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점이 빈번하게 바뀝니다. 






"작가님, 나 어때요?"
"뭐가 어때"


무심하게 카메라 렌즈를 만지작 거리는 나카하라에 아츠시는 조금 더 대담하게 다가갔다. 뭐야 저리 비켜. 가리잖아. 손을 휘휘 저어대며 자신을 날파리마냥 취급해버리는 그의 손의 손목을 가볍게 그러쥐었다. 


"야 놓아라 이거."
"대답해요"
"뭘"
"나 어떻냐고요."
"어떻긴 뭘 어때. 그냥 새파란 어린애인데."
"정말로 그렇게 생각해요?"


나카하라의 미간에 주름이 옅게 졌다. 짜증섞인 얼굴에 아츠시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는 얼른 다시 표정을 가다듬었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니까. 자신의 행동하나하나 신경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야 너랑 나랑 나이만 8살 차이나. 나한테 너는 그냥 핏덩이야. 핏덩이. 저리 꺼져. 귀찮게 굴지 말고"


어떻냔다.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다 나온다. 뭐래니 쟤가. 아직 미자딱지도 안뗀주제에. 자신의 표정변화 하나하나에 반응해대는 아츠시의 얼굴을 보며 나카하라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표정하나 숨길 줄 모르고 자신의 감정만 앞세워 불도저처럼 밀어부치는 것을 하나하나 다 받아주다가는 제 에너지가 바닥 나 버리고 만다. 그건 이제 지겨워. 질렸어 나는. 


-

나카하라에게 카메라 렌즈속에 담긴 아츠시는 늘 익숙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모델'인 아츠시는 낯설었다. 자신보다 키는 크지만 정신적인 키는 한없이 낮다고 생각했던 어린아이는 자신에게 카메라가 들이대지면 무섭도록 돌변했다. 늘 웃던 얼굴이 천의 얼굴로 바뀌는건 순식간이였다. 그런 모습이 자신이 아는 그 사람과 너무나도 닮아서 츄야에게 아츠시는 가까우면서도 먼 사람이였다. 


"쟤는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말야. 어린데 재능은 있는거같아. 그렇지 않냐?"
"어? 어"


카메라 렌즈에 눈을 고정시키고는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쿠니키다에 츄야가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스텝에게 이리저리 오더를 넣는걸보니 딱히 대답을 바란 질문은 아니였던듯했다. 쿠니키다가 저렇게 얘기하는걸 보면 아츠시도 만만치는 않은가보다. 이 업계에서 제 친구인 쿠니키다는 까다롭기로 유명했다. 물론 결과물이 까다로움과 정비례함으로 일은 끊임없이 들아왔지만. 한번은 사전미팅때 꽤나 잘나가던 모델의 면전에서 멀대같이 키만크고 마스크 반반하다고 하는게 모델이 아니라며 갖은 수치심을 다주고 쫒아내버렸다며 술자리에서 얘기하는데 알만했다. 분명 그 모델도 하늘높은 줄 모르는 콧대를 가지고 있었을거였으며 쿠니키다도 웃는 낯으로 그 앞에서 비수를 꽂았겠지. 하여간 너랑 척진게 아니라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며 츄야는 카메라를 들고 날아다니는 쿠니키다의 등을 보며 몰래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야 끝났다. 밥이나 먹으러 가자. 일찍 불렀는데 예정보다 늦게 끝나가지고 미안하니까 내가 쏜다. 뭐 먹고 싶냐!"
"두시간이나 기다렸다? 벌써 밥 때지났어-"
"고기 사줄께"
"콜. 나 대식가인거 알지?"


미안하긴 한건지 옆에 철썩 들러붙어서 이패 저패 내미는 녀석의 배를 툭쳐주고는 배고프다며 문을 가리켰다. 간만에 포식하겠네. 어깨에 둘러진 팔의 무게가 곧 쿠니키다가 사줄 고기의 양같아서 츄야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양껏 방출하고 있었다. 


"작가님!!"


익숙한 목소리에 두 사람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아, 수고했어요. 나카지마상도 결과물 검토하고 나한테 연락해요. 그 때 다시 미팅 잡죠."
"아...예. 그런데 식사하시러 가십니까?"
"뭐 식사겸 술자리겸이죠. 나카지마상도 식사 때 놓쳐가며 일했으니 허기질텐데 뭐라도 먹어요. 그럼 이만."


살짝 고개를 숙이며 돌아서는 쿠니키다의 몸을 멈춰세운건 아츠시의 말한마디 때문이였다. 나카하라는 무슨 말이 나올지 조금은 짐작이 가서 그래서 머리가 아파왔다.


"저도!! 합석하면 안 될...까요?"
"..네?"


쿠니키다의 어이없는 되물음이 이어지고 나카하라는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진짜 멍청하게 티 좀 내지마, 나카지마 아츠시. 깊은 한숨을 내쉬는 저를 알아챘는지 저를 흘끗보더니 쿠니키다는 가볍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미안하지만 나카지마상. 우리 사전미팅 때 잠깐 얼굴보고 정식작업은 이번이 처음 아닌가요?"
"예. 맞습니다."
"제가 공적인 자리에서 만난 사람을 사석에서 만나기까지 좀 시간이 걸리는 타입이라. 아쉽지만 안될거같네요. 이 친구도 낯을 좀 가리는 타입이고."


말의 톤은 높고 부드러웠지만 강단있는 거절이였다. 무슨 말이 하고 싶어 달싹거리는 입술을 가볍게 외면한 쿠니키다는 자신에게 두른 팔에 힘을 주며 아츠시를 등졌다. 분명 자신만 있었다면 아츠시는 다시 매달렸을터였다. 


"나 잘한거 맞냐?"
"어. 존나 잘했어"
"너 좀 애먹나보다? 그나저나 저 치비짱때문에 시간이 더 지났네. 우리 츄야 텅텅 빈 위 채워주러 가야지!"


뒤에 있는 아츠시가 신경쓰였지만 오늘은 넘기기로 했다. 저 녀석에게서 간만에 해방되는 순간이였으니까. 


예상치못한 곳에서 훅이 들어왔다. 나카하라상의 표정이 안좋을건 알았지만 쿠니키다 작가님이 더이상 할말도 없게 끊어버릴줄은 생각도 못했다. 물론 일자리에서 완벽함을 추구하는 타입이라는 건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번작업은 어떤 작업보다 신경을 많이 썼다. 남의 눈치를 안보는 성격이긴하지만 내가 잘보여야할 상대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래도 말이죠, 저 어깨에 걸쳐있는 팔이 썩 기분좋지는 않네.


-


"츄야...나 좀 봐봐"
"부르지마."
"불러도 안보니까..서로 봐야 무슨 말이라.."
"그래서!!!"


다자이가 해대는 같잖은 소리에 등을 돌려 벽을 보고 서있던 츄야가 몸을 돌려 다자이와 마주했다. 치가 떨리고 분했다. 이렇게나 일방적인 사람인데 그한테 한없이 흔들리고 약해져있는 자신이 싫어서 그래서 나카하라는 자신도 싫었다. 


"그래서, 이렇게 확인하니까 좋냐?"
"..."
"너가 나보다 높은 위치에 있다는거, 그거 하나로 나를 휘두르고 내 삶을 흔드니까 좋냐고!! 대답해 다자이!!"
"츄야, 그런거 아닌거 알잖아. 말 좀 들어- "
"아니면 뭔데? 내가 스케줄 잡고 있던 모델들, 걔네가 왜 너네 소속인 아쿠타가와한테 넘어간건데? 하필!! 걔한테!! 니가 여기에 연관이 하나도 없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냐고?!"


한숨을 쉰 다자이가 애달프게 츄야을 내려다 보았다. 악에받쳐 울면서 자신에게 소리치고 있는 츄야지만, 이렇게 될 줄 몰랐던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그래도 나는 니가 보고 싶었어 츄야. 


"웃긴거 말해줄까? 모델들이 죄다 아쿠타가와한테 가버리고 텅비어 버린 내 스케줄러에 꽉 차버린 이름이 뭔지 아냐?"


알고 있어서. 저렇게 비틀린 입술에서 처연한 눈매에서 한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이 닿는 입이 벌어지면 나올 이름이 무엇인지 자신은 알고 있어서  다자이는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 


"다자이 오사무. 너야. 너"
"..."
"나는 니가 너무 역겹고 경멸스러워"


니가 나한테 역정이나더라도 어쩔 수 없어. 나는 너를 사랑하고 그건 변하지 않을 사실이야. 뒤돌아서는 츄야의 팔을 다자이가 잡아 끌어당겼다. 츄야는 휘청거리긴 했지만 바닥에 붙어있는 다리에 힘을 주고 버티었다. 그리고 나머지 한손의 소매로 거칠게 눈가를 비비며 눈물을 닦았다. 됐어 이젠. 너에 관한건 신경쓰고 싶지 않아.  


"다자이씨. 이거 놓으시죠."
"츄야..."
"아, 여기까지 왔으니 앞으로 남은 두번의 촬영은 맡은 바가 있으니 제가 하겠습니다. 선페이도 만만치 않게 받았구요. 잘 부탁 드리고 스튜디오에서 뵙죠."


자신에게 한 손이 잡힌채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내뱉는 말들에 다자이는 그만 힘이 빠져버렸다. 한 때 자신의 연인이었던 그는 상처난 몸뚱아리를 내보이며 제발 놓아달라고 부탁하고 있었다. 내뱉는 말들의 가시들이 사실은 헛가시라는거 그것쯤은 자신도 알 수 있었다. 보기보다 무른 사람이니까. 네번의 촬영을 부탁했고 그 반절의 촬영이 앞으로 남았다. 두번의 촬영기간동안 이주일 남짓한 시간에 츄야는 누가봐도 걱정할 정도로 마르고 있었다. 필시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음을 전폐해버리는 나쁜 버릇 때문이리라 다자이는 짐작할 수 있었다.  


힘이 빠진 손을 느낀 나카하라는 팔을 풀고 밖으로 빠져나갔고 다자이는 잡지 않았다. 이제 그만 새장을 풀어주어야할 시기가 온것일지도 몰랐다. 


-


사진을 좋아하는 아마추어에 불과했던 자신이 업계에서 어느정도 도약하기까지 다자이의 도움이 없었다고는 할 수 없었다. 간접적인 도움부터 직접적인 도움까지 다 받았었으니까. 다자이가 스포츠 의류계모델에서 국내 최고의 모델로 오르면서 그는 어디든 나를 데리고 다녔고, 프로 작가들의 사진 기술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웠다. 그리고 다자이는 나에게 끊임없이 피사체들을 제공했다. 모델계에서 유망주로 떠오르는 애들을 나에게 배우고 익힌 사진의 실험체로 쓸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고, 나는 마음껏 내가 찍고싶은 사진들을 찍을 수 있었다. 그들은 나의 사진을 시작으로 유망주에서 어엿한 모델들이 되어갔고 내 손을 거치면 이름을 알릴 수 있다는 근거없는 소문까지 돌기 시작했었다. 덕분에 나는 끊임없이 일을 할 수 있었고 그에게 늘 감사했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그와 내가 삐그덕대기 시작하였다. 


-


다자이 오사무는 누가 봐도 탐낼만한 인재이자 남자였다. 그리고 다자이가 늘 웃어주는 대상인 저 남자보다 자신이 훨씬 매력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가갔던것 뿐이다. 나는 그를 가지고 싶었으니까. 그게 다였다. 


"오늘도 다자이상 언제 오는지 보고 계시는 거예요?"
"아...뭐"
"다자이상은 작가님이 이렇게나 좋아하는지 아시나 몰라요"
"괜찮아요. 제가 혼자 좋아하는건데요 뭘"
"작가님처럼 매력있는 남자가 왜 보기만해요? 제가 작가님 얼굴이였으면 가서 확! 꼬셨을텐데"
"칭찬으로 들으면 되는거죠?"


당연하죠! 자신의 어깨를 툭치며 웃는 히구치에게 같이 웃어주고는 다시금 현관으로 얼굴을 돌렸다. 이때쯤이면 올때가 되었는데...엄청 기다린거같지만 사실은 자신이 30분이나 먼저 와있는 상황이였으니까 지금쯤 오는게 사실은 맞는거였다. 


어, 왔다


"안녕하세요"
"아...안녕하세요. 이번에 같이 작업하게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라고 합니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얘기만 듣고 얼굴 뵙는건 처음이네요"
"네..."


사실 저는 얼굴 뵙는게 처음은 아니예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은 붉어진 볼로 대신하기로 했다. 누가 보면 웃을 일이였다. 아쿠타가와가 얼굴을 붉히다니 세상에. 자신이 게이라는건 모델계에서 어느정도 소문이 나 있었고 그 덕에 더 유명해진것도 있었다. 내 입으로 말하긴 뭐해도 일단 마음에 드는 남자는 다 쟁취해봤으니 딱히 남자가 고프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요즘 딱히 성에 차는 남자도 없었고. 제 눈앞의 이 남자만 빼고는. 


-


"츄야 응응, 나 오늘 작업 거의 끝나가"


물기묻은 손바닥을 대충 옷에 슥슥 부비고는 다시금 작업장으로 향하는 저를 멈춰세운건 그 남자의 웃음소리때문이였다. 낮게 깔리는 웃음소리가 자신의 귀를 타고 들어왔다. 계단에 비스듬히 기댄 기다란 몸이 웃음과 함께 작게 떨리고 있었다. 누구랑 통화하길래 저렇게나 즐거운걸까. 애인인걸까. 


"아니였으면 좋겠네"
"뭐가?"


제 머리위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급히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 다자이의 얼굴이 눈에 한가득 들어왔다. 


"뭐가 아니였으면 좋겠는데?"
"아무것도 아니예요. 근데 누구예요? 되게 즐겁게 통화하던데...애인?"
"귀신인데?"
"에-? 여자친구 있는 줄은 몰랐어요"


정말로 애인이였다니...제 마음에 스크래치가 난건  아는지 모르는지 다자이상은 제 머리위에 손을 올려 가볍게 헝크러트렸다. 그는 자신의 귀에 슬며시 말을 하고는 그 긴다리로 다시금 조명이 있는 작업장으로 향해걸어갔다. 그리고 저는 그 다리가 제 시야에 사라지고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다. 


"여자친구 아니고 남자친구"


세상에나, 다자이 오사무 게이였어. 희극과 비극이 교차하는 순간이였다. 자신과 취향이 같다는건 좋으나 그에게는 골키퍼가 존재하고 있었다. 


"촬영하러 안가요?"
"아, 네..!"
"왜 내가 게이라는게 충격이예요?"
"네? 아니요. 뭐 저도 게이니까 딱히 충격이랄건 없지만"
"어? 동성애자예요?"
"몰랐어요?"
"내가 귀신도 아니고 말을 안해주는데 어떻게 알아요-"


화들짝 놀라는 저에게 되려 그는 어이없어하며 되물었다. 하긴 생각해보면 그러했다. 그의 성격이라면 모를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워낙 마이페이스인 사람이니까. 그는 그의 테두리의 안의 것. 그 이상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분명 지금 그의 세상은 그와 그의 연인, 그 뿐이리라. 자신은 한낱 비지니스 파트너일뿐이니 자신의 취향이라는건 그에게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사실일테니까. 


뭐야, 생각하니까 되게 열받네. 내 머리속에서 만들어낸 생각들에 괜히 제 기분만 상해버렸다. 그가 그런 사람이라는건 이미 알고 있었는데 다시금 머리속에 되새겨버리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 짜증나. 


"그럼 말해줄께요..! 나도 게이예요!"
"알았어요. 일이나 하러가죠"


너털 웃으며 제 머리를 헝크러트리고는 휘적휘적 걸어가 버리는 그를 보며 나는 울상을 지어버렸다. 뭐야- 엄청 회심의 일격처럼 얘기했는데 돌아보는 반응은 동네 꼬마애한테나 하는 정도라니. 마치 어린애가 내가 골목대장이야! 라는 말에 어이구 알았어요- 와 같은 느낌이잖아. 젠장


"어어?! 다자이상 같이 가요!!"


저 긴다리로 빨리도 간다. 사진작가인 제가 모델보다 늦을 순 없지. 


-


"이번 작업 되게 오래하네. 이번 작가가 까다로운 작가도 아니라던데 하여간 지가 까다로워서 그렇지 뭐 에라이"
"왜 뭐"
"아냐 별거 아냐"
"뭐, 다자이상?"


몰라 새꺄. 소주나 더 시켜. 자신에게 눈을 흘기고는 막잔을 비우는 츄야에 입을 삐죽거리며 이모를 불렀다. 맨날 나한테만 그래. 


"이모!! 여기 두병 더 줘요!"


밉니곱니해도 사실은 지 애인때문에 먹고사는걸 지도 알고 나도 아는데 어째 칭찬은 들은 적이 없고 맨날 욕이다 욕. 지도 밖에서 나랑 술마시고 있으면서 지 애인은 놀고 있는것도 아니고 일하고 있다는데 그게 또 불만이시단다. 너 먹여살리느라고 니 정인이 고생을 하시잖냐. 분명 이렇게 말하면 지랄마- 라는 대답이 돌아올테지만.


"작가 생활에서 여러 피사체들 만나보는게 얼마나 중요한데, 그 일을 니네 사랑하는 그 애인님이 해주시고 계시는데 넌 맨날 뭐가 그렇게 맘에 안드냐? 나같으면 업어키우겠구만"
"얼씨구? 그럼 니가 가져가 임마"
"죄송하지만 저는 그쪽은 아니라서요- "
"지랄을 한다. 지랄을"
"니가 성격이 개같으니까 친구가 나밖에 없는거야"
"알아. 내 성격 개같은거"
"알면 좀 잘해라. 나한테도 그리고 그 애인님한테도 좀 죽이고 살아"
"아니!! 왜 맨날 작업을 남자랑하냐고! 세상에 여자작가는 다 죽었냐? 아니 들어봐. 이번 작업이 좀 길대. 난 그래도 아- 오늘 늦게 들어오나보다, 했거든? 근데 그게 아니라 그냥 작.업.이 길대. 이틀 삼일 이렇게 걸리는게 아니라 삼주나 걸린다는거야!! 아니 둘이 그렇게 오랫동안 있으면 정분이 안나겠냐고오!!"
"너 좋아한다며. 맨날 틈날때마다 연락준다매. 그리고 이번에 일주일 지났잖냐. 맨날 가는것도 아니라며"


너한테 말한 내 잘못이야 내잘못. 에라이. 쿠니키다한테 다 말하진 못했지만 그 작가도 이쪽이라는 소문이 무성했고 그리고 그 소문이 뜬구름이 아니라는건 제 눈으로 확인한바가 있었다. 저번에 다자이와 안면이 있다던 모델과 작업을 한적이 있었는데 그 모델의 그 당시 애인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그 작가였다. 그 때는 자신도 그리고 그 작가도 딱히 뜨기 전이였고 다자이도 이제 막 데뷔한 신인이였던 시절이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그 이름을 여기서 다시 들을줄이야. 알고 있다. 그가 나를 좋아해주는것도 잘 시간도 제대로 없이 쇼연습에 몸가꾸고 화보에 여러 작업하느라 바쁜데 짬내서 전화해주는것도 너무 고맙다. 그런데 그냥 제가 마음이 쓰이는거다. 워낙 모델계에 커밍아웃한 사람이 많고 일반사람들보다 보기 흔하다고 해도 그 사람들의 타겟이 다자이가 되지 말란법은 없으니까.
   
"넌 몰라 임마. 내가 얼마나 불안한지"
"그래 니가 얼마나 불안한지 나는 모르겠는데 니가 니 애인님을 매우 아주 정말 죽을 듯이 좋아한다는 건 알겠다. 내가 너 땜에 제 명에 못살지 암. 야 걱정그만하고 술이나 마셔. 니가 다자이상보다 못난게 뭐가 있다고 이렇게 뒤에서 끙끙대고 그러냐? 새끼 맨날 지 잘난척을 다 하고 다니더니 자존감은 또 쓸데없이 낮아요-"
"쿠니키다 돗포.. 많이컸다? 나한테 훈계도 하고오-"
"어휴. 나온 내 잘못이지 내잘못이야. 어? 야?!야?!!!"


갑자기 술병을 들고 입으로 털어버리는 츄야에 그저 저는 병신같이 손을 휘젓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이 새끼 왜이래 오늘 진짜. 술은 바닥이 나버리고 결국 빈병을 땅바닥에 떨어뜨려서 깨버리고 아주 그냥 가관이다 가관이야. 눈을 풀리고 진짜 지랄도 병이라더니. 술도 잘 못하는 새끼가 술마시자고 할 때 알아봤어야 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내가 너랑 친구먹고 있냐. 연신 이모님께 죄송하다고 사과를 하는건 일을 친 나카하라 츄야가 아니라 저였다. 


"야아 쿠니이키이이다아- 다자아이가아 자카새키랑 해애로캐가써어- 이 모댄새끼가-"
"어?"
"아아 지인짜아아..! 그러어니까아-"
"야야 알아들었어 알아들었다고 곱게 닥치고 자"


아하. 그래서 얘가 이렇게 나를 붙잡고 징징댔던거군. 이제야 이유가 드러났다. 그럼 그렇지. 그나저나 해외로케라니 다자이 오사무, 그렇게 유명해졌어? 얼굴 자주보이긴 하던데... 아님, 작가가 존나 유명한가?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는 츄야가 괴성을 지르며 손을 휘적거렸다. 싫다고 고개를 휘휘젔더니 팔도 같이 휘젔기 시작했다. 씨발. 야 나카하라 츄야 잠시만. 


"미친 그만해- 밖이야"


온갖 눈치란 눈치는 제가 보고 옆구리를 찌르며 하는 말이 들린건지 안들린건지 다리에 힘이 풀려 쓰러지려 하는 츄야를 급히 잡았다.  아 존나 피곤한 인생이여. 썅. 결국 팔을 제 어깨에 걸고는 질질 끌었다. 


"이모님- 계산이요"
"어휴. 총각 괜찮겠어? 저 총각 완전히 맛이 갔는데"
"아...예 뭐, 제가 데려가야죠. 뭐 어쩌겠습니까. 그나저나 죄송합니다"


괜찮다며 연신 안쓰러운 눈초리를 보내주시는 가게 이모님께 거듭 사과를 하며 츄야을 끌고 나왔다. 너 오늘 자고 내일 보자. 내가 네 모가지를 짤짤 털어줄줄 알아. 그리고, 다자이 이야기도 좀 듣고.  


-


눈을 뜨자마자 감아버렸다. 아니 의지라기보단 눈을 감아야만했다.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거라곤 앓는 소리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일어났냐"
"야- 아흐- 나 왜 여깄냐?"


콧웃음을 쳐대는 쿠니키다에 뭐라고 대꾸하기도 힘들었다. 뭐야 아무말 없이 콧웃음이나 치고 앉아있고. 


"너 임마 어?! 내가 어제 일을 생각하면 말이야 어?! 내가 너 데려와서 여기 재워준거에 감사해야해. 어제 니가 얼마나 진상이였는줄 아냐? 술병을 깨질않나 팔을 휘저어대질 않나...내가 동네 창피해서!!"
"내가 그런짓을 했다고? 지랄마"
"야 이모님한테 물어봐. 아냐 어제 그 자리에 계셨던 모두가 증인이야. 내가 이모님한테 얼마나 사과한줄 아냐고!! 이 자식아!!"


쿠니키다가 제 모가지를 부여잡고 짤짤거리는데 속이 울렁거렸다. 안그래도 머리아픈데 이 새끼가 자꾸 흔들고 앉아있네. 놓으라고 말도 못하겠다. 나 어제 뭐했길래 저런 짓을 했지. 순간, 쿠니키다이 한숨을 푹 쉬더니 제 목을 짤짤거리던 손을 놓았다. 


"말해 뭐한다냐. 다 지난일을"
"너...뭐 원맨쇼 찍냐"
"그나저나 다자이상 작가랑 해외로케를 갔다고?"
"헐, 너 어떻게 아냐?"
"너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야 어제 너 얼마나 진상이였는지 더 얘기해줄까?"
"내가 그 얘기도 했냐? 야 그래 말나온김에 너한테나 얘기하자. 다자이가 작가랑 여행을 갔거든? 아니 존나 갔는데 씨바알 그 작가새끼가 게이라고오"
"야야 질질짜지말고 얘기해. 그나저나 작가가 게이야? 걱정하는 이유가 있었구만"
"안그럼 내가 걱정을 왜하냐? 다자이 그 새끼 넘어가기만 해"
"니가 보기엔 어떠냐? 니 매력이 쩔어 아님 그 작가 매력이 쩔어"
"물어볼걸 물어봐라 당연한거 아니냐? 당연히 나지"
"그럼, 쓸데없이 걱정하고 있는거네"
"아니 들어봐. 둘이 같이 있다가 그 작가가 딴 맘먹고 어?! 다자이 덮치면? 그럼 어떻게 해?!!!"
"아 몰라. 야 나한테 백번 얘기하지 말고 다자이상한테 바로 다이렉트로 얘기하면 되잖냐"
"뭐라고?"


"그 새끼랑 자지마"


쿠니키다가 담담하게 내뱉는 말에 사레들릴 뻔했다. 지 애인 아니라고 아주그냥 막말하는구만? 무슨 넘겨짚듯이 그렇게 얘기하냐 아이고 머리야.


"닥쳐 이새꺄. 아 이 도움안되는 새끼"
"알았어. 닥칠테니까 아침이나 먹고 니네 집 좀 가라"


하나밖에 없는 친구가 저를 쫒아내려고 안달이라니. 참으로 인생이 고달프다 나카하라 츄야. 어휴. 제 몸을 쓰담쓰담해주며 나카하라는 제 나름대로 위로를 했다. 물론 쿠니키다는 그런 츄야을 보며 고개를 가볍게 저었지만. 


-


아아, 로마의 마지막밤은 이렇게나 허무했다. 이 새벽의 호텔의 수영장에는 저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가볍게 걸터앉아서 발을 담궈 살랑살랑흔들고 있으니 발에 닿는 물길이 발등을 덮을듯말듯했다. 당신과 내 관계같아. 한숨을 푹쉬고는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사실은, 로마까지 오지 않아도 되는것이였다. 다자이상이 딱히 탑모델도 아니였는데 자신이 바득바득 우겼다. 굳이 그를 데리고 해외로 로케를 촬영하러 간다고. 물론 여기 투자된 돈의 절반은 제 사비가 들어갔기에 허락받은거였지만. 처음에 그를 데리고 오면 조금이나마 더 사적인 관계가 될지도 모른다는 어설픈 생각이 확신으로 바뀌어서 무작정 실행했는데 글쎄 결과는 아직도...비지니스 관계. 딱 거기까지였다. 


"뭐해요?"
"으아 깜짝이야.."
"뭘 그렇게 놀라"
"그거야 그렇게 소리도 없이 와서 말걸면 놀라는게 당연하잖아요"
"흐음. 근데 이 시간까지 뭐하고 있어요"
"아니..그냥 내일 귀국한다고 하니까 잠이 안와서요. 다자이상이야 말로 지금까지 안자고 뭐해요?"
"아, 전화한다고"
"애인님이랑?"
"뭐, 그렇죠?"


자신의 옆에 털썩 주저앉아 같이 발을 담그는걸 자신은 눈에 한가득 담고 있었다. 바닥을 짚고 있는 손가락이 꼼지락거렸다. 그의 팔을 끌어당겨 제 옆에 붙여놓고 싶었다. 그의 손바닥과 내 손바닥이 마주닿았으면 좋겠어. 속으로 수없이 되뇌었지만 정작, 그에게 전해질리는 만무했다. 길다란 다리를 물에 넣으니 물은 어느새 그의 발목을 넘어서 올라와있었다. 와, 모델은 다르구나.


"아니, 츄야가 걱정을 하더라구"
"츄야?"
"아아, 내 연인"


연인이라니 저런얼굴로 제가 그 대상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입에서 지칭하는 연인이 나였으면 얼마나 행복할까. 제 바램들은 끝도 없이 욕망들을 제 속에서 펼쳐내었다.  


"아아 무슨걱정이요?"
"작가님이랑 정분나지 말라구요. 되게 웃기죠?"
"애인분이요?"
"네"
"...똑똑하시네요, 애인분"
"네?"


앞을 보고 있던 고개를 틀어 다자이상을 보고는 턱을 괴었다. 츄야-라는 그 분. 다자이상보단 훨씬 촉이 좋으신분인가봐. 되게 눈치도 빠르시고. 나 한번도 본적 없는데 왠지 간파당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고 해야하나. 


"제가 다자이상 좋아하는건 어떻게 아셨을까요? 애인분"
"...아?"
"나 그 분 한번도 뵌적 없는데 신기하시다. 어떻게 내가 다자이상 좋아하는지 아신거지?"
"아쿠타가와상?"
"이상해요? 아니 애초에 이 해외로케자체가 이상하지 않아요?"


눈썹을 찡그리는 얼굴에 슬핏 웃음만 나왔다. 그도 그럴게 그는 전혀 짐작하지 못한 것 같았으니까. 뭐야 정말로 나혼자만 설레발 친거였어. 


"그냥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애초에 국내에서도 충분히 끝낼 수 있는 일이고 이렇게까지 기한을 늘릴 필요도 사실은 없었어요. 알잖아요. 나도 그리고 다자이상도 이 업계에서 아직까진 기반 별로 탄탄하지 않은거"
"..."
"그냥 둘이서만 도망오고 싶었어요. 일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온거 알아요. 순전히 내 욕망으로 진행시킨거니까"
"잠시만, 나 츄야랑 그만두고 너한테 갈 생각 없어"
"별로 안그만둬도 상관없어요"
"그래. 알아줘서 고맙-"
"굳이 끊어야 나랑 뭘 할 수 있어요? 뭘 그렇게 어렵게 생각해요?"
"...뭐?"
"나랑 놀아주면 안돼요? 다자이상?"


찡그려진 미간조차 섹시한 다자이상의 두 볼을 부여잡고 가볍게 입을 맞추었다. 글쎄 누가 볼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여기에 그의 애인은 없었고 제 눈앞엔 다자이씨가 있고. 이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다만, 문제라면 아직 그의 양심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것 정도랄까. 애초에 마음까진 바라지도 않았다. 그의 애인이 오해했다면 그 오해를 단순한 오해가 아닌 사실로 만들어주고 싶었다. 


"지금 나랑 뭐하자는거야?"
"연애가 안되면 엔조이라도 좋아요"
"추우니까 먼저 들어갈께요"


조금은 굳어버린 표정이 웃겼다. 술을 마신것도 아닌데 대담해진 내 자신이 더 우스웠다. 발정난 강아지같은 꼴이라니. 마지막밤이라 초조했던 탓이려나. 씁쓸해진 마음에 물에 여직 담아두었던 제 발을 꺼내었다. 새벽바람에 말라가는 물방울보다 제가 더 빠르게 식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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