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그러니까.. 탈론님을 묶으란 말씀이십니까?"

노예상이 이마에서 연신 땀을 닦아내며 물었다.

"상품으로 판매하려면 그래야겠지."

손목을 모아 내밀었으나 노예상인은 벌벌 떨며 수갑을 들어올리지 못했다.

"아무리 그래도 제,제가 어떻게... 탈론님을..."

"설명이 부족했나."

순수하게 물어본 것 뿐인데 노예상이 소스라치며 무릎을 꿇었다.

"으악! 아,아닙니다! 그럼... 수,수갑부터 채우겠습니다."

"족쇄도 꼼꼼하게 채워라."

서늘한 금속이 손목을 구속하고 발목에도 무거운 사슬이 채워졌다.

"저 입마개는 뭐지."

천막 한켠의 상자에 들어있는 짐승용 입마개처럼 보이는 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위험한 놈들을 다룰 때 쓰는 것입니다. 이빨을 날카롭게 간 식인귀나 바스타야 혼혈인간을 다루기도 하거든요."

"그것도 채워라."

"그러실 필요까지야... 불편하실 텐데..."

잠자코 쳐다보자 노예상이 꾹 다문 하관을 부르르 떨더니 입마개를 들고 다가왔다.

"피,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당장 풀어드리겠습니다."

가죽재질의 구속구에 턱까지 고정당한채 노예상인의 막사에서 나오자, 벌거벗고 꿇어앉혀 있는 노예들이 날 신기하게 바라본다. 나역시 벌거벗어야 할까 잠깐 고민했지만 여전히 암살자 복장을 입고 있는 게 나을 듯 싶다. 리그 소속 챔피언이라는 것이 확실해지면 몸값을 더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말에 올라탄 노예상이 채찍을 꺼내다 나를 보고 멈칫했다. 날카로운 눈빛으로 아까 일러준 것들을 상기시키자 그의 짧은 수염이 푸르르 떨린다. 평범한 노예 다루듯 날 대하라고 그에게 분명히 말했었다.

"이...이놈들.. 늑장 부리다간 오늘 내로 슈리마에 도착 못하겠구나. 어서 가자...!"

그가 커다란 채찍을 휘둘러 노예들을 때렸다. 과연 숙련된 노예상의 솜씨였다. 채찍은 교묘히 내 등짝을 피해갔다. 철썩하고 거친 타격음이 들리더니 노예들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걷기 시작했다.

태양이 저무는 방향을 향해 노예상단이 나아갔다. 잘그랑거리는 사슬 소리, 더위에 지친 말의 숨소리, 모래 바람 부는 소리가 지루하게 고막을 울렸다. 녹서스에서 허가받은 노예상의 표지 깃발이 사막 바람에 펄럭인다.

나또한 바닥을 내려다보고 천천히 걸었다. 발 밑에 부서지는 금빛 모래만큼 많은 금화를 꿈꾸며. 내 몸값으로 부디 충분한 금액을 받을 수 있길 바라면서.


뒷골목에서 태어나 온갖 범죄를 저질러온 나로서도 몸을 팔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거칠것 없는 밑바닥 인생이래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무력이 약하지도 않은 나는 영원히 포식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 줄만 알았다.

하지만 인생만사 새옹지마라 했던가. 내 사랑도 진심도 필요없고 든든한 수당 주머니가 제일 좋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애인을 만나, 어쩐지 우울해보이는 그를 위해 돈을 쫓고 쫓다 내 몸까지 팔게 될 줄이야.

언제나 반짝이는 이즈에게 드리워진 그늘이 정확히 무엇 때문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가 준비했던 원대한 데이트가 나 때문에 망해버리고, 내가 술에 취하고 미약에 취해 '넌 조루이며 박는 걸로는 절정할 수 없다'고 가차없이 말해버린 탓에 그날 이후 약간 풀이 죽어버렸다는 것만 알겠다.

하지만 내가 아는 이즈는 그런 일이 있어도 금방 툭툭 털고 일어나 오히려 내게 엿을 먹이는 방법으로 복수하고, 목표를 이루기 전까진 포기하는 일이 없는 사내인데 그날 충격을 워낙 세게 먹은 탓인지 도무지 나를 다시 덮칠 의욕이 생기지 않는 모양이다.

내가 성적으로 끌리는 사람이 아니라는건 나도 잘 알고 있지만 풀죽어 있는 이즈를 내버려둘 순 없었다. 그렇다고 다시 시도해보라고 권할 수도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평소보다 무거운 주머니, 그의 남성성을 보상하기에 충분한 금화를 건네는 수밖에.

카타리나의 잡다한 심부름과 녹서스 게시판에 붙은 암살 의뢰까지 모조리 끝냈는데도 허리춤에 매달린 주머니의 무게는 턱없이 가벼웠다. 깊은 고민 끝에 내 몸을 팔기로 했다. 노예생활을 하루이틀 한다음 주인을 암살하고 빠져나올 생각이다. 주인에겐 안된 일이지만 노예에게 살해당하는 주인의 이야기는 흔해서 이야깃거리도 되지 못한다.

"자아. 멈춰라. 멈춰."

노예상인의 채찍이 또다시 공기를 갈랐다. 지친 노예들의 신음과 함께 슈리마 중앙과 멀리 떨어진 외곽 마을에서 행렬은 멈추었다.

"그늘에서 쉬면서 야자기름을 발라라. 몸이 번들번들해야 잘 팔리니까."

노예들은 순순히 그들의 주인이 주는 항아리에 손을 넣어 몸에 기름을 발랐다. 그러자 험한 사막길을 걸어오며 부르트고 갈라졌던 피부가 흑진주처럼 매끈거렸다.

노을 위에 별이 총총 떠오르자 각지에서 온 상인들과 노예상단들이 도착했다. 임시 천막들이 세워지고 마약류의 증기와 독한 담배 냄새가 여기저기서 풍겼다. 용도가 명확해보이는 노예들이 우선적으로 단상에 입장했다. 경매가를 부르는 거친 외침들이 후끈한 공기를 뚫고 들려왔다.

"나으리는 잠시 이곳으로 모시겠습니다. 비밀 특상품으로 등록을 해두었는데 남들에게 보이면 곤란하거든요."

상인이 소근거리며 작은 천막 안에 나를 숨겼다. 바늘처럼 찔러대던 볕에서 해방되자 한결 몸이 편해졌다. 구속된 손바닥이 흙먼지로 새카맣게 더러워져 있었다.

"물이라도 드릴까요? 해가 높이 뜨는 지역이라 저녁볕도 뜨겁습니다요."

노예상이 물주머니를 기울였으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물론 목이 굉장히 말랐지만 팔팔해보이면 주인될 인간이 날 두려워할 수도 있으니 적당히 추레한 낯빛을 유지하는 게 좋을 듯 싶다.

"나으리의 순서를 맨 마지막으로 하겠습니다요. 이런 말씀을 드리기는 그렇지만 아주 획기적인 사건이 될겁니다. 과정이 조금 불쾌하실수도 있겠지만 최대한 비싼 값에 팔아드릴 것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헤헤."

노예상인이 손을 삭삭 비비며 누런 이를 드러냈다. 그에게 판매대금의 일부를 수고비로 제하기로 이야기를 해놓은 상태였다. 물론 대부분의 금액은 내가 미리 일러둔 주소로 우편수리가 배달할 것이다. 그리고 그건 다시 꽃다발 속에 파묻혀 나의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애인에게 전달될 계획이다.

함께 길을 걸어 온 노예들 중 가장 체격이 훌륭하던 사내가 낙찰되자 다음이 내 차례였다. 

"조금 험하게 다뤄도 괜찮겠지요...?"

노예상이 날 무대로 이끌며 조심스레 물었다. 당연한걸 자꾸 묻기에 오히려 피로해지고 말았다. 귀찮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그가 내 머리 위에 검은 자루를 뒤집어 씌웠다.

"따라와. 이 놈!"

빌빌기던 목소리가 갑자기 엄한 호령이 되었다. 앞이 안보이기에 비틀거리며 따라가자 정수리 위로 센 불빛이 쏟아졌다.

"기다리시던 특별 상품입니다! 이런 노예는 역사 이전에도 이후에도 없었다! 놓치면 평생 후회하실 초특급 희귀상품입니다. 녹서스 출신 노예 중에서도 가장 값비싼.. 녹서스의 푸른 비도, 룬테라 최고의 암살자..."

자루가 끌어올려지며 하얀 빛이 내 눈을 찔렀다.

"탈론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모여든 인파가 웅성이며 일어서 있었다. 하나같이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들이었다.

"아니! 위험한거 아니오?"

"진짜 그 녹서스의 암살자가 맞소?"

장내에 소란이 일자 노예상이 손을 들었다.

"궁금하신게 많으실텐데 하나하나 답해드리겠습니다. 전혀 위험하지 않습니다. 보시다시피 사슬에 튼튼히 묶여 있고 반항의 의지도 없습니다."

"그런 것치곤 너무 묶여있는데!"

"이건 여러분께 위험한 매력을 뽐내기 위해 장치해둔 것입니다. 탈론은 주인을 섬길 준비가 되어 있는 좋은 노예입니다. 자, 주인님들 앞에 어서 무릎을 꿇어라."

천천히 무릎을 꿇자 노예상이 내 턱을 움켜쥐어 치켜올렸다. 굴욕적인 자세로 가만히 있으려니 그제야 사람들의 시선에서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가셨다.

"그걸 어찌 잡았소?"

누군가 손을 들고 외쳤다.

"큰 빚을 탕감해주는 대가로 증여받았다고 말해두죠. 그만큼 값은 치르셔야겠지만 괜찮은 값을 치르실 주인분이 여기 계실거라 믿습니다. 뻔히 아시겠지만 장점 몇가지 말씀 드릴까요?"

노예상이 당당하게 외치는 동안 몇몇 사람들이 하인에게 명령해 금화 주머니를 잔뜩 들고오게 시켰다.

"살인, 폭력, 협박, 강간. 무엇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여기 있는 탈론이 다 해드립니다!"

'...강간?'

눈썹을 비뚜름 찌푸리고 노예상을 쳐다봤지만 그는 목에 핏대를 세우며 날 홍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적이 많은 분들은 여기 이 탈론 하나면 평생 다리 쭉 뻗고 주무실 수 있습니다. 적을 제거하는데도 손가락 까닥하는 것보다 쉽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노예상이 단도를 들며 목소리를 낮췄다.

"침소노예가 필요하신 분들께도 추천드립니다. 이 녀석이 꽁꽁 감싸고 다니는 이유는 바로 이 미모...."

단도가 번득이더니 내 망토를 찢어냈다. 갈색 머리칼이 이마와 어깨로 흘러내리자 여성들의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그리고 훌륭한 이 몸매...!"

부욱 하는 소리와 함께 상의가 아예 찢겨나갔다. 노예상이 항아리를 기울이자 미끈거리는 오일이 내 어깨를 타고 가슴과 배를 적시고 흘렀다.

"보이십니까? 이 수많은 상처의 흔적들. 맹수 혹은 야수와 다름없는 남자의 이 허리, 복근...! 평생 성인 동화속 종마의 주인이 되실 분, 어디 안계십니까?"

개인적으로 나는 번들거리는 내 몸이 구운 달걀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상황은 노예상인의 의도대로 흘러간 것 같았다. 손을 든 사람들이 상당한 금액을 외치기 시작했다. 벌떡 일어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의 발치에는 내가 평생 일해도 손에 넣기 힘들 정도의 금화가 쌓여있었다.

"어허. 그정도 금액은 성에 안 차는걸요. 이녀석아, 일어나라."

노예상이 내 손목을 구속하던 수갑을 풀어버리고 단도 몇개를 쥐어주었다.

"네 특기로 주인님들의 마음을 사로잡아봐라."

애인의 마음도 얻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인데 관심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얻으려면 뭘해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별생각 없이 단도를 던져 몇몇 사람들의 모자끈과 망토끈을 끊어내자 서커스를 본 것과 같은 탄성과 우레같은 박수가 이어졌다. 열렬한 반응에 오히려 당혹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자, 보셨죠? 아주 대단한 놈입니다. 그러니 값을 더 올려주시길 부탁드리옵나이다."

노예상이 예의바르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가격을 들으며 멀뚱멀뚱 주위를 살피고 있는데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주 눈에 익은 실루엣이 보였다. 나는 눈을 의심했다. 금발의 청년은 사과를 던졌다 받았다하며 말을 지키고 있는 소녀에게 추파를 던지고 있었다.

'이즈...?'

"최고가가 경신되었습니다! 더 있으십니까? 탈론의 주인이 되실 분!"

노예상인이 크게 외치자 마굿간 근처에 서있던 이즈가 화들짝 놀라 사과를 떨어뜨렸다. 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무대를 바라본 순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분위기 달아올랐습니다! 자꾸자꾸 가격이 오릅니다! 오늘 밤을 놓치면 후회하실겁니다. 주머니를 여세요! 금화가 부족하면 수표도 받습니다."

노예상인이 신이 나서 입에서 침을 튀기며 외쳐댔다. 흥분한 그가 잠시 내 시선 앞을 가려서 나는 이즈를 시선에서 놓쳤다. 말 지키는 소녀도 사라지고 없었다.

'설마 바람을 피러 간것인가.'

가슴이 찢어질 것처럼 아프고 괴로웠다. 당장 이런 짓거리를 집어치우고 이즈를 찾아 달려가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팔뚝을 불끈거리자 투둑 사슬이 끊겼다.

"오오! 보이십니까. 이 남성미!"

노예상인이 절규하듯 외치며 힘줄 돋은 내 팔을 가리켰다.

나는 슬픈 눈으로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 노란 머리가 나타나기만을 빌고 있었다. 나는 그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몸까지 팔았는데 그는 어째서 날 내버려두고 여자와 사라진 것일까.

'역시 이즈의 발목을 진작에...! 아니, 나는 그런 생각을 이어나가서는 안된다.'

절망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내 안에 흐르는 녹서스인의 피가 광기어린 끔찍한 해결방법들을 속삭인다. 내 눈에 핏발이 섰다. 아무래도 참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즈가 당장 내 앞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그때 바퀴 구르는 소리가 덜덜 들려왔다. 소란했던 주위가 물이라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지고 내게 쏠려있던 탐욕의 시선들이 무대 앞쪽을 향했다.

색바랜 앞치마를 입은 소녀가 술통을 실은 수레를 끌고 나타났다. 누가봐도 남루한 차림이었다. 머리에 보자기를 쓴 갈색머리 소녀는 넝마와 비슷한 폭 넓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소매는 다 헤져서 지푸라기 투성이였다. 그러나 누구도 뭐라하지 못했다. 그녀가 끌고 온 수레의 술통 한가득 금화가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은 가난뱅이들 뿐인가보죠?"

그녀가 입을 열었을 때 나는 눈을 둥그렇게 뜨는 수밖에 없었다. 갈색의 긴 머리 가발을 손가락으로 꼬는 그녀의 뺨에 푸른 마법 문양이 떠올라 있었기에.

"당신은..."

노예상인의 눈이 수많은 황금으로 번쩍였다. 그는 말을 잇지 못했다.

"1억 2천. 전부 금화로 지불하죠."

소녀가, 아니 이즈가 수레를 뒤집자 잘익은 보리알같은 금화무더기가 우르르 쏟아졌다.

"우와아아아."

무릎을 꿇은 노예상인이 양 손바닥을 활짝 펴고 이즈를 가리켰다. 대부호의 미소를 짓고 있는 이즈의 얼굴은 그 어느때보다 반들거리고 있었다.

"낙찰!"

순수하게 그의 재력에 감탄한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어딘가의 왕국에서 온 공주님인 것 같다고, 그도 아니면 왕가에서 파견된 하인인 것 같다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노예상인은 경매에 참여한 주인들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는 한편, 하인들을 시켜 한무더기의 금화를 쓸어담게 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주인님, 아니 공주님! 탈론의 주인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두분의 앞날에 무수한 금화와 축복이 있으시길..."

노예상인이 나를 거의 떠넘기다시피 이즈에게 내주었다. 아무리 큰 돈이 걸렸다지만 처우가 이리도 달라질 수 있나 싶었다. 이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앞치마로 입가를 가리며 호호 웃었다.

"아이, 잠깐. 이렇게 비싼 돈을 주고 샀는데 마법의 보증 계약서 한장 쯤은 주셔야지."

그러자 노예상인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마,마법의 보증 계약서 말입니까? 죄송하지만 아가씨, 그건 한참 전부터 불법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워낙 귀한 물건이라 저같은 일개 상인이 가지고 있을리가 만무한 물건인데..."

"훗. 내 감각은 틀린적이 없지. 바로 거기서 냄새가 나는걸."

이즈가 가리키자 상인이 얼빠진 듯 가슴 주머니를 만지작거렸다. 그는 낭패라는 표정을 지으며 날 힐끔 바라보았다. 그러나 나는 마법의 계약서 같은 물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다. 내가 멀뚱거리자 노예상인이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사실은 아주 예전에 장만해둔 게 한장 있습니다만.... 이녀석에게 계약을 강요하실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불법인데다 옛말에 '부모 자식 간에도 마법의 보증 계약은 하지마라.' 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녀석을 물에 빠뜨려 죽이시든지 껍질을 벗겨내시든지 마음대로 하셔도 좋지만 도의적으로도 그렇고 인륜적으로도 그렇고 보증 계약만은 좀...."

"아, 이 아저씨 혓바닥이 기네. 거래 취소할까? 응?"

다짜고짜 이즈가 멱살을 쥐자 노예상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무슨 농담을 그리 하십니까. 제가 언제 안 드린다고 말이나 했나요? 이녀석에게 계약을 받아내시는건 똑똑하고 현명하신 아가씨께서 해내실거라고 믿는다, 제말은 뭐 그런 뜻이란 말입니다...."

상인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파란 끈으로 봉해진 양피지를 꺼내 내밀자 이즈가 그것을 채갔다. 어찌나 움직임이 민첩하고 빠른지 암살자인 내 눈으로도 좇기 힘들 정도였다.

"흐흥. 좋아. 진품이군. 계약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마. 그럼 데려간다?"

이즈가 목걸이의 사슬을 쥐며 말했다.

"크... 정들었던 노예를 떠나보내려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마지막으로 녀석과 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

상인이 눈가에 침을 찍어바르며 우는 시늉을 했다. 그는 내 목덜미를 덥석 껴안고 귀에 속삭였다.

"탈론님, 몸값은 제가 딱 5%만 떼고 전부 댁으로 부쳐드리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절대 계약서에 손가락을 찍어서는 안됩니다. 나중에 절 원망하시면 곤란합니다."

"나는 그게 뭔지..."

"압니다. 표정을 보니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당부드리겠습니다. 절대, 절대, 계약을 해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아~ 무슨 작별인사가 이렇게 길어. 짜증나게."

빈 수레에 걸터앉은 이즈가 조심성없이 다리를 활짝 벌리고 귀를 후비적거렸다.

"앗. 죄송합니다, 아가씨. 수개월동안 동고동락을 해온 사이라 인사가 길어졌습니다요. 헤헤."

노예상인이 머쓱하게 뒷통수를 긁으며 날 놓아주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그의 시선은 내게 향해있었다. 양손바닥을 교차해 가위표를 그리며 단호하게 고개를 젓는 그를 가까스로 모른체 했다.

"자아, 그럼 가자. 이름이... 탈론이라고 했던가?"

여인의 복장을 한 이즈가 새침하게 날 훑어보며 말했다.

"꼴이 아주 가관이구나. 성노예로 팔린 것이냐?"

"....."

"주둥이에 개입마개가 있어서 말을 못하는 모양이구나. 하지만 딱 보니 몸을 굴릴 용도로 팔린 것이렷다."

이즈가 집게 손가락으로 이마를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거 정말 안될 놈이로다. 만약 네가 사랑을 맹세한 애인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그 애인에게 충절을 강요하는 주제에 너는 쓰다만 걸레짝처럼 몸을 굴려도 된다고 생각하느냐?"

입마개를 하고 있는데 대체 무슨 대답을 기다리는 것일까.

"하아. 그 애인이 불쌍해서 못살겠구나! 얼마나 잘생긴 사람이기에 이런 못된 놈의 눈에 들어서는."

이즈가 하늘을 보며 탄식했다. 그렇게 탓해봐야 죄지은 기분이 들진 않았기에 잠자코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내가 반응이 없으니 이즈가 콧잔등을 긁적이며 눈을 굴렸다.

"...흠흠. 목이 마른데 뭔가 마시고 갈까?"

어딜 가자는 건지 모르겠지만 술집은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취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고 미약에 또다시 시험 당하고 싶은 기분도 아니다. 애초에 이즈에게 기쁨을 주고 싶어 계획한 일인데 틀어지게 되어 영 기분이 좋지 않다. 그나마 이즈가 날 구입했기에 조금 기쁜 것 뿐이랄까. 내게 관심도 없는 놈인줄 알았는데 어찌 되었든 내가 다른 사람의 노예가 되는건 원치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면 개인 노예를 잠시라도 빼앗기는게 싫었든지.

아무튼 결과적으로 나는 오히려 빚만 늘어나고 말았다.

이즈는 걸어가면서 옷을 한꺼풀씩 벗어던졌다. 머리 두건과 앞치마를 바닥에 떨어뜨린 다음 가발까지 벗어버리니 평범한 셔츠와 바지를 입은 청년이 되었다.

조그마한 카페에 앉은 그가 마침내 입마개를 풀어주었다. 거의 온종일 구속당해 있던 터라 턱이 뻐근했다.

"야, 탈론. 왜 그렇게 죽상이야? 놀려서 삐졌냐."

"....여긴 무슨 일이지. 네 도움은 필요 없었는데."

"기가 막히는군! 구해준 사람한테 그게 할 말이야? 추운 날씨에 헐벗고 있으려니 딱딱거리는 소리밖에 못하겠나보지? 여자들한테 가슴을 보여주면서 잘난체나 하던 녀석이 말이야."

이즈가 파르페를 떠먹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물론 사막의 밤공기가 차갑기도 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따뜻한 코트보다는 한컵의 물이었다. 이즈는 두개의 음료를 주문했지만 어느 것 하나 내게 양보해주지 않았다. 나는 테이블에 놓인 탄산 음료를 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몹시 목이 탔지만 빈털터리인데다 이즈가 허락해주지도 않을 것 같았다. 결국 음료를 포기하고 변명을 주워섬겼다.

"임무 중에 사고가 있어서 이렇게 되고 말았다. 네게 진 빚은 갚도록 하지. 성노예 같은 걸로 팔릴 생각은 아니었어. 누군가 날 매입해가면 암살하고 도망칠 계획이었다."

"흐흠."

사실대로 말했다간 멍청이란 얘기밖에 듣지 못할 것 같았기에 대충 둘러대고 말았다. 이즈는 믿는 건지 안 믿는 건지 묘한 눈초리로 날 바라보며 코를 울렸다.

"아무튼 넌 내가 샀어. 내 노예란거지."

"원래도 우린 비슷한 관계 아니었나."

"네가 언제 내 노예같은 거였냐? 네 마음대로 하면서."

"미안하지만 난 그런 기억이 없군."

"뻔뻔한 자식."

이즈가 쯧쯧 혀를 차더니 쿠키 바구니에서 설탕이 하얗게 오른 코코넛 쿠키를 꺼내 와작와작 씹기 시작했다.

"....."

나도 모르게 군침이 넘어갔다. 그러나 내게도 자존심이란게 있다. 애인을 기쁘게 해주는 남자가 되지 못하고 처량한 꼴이 되고 말았는데 음식이나 음료까지 요구하고 싶진 않았다. 이즈가 내게 원하는게 무엇이든 그가 주는 임무를 끝내고 한시라도 빨리 녹서스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노예로서 네 임무를 수행하도록 하지."

"첫번째 임무는 그거야. 계약서에 손가락을 찍는 것."

이즈가 입가로 흘러내리는 과자 부스러기를 손바닥으로 받으며 아까 보았던 양피지 두루마리를 꺼냈다. 마법의 힘이 깃든 물건이라 자체적으로 생명력이 있는 것 같았다. 양피지가 차르륵 소릴 내며 펼쳐졌다. 노예상인이 신신당부했기에 계약 내용을 읽어보고 싶었지만 내가 모르는 종족의 언어로 적혀있었다.

"뚫어지게 봐도 모를걸. 그냥 손가락이나 찍으셔."

이즈가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싫다."

"뭐가 싫어. 넌 내 노예라니까!"

"아까 상인이 말했잖아. 내게 계약을 강요할 수는 없다. 불법이니까."

"허어? 불법을 매일매일 저지르는 놈이 갑자기 왜 깨끗한 척이야?"

"아무튼 싫어."

"그럼 이거 마시게 해주면 해줄래?"

이즈가 탄산 음료가 든 유리잔을 찰랑찰랑 흔들며 말했다.

"싫다."

"달콤한 과자도 먹게 해줄게!"

"싫다."

"그럼 뽀뽀라도 해줄까? 으응?"

"싫어."

이즈가 눈을 가늘게 뜨고 손가락으로 탁자를 탁탁 두드렸다. 마치 성질 나쁜 고양이가 꼬리를 바닥에 내리치는 것 같았다.

"뭐. 싫으면 말아. 사실 나도 진심으로 권하려던 건 아니었어. 다만..."

이즈의 말에 따라 계약서가 도르륵 말렸다가 다시 펼쳐지길 반복했다.

"내 마음이 어떨까해서 시험해보고 싶었던 것 뿐이야. 요즘 조금 우울했던 건 그것 때문이거든. 물론 넌 궁금하지 않겠지만..."

"네 마음이 왜?"

이즈가 아삭거리는 파르페 과자와 딸기를 동시에 씹으며 턱을 괴었다.

"여기서 말하긴 조금 부끄러운데... 우리 둘 뿐이니 말할까?"

분명 주위에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은데, 이즈가 그렇게 말하는 순간 모두가 증발해버린 것처럼 사라졌다. 심지어 카페 주인까지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사막의 더위와 추위에 시달린 나의 착각이었던 것일까. 뭐가 되었든 이즈의 속마음을 들을 기회는 흔치 않았기에 나는 덥석 미끼를 물었다.

"말해봐."

"....그게 있지. 지난번 데이트 때문에 든 생각이야. 이런저런 사건이 있었지만 결국 내가 잘못한 것 같더라. 네가 집착하는 괴물처럼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내 잘못이잖아. 조금만 잘해줘도 네가 무지 기뻐하는 걸 보니 마음이 아팠어."

나는 잠시 목마름도 배고픔도 추위도 피곤도 잊고 눈을 반짝이며 이즈를 바라보았다. 발그레한 그의 볼은 마치 봄이 온 것 같아서 내 가슴은 따뜻한 황홀함과 꽃향기로 물들었다.

"그래서 오늘 위기에 빠진 널 보고도 그냥 지나갈 수 없더라. 1억 2천이라는 금화는 내가 평생 모아온 거야. 하지만 널 위해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써버리고 싶었어. 왜냐면 내가 널...."

숨도 멈추고 그의 목소리를 기억에 새겼다. 처음으로 이즈가 내 마음에 화답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파리 날갯짓이라도 그의 고백에 끼어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엣흠... 목마르지, 탈론? 이거 마셔."

이즈가 말하기 어려운지 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문지르며 내게 음료를 내밀었다.

"아니. 괜찮아. 그보다... 계속 말해주었음 하는데."

"아하핫. 이렇게 말하려니 굉장히 민망하네... 하지만 나, 이제 널 좋아한다는 걸 인정해야 할까봐."

".....!!!"

거칠게 떨리는 숨이 콧구멍으로 뿜어져 나왔다. 감동해서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눈시울이 뜨거웠다. 내게 고백하는 이즈는 너무나 사랑스러워서 당장 껴안아버리고 싶었다. 나도 모르게 그를 덮쳐 안을 뻔했으나 묶인 상태로는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사슬이 쩔렁 하는 소리가 나자 이즈가 퍼뜩 어깨를 떨었다. 어쩐 일인지 겁을 먹은 것 같았다.

"읏... 그런데.... 실은, 나 네가 너무 무서워. 탈론."

"내가 무섭다고...? 이유를 모르겠군. 난 널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

"이것봐. 그런 점이 진짜 무서운거야. 지금 네 얼굴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눈은 빨갛고 코에서는 김이 슉슉 나오고 송곳니가 보일 정도로 이를 악다물고 있잖아. 그리고 넌 암살자란 말야. 날 수없이 죽이고 찢은 암살자!... 그러니 내가 무서워하지 않고는 배길수가 없는거야. 나의 본능이 널 두려워하라고 말하고 있어."

이즈가 쓸쓸하게 말하며 눈썹을 찡그렸다.

"내가...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 미안하다, 이즈. 네가 그런줄도 모르고... 하지만 네가 내게 다정하게 대해주는 건 참을 수 없이 기뻐서 흥분되고 말아. 좀 더 자주 내게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내 목소리는 처절하게 떨리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할 거야. 너도 알지? 좋아하면 계속해서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거."

"누구보다 그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아핫. 그러니까... 네가 절대 날 겁먹게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네 의지를 내게 맡겨줄 수 없겠어?"

"의지를 맡기다니."

"글쎄. 별거 아니잖아. 의지나 본능이나 네 감각이나, 그런 것들을 나한테 맡겨주면 나는 더이상 네게 겁먹지 않을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무척이나 중요하고 치명적인 조건 같은데 이즈는 마치 수프에 후추를 뿌릴까 말까 하는 고민정도로 대수롭지 않게 얘기했다.

"그게 이 계약과 관계가 있는건가."

오래된 계약서는 여전히 의미모를 글자들을 반짝이며 내 앞에 펼쳐져 있었다.

"응. 뭐어, 대충 그런거지."

"....."

나는 계약서를 한번 쳐다보고 이즈의 방긋 웃는 얼굴을 또 쳐다보았다.

"매일매일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어. 밤새 껴안고 사랑을 속삭이고 싶어. 네가 내 말에 복종하는 철저한 마법적 노예상태라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

아무리 강력한 독약이라도 해독해낼 수 있도록 훈련받았지만 가슴을 절절하게 울리는 사랑의 고통을 해독해낼 방법은 알지 못했다. 이즈의 말에 백번 동의하고 그를 이해했다.

하지만 기묘한 본능이 내 의지를 붙들어 맸다. 의지와 본능, 그리고 감각까지 남에게 넘겨준다는 건 대체 어떤거지?

"역시 무리한 요구겠지? 괜찮아, 탈론. 이런 계약서 따위 없어도 천천히 너한테 마음을 열 수 있을 거야. 천천히."

이즈가 또박또박 말했다. 계약서가 느릿하게 말려올라가기 시작했다.

"천천히.... 사막 한복판의 커다란 바위가 바람에 쓸려 모래로 변할만큼... 아주...천...천...히..."

"잠깐."

안달이 나서 그를 멈춰세웠다.

"너... 정말 나를.... 좋아하는거냐.."

한번도 그에게 물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뻔한 대답을 듣게 될 테니까. 하지만 나는 정말 간절하게 바라왔다. 이즈가 생긋 웃더니 말했다.

"나는 있지. 널 사랑해, 탈론."

그는 심지어 윙크를 하며 입술을 내밀고 쪽 하는 허공키스를 보냈다. 그 행동에 나는 기절할 것처럼 흥분했다. 이건 분명 꿈이었다. 아니면 내 심장을 멈춰버릴 만큼 행복한 현실이었다.

이즈가 재빨리 내 손목 수갑을 풀어주었다. 홀린듯 들어올린 손이 계약서로 향했다.

손가락만 찍으면 그만이다. 매일 날 좋아한다고 말해주는 이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밤새 서로를 껴안고 사랑을 속삭일 수 있다. 언젠가 우린 결혼도 하고, 하얀 사막을 닮은 피부와, 검은 밤을 닮은 머리칼과, 노란 달과 별처럼 빛나는, 순결하고 아름답고 재치있는 아기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정상적인 사고회로가 복구되기 전에 내 손가락이 양피지에 닿았다. 거의 스쳤다고 표현해도 좋을 정도였다. 그러나 내 피부가 닿는 순간 양피지는 번개와 같은 속도로 사라졌다. 이즈가 그것을 도르륵 말아서 가방에 넣고 자물쇠를 걸었다. 그 일은 1초도 되지 않은 새에 진행되었다.

가방을 탁탁 두드린 이즈가 갑자기 내 의자를 발로 찼다. 나는 그대로 돌바닥에 나뒹굴었다.

"노예놈 주제에 어딜 감히 사람 앉는 의자에 앉아?"

차갑고도 기쁘기 그지 없는 목소리가 한참 위에서 들려왔다. 충격에 얼얼해진 머리를 들어 올려다보자 이즈가 스페이드의 에이스의 옷을 입었을 때처럼 악랄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야. 쳐다보지마. 탈론. 하늘 같은 주인님이란 말야."

내 고개가 저절로 돌아가 바닥을 마주보았다. 당황스러웠다. 손가락 하나 조차 내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었다.

"뭐? 내가 우울한게 왜 그런지 몰라? 남성성을 보상하기에 충분한 금화? 웃기는 소리 하네! 다 너 때문이거든?"

머리가 띵했다. 내가 속으로만 되뇌이던 생각들을 이즈가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일까.

"너. 나한테 한 짓 떠벌리고 다녔지? 드레이븐이 나한테 말하더라. 탈론한테 대주는 주제에 시건방지게 까불지 말라고! 대체 어디까지 말한거냐? 겉으론 점잖은 체 하면서 뒤로는 남을 수치스럽게 만들기나 하고! 약속도 안지키는 못된 놈 같으니! 덕분에 아이오니아 기억조작약을 사느라 내가 얼마나 돈을 많이 썼는지 알아?! 그걸 남들이 먹는 수프에 타느라고 또 얼마나 힘들었는줄 네가 아냐구!"

화가 잔뜩 난 이즈가 내 머리를 빡빡 밟았다.

"고개 들어."

이즈의 명령에 따라 나는 표정도 관리하지 못한 채 고갤 들어야만 했다. 이즈가 분노로 떨리는 입꼬리로 한껏 미소지으며 말했다.

"너 오늘 뒈졌어. 그동안 나한테 한 짓 다 복수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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