌가). 아무래도 첫 수술 날 그런 실수를 저질러 짱돌로 찍힌 듯했다.

덕분에 거짓 없이 매일을 울면서 지냈다. 출근할 때도 울고 퇴근할 때도 울었다. 난 무능력해. 난 바보야. 그때 왜 그랬을까. 따지고 보면 무균포 새걸로 바꾸고 손씻기 십오 분 더 하고 와서 정신 좀 차리라고 다음부터 이러지 말라고 하면 되는 걸 애를 필요 이상으로 개잡들이 했다. 여기에 자존감 무너지지 말라고?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나.

“끅… 성적이 좋으면 뭘 하냐고. 오늘도 존나 혼났어. 아직, 아직… 교수님들 특성도 끅… 모르는데 누군 말하면 달라고 하고 누군 손만 띡 내밀면 어떡하냐고.”

[야야, 그만 울어. 큰 실수도 아니구먼.]

“최 교수님은 말씀하시면 달라고 하신단 말이야. 그래서 이 교수님께서도 그럴 줄 알았는데, 나 보고 끄흡 일머리 없다고 다음 거 딱 준비해 놔야 하는 거 아니냐고. 끄허헉, 나 진짜 눈치 좀 키워야 하나 봐. 씨빨. 눈치를 어떻게 키우지? 끅… 나 진짜 무능력해. 진짜 개바보야. 퇴사할까?”

간호사는 긴 수술이어도 처음부터 끝까지 있는 게 아니라 다음 사람과 교대하고 퇴근한다. 방금 수술실에서 교수님께 호되게 혼나고 중간에 퇴근당한 김유빈은 병원 옥상에 올라가 추위에 덜덜 떨며 마라탕 집 차린 친구에게 전화 걸고 끅끅거렸다. 수술실 간호사는 특히나 사 년 동안 대학에서 배웠던 지식보단 입사하고 새로 배정받은 과에 대해 공부할 게 더 많았기에 요새 특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나 이렇게 눈치가 없었나. 손 띡 내밀면 그냥 눈치 까고 드리면 될 것을 괜히 또 어버버 거려서 혼났어. 이런 생각할 정도로 자존감이 땅에 처박힌 시기였다.

“감기 걸리면 더 혼나요.”

그리고 그때 어깨에 가운이 씌워졌다. 간드러지는 목소리는 덤이었다.

“에? 어, 어… 안녕하세요. 잠시만, 이따 전화할게.”

급하게 전화를 끄고 눈을 벅벅 비빈 김유빈은 상대를 쳐다봤다. 신경외과 김도영. 남들 다 잘 씻지도 않고 좀비 생활한다는 레지던트 2년 차에도 깔끔한 남자. 흐트러짐 없는 모습이 사람 여럿 홀리는 동시에 무서운 남자로 유명하셨다.

“감기 걸리면 교수님들이나 선배 간호사분들께 더 혼난다고요.”

“아… 죄송합니다.”

“말을 잘못했나?”

김도영은 손에 있던 따뜻한 커피를 김유빈에게 넘기며 말을 이었다.

“감기 걸리지 말라고 한 말인데.”

“…….”

“이럴 땐 보통 죄송 말고 감사하다고 하죠?”

존댓말인지 반말인지 모를 애매한 화법과 무표정한 얼굴 그리고 손에 쥐여 준 따뜻한 커피. 어느 부분에서 그렇게 서글펐던 건지 모르겠는데, 눈물이 팍 터졌다. 수술실에서 어시로 들어온 거 몇 번 마주치고, 교수님 지시로 수술실 컨택 하러 온 걸로 몇 번 마주친 게 다였던 김도영 붙잡고 엉엉 울어댔다. 절대 안 그럴 것 같은 사람이 등을 토닥여 줬다. 그래서 더 울었다. 최 교수든 이 교수든 개새끼다. 프리셉터 해 줬던 선배는 그때나 지금이나 프로시저 절대 안 알려 주고선 꼭 나중에 혼낸다 등의 하소연을 쏟아냈다. 김도영은 묵묵히 들었다.

“…감사합니다, 킁.”

그리고 정신 차렸다. 커피는 다 식어 있었다. 그거라도 마셨다. 커피 써서 못 먹겠다고 절대 안 마시던 김유빈은 커피가 아닌 마음을 마셨다. 그냥 아까 그 따뜻했던 마음으로 쥐여 준 이 커피가 너무 다정해서 꾸역꾸역 다 마셨다.

“다음에 또 이러면 옥상에서 울지 말고 엔에스 의국 오세요.”

“네?”

“감기 드니까. 그리고 얼마 전에 새 커피머신도 들였거든요.”

커피 잘 드시는 것 같길래. 그 말을 남기고 김도영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다. 김유빈도 그를 놓칠세라 따라서 벌떡 일어났다. 김도영은 뭔데 같이 일어나지 싶은 표정으로 김유빈을 쳐다봤다. 급하게 아무 변명이나 했다. 그, 저기… 커피 너무 감사하고 맛있고. 딱히 할 말 없어 보이는 김유빈의 말을 끊고 김도영이 말했다. 집 방향 어디에요? 저 차 있는데 퇴근 같이 할래요? 김유빈은 속으로 생각한다. 퇴근인데 같이 있어 주신 거구나. 하늘 까매질 때까지 옆에 있어 주셨어. 볼이 뜨겁도록 빨개졌다.

그 뒤론 뻔했다. 그래, 김유빈은 신입 생활을 김도영으로 버텼다. 수술 스케줄 확인했을 때 김도영 있다고 하면 입술을 앙 다물었다. 저도 모르게 웃는 게 티 날까 봐. 커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커피 마시겠단 핑계로 엔에스 의국을 뺀질나게 드나들었고, 커피 얻어 마신 게 죄송하다고 또 커피 사들고 김도영을 찾아갔다. 어쩔 땐 있었고 어쩔 땐 없었다. 없는 날이 더 많았지만 김유빈은 아랑곳않고 포스트잇에 여러 말들을 적어 커피에 붙였다. 오늘도 힘내세요, 오늘 같은 수술 들어가던데 저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혹시 제가 커피 사오는 거 부담스러우시면 말씀해 주세요… 등 답이 온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다 가끔 의국에서 마주치는 날은 김도영이 안경을 쓰고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는데, 그때면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빨리 뛰었다. 어버버 거리는 김유빈이 인사도 못 하고 있으면 김도영은 짧게 목례하고선 항상 고맙다는 말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런 날들의 반복이었다. 원래 일편단심 아이스티만 먹던 김유빈은 이제 샷 추가를 해서 먹을 정도로 커피에 적응돼 있었다. 그리고 그날은 샷 추가 안 하면 어색할 정도로 커피에 적응한 어느 날이었다.

“형, 그 스크럽 간호사분이랑 사귀어?”

또 커피 사들고 엔에스 의국 문을 열려고 했던 때였다.

“아니.”

“그쪽은 형한테 관심 많아 보이던데.”

우뚝 손이 멈췄다. 눈치도 없이 두근두근했던 것 같다. 다른 간호사 분들이랑 하물며 의사 동료들이랑도 별로 친밀히 지내진 않으시는 것 같은데, 이 정도면 가까운 사이 아닐까. 그나마 아주 조금이라도 내가 특별한 걸지도 모른다고, 김도영이 날 조금은 더 애틋하게 바라본다는 대답을 바라고 있어 숨죽인 채 들었다.

“그냥,”

“응.”

“그냥 은혜 갚는 까치 정도.”

“그게 뭐야?”

“말 그대로 그냥 동물 같아. 이중적이지가 않아서 깔끔해. 애 같기도 하고, 눈치도 좀 없고. 표정에 다 드러나.”

그러다 그냥 선 넘을 때 쳐내는 거지. 김도영은 그랬다. 4년 차 선배가 자기한테 논문 떠맡기고 베드에서 처자고 있는 걸 본 날이었다. 담배 말려서 올라간 옥상엔 이미 김유빈이 있었고 하도 서럽게 울길래 그냥 나왔다. 자기도 피곤한데 우는 소릴 듣고 있자니 더 피곤해서 눈을 꾹꾹 눌렀다. 그리고 일 층으로 가 커피를 샀다. 충동적이었다. 끅끅대면서 우는 어깨가 흔들리니 사람이 그렇게나 작아 보여서 그랬다. 김도영은 김유빈을 알았다. 그녀의 프리셉터가 그녀의 험담을 하는 걸 들은 적 있었으니까. 야, 그런 애는 여기서 세 달도 못 버텨. 곧 나간다고. 뭐 하러 잘해 주냐? 그렇게 말하며 담배 즈려밟던 그녀의 선배를 기억한다.

김도영이 옥상에서 김유빈을 위로해 준 지 사 개월 정도 지난 시점이었다. 눈은 녹은 지 애저녁이고 이제 여름이 올 즈음이어서 병원 창문으로 들어온 따뜻한 볕이 김유빈이 들고 있던 커피를 내리쬈다. 겉면에 송글송글 물방울이 맺힐 때까지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김도영은 인생 자체가 깔쌈했다. 사랑 많은 집안에서 사랑 많이 받고 컸고, 애교도 많았으며, 웃음도 많았다. 성격 좋고, 물려받은 좋은 머리로 공부도 잘했고, 나름 골격수저여서 운동도 나쁘지 않게 했다. 그렇게 엄친아 루트 잘 밟고 의대 왔다. 의대 생활 때까지도 괜찮았다. 근데 인턴 때부터 성격이 좀 변하기 시작했다. 남들 다 선배한테 깨지고 울 때 김도영은 울기보다 더 독해지길 택하는 독종이었다. 이런 애 어떻게든 즈려밟고 싶어 하는 악종도 어딜 가나 있기 마련이었고, 훤히 보이는 온갖 비리와 모든 환자에게 평등하지 않은 의사들, 수면 부족으로 지금과 같은 김도영이 탄생했다. 자주 웃어 주면 호구로 봤고, 자주 울면 병신으로 봤다. 레지던트 달고 난 후로 병원에서 환자 외에 웃어 보인 적 거의 없을 거다.

‘의사한테 모든 환자는 평등하지.’

‘근데 왜 수술 순서가 밀리는데요?’

‘어떤 환자는 다른 환자보다 더 평등하거든.’

그래, 이날 이후로 병원 사람들한테 웃은 적 없었다. 운 적도 없었다. 그렇게 다정한 김도영이 정 주지 말자고 생각한 날이었다.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지 말자고 책잡힐 일 없게 하자고. 어렵게 된 의사 수명 가늘고 길게 가자고. 사람들은 김도영이 변했다고 말했지만 인과관계는 모르는 듯했다.

병원 사람과 바깥에서 관계를 맺지 말 것.

김도영 의사 생활 수칙이었다. 물론 얼굴에 감정이 다 드러나고 저 좋다고 온몸으로 티 내는 김유빈도 예외는 아니었다.


/

 

스크럽 간호사가 하는 일은 수술실을 신경 쓰는 것이다. 의사들이 와서 수술만 하고 갈 수 있게 온도부터 의사들이 쓰는 기구까지 다 빼 놓고 조립해 두고 순서를 외워야 한다. 교수님 별로 쓰는 소독약, 실, 프로시져 등이 다르니 눈치껏 해야 했다. 동일한 수술이어도 동일한 사람이 아니니 스타일이 전부 달랐다. 이걸 사전에 숙지해 가야 한다. set에 있는 총 개수와 구성은 카운트를 위해 꼭 외워서 알아두어야 했고, 모니터 위치부터 보비, 하모닉, 썬더비트 등의 기구 배치 역시 교수님이 편하신 쪽으로 배치할 수 있게 신경 써야 한다. 멸균은 어떤 걸 사용하는지 스팀, E.0 gas, 과산화수소 등 기구별로 알아두어야 하며, 수술상 차리다가 의사 들어오면 가우닝 해 주고, 식염수, 거즈, 소독약 전부 카운트 하고 적어내리고 해부학 알아두는 건 당연하고.

그니까, 이걸 말하는 이유는 스크럽 간호사는 수술실을 책임지는 사람이라는 거다. 하나부터 열까지. 의사가 온전히 환자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의사를 꿰고, 환자의 상태를 꿰고, 수술 절차를 꿰고, 수술실을 꿰고 있어야 했다. 그 필드는 온전히 스크럽의 것. 정신 하나라도 놓으면 삐끗한다.

“…니들이 없다고요?”

닫을 때는 더 정신 바짝 차려야 한다. 거즈, 니들, 기구 카운트가 안 맞으면 절대 못 나간다. 특히 니들은 바닥에 떨어진 거 못 찾으면 환자 엑스레이 찍어야 하는 대참사가 일어나거든.

“지금… 이게 카운트가 안 맞을 리가 없는데.”

김도영이 자신을 보고 은혜 갚는 까치라고 했던 그날 같이 수술을 들어갔다. 그리고 그 대참사가 일어났다.

“…일단 기구 다 쓴 거 세척실 보내고,”

“신규야? 정신 차려. 기구 카운트는 맞긴 해? 써큐, 기록지랑 맞아?”

“네, 기구는 맞는데….”

카운트가 안 맞으면 스크럽은 필드 위에서 찾고 써큐는 바닥을 기어서라도 찾는다. 몇 분째 찾지 못하는 써큐에 김유빈이 바닥을 기었다. 불안하다. 너무 불안해. 미친 듯이 수술실 바닥을 기어다니면서 니들을 찾아다녔다. 독립한 지(프리셉터 선배를 떼고 일하는 것) 얼마 안 됐는데 기어코 사고를 치는구나, 김유빈.

“뭐 해! 빨리 환자 마취 깨기 전에 니들을 어떻게든 찾든가, 엑스레이를 찍든가 판단을 해. 지금 여기 네 거잖아.”

눈물도 안 났다. 아까 잠깐 멍때렸을 때 놓쳤나 봐. 그러면 안 되는데. 힐끗힐끗 김도영 쳐다보면서 아까 들었던 말을 곱씹으면 안 됐던 건데. 수술실에서 그러면 안 됐는데. 공사 구분을 했어야지. 난 왜 이렇게 전문적이지 못하지? 왜 이렇게 직업의식이 없지? 끝없이 땅굴 파며 수술실 바닥을 기는 김유빈 앞에 두 발이 보였다.

“인턴, 환자 마취 깨우고 회복실로 옮겨요. 제가 찾았어요.”

“…….”

“그리고 간호사님은 일어나요.”

잠시 멈췄다가 비척비척 일어난 김유빈에 교수님께선 혀를 차며 김도영 데리고 나가셨고, 인턴은 환자를 데리고 나갔다. 그동안 스크럽 김유빈은 수술실에 있어야 했다. 마지막까지 기계 작동 꺼졌는지 확인하고 기록지 최종으로 확인해서 카운트 다 맞춘 것까지 보고는 눈물을 뚝 흘렸다. 수술실 바닥에 눈물 흘려도 되나, 모르겠다. 대학생 때 이런 거나 질문할걸. 교수님께선 수술실에서 울어 보신 적 있냐고, 바닥에 눈물 떨궈도 되냐고. 그런 질문한 적 없고 모르겠어서 그냥 천장 보고 울었다. 그리고 읊조렸다. 나 진짜 바보 같아.

“이제 퇴근이죠.”

그렇게 나왔더니 김도영이 떡 버티고 있는 거다. 눈 주위 시뻘개진 거 보이기 싫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눈물이 바닥에 뚝 떨어졌다. 여긴 수술실 아니니까 떨궈도 되겠지. 그리고 잔뜩 코먹은 소리로 억울함을 토로하게 되는 거다.

“전 솔직히 좀 억울해요.”

김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

“뭐가요? 유빈 씨 부주의로 카운트 안 맞은 게?”

“아니요.”

눈물 콧물 다 짜낸 얼굴 딱 들더니 김도영과 눈을 마주쳤다.

“…선생님이 다정하신 거요.”

“네?”

“…그냥, 그냥 남들 다 가면 같이 가면 되지. 왜 여기서 절 기다려요?”

벗은 모자 안은 죄다 긴장해서 나온 땀으로 젖어 있고, 눈은 충혈돼서 시뻘겋고, 얼굴 역시 상기돼 있었다.

“저 보고 은혜 갚는 까치라고, 애 같다고, 눈치도 없다고 그러셨는데….”

“…들었어요? 그건,”

“근데 먼저 다정하셨잖아요.”

쿵. 김도영의 심장이 내려앉는다. 땀에 젖은 머리칼과 충혈된 눈과 붉은 볼을 가진 그녀가 뱉은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다.

“알 깨고 나와서 처음 본 게 다정한 선생님인데 어떡하냐고요.”

“…….”

“그런 말 하면 너무… 너무 속상해서 또 선생님 앞에서 바보 같은 짓이나 하게 되잖아요.”

두 손으로 눈 주위와 볼을 거칠게 닦는다. 김도영은 손을 움찔거렸다. …저러면 볼 까지는데.

“제가 은혜 갚는 것도, 선생님 보면 감정 다 드러나는 것도, 눈치 없이 커피 계속 사가는 것도 다 필연적인 거잖아요.”

“유빈 씨.”

“제가 선생님 좋아하는 거 필연적일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선생님께서 먼저 다정해서 좋아했어요. 억울해요.”

탁. 또 거칠게 볼을 쓸려는 손을 김도영이 붙잡았다. 이것 역시 충동적이었다. 그날 김유빈 손에 쥐여 줄 커피를 사러 갔을 때처럼. 이 다음에 어떡해야 하지. 김도영도 모르겠다. 대학교에서 이런 건 알려 준 적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어정쩡하게 눈 마주치고 있다가 김유빈이 그 손 쳐내곤 사라졌다. 김도영은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등신, 이때 볼 감싸쥐고 눈물이라도 닦아 줬어야지. 김도영은 로맨스에 잼병이었다.

 

김유빈이 울면서 도망친 곳은 옥상이었다. 김도영이 옥상에서 또 이럴 것 같으면 엔에스 의국으로 오라 했지만, 진정으로 울고 싶은 날엔 옥상을 찾는 게 일상이었다. 그렇게 앉아 있으면 김도영이 그때 건넸던 따뜻한 커피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거다. 이제 날 더워져서 따뜻한 건 질색인데도, 거기 있으면 손에 따뜻한 커피가 있는 듯했다. 짜증 나. 먼저 다정하질 말든가. 내가 눈물 벅벅 닦든 말든 냅둬야지. 내가 거기 혼자 남아 있든 말든 먼저 갔어야지. 먼저 좋아할 명분을 줘 놓고 이러면 안 되는 거다. 방금 전에 더 좋아졌는데 어쩌라고. 그래, 김도영이 좋다. 병원 냄새 가득한 병동에서 어쩌다 스치기라도 하면 은은하게 나는 섬유유연제 향도, 가끔 피곤할 때 쓰는 안경도, 웃는 거 모를 것 같은 사람이 환자한테 다정하게 웃어 주는 모습도. 다 좋다. 찹. 김유빈이 제 볼을 착착 때렸다. 눈물도 멎었다. 주먹 불끈 쥐고 의지를 불태웠다. 이제 정말로 내 일에 실수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김도영도 잡을 거다. 일도 사랑도 다 잡을 거다.

김도영은 연애를 안 해 본 것도 아니었고, 지 좋다는 여자가 없던 것도 아니었다. 나름대로 첫사랑 선배도 있고, 이별의 아픔까지 겪어 볼 대로 겪은 나이였다. 첫사랑과의 이별은 씁쓸했다. 의사 남편 부인이 꿈이고, 김도영이 의대라서 만났단다. 좀 살랑거리니까 순진하게 넘어오는 꼴이 퍽 웃겼단다. 헤어질 때 그녀가 뱉었던 모진 말 중 하나였다. 대학생 땐 그래도 직업, 연봉 안 따지니까 연애가 좀 편했는데, 이젠 김도영을 사랑하기보단 신경외과 김도영을 노리고 접근하는 사람이 진짜 있었다. 의사 남편의 현모양처가 꿈인 사람이 진짜로 있었다고. 그 뒤로 연애에 흥미 뗀 지 좀 됐다.

“저 밥 사 주세요.”

…그러니까, 이렇게 볼 붉히고 무대뽀로 저 좋다고 달려드는 소녀는 간만이었다. 그날 이후 아는 척 안 할 줄 알았는데 꿋꿋이 커피 사 오고 포스트잇 내용도 좀 더 과감해졌다. 오늘도 잘생기셨어요, 오늘도 보고 싶어요, 오늘도 멋져요, 오늘도 좋아해요. 원래 김유빈이 사 개월 동안 써 줬던 포스트잇 망설임 없이 버리던 김도영은 잠깐씩 멈칫했다. 그리고 마른세수를 했다.

“제가 왜요?”

“제가 맨날 커피 사드렸으니까요.”

“난 사달라고 한 적도 없는데?”

“…어쨌든 드셨잖아요.”

김유빈이 비죽거리며 손을 만지작거린다. 김도영은 저도 모르게 비실 웃음이 샌다. 김유빈과 눈 마주치자마자 바로 웃음기를 지웠지만.

“저 병원 사람 바깥에서 안 만나요.”

“제가 퇴사할까요?”

“뭔….”

“안 되는데… 병원에서라도 선생님 봐야 하는데.”

이제 저런 낯간지러운 말도 아무렇지 않게 한다. 김도영은 누구라도 들을까 눈을 크게 떴다. 무어라 말하려는데 김유빈이 씨익 웃으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김도영은 웬 숙맥처럼 고개를 뒤로 빼며 눈을 여러 번 꿈벅였다.

“단순 노출 효과라고 들어 보셨어요?”

“네.”

“자주 보면 볼수록 호감도가 상승한대요. 로버트 자이언스 학자님께서 그러셨어요.”

“…….”

“그리고 먼저 좋아한다고 표현할수록 신경 쓰인대요.”

김유빈은 김도영에게 호감의 법칙을 두 가지나 사용하고 있었다. 김도영은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들보다 두 번 정도 더 김유빈을 쳐다봤을 거다.

“오늘은 포스트잇 없이 그냥 말로 할게요. 오늘도 좋아해요.”

귀가 잔뜩 붉어져서 나가는 김유빈을 보면서 김도영은 헛웃음을 쳤다. 그리고 제 귀를 만지작거린다. 뜨거워. 로버트 자이언스인지 자이언트인지… 논문 하나 기깔나게 썼다. 그런 생각을 하며 커피를 집었던 것 같다.

 

/

 

김도영과 구내식당에서 만나기 쉽지 않다. 뇌 파트를 맡은 그는 응급 환자가 언제 어디서 갑자기 올지 몰랐기 때문에 밥을 제때 챙긴 적이 드물었다. 밥은 먹을 수 있을 때 먹자. 안 그럼 진짜 굶어 죽는다. (기본 수술 시간이 다섯 시간 넘어가는 모 대학 뇌 파트 전문의의 명언) 하지만 김도영은 밥보다 잠이었기에 나날이 야위어 갔는데, 그런 그를 보다 못 한 교수님이 그를 구내식당으로 호출했다. 김도영은 호출된 장소 보고 눈 뻑뻑 비볐다. 구내식당에서 사람이라도 쓰러졌나?

“밥 좀 먹으라고.”

“예?”

“아직 2년 차인데 이렇게 야위면 오래 못해, 인마.”

“아,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깥에서 먹이고 싶었는데 그건 너도 나도 부담스럽지? 지금부터 한 시간은 네 밥시간 내가 보장해 줄 테니까 편하게 먹어.”

그렇게 교수님 밭에서 혼자 덩그러니 레지던트. 이렇게 여유 있고 체할 것 같은 식사는 정말 간만이었다. …밥시간 보장해 줄 거면 차라리 혼자 먹게 해 주시면 안 될까요. 얼마 없는 NS 뇌 파트 레지던트 김도영은 꽤 중요한 동시에 예쁨받는 인물이었기에 교수님들은 그를 쉽게 놔 주지 않았다. 사회생활 웃음 지어 보이며 교수님들의 선자리 제안, 은근슬쩍 의대에 있는 자식들 정보 흘리기 등을 가볍게 무시하는 와중이었다.

“…어,”

김유빈이다. 동료들과 밥을 먹으러 온 건지 딱 그 나이대처럼 까르르 웃는다. 그러다 빤히 쳐다보는 김도영의 시선을 느꼈는지 둘의 눈이 마주쳤다.

“…….”

“…….”

인사 해야 하나. 아주 짧게라도 고민한 게 무색하게 김유빈이 고개를 돌리고 눈을 피했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또 멋대로 커피 사 와서 포스트잇에 좋아한다고 써 놓고는 …눈을 피했다.

“아까 왜 피했어요?”

김도영은 처음으로 이 관계에 억울함을 좀 느낀다. 매번 김유빈만 느꼈던 그 억울함을 드디어 느꼈다.

“…제가 피했어요?”

“아까 식당에서.”

“아, 그거 그냥… 사람들 다 있는 데서 아는 척하면 싫어하실 것 같아서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평소에 푼수처럼 굴고 눈치 없게 굴었으면, 그때도 눈치 없게 손 번쩍 들고 흔들면서 인사나 할 것이지. 그럼 비실 웃음 새는 걸 참고 저 역시 작게 손을 흔들었을 텐데. 긴 정적 끝에 먼저 가 보겠다는 김유빈에 김도영은 충동적으로 말했다.

“저녁 같이 먹을래요?”

밥도 제때 안 챙기는 사람이 권하는 밥 데이트 신청, 이거 희귀한 거다.

“커피 보답으로.”

“언제는 사달란 적 없다고 막 그러셨으면서….”

“싫어요?”

“아뇨, 좋아요! 메뉴 제가 정해도 되죠?”

여태 갖다 바친 커피가 얼만데 엄청나게 비싼 걸 먹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는다. 김도영은 또 비실 웃음이 샜다. 그러라고, 많이 비싼 거 먹으라고 대답하며 웃었다.

“경제 관념이 주관적이라지만 어느 정도 보편적으로 비싸다, 싸다라는 개념이란 게 있잖아요.”

“제가 메뉴 골라도 된다면서요!”

입술 근처에 떡볶이 소스 묻히고 저런 말을 뱉는다. 김도영은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거두고 휴지를 건넸다.

“지금 이 분식 다 해서 만 원도 안 되는데, 이게 비싼 거예요?”

“만 원을 우습게 보시네요. 만 원 열 번 쓰면 십만 원이에요.”

“지금 한 번 썼잖아.”

“그걸 노렸어요.”

김유빈이 떵떵거리며 데려온 곳은 병원 앞에 있는 분식집이었다. 떡볶이랑 순대 다 해서 만 원도 안 했다. 그 값이 머쓱해서 튀김이라도 고르라니까 다이어트한댄다. 김도영이 피식 웃으니 김유빈이 팔꿈치로 툭 쳤다.

“보세요, 선생님.”

“네, 보고 있어요.”

“선생님이랑 저녁 한 번 먹는 데 십만 원을 써요. 한 번에 십만 원짜리 식당, 그걸로 끝이잖아요. 이게 어떻게 온 기회인데.”

“…….”

“근데 한 번에 만 원인 식당을 가면 선생님이 저한테 미안해서라도 우리 열 번 더 만날 것 같아서요.”

나름 여우 같은 생각이었네. 전략적이고. 볼 우물거리며 뿌듯한 듯 웃는 모습에 김도영은 결국 손을 뻗었다. 입 주변에 묻은 소스를 닦아 주며 말했다.

“그냥 십만 원짜리 식당을 열 번 가면 되잖아요.”

“그럼 백만 원인데요? 저한테 백만 원 쓰실 수 있어요?”

김도영은 여우 같은 연하를 보며 나지막이 대답했다.

“…어.”

툭. 김유빈이 떡볶이를 떨궜다. 만 원 어치 중에 오십 원 정도는 바닥에 떨어진 거다.

 

/

 

스크럽 간호사는 보호자를 만날 일이 거의 없다. 환자 역시 수술대에 누운 상태에서나 볼 수 있지, 그것마저 드랩 씌워져 있어 얼굴도 모르는 상태로 수술할 때가 더 많다. 병동 뛰어다니며 환자를 케어 하진 않는다는 뜻이다.

“얘 입원 안 해도 된다니까요? 그냥 지 혼자 자빠져서 머리 좀 부딪힌 건데, 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지….”

입사 때 삼 주 정도 교육받으며 계속 붙어 다녔던 동기가 응급실로 빠져 곡소리를 내기 일쑤였다. 그래서 거의 오버타임 없이 칼퇴하는 김유빈은 가끔 간식 사들고 친구에게 갔었다. 그 가끔인 날이었다. 도넛을 사 온 김유빈이 소리가 나는 쪽을 힐끗 쳐다봤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거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머리뼈바닥이 골절돼서 뇌 손상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요. 환자 분 두통 호소하시는 걸 보면 MRI 찍으셔야 할 것 같아요.”

간호사의 말에 보호자인지 뭔지 환자 옆에 서 있는 남자가 주머니에 꽂힌 손을 빼더니 뒷머리를 털며 껄렁껄렁 거린다. 뭐라 씨불이는지 들리지도 않는다. 그러더니 환자를 툭 친다. 야, 그냥 가자. 너 별거 아닌 것 같아. 환자는 우물쭈물거린다. 둘이 나이도 비슷해 보이고 같은 반지를 끼고 있는 걸 보면 커플인가? 하지만 남자 말하는 걸 들어보면 전혀 아끼는 여자친구 같진 않은데.

“김유빈! 뭐 해? 당직실 들어가서 먹자.”

뒤에서 친구가 부르는데도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어렵사리 뒤를 돌았는데 환자의 목소리가 귀에 박혔다.

“…나 머리가 너무 아파.”

“아, 그니까! 좀 있으면 낫는다고. 이게 응급실까지 올 일이 아니야, 자기야.”

“…나, 나 진짜 머리가 너무 아파서 그래.”

김유빈은 다시 뒤를 돌아 그쪽 베드로 턱턱 걸어갔다. 갑자기 등장한 김유빈에 환자와 남자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얜 또 뭐야 싶은 표정으로 저를 쳐다보는 남자의 시선을 무시하고 김유빈은 환자를 훑었다. 터진 입술, 긴팔로 가려지지 않는 멍자국, 잘게 떨리는 어깨. 김유빈은 남자를 노려보며 물었다.

“환자분과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아까 다 설명했는데요? 보호자로 왔습니다만?”

“연인 관계이신가요?”

남자가 환자의 어깨에 팔을 두르며 대답했다. 네, 그런데요? 환자의 어깨가 크게 떨렸다. 고개를 들지 못하는 꼴이 아무리 봐도 연인이라곤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 김유빈은 질문의 대상을 환자로 바꾸어 물었다.

“머리를 다치게 된 경위가 어떻게 되시죠?”

“갑자기 끼어들어서 뭐예요? 아까 이 간호사한테 다 설명했다니까? 지 혼자 자빠졌다고. 그냥 계단에서 넘어졌다고요.”

“전 환자분께 여쭸습니다.”

남자는 기가 찬 듯 허- 하더니 머리를 쓸어넘겼다. 김유빈이 아랑곳 않고 한쪽 다리를 굽혀 환자의 시야 아래로 내려갔다. 그리고 다정하게 물었다.

“정말 넘어지신 건가요? 환자분의 몸이니 환자분께서 상태를 설명해 주세요.”

환자의 멍든 손을 잡았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기에 김유빈은 그녀를 더 꽉 잡았다.

“…안 넘어졌어요.”

“…….”

“맞았어요.”

“야?”

“지속적으로 맞았어요. 머리채도 잡혀서 질질 끌려다녔고, 쟤 손바닥으로 머리를 세게 다섯 대 정도 맞은 것 같아요. 기억도 잘 안 나요.”

“뭔 개소리야? 머리 다치더니 어떻게 됐나 미친년이.”

“…저, 저 머리가 너무 아파요.”

남자는 매서운 표정을 하고 살기 가득 담은 눈빛으로, 지 입으로 연인이라 했던 그 환자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김유빈은 그런 남자의 앞을 막아섰고, 김유빈 옆에 있던 다른 간호사는 원무실에 연락을 보냈다. 경호 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당신 보호자 자격 없습니다. 환자분께 데이트폭력을 행하셨네요.”

김유빈은 응급실에 있는 모두가 들리게 또박또박 말을 씹어 했다.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남자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저기요, 간호사님.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좀 비켜 봐요. 야, 너 진짜 미쳤어? 별것도 없는 거 만나 줬더니.”

“나가 주세요.”

“아니, 쟤가 미친년이라고!! 쟤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다니까? 쟤가 하는 말을 믿어요?”

“우리 병원은 환자의 진단과 치료, 돌봄을 최우선으로 하며, 환자의 상태를 환자 본인이 직접 서술하셨으니 그 뜻을 존중할 뿐입니다.”

“비켜요. 나 쟤랑 이야기 좀 하게. 어? 좀 비켜요.”

“그쪽 말씀대로 환자분께 정신 질환이 있더라도 현재로썬 격리 조치를 내리는 게 제 판단입니다. 추후 환자 상태 진단 후에 다시 뵈어도 늦지 않을 테니 나가세요.”

“아, 씨발!! 좀 비키라고 병신년아!”

남자의 손이 허공에 들렸다. 곧 김유빈의 뺨을 내려치겠지. 눈을 꾹 감았다. 짝 소리가 들렸다. 응급실을 울릴 정도로 큰소리였는데, 이상하게도 아픔은 없었다. 살며시 눈을 떴을 땐 익숙한 뒷모습이 자리해 있었다.

“니가 먼저 쳤다?”

이번엔 짝 소리 아니고 빡 소리가 났다. 신경외과 김도영 자수 박힌 가운을 입고 사람을 내리치는 김도영에 김유빈은 허리 붙잡고 매달렸다. 안 돼요. 그러지 말아요. 그만해요, 선생님. 선생님 의사잖아요, 제발! 그럼 김도영은 의사 가운 벗고 말한다. 나 퇴근했어. 지금 의사 아니야. 경비실 인원들이 김도영을 뜯어말렸지만 이미 남자는 피떡이 돼 있었다. 모두가 경악했고 숨을 죽였다. 김도영 의사 인생 최고의 일탈이자 최악의 행동이었지.

“이 사람 치료해요. 그리고 정신 차리면 제 연락처 넘겨 주세요. 환자 MRI 찍고 병변 있으면 NS 김 교수님께 연락 보내요.”

방금까지 주먹질해서 인간 하나 환자 만든 놈이 마지막까지 환자 걱정이었다. 아이러니했다. 김도영은 절대 이럴 인물이 아니다. 애초에 김유빈 대신 맞을 위인이 아니라 때리려는 남자의 손을 붙잡아 원인을 없애는 쪽에 더 가까운 사람이다. 경호 인력 올 때까지 말로 이 남자를 제압해서 경찰서를 보냈으면 보냈지 지가 사람을 패서 경찰서를 갈 인물이 아니란 말이다.

응급실을 나온 김도영은 정처 없이 걸었다. 인생에 항상 목적지가 있었다. 정신적 추구뿐 아니라 한 발걸음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한 번도 목적지 없이 길거리를 배회한 적 없었다. 그는 모범생이었으니까. 공부하기 위해 독서실을 갔고, 친구들과 게임하기 위해 피시방에 갔고, 먹기 위해 식당을 갔고, 출근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했다. 일 분을 걷든 한 시간을 걷든 목적지가 있었다. 그런 그가 발길이 이끄는 대로 아무 곳이나 걷고 있었다.

“선생님!”

그런 그의 손을 김유빈이 붙잡는다. 붙잡은 손이 벌벌 떨리고 있어서 김도영은 무서웠다. 실망했을 거다. 눈 돌아서 사람 패는 모습을 보였으니 최악일 거다. 자기가 맞은 것도 아니고 보기만 했는데도 이렇게 벌벌 떠는 주제에 눈 꾹 감고 그대로 뺨 맞으려 했던 장면이 떠올라 김도영은 무서웠고 화가 났다.

“왜 그랬어요?”

“제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보호자 보내고 환자한테 따로 물어도 됐잖아요.”

“당장이라도 그 사람이 환자님 데리고 갈 것 같은데 어떡해요.”

“그럼 그냥 보냈어야지!”

김도영은 김유빈의 손을 꽉 잡았다. 그리고 반복적으로 중얼거렸다. 그럼, 그럼 그냥 보냈어야죠. 그 환자가 멍청하게 자기가 당하는 게 데이트폭력인지도 모르면 그 사람이 그렇게 미련하게 굴면 그냥 보냈어야죠. 내가 그때 유빈 씨한테 못 갔으면 어떡하려고. 말을 하면서도 울컥하고 감정 조절이 잘 안 된다. 카페 가는 길에 원무실 지나치며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을 때 경비실로 뛰어들어가는 간호사를 못 봤으면, 머리를 다친 걸로 보아 MRI 찍어 봐야 할 것 같다 흘려 한 말을 듣지 못했으면, 그 모든 걸 그냥 다 지나쳤으면 어쩌려고. 응급실까지 가는 길에 데이트폭력 당하는 환자 같다는 말을 들으면서도 별생각 없었다. 그렇게 얼결에 와서 본 게 김유빈이 뺨을 내어 주는 장면이었다. 별생각 없었던 몇 분 전이 무색하게 몸이 먼저 나갔다.

“말 그만해요. 듣기 싫어요. 병원에서 왜 아프다는 환자를 그냥 보내요? 저 환자 돌보는 사람이에요. 저 잘했어요. 저 잘한 짓 한 거예요. 그렇게 말하지 마요.”

항상 김도영에게 지어보이던 표정이 아니다. 볼을 붉히고 웃고 있지도 않았고, 제 잘못이나 실수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들킬까 안절부절하지도 않았다. 당당했다. 다리가 길어 잡기 힘든 김도영을 따라잡겠다고 몇 분을 뛰어 땀이 주륵주륵 흐르는데도, 그런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고도 당당했다.

이제 공사 구분이 좀 되는 듯했다. 간호사로서 자랑스럽고 당당한 표정이 흠잡을 데 없었다.

“그리고 선생님 손에 피 나요. 입술도 터졌고 볼도 멍들었어요.”

“…….”

“연고랑 밴드 챙겨왔으니까 공원 화장실이라도 들어가서 물로 씻고 와요.”

그렇게 목에 의료원증 달랑 멘 의사 하나랑 간호사복도 벗지 못 하고 온 간호사 하나가 공원 벤치에 덜렁 앉아 있었다. 꼴이 퍽 웃겼다. 김도영은 몸을 제 쪽으로 틀어 제 한 손을 두 손으로 붙잡고 조심스레 약을 바르는 김유빈을 쳐다봤다. 쫓아오는 와중에 저걸 다 챙겼네. 기특하기도 하고 꼼지락거리는 게 귀여워 피식 웃었다.

“테이핑 엄청 못하시네요.”

“병동보단 아니어도 잘해요. 저도 다 배웠어요.”

“그러니까 병동 간호사님들보다 못한다고요.”

“병동 간호사한테 치료받아 보신 적도 없으실 것 같은데.”

“예전엔 눈도 못 마주치더니 이제 대꾸 잘하네.”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김도영은 푸하학 웃었다. 그러더니 아, 하고 아픈 신음을 뱉는다. 터진 입술에서 피가 더 샜다. 김유빈은 팍 고개 들고 김도영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이거 봐, 다 터졌잖아. 아프잖아요.”

퍼스널 스페이스가 너무 가까운 거 아닌가. 김도영은 또 숙맥처럼 두 눈을 빠르게 꿈벅였다. 김유빈이 은근슬쩍 반말 섞어 말한 것도 모를 정도로 벙했다. 김유빈도 아차 싶었는지 어색하게 손을 내려놓고는 또 연고를 주욱 짠다. 그리고 김도영 입술 근처로 가다 멈칫한다. 좀… 실례할게요. 김도영은 멍청하게 어어… 소리만 뱉었다.

“…….”

“…….”

“선생님.”

“네.”

원래 연고를 이렇게 느릿하게 바르는 건가. 김도영은 대학생 때를 복기해 본다. 연고를 이렇게 느릿하게 바르라는 말이 있었나. 교수님, 원래 약을 이렇게 눅진하고 진득하게 바르는 거예요? 고작 입술 터진 건데.

“환자님.”

“네.”

“어떤 경위로 입술이 터지게 되셨나요.”

“맞았어요.”

김유빈은 정말 새똥만큼, 아니 새똥보다 작게 연고를 퍼서 김도영의 입꼬리를 꾹꾹 눌렀다. …이거 치료보단 사심 채우기 같은데. 간호사가 이래도 되나. 그런 생각할 즈음 김유빈이 다시 한 번 정적을 깼다. 아까보단 무거운 목소리였다.

“왜 저 대신 맞으셨어요?”

“깽값 받으려고요.”

“그럼 그냥 맞고 끝냈어야죠. 합의금이 더 나올 것 같아요, 지금.”

꾹. 이번엔 꽤 세게 눌렀다. 김도영이 탄식을 뱉었다. 둘의 눈이 마주친다.

“제가 걱정돼서 그런 거잖아요.”

“…….”

“저 신경 쓰이시잖아요.”

눌러 바른 연고가 자리를 이탈했다. 김유빈은 이 상처가 괘씸해서 괜히 김도영의 볼에 끈덕진 연고를 묻혀 버렸다.

“좋아해요.”

이제 막 하늘이 까매지고 있었다. 습한 온도와 끈적지게 더운 여름에 밤이 오니 좀 선선한 것 같기도 했다. 그때 딱 마침 가로등이 깜빡거리더니 탁 켜져서 김유빈은 김도영의 표정을 온전히 다 눈에 담을 수 있었다.

“선생님도 저 좋아하시죠.”

김도영은 이번에도 나지막이 대답했다.

“어.”

병원 사람과 병원 바깥에서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김도영의 수칙이 깨졌다. 그녀가 부수었다. 어떤 게 도화선이 된 건지 모르겠다. 수술실 바닥에서 간절하게 니들을 찾는 모습이었는지, 텅 빈 수술실에서 제 능력을 의심하며 바보 같다고 하는 모습이었는지, 쉽사리 포기할 줄 모르고 노출 효과를 노리겠다며 불쑥불쑥 찾아오는 모습이었는지, 환자의 사정을 모르는 척하지 않는 모습이었는지, 그 모든 것이 모인 건지. 결론적으로 그것들이 김도영의 수칙을 깨부수었다.

“헤어져. 오빠, 우리 그만하자.”

그리고 몇 년 뒤엔 그녀가 기어코 김도영마저 부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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