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는 일기와 편지를 쓰는 일을 좋아했고 중학교 때는 학교 수행 평가 날에 글을 썼다. 그러곤 따로 불려가서 선생님께 다정한 칭찬을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글을 쓰며 뿌듯함을 느꼈다. 글을 읽는 일은 정말 싫어했지만. 고등학교로 올라가서는 수행 평가를 위해서 내 감성을 팔고 내 과거를 팔았다. 내 가족사와 내 어린 날의 시간을 사실대로, 그러나 불쌍하고 처참하게. 내 글의 점수는 언제나 최고점이었다.

나는 학교를 자주 빠졌다. 정상 시간에 등교하는 날은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안 가는 날도 많았다. 늦은 시간까지 잠 못 이루다 아침이 되고서야 등교를 준비해야 할 시간에 잠에 빠졌다. 당연히 난 일어나지 못 했고 학교에 늦었다. 햇빛에 잠을 설치다 설렁설렁 일어나면 점심이 지나고였다. 나는 이런 지속되는 출결 문제를 비롯해 술, 담배와 같은 각종 문제 덕분에 평판이 좋지 못 했다. 아, 그렇다고 누굴 괴롭히거나 때리는 짓은 하지 않았다. 아이러니하게도 겉보기와는 다르게 인권을 중요시했으니. 그래서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 하는 학생이었냐고 물으면 그 반대였다고 답할 수는 있겠지만, 학습 분위기를 중요시하는 친구들은 나를 싫어했을 것이다.

당연하게도 나는 작문 수행 평가가 있는 당일에서야 그 사실을 알곤 했다. 일주일 전부터 이 수행 평가를 준비해온 반 아이들에 비해 내겐 수행 평가를 치룰 수 있는 그 한 시간이 턱 없이 부족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난 매번 주제를 보고 떠오르는 말들을 단숨에 써내려갔다. 수정을 거치지도 못 한 초고본을 내고 나서는 아쉬움이 밀려왔다.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헤밍웨이가 글은 인생과 같다고 몇 번이고 고쳐쓰는 것이라 했는데, 나는 글도 고쳐쓰지 않아서 인생도 못 고쳐쓰는 것 같다는 생각. 

수행 평가 점수를 발표하는 날이 되었다. 또, 최고점이란다. 이번엔 반에서 나만 최고점을 받았다. 선생님은 점수 옆에 심금을 울리는 글이라며 짧은 코멘트도 달아주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이었다. 반 아이들은 교탁 앞에서 내 글을 칭찬하는 선생님에게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몇몇 아이들은 그렇게 잘 썼으면 읽어나 주라며 자신의 노력에 대한 박탈감을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민망했다. 그래서 내 글을 읽지 못 하게 했다. 선생님은 아쉬워하며 나를 교무실로 따로 불렀다. 

글을 정말 잘 쓰는데, 추후에 장래희망을 이 쪽으로 생각하고 있냐며 물었다. 생각이 없었다. 글을 쓰는 일이 재미있다가도 가난한 우리 집을 생각하면 작가는 돈 벌어먹긴 틀렸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아쉬워하며 재능이 아깝다고 하셨다. 문예 창작과에 가면 좋을 것 같단다. 난 그런 과가 있는지도 모를 만큼 대학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저 생각해 본다고 하고 넘겼다.

2학년 때도 작문 수행이 여러 번 있었다. 이번엔 다른 선생님이 수업을 맡으셨지만 난 교무실로 또 불려갔다. 글을 정말 잘 쓴다며 문예 창작과에 가라고 추천하셨다. 이 선생님은 모든 아이들을 티나게 싫어하셨는데 다행이라 해야 할지 내 글은 좋아하셔서 나를 좋아했다. 그래서 나의 결석을 아쉬워하고 내가 등교하는 날이면 멀리서도 나를 반겼다. 나는 그런 선생님의 관심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아이들이 선생님의 태도에 차별이라고 항의할 정도였으니. 선생님은 자기가 무슨 차별을 하냐며 넘기고는 나에게 남산 도서관에서 하는 예비 작가 수업을 수강할 생각이 있느냐 물으셨다. 나는 아이들이 불만을 품는 그 분위기가 싫고 민망해서 안 한다고 거절하고는 잊어버렸다. 내가 그 제안이 생각났을 땐 이미 신청 기한이 지나있었다. 선생님은 도서관에 전화를 해 사정사정을 하시며 나를 그 수업에 보내셨다. 나는 이게 차별이 아니면 무엇인가 고민했다.

내 생활비를 위해 알바를 하던 그때의 나에게 수업은 귀찮고 멀었다. 거리가 멀어서 마음의 거리도 멀게 느껴졌는지 나는 그 수업을 한두번 가고 가지 않았다. 한두번 가서도 졸기나 했다. 내가 마지막으로 갔을 때 내 반을 담당하던 작가님께 내 글을 보여드렸다. 작가님은 내 글을 읽으시고는 정말 잘 쓴다며 당신께서는 수필을 쓰지 못 하신다고 본인보다 잘 쓴다고 칭찬하셨다. 뿌듯했다. 내가 그 수업을 포기한 것을 지금은 후회한다. 어른이 되고 보니 그런 기회는 흔치 않다. 지금은 배우고 싶고 이 일을 할 생각이 있다. 내 실력이 그만큼 자라질 못 해서 문제지만. 

더 많이 써야 하고 많이 읽어야 하는데, 지금도 단번에 쓰고는 다시 읽기가 싫어 고치질 못 한다. 이게 내가 한참 모자르고 부족한 부분인가 보다. 언제부터인지 글을 쓰는 것이 두렵다. 계속되는 칭찬을 받다 보니 난 내가 정말 잘 쓰는 줄 알았다. 뒤늦게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어보니 내 실력은 미미한 수준이더라. 초중고 내내 다독상을 수상하던 친언니도 내 글을 읽어보고는 중고등학생이 썼으면 잘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이제 어른이니 잘 모르겠단다. 요즘엔 내가 열심히 써도 나만 읽는데 써서 무얼 하나 한 명이라도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내 글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혼잣말 같다는 생각. 혼잣말은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어서 혼잣말이다. 내 글도 대답해 주는 사람이 없는 혼잣말인 걸까.  그래도 나는 언젠간 꼭 책을 낼 거다. 조각글을 모은 산문집을 내서 내가 죽은 뒤에도 나라는 책을 세상에 남기고 싶다. 내가 여길 떠나도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가 그리울 때 나를 읽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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