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은 그 얼굴을 알아보자마자 뒷걸음질쳤다. 그걸 못 볼 이가 아닌 게 유감이었다. 그는 실핏줄이 터져 새빨갛게 출혈된 눈으로 번뜩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눈은 비슷한 색인 사이렌보다 더 직접적인 방법으로 그에게 위험을 알렸다. 영원이 한발자국 뒤로 물러나면 관리는 3척씩 축지법을 쓰는 것마냥 귀신같이 다가왔다. 실제로 맞는 말일지도 몰랐다. 영원은 바로 눈앞에 다가온 위압적인 존재에 입 한번 벙긋하지 못했다.

 

“그게 모든 걸 망가뜨릴거야! 이제는 다 틀렸어, 아아, 다 죽어버릴거야, 전부.” 

관리는 분노가 울컥 차올라 그를 한 대 칠 듯 손을 들었다가 따라 올라온 자기연민으로 그 손으로 자신을 껴안았다. 그는 눈물까지 고인 눈으로 눈앞의 이를 담으며 말을 이었다.

 

“이건 전부 너희들 책임이야! 영원히 지옥불에 타 고통받아도 시원찮을 놈들! 하지만 지옥조차 이제 사라질거야. '죄악'이 벌써 6층까지 올라왔어. 아직까지 죽은 존재가 없다는 게 참 놀랍고 웃기지. 하나도 웃기지 않아. 어떡하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내가 볼 수 없는 건 나보다 계급이 높은 신들뿐인데. 왜 ‘그건’ 볼 수 없지? 인간이나 요괴는 다 훤히 보이는데, 아, 너무 무서워, 상제님은 왜 아무 말씀 없으시지, 불러도 답해주시질 않아. 연결이 끊겼어. ‘죄악’이, ‘죄악’이 너무 자욱해서 하늘까지 닿질 않는거야. 우린 여기 갇혔어. 널 당장 찢어 죽여버리겠어. 갈갈이 혼을 조각내어 용암에 담가주지. 젠장, 그런데 용암은 전부 저 아래 있잖아. 저 아래에 어떻게 들어가. 죽어버릴텐데, 죽어버릴거야. 그래. 다 망했어, 돌아갈 수 없어, 세상이 멸망할거야.”

“고작 너희들 때문에.”

 

그의 눈은 혼란과 공포로 가득 차이었다. 크게 확장된 공동에 영원의 모습이 비추었다. 그는 눈앞의 광기에 겁을 집어먹었다. 중얼중얼 무언가를 계속해서 내뱉는 관리는 이제는 영원의 존재까지 인식할 수 없는 듯했다. 영원은 빠르게 그에게서 벗어났다. 그의 횡설수설한 말로 알아낼 수 있는 건 있었다. 그 제멋대로인 사람이 다시 제멋대로 행동했구나. 그것도 커다란 규모로. 유담을 찾아야 했다. 그 다음은 제대로 정해두지 못했다. 유담을 찾고, 화를 좀 낸 다음에, 이 일을 어떻게 해 볼 방향을 찾을 것이다. 그리고 돌아가야지. 그로서는 최선이었지만, 막연한 상상에 가까운 계획이었다

 

 

 

짙은 죄악이 폐를 녹이는데도 무당은 표정 하나 바뀌지않았다. 그는 용담여인을 내려다본다. 여인 또한 눈동자를 굴려 그를 올려다보았다. 서슬퍼런 칼날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그걸 알고 있었다. 가장 날카로운 부분과 무딘 부분, 어디가 금이 가고 이가 나갔는지까지 전부. 저 칼에 가장 자주 썰린 게 자신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는 겁에 질린 기색 하나 없다. 무당은 늘 그의 기세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 외 다른 존재에게 꺾이지 않겠다는 양 고고한 기색의 아름다운 푸른 꽃, 어찌나 사랑스러운가. 무당의 신은 결국 죽어버렸다. 그는 신기를 잃었고, 육체는 노화되어갔으며, 혼은 바스라져만 갔다. 그럴수록 ‘생’에 대한 집착은 줄어들지도 않고 심해지기만 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는 이미 자신을 이루던 모든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는 아주 원초적인 욕망, 생존본능만이 남았다. 혼이 다 썩어버려 비어버린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용담여인이 필요했다.

 

무당은 칼을 들어 올린다. 그는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갔다고 생각했다. 그 '원래'란게 무엇인지 더이상 알지 못하면서 말이다. 언젠가는 알았을 수 있지만, 이제는 아니다. 유담은 눈을 뜬 채 똑바로 저에게 내리꽂아지는 쇠붙이를 관찰했다. 방향은 자신의 심장이다. 아마 그는 유담 본인보다 그의 심장 위치를 잘 알 것이다. 유담은 익숙한 고통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가 무당의 당집 지하에 갇혀 받은 수십년의 반복은 다시 찾아오지 않는다. 그는 눈을 굴려 그 원인을 찾는다. 하얀 무당의 낯빛이 유난히 창백하다. 그 이유를 쉽게 볼 수 있었다. 무당 바로 등 뒤에 자리 잡은 영원의 키와 덩치가 더 컸기 때문이다. 그가 무당에게서 떨어지자 무당은 실이 풀린 인형처럼 털썩 쓰러졌다. 그의 머리에선 죽은 시꺼먼 피가 흘러 바닥을 적셨다. 유담은 빛도 들지 않는 저승의 지하바닥에서 이상하게 눈이 부셨다. 아무래도 그의 눈에 이상이 생긴 모양이었다. 그는 어지러운 머리로 문득 생각한다. 그가 어떻게 다시 빛을 볼 수 있었는지. 유담은 기억해내려다 관두었다. 대신 그를 보고 있는 영원에게 말한다. 그 목소리는 힘이라곤 없었다.

 

“여긴 위험해요.”

“그 위험을 만든 게 당신이에요. 이 이기적인 사람같으니, 도대체 무슨 생각이에요? 다 죽여버리고 당신도 죽는 게 소원이에요? ”

 

영원은 거의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흥분에 얼굴이 벌게진 그를 마주하고도 유담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유담은 늘상 그랬던 것처럼 방관자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마치 이 종말과도 같은 비극이 그의 손에 일어난 게 아니라는 듯이. 불안하고 초조한건 영원 하나였다. 언제나 그랬다. 그는 유담에게 대답을 듣는 것을 일단 포기했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불이라도 난 것처럼 새까만 연기때문에 목이 칼칼하니 아파왔다. 일어서지 못하는 유담을 일으켜 보려 그의 팔을 잡았다. 움켜쥐자마자 연결부위가 연약한 꽃잎으로 변해 바스라졌다. 관절부터 이어지는 손목과 손 부분, 원래는 몸에 붙어있어야 했던 그 부분은 그대로 추락해 그 충격으로 바닥에 흩뿌려졌다. 살구색 단백질 덩어리와 빨간 피는 없었다. 가벼운 꽃들이, 파란색 용담꽃이 온통 바닥을 적신다. 그 광경은 일반적인 시선으로는 꽤 아름다웠으나, 영원은 차라리 피로 얼룩진 모습이 덜 소름끼쳤으리라 생각했다. 유담이 꽃 무더기가 되는 모습을 상상한다. 영원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유담 씨, 몸이, 몸이 왜, 어쩌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를 않았다. 유담은 웃으며 답했다.

“거의 다 왔어요. 용담꽃이 죽어가는 거예요. 생이 죽음이 되는 거죠. 원래 그랬던 것처럼.”

“그게 무슨 말이예요, 어떻게 해야 돌아오는데요? 아니, 돌아오기는 해요?”

유담의 남은 팔 끝은 피가 뚝뚝 흐르는 것처럼 파란 꽃잎이 하나씩 떨어지고 있었다. 영원은 그를 어쩌지 못한 채 손을 주억거렸다.

 

“돌아가는 중이에요.” 유담이 말했다.

 “죽는다는 뜻의 돌아간다는 말이면 화낼거에요. 비겁하게 도망치지 말아요. 당신의 생을 놓아버리지 말아달라고요. 이렇게 큰 사고를 쳐놓고, 나한테 커다란 존재가 되어놓고, 이렇게 가지 말아요. 나를 버리지 말아요. 함께 있어줘요..”

 

영원의 눈에서 뚝뚝 흐르는 눈물은 그대로 유담의 볼 위로 떨어졌다. 그래서 꼭 유담이 우는 것같이 보였다. 유담은 눈물에 번들거리는 눈동자에 빛이 반사되어 반짝이는 모습을 눈에 담는다. 그 눈에 비치는 자신을 바라본다.

 

기억이 났다. 그가 어떻게 그곳을 탈출했는지. 왜 그곳을 나왔는지. 무엇이 그를 벗어나게 했는지. 그 모든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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