惠氷傳



十話



피곤하군. 

방 장군은 말에 오르면서도 한림에게 여러 가질 일렀다. 아내가 아양을 떤다고 봐주질 말라느니 삼일에 한 번은 교육을 시켜야 한다느니. 남편이 확실히 조여야 한다느니. 


'그냥 가면 안되나.'


남의 아내에 대한 신경은 끄고. 아, 당숙에게 나는 남이 아닌가?


빈 수레가 요란하다더니 그런 짝이었다. 해괴하게도 목소리가 크면 다 되는 줄 아는 자들이 있다. 

창피하지. 이런 자가 지금까지도 방계에서 제일 지지 받는 자라니. 그것도 종가를 제치고 말이다. 한림은 혜빙이 눈을 매섭게 치뜨고, 제 속에서도 품고 있던 말을 대신 하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그건 현명한 짓은 아니었기에, 동의도 무엇도 해줄 수 없었다. 


'안채로 돌아가긴 했을까.'

'당숙의 경갑에 코를 세게 부딪치던데, 뒤늦게 코피가 나면 어떡하나.'

'유랑에게 처치는 받았겠지.'


어영부영. 다른 생각을 하며 건성으로 대답하고 있으려니 이윽고 방 장군이 말을 몰고 떠났다. 

고삐를 잡은 무사는 저번 방 장군의 방문 때도 수행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오래 버티는군. 당숙에게 잘못 걸리면 한 계절을 못 넘기고 죽어 나가는데 말이지. 

하나 아랫사람을 엄히 다루는 것은 귀족의 덕목이지 흠은 못되었다. 


'그보다 혜빙.'


곧바로 돌아서서 어딘가로 향하니, 함께 배웅하던 비복들이 의아해했다.





방문을 열고 들어서니, 

혜빙이 몸을 꼿꼿이 펴고 앉아있었다. 문이 열리기도 전부터 방문을 노려보고 있었기라도 한 양, 곧바로 닥치는 서릿발 같은 기세에 한림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왜 저를 탓하셨습니까."


울었나,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지간히 화가 치밀었는지 나오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연두색 포와 저고리는 벗고 백저포 차림이었다. 하지만 장신구도 그대로, 머리도 풀지 않고 그대로인 것을 보아하니 시중 받는 것을 물린 듯했다. 

코는 괜찮은 것인가. 붉어 보이는데.


"왜 저를 탓하셨냐고 물었습니다."

"그대야 말로 남편의 당숙부에게 못 하는 말이 없습니다."

"그럼 부인이 모욕 당하고 있는데, 거기서 남편으로서 한 소리 해줄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까?"


따져 물으니, 한림은 한숨을 쉬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한림이 올 때까지 계속, 계속 벼르고 있었다. 

왜 자신은 '아내 교육'이란 말을 듣지 않으면 안되었는가? 같은 여자로서, 그것이 입에 올릴 소리이기나 한가? 더구나 지기를 약속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건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치욕스러운 마음은 이해합니다. 유부녀의 면전에서 할 이야기가 아니었지요. 좀전의 일은 혜빙의 탓이 아닙니다."

"하면 어째서,"

"하나 당숙은 원래 그런 분이십니다. 도가 지나친 말씀을 종종 하세요. 

그렇다고 그리 곧바로 사납게 처신하면, 욕은 방 씨 종손인 제가 다 먹습니다. '방 가의 현 가주는 부인 교육도 안 시키는지 벌써 부인이 방종하게 날뛴다'라고요. 저는 그런 소릴 듣길 원치 않습니다."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데에 한참이 걸렸다. 

귀는 들었는데 머리가 받아들이지 못했다. 


"청컨데 제발, 바깥사람 앞에서만은 얌전히 굴어주실 수 없겠습니까."



뭐라는 것인가.

뭐라는 것인가, 뭐라는 것인가!


제 귀에 푸른 보석을 덧대어 보며, '아니, 그래도 밤하늘 같습니다.'라고 말해준 자였다.

장난 삼아 맨살을 만지면, 쓰다듬는 내내 숨을 멈추는 자였다. 

보고 싶은 책이 있다고 하면, 서재에 없던 책이라도 사서 가져다주는 자였다.


아니 이 사람은, 자신에게 얌전히 굴어달라 운운, 

아내 교육 운운한 자였다. 


"어찌 그런 말씀을…."


욕지기가 일었다.

한림은 자신의 첫 번째 지기였다. 오늘, 지란 부인을 만나기 전까지는 분명 그러했다. 매캐하고 쓰디쓴 감정이 뱃속을 가득 채워 견딜 수 없었다. 말로 다 할 수 없었다. 


"한림도 결국, 여인이 아니십니까!"

"말조심하십시오. 비복이 듣습니다."

"그것이 중요합니까!"


양친 아닌 사람과 이리 언성을 높인 일이 있던가. 

원망의 말이, 절제되지 못한 채 뱃속에서 그대로 튀어나왔다.


"저는 이런 집에 가둬두고,"

"이런 집? 오늘도 부인들을 초대해 잘 놀았지 않습니까."

"외출도 마음대로 못하고, 매일매일 꾸며야 하고, 식사도 제한되고,"

"다른 집 아녀자들의 처지도 다 똑같습니다."

"관복을 걸치고 매일 등청하니, 본인께서 정말 남자라도 되신 줄 아나 봅니다!"

"그럼, 당장 여인이 되어볼까요?"


한림이 크게 한 걸음 다가왔다. 


"가주로서의 권리, 재산, 이룬 것들, 모두 방계 인물 누구에게든 던져두고. 어디 여인이 되어 나태하게 종일 흐드러져 있어 볼까요? 그렇게 되면 과연, 지금처럼 아무 것도 안 해도 귀한 옷, 귀한 음식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까? 함께 팔려 가듯 늙은 남자의 재취(再娶)로 들어가지나 않으면 다행이지요. 아니 그렇습니까?"

"지금 제 상황이 남자에게 시집간 상황이랑 다를 게 뭐가 있습니까!"

"본인도 잘 알지 않습니까. 제가 진짜로 아내 교육을 한다고 회초리를 듭니까, 뭘 합니까."


한림은 아무렇지도 않게 또 그 단어를 내뱉었다.


"아녀자를 때리는 남자에게 시집가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아세요."


팽팽히 당겨지던 실이, 툭 하고 끊겼다.


이래도 더 참아야 하나? 천지신명이 뜯어말려도 참지 않을 것이다.


혜빙은 있는 힘껏 한림의 엉덩이를 꼬집었다.


"아야! 뭐 하는 짓입니까!"

"한림은 최악의 남편입니다!!"


반사적으로 피하는 한림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렸다. 원망스러워서 견딜 수 없었다! 

미워, 미워, 너무너무 미워!

도무지 힘 조절이 되지 않았다. 손바닥으로 때리는 걸로도 모자라 주먹으로 가슴팍을 퍽퍽 쳤다. 한림이 등을 돌리면 등짝을 두들겼다.

멍이 들 정도로 아프게 때리니 맞아만 주고 있기 힘들었다. 혜빙의 양 손목을 잡아채 억지로 멈추게 했다.


"그럼 남편을 때리는 부인은 뭡니까? 어찌 이리 체통도 지키지 않고…"

"이익."

"아!"


손목을 잡으니 그 잡은 손을 딱 하고 물었다! 

한림이 재빨리 손을 털어내 물린 자국을 보았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손가락 관절에 잇자국이 붉게 남아버렸다. 뭔 개도 아니고….


"꼴도 보기 싫습니다! 당분간은 건넌방에서 지내겠습니다! 들어오지 마세요!"


한림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방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미워, 정말 미워.

실망감에 치여 크게 멍이 든 듯했다. 방 장군인지 당숙인지 나발인지에 치여 아팠던 코는 새삼 더 욱신거렸다. 흥분이 극에 달해 지금 와서 코피가 터질 것 같았다.

뭐? 아녀자를 때리는 남자에게 시집 가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라고? 

반드시 본때를 보여주리라. 역으로 남편 교육을 시켜주지.

못할 게 뭐 있는가? 


이를 갈며 건넌방으로 갔지만, 그곳에는 침구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시비를 불러야 했다.





"그 상처는 무언가?"


등청하자마자 대내상 어르신께 보고하지 않으면 안될 일이 있었다. 한림이 올린 장계를 건네받는데, 문득 손에 난 상처가 눈에 띄어 물었다.


"개에게 물리기라도 했나?"

"…송구하오나, 아내가 문 것입니다."

"뭐? 혜빙이?"


대번에 사정을 짐작하고 허허 하고 웃었다. 한림은 부끄러워 그저 황망히 고개 숙일 따름이었다.


"내 사위가 아내 길들이기에 여간 애를 먹는 게 아니구먼."

"이런 여인이라고는 말씀 안 하지 않으셨습니까."

"당연히 그렇지. 나 대신 그 애를 상대할 남자를 붙여줘야 했으니."


서가 너머 어딘가에서 숨죽여 웃는 소리가 들렸다. 같이 정무를 보던 동료들이다. 필경 안 그런 척 해도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 자기들끼리 속닥거리고 있으리라. 온 중경에 소문이 돌겠구나. 한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래서, 그 애를 직접 부인으로 맞으니 어떠한가?"

"…총명하여 남편 말을 잘 알아듣고, 대등하게 앉아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은 기쁘지만, 반대로 고집이 세서 뭔갈 가르치면 통 받아들이려 하질 않습니다. 그뿐입니다."

"과연 그렇군. 실은 믿을 만한 소식통이 말해주었는데 말일세,"


장계에 묶인 끈을 풀고 촤라락 펼치니, 일필휘지의 글이 적혀있었다. 서경 지방의 조세 현황과 문제점이었다.


"내 넷째 여식이, 시집을 가서도 방종한 행실을 고치지 못한 것 같다고. 시댁 윗전에 대놓고 면박을 준다 하던데."

"…."

"딸아이 교육을 못 시킨 건 내 잘못이지. 자네가 고생이 많네."


서가 너머에서 속닥이던 소리가 멈추고, 이곳 대내상의 집무실 쪽으로 더 귀를 기울이는 것이 느껴졌다. 


"송구합니다, 어르신."

"여기선 장인이라고 불러도 되네."

"네, 장인어른."

"앞으로 많이 물릴 게야. 그럴 땐 손속을 두지 말고 매로 가르쳐도 되네. 내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나, 방 서방?"

"…네."


서가 너머 저들끼리 아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소문은 온 조정을 돌아 왕의 귀까지도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한낱 여염집에서 부부싸움이 그리 별일인가. 

그러나 신혼부부의 소식이라면 쉬이 화제가 될 법도 하다. 남자들은 그런 하잘것없는 단편 하나하나를 주워들어, 여인에 대한 인상을 만들어나갔다. 

자신은 한 번 부끄럽고 말 일이지만, 부인에겐, 혜빙에겐 평생을 갈 수도 있는 꼬리표였다. 처녀 시절부터 유명했던 여자였기에 불식시키는 일은 더더욱 어려웠다. 


필경 당숙이, 어제 돌아가는 길에 장인어른 댁에 들른 것이리라. 

한림은 조용히 아랫입술을 물었다.


"문제점은 이걸로 다인가?"

"좌사정 어르신과 상의하여 더 없는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서경 지방에 온천이 그렇게 좋다던데 말이야…."


뜬금없는 말에 한림이 고개를 들었다.


"별일 아니네. 부부싸움 해결에 도움이 될까 해서 꺼내 본 말이야.

장계는 선조성에 전달하겠네. 기근도 겹쳤다는데 해결되면 좋겠군."

"네."


대내상의 집무실을 나서며, 한림은 두 손 모아 옷소매로 손가락을 가렸다.

쓸데없는 소문이 더 나지 않길 바랐다.





해저물녘 퇴청하니 혜빙 대신 유랑 혼자 대문으로 마중 나왔다. 대기하던 노복에게 말고삐를 넘겨주며 물었다.


"부인은 어찌하고 있길래?"

"그게…."

"내 아내의 성정을 아니 망설일 필요가 없네. 언짢은 게 아니라 궁금해서 그래."

"그것이……."


유랑이 차마 대답하길 망설이길래 듣기를 그만두고 바로 안채로 향했다. 


안채 문을 넘어서면 바로 옆에 커다란 배롱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아직 꽃이 만개하기엔 이른 시기인데, 나무에서 푸르른 잎 하나가 팔랑거리며 떨어졌다. 

위를 올려다보니, 과연 혜빙이 태평하게 가지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속바지에 얇은 포 하나만 걸치고.


"부인!"


누가 볼까 무서워 소리치는데 혜빙은 대꾸도 하지 않았다. 

머리도 틀어 올리지 않고, 전부 늘어뜨린 것이 흡사 혼인 못 해 한 맺혀 죽은 귀신 같았다.

이러니까 유랑이 어쩔 줄을 모르지. 대체 어쩌자고 저 위까지 올라갔단 말인가?

그 사이 몇 명이나 되는 비복이 저 꼴을 보았겠는가. 사람이 불러도 대답을 안 하니 직접 올라가서 끌어내리는 수 밖에 없었다.


한림은 나무껍질의 울퉁불퉁 나온 부분을 잘 디뎌 올라갔다. 나무는 정말, 맹세코 평생에 한 번도 타본 적 없지만 근력으로 어떻게든 올라갔다. 

혜빙은 이미 한림이 올라오는 꼴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낑낑대는 한림과 달리 혜빙은 제멋대로 가지 위에 누울 수도, 매달릴 수도 있었다. 요령도 좋았다. 


"그 차림으로 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한림이 혜빙 있던 가지로 올라와 물었다. 관복에 온통 푸른 나뭇잎이 묻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혜빙은 책을 단호히 덮고 옆구리에 끼었다.


"보면 모르십니까? 독서지요."

"제 말은, 왜 속옷만 입은 차림으로 나무 위에 올라갔냐는 말입니다."

"사내라면 아녀자가 하는 일에 일일이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마십시오."


소인배도 아니고. 중얼거리는 뒷말까지 분명 똑똑히 들었다. 

뭐?


"혜…."


하지만 한림이 뭐라고 하기도 전, 혜빙은 저 혼자 나무에서 땅으로 착지했다. 연청색 속바지를 너풀거리며, 혜빙은 저벅저벅 안채 건넌방으로 혼자 들어갔다. 


한림 혼자 닭 쫓던 개 꼴이 되고 말았다.


"허."




11화에서 계속.



CHEONYE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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