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주먹만큼 크게 부풀어 살이 찐 국화는 순금의 홀(笏)처럼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황색은 제국의 색, 황제의 색이기에 모두 귀히 여기어 함부로 의복에 넣어 입지 않고 삼가는 색이었으나 신국의 왕실에서는 황국화를 마음껏 키워 가을이면 그 풍성한 아름다움과 고아함을 즐겼다. 향 없는 모란처럼 공허하지도 않았고, 풍랑에 금방 스러져 버리는 난초처럼 약하지도 않은 황제의 꽃은 늦가을의 서늘함에 굴하지 않고 매일 밝고 눈부시게 피어났다. 백설을 딛고 깨어나는 동백과 함께 신국의 덕업과 영화를 상징하는 꽃이었다. 정양궁에 오던 첫 해, 태민은 정원과 앞뜰 그리고 뒤뜰에 국화 화분을 가득 마련해 늘어놓았다. 그도 왕실의 사람인지라 국화를 매우 좋아했다. 봄과 여름에 가지를 치고 잎을 닦고 비료를 뿌려 정성들여 보살피고 나면 가을에 만개한 국화정원을 볼 수 있었다. 노랗고 하얗게 피어난 꽃들 가운데 마주 앉아 산수유 술을 나누어 마시며 시 짓고, 노래도 부르고, 특별히 실한 꽃송이들은 완전히 시들기 전 거두어 술독에 넣었다. 국화주를 담가 두면 언제고 무르익은 가을을 즐길 수 있었으니 이 또한 즐거움이었다.



  “국화 화분들은 두고 갈 수밖에 없겠지요?”
  “신정궁으로 돌아가면 또 심읍시다.”
  “정양 땅이 따뜻해서인지 국화가 더 크게 피었거든요.”
  “…….”
  “이리 빨리 떠나게 될 줄 알았더라면 조금만 심어 두고 정을 붙이지 말 것을.”
  “…그만 갑시다.”



  태민은 그간 공들여 가꾼 국화 정원을 쉬이 떠나지 못했다. 결국 그의 등을 감싸 떠밀고 나왔다. 아쉬워하는 그의 손에 가장 커다랗게 피어난 황국화 한 송이를 꺾어 쥐어주었다.



  “서라벌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시들지 않겠지요?”
  “그래요. 국화는 쉽게 지지 않는 꽃이니, 가는 동안 내내 향기를 즐길 수 있습니다.”
  “돌아가면 더 많이 심을래요.”
  “그럽시다.”
  “다음에 부임해 올 태수가 국화를 좋아하시면 좋겠어요. 돌보는 이 없이 시들어버린다면 슬플 테니.”
  “소도공에게 특별히 편지를 보내어 두겠습니다.”
  “네.”



  3년간의 살림을 정리하고 나니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큰 세간은 다 궁에 두고, 입지 않는 의복과 남은 식료품은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데려온 하인들 중 대다수가 정양이 좋다 하여 재산을 나눠주고 방면했다. 그러고 나니 책과 옷 몇 벌, 간단한 것들만 남았다. 그리워하는 마음, 사랑했던 기억, 즐거웠던 시간들만 가지고 떠나기로 했다. 국화 한 송이를 소중하게 품은 태민을 인도하여 마차에 태웠다. 정양의 백성들, 수로왕의 자손들이 여러 가지 선물을 들고 정양궁 문 앞에 모여 신국으로 떠나는 태수 내외를 배웅하였다. 그간 감사하였다며, 다복하게 잘 사시라며, 떠나신 후에도 잊지 말고 가끔 찾아 달라며. 진심으로 진기와 태민을 위해 축원하는 그들의 마음 앞에 겸허히 고개를 숙여 화답했다. 이랴! 마부가 채찍을 휘둘러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아쉬운 마음에 진기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멀어진 한가운데 동그마니 선 정양궁이 보였다. 무언가를 두고 오는 것 같아서, 가슴 한 구석이 자꾸만 아릿하였다.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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