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도착했네. 노보르? 


이렇게 읽는거 맞아?"



천막을 씌운 수레에 며칠 동안 갇혀 지냈던 데렉이 반쯤 졸린 눈을 하고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흘러가는 풍경 속에 작은 나무 표지판이 있었다.



"응. 내가 자란 마을이야."



데렉은 순순히 니스가 털어놓았다는 점에 놀라 잠깐 머뭇거렸다. 


평소에도 자신의 과거나 성장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었으니 놀랄 만 했다.



물론 마법사 가문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가 마법을 깨우치고, 두각을 나타내어 학회에 들어가게 되는 과정은... 


거의 대부분 어마어마한 배척과 멸시, 폭력으로 범벅되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마법사에게 과거 이야기를 묻는 것은 나름 실례라면 실례인 것인데, 아무렇지 않게 말 한 니스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데렉도 미심쩍은 표정을 하고 같이 마차에서 내렸다.



"저 빵집은 아직도 있네. 


바로 반대편에 옷가게가 있는 것도 그대로고."



수레는 천천히 상회로 향하고 있었다. 


천막을 조금 열어 거리를 바라보는 니스의 표정은 꽤나 드물게도 기대와 반가움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벽돌로 된 포석과, 어느 정도 정돈된 건물들이 있었지만 이게 커다란 마을이라거나, 정돈된 도시의 느낌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벽은 반쯤 무너져 경비병들이 올라가 경계를 서기도 힘들어보였고, 마차나 수레가 다니는 길과 사람이 다니는 길도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광장에는 시간을 알려줄 종탑도 없었다. 


커다란 공터에 각종 천막과 노점이 세워져 있었지만, 지나다니는 사람은 정말 적었다. 


조금 정돈된 시골 마을 이상의 어떤 것을 기대하기는 힘들겠지. 


여기에 있는 상단도 어떤 지부의 역할을 하기 보다는, 임시로 물건을 두는 경유지나 창고의 역할에 가까울 것이다. 



그 정도로 작은 마을이었다.



"나리들, 도착했습니다."



마부가 마차를 두드리며 말했다. 



천막을 씌운 수레는 거의 짐마차에 가까운 형상이긴 했다. 


덕분에 비가 와도 운반품과 타고 있던 사람은 온전했다. 


그리고 배척받는 마법사들을 태워주면서 모습을 보이기는 힘들었겠지. 


로브를 눌러쓰고 지팡이를 가린다고 해도 혹시라도 모를 일에 대비는 해야 했다.



"네. 감사합니다. 사업 번창하세요."



데렉은 그렇게 말하고 수레에서 내렸다. 


니스도 따라 일어서긴 했지만 따로 값을 치르지는 않았다. 


상단과 미리 거래가 다 끝난 상황이라 아무도 막지 않았다.



눈에 띄는 용병을 고용해서 '이 행렬에 고가품이 있다'는 인식을 주는 것은 위험하다. 


반면 마법사들을 태워서 데리고 다니는 것은 눈에도 띄지 않고 가격도 저렴했다. 


마법사들도 같이 오면서 수레도 탈 수 있으니 서로 바라는 것이 딱 맞았다고 봐야겠지. 


게다가 마법사들은 거의 대부분의 재난과 사고, 사건에 대해서 대응할 수 있으니 훨씬 효과가 좋았다.



니스는 수레에서 뛰어내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머뭇거렸다. 


데렉은 피식 웃으며 팔을 잡아주었다. 


항상 니스도 데렉도 로브에 달린 후드를 푹 눌러쓰고 다니기에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니스는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멀대 같이 키가 큰 데렉이 같이 다니면 오누이나 가족으로 보이기곤 했다.



사냥대에서도 둘이 같이 다니면 이상하게 염문보다는 '보기 좋은 오누이' 같은 식으로 이야기가 나오곤 했다. 


물론 둘 앞에서 그런 이야기는 못 했지만.



"여기서 자랐구나. 괜찮은 마을이네."



데렉은 그렇게 말하면서 니스의 뒤를 따랐다.



"어딜 봐서 '괜찮다'고 하는 거야?"



니스는 말을 꺼내고 바로 후회했다. 


딱히 데렉에게 화를 내거나 서운할 것이 아닌데 말이 쓸데없이 세게 나왔다. 


아마 니스가 이 마을에 대해 갖고 있는 감정이 증오에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다들 근면하게 일하는 분위기잖아. 



마을 자체가 살짝 맛이 가서 대규모 술집이나 사창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오면서 보니까 들판에는 논밭이 쭉 펼쳐져 있었어. 


그리고 다들 자기 일에 신경 쓰기 바쁘지만 거리에서 서로 마주치면 웃는 편이니까."



데렉이 그렇게 말하며 니스를 바라보았다. 


힘든 기억이 많아보였지만, 굳이 자신이 느낀 것을 부정해야 할 이유도 없긴 했다. 


니스는 한숨을 푹 쉬며 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글쎄. 어느 정도 신뢰가 있고, 나름 서로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부분은 있었던 것 같아. 


이웃의 수저와 곡식 포대의 숫자까지 다 아는 사이였지."



니스는 후드를 왼손으로 잡아당겨 눈 바로 아래까지 가렸다. 


거의 땅바닥만 보고 걷고 있었지만 감지 마법을 익힌 니스는 길을 헤메거나 넘어지지 않았다.



"그럼 좋은 마을 아니야? 


서로 헐뜯고 믿지 못하는 곳 보다는 나은 것 같던데."



방랑생활을 했던 데렉은 이 정도면 괜찮은 마을이라고 생각했다. 


서로 정이 들고 신뢰가 있을 수록, 상처 주거나 공격하는 행동을 주저하게 되는 건 어디나 똑같으니까.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면 서로 잘 뭉치고 도와줄 수 있었겠지.



"하지만 그럴 수록 배신감이 크지."



길을 따라 걷던 니스는 왼쪽에 있는 폐허 앞에 멈춰 섰다. 


데렉은 그 옆에서 같이 멈춰서서 난처하다는 듯이 고개를 긁적였다. 


아마 분명히 그렇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쫓겨나 마녀가 되었을 텐데... 


너무 속 없이 이야기한 것 같았다.



"여기가 내 집이었어."



벽돌로 된 집이었다. 옆에 있는 건물과 딱 붙어, 한 치도 틈이 없이 지어져 있었다. 


아마 그 조금의 공간도 아까웠던 것이겠지. 



다만 그 건물의 대문에는 커다란 나무판자로 엄중히 봉쇄되어 있었다. 


그리고 긴 세월 동안 제대로 관리를 하지 않았는지 오른쪽 위 귀퉁이 부분부터 건물이 무너져 반쯤 폐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쪽 벽에는 커다란 그을음이 붙어 있었다. 


큰 화재가 있었을 것이다.



"여관이었거든. 


1층에 있는 작은 방에서 우리 가족이 살고, 큰 로비랑 마구간이 있었지. 


그리고 그 위층으로 손님을 받았어."



니스는 마당이 없는 벽돌 건물 앞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리고 후드 아래로 작은 물방울이 떨어졌다.



하얀색 머리수건을 한 여자 아이가 뺨에 검은색 재를 묻히고 다른 남자애들과 골목을 뛰어다니는, 그런 환상을 보았다. 


바닥에 깔린 울퉁불퉁한 포석을 자신의 손금보다도 잘 알아서, 어떤 곳에서 어떤 부분이 튀어나와 있는지 정확히 알고 달릴 수 있었다. 


해가 뜰 무렵에서 해가 질 무렵까지 달리고, 웃고 떠들며 부모님의 속을 끓였던 때도 있었다.



"손님이 많지는 않았어. 


근처에 다른 대도시가 있기도 하고, 여기에서 바로 연결된 도시라고 해봐야 그 대도시가 전부야."



그러니 대도시에 가려면 보통 다른 길을 거쳤겠지. 


이런 외진 마을까지 올 일은 잘 없었을 것이다. 


교통이 별로 안 좋으면서 와봐야 별 것이 없으니, 딱 낙후되기 좋은 환경이다.



"그래도 여긴, 이 여관은 필요했어. 그 때는 저 상회가 없었거든. 


외부에서 상단이나 상인이 오면 커다란 홀의 난로 앞에서 물건을 거래하곤 했고... 


그래서 그런걸까, 아직도 이 동네 사람들은 광장에서 뭔가를 거래하는 데에 익숙하지 않은 것 같네."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는 행상인들은 항상 수레 가득 뭔가를 싣고 다니기 마련이다.


 어음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면 수레 안에는 물건들이 그득그득 했을 것이고, 아마 중간에 만나 물건을 넘겨주는 중개 거래도 있었겠지. 


항상 팔 곳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행상인이니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을 거고, 수익을 위해 이런 낙후된 마을도 왔을 것이다.



그런 상인들은 접객을 위해 있는 카운터와 안쪽에 있는 주방 너머로, 커다란 홀이 있는 1층에 주로 자리를 잡고 있었다. 


깔끔한 옷과 커다란 돈 주머니를 차고 있는 사람들은 누가 보아도 상인이었다. 


소녀의 등쪽에는 가죽으로 된 맥주가 담긴 부대가 있었고, 손님 중에 잔을 내미는 사람에게 바로 맥주를 따라주기도 했다. 


따뜻한 난로가에는 항상 사람들이 몸을 녹이고 있었을 것이다.



홀 중앙에 있는 모닥불 근처에는 커다란 솥이 여러개 있었다. 


주문에 따라 솥에서 바로 스튜나 치즈를 가져다 주었고, 손님들은 여기 스튜가 정말 맛있다며 먼 곳에서 굳이 이쪽으로 길을 잡는 상인도 있었다. 


별 것 아닌 잡탕죽이지만, 소녀의 부모님은 이 솥이 여관의 역사라며 항상 넘치거나 눌어붙지 않도록 지극 정성으로 관리했다.



"우리 여관은 그래서... 이 마을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어. 


외부에서 오는 대부분의 상인들을 알고 있었고, 꽤 친하게 지냈지. 


무역로를 소개시켜주는 일도 했고, 서로 상인 사이에 정보를 맡아주거나 소개를 통해 중개료를 받기도 했을 정도로 수완이 좋았어. 


이 작은 마을에 경작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한 가뭄이 있어도 굶어 죽는 사람이 적었던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을 거야."



농업을 주로 하는 마을에 심한 가뭄이 일어난다면 그건 곧 재앙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재화가 계속 오고가는 흐름이 있는 대도시라면 좀 더 잘 버틸 수 있겠지. 


그래서 이 마을은 농사가 주된 생계 수단이면서도, 가뭄이나 홍수에도 큰 타격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데렉은 문득 지나온 길을 바라보았다. 


도시 입구에서 이쪽으로 오는 부분의 포석만 반질반질하고 평탄했다. 


이 부분만 공사를 신경써서 했다기 보다는, 어마어마하게 많은 수의 수레와 사람들이 오고 가면서 자연스럽게 포석이 마모된 것이겠지. 


정말 이 도시 경제의 심장부를 담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내가 다른 것을 보기 시작했거든. 


지금은 그게 '마(魔)'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 때는 너무 혼란스러웠어."



니스의 말을 듣고 데렉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부분의 마녀와 마법사는 이 과정을 거치며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지곤 했다.



이렇게 담담하게 말하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 동안 곱씹고 생각하며, 마음 속에 지각처럼 단단하게 쌓여야 할까. 


들춰볼 때 마다 한이 되어 맺히는 그 기억들을... 


얼마나 인내하고 다시 삭히며 되새겨야 아무런 감정의 변화 없이 담담해질 수 있을까. 


데렉은 그 켜켜히 쌓인 한을 생각하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피부가 벗겨지고 아물면서 굳은살이 생기듯이, 너덜너덜한 마음을 가리지 않고 몇 번이고 생각해 아무렇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내 경우는 감정이었어. 


서로 간의 감정 흐름이, 대화를 듣지 않아도 어느 정도 보였거든. 


물론 전부 다 맞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부모님께 도움이 될 만한 말들도 넌지시 알리고 그랬지."



대부분 마법사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각성했다. 


자신이 관심있어하는 부분들에 대해 이전보다 더 느끼고, 잘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시작이니까. 


그리고 그것이 신기하니까 좀 더 몰두하게 되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정식으로 마법사가 되는 것과는 별개이지만, 처음으로 마법을 쓸 수 있게 되는 과정은 대부분 비슷했다.



"그런데 내가 너무 오지랖이 넓었나 봐. 


상인 중에 특별히 거짓말이 잘 보이는 상인이 있었는데... 


상대방 상인이 우리 집 단골이었거든. 


거짓말을 하던 상인이 화장실에 간 사이 단골에게 물을 조금 더 주는 척 하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어."



어떤 거짓말인지는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냥 거짓말을 하고 있다, 정도로만 말했겠지.



"그 상인은 반대로 그 거래를 틀어서 큰 이득을 봤어. 


나는 거기에 신이 나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다른 손님들이나 사람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말하고 다녔어. 


주문을 하는 사람들은 더 많아졌고, 아예 따로 나를 찾는 사람들도 있었지."



그저 소녀는 도움이 되고 싶었을 뿐이다. 


자신이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웃음을 지켜주고 싶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을 돕고 싶었다.



"부모님은 걱정을 했어. 내가 뭔가 잘못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신 거지. 


그 말이 맞았어. 나는 그만 뒀어야 해."



"마녀... 라고 몰렸구나."



데렉은 니스의 어깨에 손을 가볍게 올리며 말했다. 


니스는 어깨에 닿은 따뜻한 손에 잠깐 멈칫하더니 천천히 고래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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