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급전개 같은 느낌적인 느낌....(코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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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마음에 드니, 아가?”

“네!”

사방에 휘날리는 붉은 단풍잎, 노랗게 물든 이파리. 적당히 폭신한 풀 위에 돗자리를 깔고 드러눕자, 다자이의 얼굴 위로 자그마한 단풍잎 하나가 떨어졌다. 제 얼굴 위에 떨어진 당돌한 단풍잎을 집어든 그는 츄야의 코앞에 대고 단풍잎을 흔들었고, 츄야는 응징하듯 다자이의 명치에 강한 주먹을 꽂았다. 코요紅葉는 제 이름으로 제 혈육이나 다름없는 츄야를 놀리는 다자이의 등에 가볍게 양산 속에 감춰진 검을 휘둘렀고, 그걸 본 아츠시는 그저 웃으며 뺨을 긁적였다. 쿄카와 아쿠타가와는 ‘난 아무것도 몰라요’ 하는 얼굴로 멀뚱히 지켜볼 뿐이었다.

“으아아, 이거 서러워서 살겠는가! 아무리 바로 치유가 된다고 해도 그렇지. 검으로 긋다니요, 누님!”

“내 이름을 알면서도 단풍잎으로 츄야를 희롱하다니, 마땅히 그 벌을 받아야지.”

“아이들 교육에 안 좋습니다, 누님!”

“우리 쿄카를 걱정하는 거라면, 그 정도 구분할 안목은 갖추었으니 걱정 말렴.”

“아츠시 교육에 안 좋습니다, 누님.”

“네녀석이 제대로 가르쳐야지, 내가 걱정할 바니?”

“누님, 전 정말 괜찮아요. 그리고 아츠시가 무서워한다구요.”

“정말 괜찮은 거니?”

코요는 츄야의 눈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츄야 한 번, 아츠시 한 번 쳐다보던 코요는 결국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 우리 츄야 말인데 믿어야지 뭐 어쩌겠니. 시간이 늦었으니 점심이나 먼저 먹고 놀자꾸나. 쿄카, 아츠시, 아쿠타가와. 멀리 있지 말고 이리 오렴.”

신나게 낙엽을 날리며 놀던 쿄카, 떨어지는 낙엽을 잡으려 팔랑거리는 아츠시, 아이들이 혹여 넘어지기라도 할까 앉지도 못하고 지켜보던 아쿠타가와가 그 말 한 마디에 바로 코요 옆으로 왔다.

“자식이라곤 아츠시 군 밖에 없는데 그 아츠시 군은 내가 아니라 코요 누님 말을 더 잘 듣는구만.”

“자식은 무슨. 아츠시가 네놈을 키운 거겠지, 네 성격에 애는 제대로 돌볼 수 있었겠냐?”

“아니, 그래도 내가 아츠시 군 기저귀 갈아주고 맘마 먹여주면서 제대로 키웠으니 아츠시 군이 여기 있는 것 아닌가?”

“그건 그렇네. 근데 하는 짓 보면 아츠시가 네놈 키워주는 것 같아서 말이다.”

“아닐세, 아닐세. 세상에 어떤 플라네타가 자기 후대에게 키워진단 말인가?”

“그 단어 한 번이라도 더 꺼내면 당장 너부터 보내버릴 테니 조용히 하려무나.”

코요의 한 마디에 다자이가 구석으로 짜지고, 그제야 아이들과 어른들 모두가 식사를 시작했다. 유부초밥을 먹으며 요리 실력이 많이 늘었다고 칭찬하는 말에 츄야가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다가, 아츠시를 가리키며 많이 도와주었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코요가 빙긋이 웃자, 아츠시의 볼이 붉어졌다. 그때, 코요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 나중에 쿄카 데려가려면 많이 배워야지. 츄야에게 잘 배워두려무나.”

“네?”

“아무것도 아니란다. 쿄카, 너도 이것 좀 먹어보렴, 계속 김밥만 먹지 말고.”

“네!”

쿄카가 그제서야 밝게 웃으며 유부초밥을 집어들었다. 오물거리는 쿄카를 보며 아츠시가 긴장한 듯 침을 꼴깍 삼켰다.

“어때, 쿄카?”

“맛있어요! 츄야 씨, 이거 뭐에요? 맨날 어머니랑 소풍 갈 땐 김밥밖에 안 먹었는데 이젠 이것도 먹을 거에요!”

“크흐흐, 그렇게 맛있어? 이건 유부초밥이야. 누님, 다음에 쿄카 데리고 소풍 가실 땐 저도 불러주세요. 이제 저놈 안 쫓아다녀도 되니까.”

츄야가 다자이를 가리키며 말하자, 다자이는 빙긋 웃었다.

“오, 그럼 나도 아츠시 군 데리고 끼어야 되겠군!”

“괜히 독극물 만들지 마시고 구석에 계세요, 그럼.”

다자이가 저 멀리서 혼자 낙엽을 가지고 꼬물거리는 동안, 아츠시가 주먹을 꼭 쥐다가 쿄카에게 물었다.

“쿄카 쨩, 유부초밥 맛있어..?”

“응. 츄야 씨랑 같이 싼 거야?”

“아아, 그럼. 아츠시가 많이 도와줬지.”

“그럼 다음 소풍 때도 아츠시 군이 유부초밥 싸 줘.”

쿄카의 얼굴이 붉어지고, 아츠시의 귀가 빨개졌다. 다음에는 같이 벚꽃 보러 가자, 덧붙이는 그 말을 아츠시는 들었을까?

그 둘을 놀리듯, 응원하듯,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단풍잎이 휘날렸다.

츄야가 다자이에게 다가갔고, 바람이 시작되는 곳에서는 다자이가 깊은 눈으로 둘을 바라보고 있었다. 츄야가 다자이의 손을 잡았고, 그제야 다자이가 츄야를 보았다.

“결국 저 녀석들도 우리랑 똑같이 될 텐데.”

“어쩌겠는가, 그게 우리, 아니. .. 자네의 운명인 것을.”

“아, 그렇지. 네놈은 운명이 없었지. 네놈의 뜻이 곧 네놈의 운명이니.”

“아츠시 군을 잘 부탁하네.”

“아앙? 먼저 죽기라도 하려고? 아서라. 네놈이랑 똑 같은 상황으로 만들 거냐.”

“사람 일 모르는 것 아닌가? 뭐, 이제 곧 돌아가야 할 테니 나중에 보세.”

“볼 순 있겠어?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 좋은 추억 만들어줘서 고맙다.”

“그래. 뒤를 부탁하네.”

저 멀리서 아츠시가 쿄카의 머리에 단풍잎을 꽂아주었고, 쿄카가 아츠시의 손에 작은 단풍잎을 쥐어주었다. 두 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한 쌍의 거미줄과 차원은 자신의 후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너희는 우리처럼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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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후, 아츠시와 쿄카의 생일 하루 전. 다자이와 츄야가 사라지기 하루 전.

“능력은 제대로 승계받은 것, 맞나?”

“네, 제대로.”

“그래. 어차피 내가 넘겨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알아서 넘어가는 것인지라 별로 걱정은 안 했다만. .. 내 명의인 모든 것을 자네 명의로 돌려두었네. 뭐, 원한다면 내 이름을 사용해도 별로 상관은 없다네.”

고개를 숙이고 듣고만 있던 아츠시가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다자이 씨.”

“응?”

“안 가실 수는, 없겠죠.”

“그래. .. 아마 츄야도 지금쯤 쿄카에게 자기 능력을 넘겼을 거라네.”

“어이, 다자이!”

들릴 리 없는 목소리에, 다자이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나는 방향을 보았다.

“츄야..?”

“쿄카 생일 전날이잖아. 내일이면 다 끝나니까.”

“쿄카는 어찌하고 혼자 온 겐가?”

다자이의 목소리에 왜인지 물기가 어린 듯 했다.

“뭘 혼자 와, 여기 있구만. 아츠시 군이 전갈을 보냈어. 저번 주였나.”

“그걸 받고 온 건가?”

“그래, 이 머저리 자식. 나도, 네놈도 내일이면 소멸하니까 마지막으로 보고 가라더라.”

많이 자라서 어느새 성인의 태가 훌쩍 나는 아이. 그리 어리던 두 아이가 운명으로 얽혀 다시 만났다.

“재회의 정을 나누게 하고는 싶지만, 우리도 오랜만인지라.”

말을 마친 다자이의 손에서 빛의 입자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츄야의 손끝에서도 빛의 입자가 흩날렸다.

“이런, 이게 마지막인 모양이군.”

"벌써 자정이란 말이야? 거 참 빠르네."

아츠시의 표정을 본 다자이가 빙긋 웃었다. 쿄카의 얼굴을 본 츄야가 혀를 쯧, 찼다.

“뭐가 그리 슬픈가, 자네가 곧 나고, 내가 곧 자네인 것을.”

“왜 울려고 해. 언젠가 또 만날 텐데. 야, 좀 웃어주면 안 되냐?”

둘은 애써 방긋 웃어보였다. 어릴 때, 그들의 전대를 보며 그랬던 것처럼.

“그래, 그 모습이 보기 좋다네, 아츠시 군.”

“그래, 그렇게 웃어야지.”

산화는 꽤 진행되어 다자이와 츄야의 다리도 빛으로만 남아 있었다.

“야, 얼마 안 남은 모양인데? 기분이 묘해.”

“나도 그렇네. 언제 500년이 되나, 했는데 말일세.”

“그렇지? 미련 없이 갈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네.”

츄야는 고개를 돌려 아츠시를 보았다.

“싸우지 말고, 밥 잘 먹고. 아마 재산은 다자이 놈이 안 부족할 정도로 쌓아뒀을 거다. 내 껀 아마도 코요 누님이랑 아쿠타가와 녀석 이름으로 되어 있을 거고. .. 네가 쿄카 잘 지켜줘야 한다. 쿄카가 다치면, 너도 다치니까. 입 무겁게 하고 다녀. 소문에 조심하고, 귀를 열어라. 그게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일 테니. 능력 함부로 쓰지 말고.”

말을 마친 츄야가 다자이를 돌아보았다.

“쿄카, 언제나 마음 챙기고. 아츠시 군이 힘들면 힘든 그대로 자네도 힘들 테니. 그리고 무엇에게든 함부로 마음주지 말게. 결국 그 고통은 다 자네 몫이야. 항상 조심하고, 몸 쓰는 일은 무조건 아츠시 군에게. 알았나?”

쿄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안심한 듯, 둘의 표정이 평온해졌다. 빛이 둘의 목 끝까지 감싸자, 다자이가 츄야의 손을 잡았다. 두 손을 꼭 맞잡고, 빙긋 웃었다. 빛이 머리 끝까지 감싸고 돌던 순간 모든 것이 흩어졌다. 그것이 둘의 마지막이었다.

끝까지 애써 웃고 있던 아츠시의 눈에서 자그마한 물방울이 떨어졌다. 덩달아 쿄카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다. 어떻게든 흘리지 않으려 애써도, 눈물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 옷깃을 적셨다.

아버지를 잃은 듯한 슬픔이 쿄카에게 전해지자, 쿄카는 조심조심 아츠시를 안고 등을 토닥였다. 아츠시의 어깻죽지도, 쿄카의 정수리도 축축해졌다. 새로운 거미줄과 차원은 서로를 안고, 서로에게 안겨 흐느낌이 잦아들 때까지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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