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기 카터와 스타크 부부가 살아 있다는 설정입니다.

*설정 날조가 존재합니다.


“안녕 토니!”

해맑은 인사에 시시껄렁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낄낄대던 아이들이 모두 피터를 쳐다봤다. 정작 다수의 시선을 받고 있는 피터는 생글생글 웃으며 토니만을 보고 있으니 얼떨결에 피터와 같이 손을 올려 인사하자 피터는 미련없이 척척 제 갈 길을 갔다.

“쟤 누구야?”

“페르도? 아, 아니다 피터 파커. 저 너드가 웬일이지? 쟤 걔잖아 이번 시험에서 1등한 애.”

“그래?”

점점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한참 바라보던 토니가 이내 고개를 돌려 시시껄렁한 농담을 하며 낄낄댔다. 저 멀리서도 선명하게 들리는 익숙한 웃음소리에 애써 괜찮은 척 웃던 피터가 복도에 주저 앉아버렸다. ‘아직은 울면 안돼.’ 몇 번이고 스스로를 다그쳐 봐도 새어나오는 눈물에 서둘러 일어난 피터가 고개를 푹 숙이곤 화장실로 달려 들어갔다. 수업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건만 화장실 제일 구석 칸의 문은 열릴 줄을 몰랐다. 조용해진 복도에 꾹 참는 듯 흐느끼는 소리가 새어나왔다.



“안녕.”

W. 해마



-피터, 보고해.

-이상 없습니다.

늘 같은 시간이면 똑같은 내용의 답장을 보내는 일이 벌서 익숙해져 버렸다. 원래대로라면 수업이 끝나자마자 튀어나가 델마르 샌드위치 가게에 들러 납작하게 누른 5번 샌드위치를 사고, 스파이더맨이 되어 퀸즈의 친절한 이웃 활동을 했어야 했지만‘그’사고 이후로 피터의 생활패턴이 조금 달라졌다. 하교 후엔 ‘그’아이가 안전하게 집에 들어갔는지 확인한 뒤 친절한 이웃이 될 수 있었고, 몰래 거미줄 용액을 만들던 수업 시간엔 혹시라도‘그’아이가 다치진 않을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귀찮은 일투성이였지만 피터는 윗선의 지시에 불만이 없었다. 자신으로 인해 생긴 사고였기 때문에 당연한 일을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

오늘 하루는 유난히 바빴다. 소매치기가 할머니의 가방을 훔치려는 것을 도와주었고, 커다란 나무 위에 올라가 내려오지 못 하는 고양이도 내려주었다. 은행을 털려던 일당들을 때려잡다가 부딪힌 어깨는 아직도 조금 욱씬욱씬 했다. 어둠이 내려앉아 반짝반짝 빛나는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으니 낮 동안의 소란은 모두 꿈인 것처럼 평화로웠다.

“캐런 누나 토니는 뭐 하고 있나요?”

“너와 멀지 않은 곳에 있어 피터. 약 100m 전에서 접근 중.”

“100m라뇨?”

“65m.”

친절한 AI는 아직 상황파악을 하지 못한 피터의 눈 앞에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 차 한 대를 보여주었다. 커다란 배기음을 내며 달려오는 차를 운전하고 있는 것은 토니였다. 커다란 배기음이 점점 가까워지는 것을 알아챈 피터가 앉아있던 빌딩 꼭대기에서 그대로 뛰어내려 거미줄을 쐈다. 피슉- 소리를 내며 뻗어간 것이 반대편 빌딩에 단단히 고정되자 이에 몸을 맡긴 피터가 속도를 줄일 생각이 없는 차 앞에 정확히 착지했다. 조금만 늦었다면 커다란 덤프트럭에 그대로 찌그러졌을 보닛엔 손자국 두 개만 남았다. 웅성이며 몰려든 사람들은 아랑곳 않은 채 운전석의 문을 여니 토니가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 차를 세울 때 마주친 눈동자에 서려있는 두려움을 읽었던 피터가 입술을 물었다. 일단 토니를 보내야 한다.

“프라이데이.”

“말씀하세요 스파이더맨.”

“운전 좀 부탁할게요. 토니 상태도 보고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프라이데이가 시동을 걸자 차 문을 닫아 준 피터가 차에서 한발 떨어졌다. 사이렌 소리가 가까워져 오고 있다. 이쪽으로 달려왔던 속도만큼 빠르게, 그러나 훨씬 안정감 있게 토니를 태운 차가 사라지자 그제서야 경찰들이 도착했다.

“Hey Man-! 늦었네요? 다행히 제가 수습했어요. 그럼 수고해요! 요잇!”

빠르게 자신의 말만 쏟아낸 피터가 상공으로 사라지자 얼이 빠진 얼굴의 경찰들이 스파이더맨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재빨리 자리를 벗어난 피터가 경찰들이 사라지는 모습까지 확인한 후 빌딩 옥상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캐런 누나, 프라이데이한테 연락 온 거 있나요?”

“약 2분 49초 전에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고 연락이 왔어.”

토니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한 피터가 오늘따라 더욱 답답하게 느껴지는 마스크를 벗어 손에 쥐었다. 뉴욕 밤 하늘에 수 놓인 수많은 인공위성인지, 눈으론 가늠도 안되는 저 멀리서 폭발했던 무엇인가였는지 유난히 반짝반짝 빛나는 풍경에 괜스레 눈물이 났다. 평소에 옆에 함께 있던 사람이 없어서인가 밤 하늘이 너무 아름다워서인가, 퉁퉁 부어 붉게 달아오른 눈가를 걱정하는 메이에게 피터는 모른척 오늘따라 밤 하늘이 너무 아름다웠다며 웃어넘겼다.


***


“안녕.”

저 멀리서 자신을 발견하곤 척척 걸어오는 모습을 봤으면서도 애써 모른척 했건만 어느새 따라온 것인지 불쑥 고개를 내밀며 인사했다.“안녕.”언제나 똑같은 인사를 하곤 아무말도 하지 않으면서 이 애는 늘 인사는 잘 했다.“안녕 토니 이따 우리집 갈래?”,“안녕 토니 어제 너네 아버지랑 우리 아버지랑 만났다던데.”인사 뒤에 따라오던 이유 가득한 말들이 익숙해졌는데 이 애는 그렇지 않았다. 언젠간 이 애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이는 자신의 착각이었다. 그 애는 언제나 토니의 예상을 벗어났다.‘왜?’토니의 머릿속엔 근본적인 궁금증이 생겼다. 아무런 바람 없이 다가올 리가 없다고 믿는 토니에게 피터 파커는 여름같은 사람이었다.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이 여름날의 열기마냥 뜨겁게 달아올랐다.

“안녕.”

그래서 저도 모르게 어정쩡하니 손을 올려 첫사랑과 마주친 사춘기 애 마냥 얼굴을 붉히며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단어를 내뱉었다. 급히 손을 내려 주머니 속으로 부끄러움을 숨기니 놀랐던 얼굴이 배시시 웃어보였다. 해사한 얼굴은 조금 슬퍼보이기도 했다. 토니는 빠르게 걸어 피터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심장이 쿵덕쿵덕 빠르게 뛰고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익숙했다. 운동은커녕 여유를 즐기는 토니에겐 익숙할래야 익숙할 수 없는 느낌이었것만 해사한 얼굴에 지배당한 토니는 그것의 이상함을 느끼지 못 했다.

그 날 이후, 토니의 눈은 피터를 좆았다. 정확히 말하면 복실복실한 뒤통수나 말랑한 볼 밖에는 보지 못 했지만 피터는 늘 토니의 주변에 있었다. 막상 보려고 하니 피터는 언제든 볼 수 있는 곳에 있었다. 보려고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었을 뿐.

“피터.”

요 며칠 내내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토니가 다가와 말을 거니 알고 있었음에도 피터는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어?”

“나랑 얘기 좀 하자.”

갑작스러운 토니의 말에 피터가 주춤거리자 “괜찮지? ”라고 재차 물어본 뒤 피터의 손을 잡곤 무작정 교실을 빠져나갔다. 수업이 시작할 것이라는 피터의 말에도 묵묵히 걸어가는 토니를 멈추려면 할 수 있었지만 피터는 굳이 그러지 않았다. 수업이 시작해 돌아다니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 도착한 두 사람이 어색하게 서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손 좀..”

“아, 미안.”

오래 잡고 있었던 것도 아닌데 축축해진 손바닥을 바지에 문대던 피터가 어색함을 참지 못 하고 먼저 운을 뗐다.

“무슨 일이야?”

“어?”

“할 말 있어서 데리고 온 거 아니었어?”

“아, 그랬지. 그러니까..”

이렇게 얼빵한 얼굴의 토니는 또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 피터는 몰래 웃음을 지었다. 예전을 돌아간 듯한 느낌에 잔뜩 날이 서 있던 분위기가 한결 편안해졌다.

“너 누구야?”

“기억 난 거야? 내가 누군지 알겠어?”

눈깜짝할 새 다가온 피터가 토니의 팔뚝을 콱 잡았다. 가까이에서 본 얼굴은 어딘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또다. 전에도 느꼈던 이질감에 토니가 미간을 찌뿌렸다. 거기다 피터가 던진 물음은 이 애 한테선 나오면 안되는 물음이었다.

“어떻게 안거야? 아니 그보다, 너 누구야. 피터 파커가 진짜 이름은 맞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너무 들떠버렸다. 피터가 입을 앙 다물곤 난감한 표정을 하자 답답하다는 듯 토니가 고개를 돌려 크게 숨을 내쉬었다. 교통사고 이후 온통 암흑뿐인 머리가 제일 답답했었는데, 이젠 이 애가 그 순번을 빼앗았다. 뭔가를 알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이니 토니는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든지 입을 열게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았다. “젠장.” 토니가 답답함에 작게 읊조리니 내내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피터가 주춤대며 한발짝 다가왔다.

“괜찮아..?”

“뭐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데 한마디도 안하고 있는 네가, 아니면 멍청이가 돼서 아무것도 못 하게 된 내가?”

“토니..”

“넌 알고 있지? 그 사고, 너도 알고 있잖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알려 달라며 애원하는 토니의 모습에 마음이 약해져 그만 입을 열 뻔했다. 순찰을 돌던 경비 아저씨가 두 사람을 발견하고 수업 중에 왜 나와 있는 것이냐며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피터는 엉엉 울며 토니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그 날 이후 피터는 눈에 띄게 토니를 피해 다녔다. 매일 아침 하던 인사도, 토니의 주위를 맴도는 일도 하지 않았다. 토니가 다가가 말이라도 걸어보려 다가가면 재빨리 자리를 피하거나 옆에 있는 아무나를 붙잡고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학교에서는 이야기를 하지 못 하겠다는 생각에 하교 후 후다닥 나가는 피터를 쫒아갔다.

“피터! 잠깐 얘기 좀 해!”

조그만게 얼마나 빠른지 저 멀리 가는 피터에게 큰 소리로 소리쳤지만 검은 차에 올라타 가는 사람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익숙한 차종과 희미하지만 익숙한 번호판에 토니가 얼굴을 찌뿌리고 있을 때 차를 대기 중이라는 해피의 연락이 왔다.

“나 지금 후문이야 이쪽으로 와.”

투덜대면서도 빠르게 차를 몰고 온 해피에게 검은 차가 간 방향으로 가라고 일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차를 발견했다.

“저 차 영감탱이 비서 차 아니야?”

“..전 잘 모르겠는데요.”

참 거짓말을 못 하는 사람이다. 해피를 한심하게 쳐다본 토니가 저 차를 따라가라고 하니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해피가 느리게 차를 몰았다.

“나 좀 심각해 해피. 내 말은 진짜로 보안과장을 새로 뽑을 마음이 있다는거야.”

진지한 토니의 말에 해피는 복잡한 차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 피터를 태운 검은 차 대각선에서 차를 몰았다. 익숙한 길로 가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본 토니가 입술을 잘근잘근 물었다. 예상했던 도착지에 토니의 눈치를 보던 해피가 “들어갈까요?”라고 물었음에도 토니는 말이 없었다. 영감탱이가 쉴드인지 뭔지 하는 기관에서 페기 이모와 무슨 작당을 벌이는지는 모르지만 그 일이 피터와 관련이 없어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왜 피터가 그들이 있는 이곳으로 왔는지 토니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집으로 가자.”

노발대발할 줄 알았던 토니가 잠잠하니 해피는 괜한 긴장감에 뒤에 앉아 무게를 잡고 있는 자신의 고용주를 흘끔 쳐다봤다. 혹여 저 안으로 쳐들어가 난장판을 만들어 놓지는 않을까 하여 또 다른 고용주에게 늘어놓을 변명을 생각했던 것이 아무 쓸모없는 일이 되어 기뻤지만 작은 고용주가 저렇게 조용히 있는 것은 좋은 징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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