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스터 우의 방에서 그린닌자에 대한 예언서를 발견한 이후 닌자들은 악의 제왕을 물리치고 평화를 가져올 그린닌자를 꿈꿨다. 동기야 어쨌든 그린닌자는 그들의 목표가 되었고, 자연스럽게 훈련에 매진하게 되었다.

닌자들 중에서도 카이는 특히나 그린닌자에 대해 집착했다. 힘이 있으면 소중한 것을 지킬 수 있어. 사랑하는 동생도. 소중한 동료도. 카이는 쟌처럼 뛰어나지도 콜처럼 무거운 것을 번쩍번쩍 들 수 있는 힘을 가지지도 제이처럼 센스가 있지도 않았기에 남들 보다 노력할 수 밖에 없었다. 닌자들이 떠난 훈련장에서 스핀짓주 자세를 훈련하는 건 카이의 일과 중 하나였고, 대개는 카이 혼자 있었다.

오늘 훈련장 문을 열었을 때 카이는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이 있는 걸 알아챘다. 얼마 전에 수도원을 찾아온 꼬맹이. 사부님의 조카이자 가마돈의 아들인 로이드. 그를 데려온 건 어떤 남자였고, 그는 로이드가 수도원에서 닌자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카이는 자신도 고된 닌자 훈련을 힘들어 하는데, 어떻게 저 꼬마가 이겨낼 수 있을지 궁금했다. 사부님도 딱히 조카를 가르치는 걸 반기지 않아 보였고, 그 남자가 몇 마디 말을 듣고 사부님은 로이드를 가르치기로 했다. 

지금 로이드가 하는 건 얼마 전 배운 자세였다. 실제 상황이 아니라서 진검 대신 나무 칼을 들고 휘둘렀지만, 카이에 눈에는 적을 무찌르고 마무리 짓는 자세가 그려졌다. 로이드는 다른 닌자들에 비해 습득력이 빠른 편이었고, 카이는  그 점이 약간 질투 났다. 내가 저런 재능을 가졌더라면 좋았을 텐데.

로이드는 남자가 수도원을 떠난 이후로 훈련에 매진 했다. 이별의 아픔을 잊어버리는데 훈련에 집중해야 하는 것 만큼 좋은 건 없었다. 같이 살 때, 로이드가 잠이 들면 남자는 자세를 잡고 훈련했다. 시간이 흘러도 몸이 잊지 않기 위해서. 아크로닉스와 크럭스가 나타나지 않은지 꽤 시간이 흘렀지만, 미리 대비해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남자가 모르던 건 그걸 알게 된 로이드가 남자의 훈련을 지켜보았던 것이다. 로이드는 궁금했다. 왜 그렇게 밤마다 훈련에 매진하는지. 혼자가 된 지금에서야, 확실하게 느낀다. 칼을 허공에 휘두르며 바람을 가르고, 보이지 않는 적을 배면서 정신을 집중하고 정돈하며, 자신의 목표를 잊지 않는 것.

스네이크 군단이 닌자고에 다시 나타나고, 닌자들은 그들의 음모를 막으러 활약했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아마 동료 들과 함께 싸우겠지. 로이드 대신 뱀부족의 봉인을 하나하나 푸는 동안, 카이는 고민했다. 이게 과연 맞는 일일까? 닌자고를 구하던 닌자인 자신이 닌자고를 위험에 빠뜨리는 아이러니라니. 파이토에게 지도를 넘긴 이상 위대한 파괴자가 깨어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아이언둠이 사라진 지도 오래되었고, 원래 시간대로 돌아갈 수 있는 건 벌써 포기한터였다. 지금의 로이드는 자신이 아닌 닌자들과 함께해야 했다. 그게 로이드한테 힘들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옳았다. 아마 로이드를 다시 볼일은 없을터였다. 자신의 계획대로라면 로이드는 그린닌자가 되어 닌자 팀을 이끌어야 했다.

아크로닉스는 수도원에서 로이드를 지켜보았다. 카이가 로이드를 두고 간 이후로 로이드의 마음에 작은 틈이 생겼다. 잘만 이용하면 닌자들의 리더가 되는 대신 자신을 따라올지도 몰랐다. 카이는 원래 흐름대로 돌아가게 만들기 위해 로이드를 수도원에 맡겼고, 자신은 뱀 부족을 풀어주고 있었다. 모든 것이 계획된 것임을 알때 일그러지는 표정은 정말 볼만할 것이다. 로이드의 방 근처에 카이가 이동한 위치를 표시한 지도를 흘려두기만 하면 되는 거야.

오로보로스에서 카이는 예언이 실현되길 기다렸다. 위대한 파괴자가 깨어나고, 닌자들이 로이드를 받아들여 그의 동료가 돼서 팀을 이루는 것. 파이토는 오로보로스를 발견하고 그의 뜻대로 위대한 파괴자를 깨울 방안을 찾아다니고 있었고, 모든 게 완벽했다. 달빛을 받은 오로보로스는 아름다웠고, 위대한 파괴자가 잠들어 있는 것만 빼면 꽤 괜찮은 곳이였다. 익숙한 인영이 카이의 눈에 띄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카이는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로이드가 왜 이곳에 있지? 무언가 잘못된 게 분명했다. 로이드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자취를 감추는 그림자를 발견했다. 지도가 일러준 대로 이곳에 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남자를 만나면 무척 화내고, 불만을 품으며 투덜거리겠지만, 그래도 반가울 거야. 로이드는 수도원이 불편했고, 적당한 때가 되면 빠져나갈 생각이었다. 닌자들은 자신에게 잘 대해주려고 노력했지만, 로이드에 마음엔 그들이 비집고 갈 틈이 없었다. 기회가 주어지자 로이드는 도망쳤다. 수도원을 떠나 잊힌 고대도시에 이르러 그리운 이를 찾기 위해 이곳에 왔다. 닌자고의 평화 유지나 정해진 운명 따위에는 관심 없었다. 남자가 자신을 위해 모든 걸 계획한 걸 알게됬어도 딱히 원망스럽지 않았다. 닌자들을 위해 희생하는 그린닌자는 이곳에 없었다. 오직 사랑을 갈구하는 인간만이 있을 뿐이였다. 이곳에 오기 전 로이드는 내일차를 우린 물을 마셨다. 찻잎을 직접 맞은 것보다 효력은 덜할 테지만, 남들보다 빨리 성장하게 되겠지. 성장하고 있는 몸으로 남자를 뒤쫓아 마침내 잡았다. 서로 맞지 않던 시야는 이제 서로를 똑바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럴 수는 없다는 표정으로 두려워하는 남자에게 로이드는 가까이 다가갔다. 오랜만이야, 당신이 원한 대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내 선택에 후회 안 해. 세상을 구하는 건 닌자들이 해줄 테니까. 그러니까 주어진 운명에 휘둘릴 필요 없어.

카이는 로이드의 말에 물러서는 걸 멈췄다. 로이드의 미래를 위해서 자신의 희생이야 상관 없다고 생각했었다. 미래에서도 과거에서도 그 생각은 변함 없었고, 이 각오가 깨지지 않으리라 맹세했었는데, 그린닌자가 아닌 카이의 연인을 택한 로이드를 보니 허망하게도 모든게 무너졌다. 로이드의 말은 달콤했고, 달빛에 비친 그는 어느때보다 아름다웠다. 로이드를 위해서란 명목으로 닌자고를 위험에 빠뜨렸고, 로이드가 닌자들의 곁이 아닌 자신에게 나타난건 운명의 장난일지도 모른다. 그린닌자가 사라졌으니 이제 카이가 돌아갈 미래는 없었다. 카이는 허탈한 마음으로 로이드와 입을 맞추었다. 애초에 카이에게 선택권 따위 없었을것이다. 운명은 카이를 다시보고 싶어하는 로이드의 편을 들어줬고, 카이에게는 절망만을 안겨줬으니까. 그래, 로이드 네 말이 맞아. 주어진 운명 같은건 없는거야. 너만 행복하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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