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왕자마마. 그 소식을 들으셨어요? 오늘 연수국의 황자마마께서 저희 도성에 드디어 도착하셨답니다. 아마 내일이나 글피쯤이면 궁에 도착하신대요.”

“응. 그렇구나.”

“황자마마는 노란 눈동자에 약간 어두운 갈색에 회빛깔을 더한 머리색을 하셨대요. 외모도 출중하시고. 그 또래 아이들의 환심을 한 번에 사로잡으신다나 봐요.”

이번에는 아무런 대답도 나오지 않았다.

“아이 참, 마마는 왜 그렇게 매사 관심이 없어요?”

“나는 왕궁의 소식은 별로 알고 싶지 않으니까. 내 꿈은 이 궁을 떠나는 것이라니까.”

“다 좋은데 그 때는 저도 꼭 데리고 가주셔야 해요?”

왕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루는 무엇이 좋은지 헤헤 웃으며 일어났다.

“저는 빨래거리가 밀려 있어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예의도 차리지 않고 홀라당 나가버렸다. 왕자는 그것을 굳이 붙잡고 설교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궁중예의는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나인의 자리에 오른 아이에게 그런 궁중의 법도를 요구할 정도로 팍팍한 사람은 아니었다. 열 살, 자신과 동갑인 아이가 무엇을 알겠는가. 물론 여느 처소라면 제 상전에게 회초리를 맞아도 할 말이 없었지만, 이 곳 만큼은 아니었다. 왕자는 제 담당을 맡고 있는 상궁 유씨에게 체벌을 엄격히 금하였다. 그 결과 화란궁은 늘 웃음이 넘쳤다.

화란궁의 주인이자 이 나라의 다섯 째 왕자 신도하. 그는 사람을 매우 좋아하였다. 자신이 사랑받는 것을 즐겼고 더욱 더 많은 사랑을 원하였다. 그에게 부족한 것은 거의 없었지만 딱 하나 부족한 것이 있었다. 어머니의 사랑.

도하의 어머니는 그를 낳고서 얼마 지나지도 않아 감히 궁을 탈출하였다. 많은 병사들이 그녀를 찾아 헤맸지만 마지막으로 자취를 남긴 곳은 국경이었다. 이 나라를 뜬 이상 병사들이 국경을 넘어서 찾을 수는 없었다. 그녀하나 때문에 전쟁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녀는 편지를 하나 남겨놓고 떠났다. 도하는 그 편지의 존재만 들어보았지 내용은 한 번도 들을 수가 없었다. 왕이 모두의 입을 다물렸기 때문이다. 도하는 언젠가 그 편지를 꼭 손에 넣을 것이라 다짐하였다.

그는 어머니가 자유를 갈구하였듯 저 역시도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어쩌면 이 나라를 나가 어머니를 수소문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품고 있었다. 어느 한 소국의 이야기 중 노래로 여인을 꾀어낸 마장수가 있었음을 도하는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이 생각했다. 노래는 많은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자신은 노래로 제 어미를 찾을 것이었다. 그의 목표는 왕자에게는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가창가였다. 이 나라에는 없는 직업이었다. 저 멀리 번영하고 있는 대 제국 연수국안에서만 유행하는 직종이었다. 문화가 번창한 연수국은 다양한 예술이 발달하였고, 특히 최근 떠오르는 것이 바로 ‘가창가’였다. 사람의 목소리로 뜻을 담은 글에 음률을 붙여 부르는 것. 많은 이들이 가창가의 노래를 좋아하였다.

하지만 가창가는 본데 고작해야 평민이나 하는 직업이었다. 여전히 이 세상은 예술에 박하였다. 글공부를 하거나 무술을 배우지 않으면 출세하는 것이 아니었다. 세상의 많은 상인들이 돈을 벌어도 결국은 평범한 백성인 것처럼, 가창가 역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도 그 신분은 왕자에 비하면 천한 일이었다. 그러니 왕자가 가창가가 될 수는 없었다.

도하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꿈이란 것은 계속 생각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루어질 기회가 온다. 일단은 이 나라를 벗어나기만 하면, 신분을 감추고 평민으로 살아갈 생각이었다. 그리고는 가창가가 되는 것이다. 도하는 큰 뜻을 품은 채 자신이 어서 성년이 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니 이 궁은 지루한 일상일 수밖에 없었다. 왕의 총애는 세자에게 있었고, 도하 역시 왕은 그저 자신의 피를 내려준 인물 중 하나였다. 그에게 부정을 기대해 본 적이 없으니 실망할 거리도 없었다. 그리고 그만큼이나 모정에 큰 기대를 품고 있었다. 어머니를 만나는 것은 제 꿈의 큰 그림 중 하나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 누구보다 바깥세상에 적응하여야만 했다.

그것이 지금 도하가 감히 월담을 시도하고 있는 이유였다.

“영차! 아, 여긴 왜 이렇게 담이 높아. 더 낮은 곳을 찾아봐야 하나.”

끙끙거리며 담장 위에 올라탄 도하는 등을 굽히고서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여긴 유독 감시가 덜한 곳이었다. 궁치고는 한적한 곳인 화란궁 바로 옆의 담이다 보니 소홀한 것이었겠지. 도하는 그것에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행운이었지. 덕분에 이렇게 담을 넘어 바깥을 구경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마도 일각이나 이각정도가 지나면 궁녀와 나인들이 제가 없어진 것을 알고 얼굴이 새파래져서 찾아 댈 것이었다. 그 전에 멀리 도망가야 했다. 한 시라도 더 바깥을 보고 배워놓아야 할 것이 많았다. 돈을 버는 법, 쓰는 법. 이 세상에서 눈에 띄지 않고 평범히 살아가는 법. 그런 것들이 도하에게 꼭 필요한 것들이었다.

끝내 담을 넘은 도하는 제가 옷가지를 숨겨두었던 나무로 다가갔다. 맨 손으로 흙을 조금 파자 금세 상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안에는 낡은 평민의 옷가지가 들어있었다. 이런 옷차림으로 시장통에 갔다가는 금방 들키고 말 것이었다. 전에 모르고 그렇게 입고 갔다 한시진도 되지 않아 잡혀 들어왔으니 같은 실수는 반복하지 않는다.

헌 옷을 입으니 자신이 정말로 평범한 소년이 된 것 같아 도하는 썩 즐거웠다. 이제는 익숙해진 길을 걷자 곧 도성으로 들어가는 길이 시작되었다. 도하는 그 속으로 힘차게 달려들었다. 걸을수록 조금씩 소란스러운 길거리 속으로 파고드는 도하였다.

 

“여보소, 지금 이게 3푼이나 된다고 보쇼?”

“마음에 들지 않으면 사지를 말던가? 왜 남의 장사자리에 와서 난리야?”

“아따 진정하게. 뭐 할라고 시비를 걸어사.”

도하는 흥미로운 소리에 고개를 슬쩍 내밀어 한 가게를 지켜보았다. 장사꾼과 손님의 투닥거리였다. 아마도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려는 손님의 심보가 고약하여 가게 주인도 성이 올랐나 보다. 도하가 보건데 저 물건은 3푼이면 적당하였다. 지금까지 온갖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본 것중에 저것보다 비싸면 비쌌지 싸게 파는 꼴은 본 적이 없으니. 적어도 오늘은 저런 말이 나와서는 안되었다. 확실히 저 손님이 우기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훈수를 두지는 않는다. 여기서는 자신은 아무것도 아닌 어린 소년이었고, 어른들은 그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저 지켜보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아 알았어, 3푼주면 될 것 아니여! 장사 그렇게 하는 거 아닐세.”

결국은 손님이 진 모양이다. 그는 씩씩 거리더니 3푼을 냅다 던지고는 물건을 가져가버렸다. 상인은 신이 났는지 돈을 소중히 제 주머니 안에 넣었다. 도하는 이제 슬슬 재밌는 일은 끝났구나 싶어 뒤돌았다. 더 재밌는 일을 찾으러 갈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방금까지 웃고 있던 상인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도둑이야! 저 도둑놈 새끼! 내 돈주머니를 채갔어!”

도하는 눈을 커다랗게 뜨며 다시 그대로 방향을 틀어 한 바퀴를 돌았다. 저 멀리 진한 회갈빛 머리를 휘날리며 뛰어가는 제 또래의 아이가 있었다. 가게 주인은 성을 내며 뒤를 쫓았다. 그의 바지춤 옆에는 두툼하던 돈주머니가 홀랑 사라진 채였다.

“재밌겠는데?”

도하는 그 뒤를 따라갔다. 도둑이라니. 도성 내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일이었다. 워낙 엄격한 처벌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도망치기도 어려운 구조였다. 감히 이 도성에서 도둑질을 할 자는 없었다. 보통은 말이다. 아마 어지간히 굶주렸거나 통이 큰 아이였나 보다.

한참을 뛰었을까 가게주인이 어디로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아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곧 눈에 띄었다. 토끼같은 눈으로 그에게 귀를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소년이 있었다. 머리는 진한 회갈빛을 띄고 있었다.

“이 도둑놈. 내 돈 주머니 어쨌어?”

“아니 도둑이라니, 저는 그런 짓 한 적이 없습니다.”

“이것이 어디서 시치미를 떼? 너 맞잖아. 그 머리색이 딱 네놈이야. 검은 것도 아니고 묘하게 색이 다른 놈이 흔한 줄 알아?”

“하지만 나.. 아니 저는 진짜 아니란 말입니다.”

소년은 잡힌 귀가 꽤나 아팠던지 얼굴을 찡그리면서도 끝까지 자신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주인은 더 성이 났던지 소년의 귀를 더 세게 잡아 당겼다.

“숨긴 곳 불어라. 큰일 나기 전에.”

도하는 혀를 차다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저기 잡힌 소년은 도둑이라기엔 차림이 너무 말끔하였다. 평복을 입긴 하였지만 절대 도성 안에서는 볼 수 없는 깨끗함이었다. 마치 오늘 처음 입은 새 옷. 물론 새 옷을 입는 사람이 없겠냐마는, 도둑이 과연 그런 옷을 입을 수 있을까.

도하는 잠시 아까 전 언뜻 본 도둑의 행색을 떠올려보았다. 확실히 새 옷은 아니었다. 저 복장이 비슷하기는 하나, 저렇게 빳빳하거나 깨끗하지는 못한 먼지투성이였다. 그 말인 즉슨 정말 저이는 도둑이 아니었다.

도하는 잠시 고민했다. 자신이 저 소년을 도둑이 아니라고 한 들 믿어줄까? 아니었다. 아니라는 증거가 없었다. 그런 주장을 하기에 자신이 너무 어렸다. 도하는 그냥 못 본 척 하고 갈까 싶긴 했지만 그러기엔 그가 너무도 정의감이 넘쳤다.

그러다 갑자기 도하는 손뼉을 탁 쳤다. 묘한 수가 있었다. 이 방법이라면 통할 수도 있었다. 도하는 목을 큼큼 거리더니 크게 외쳤다.

“아이고! 마마! 어디를 가셨던 것입니까. 쇤네 얼마나 찾았던 지요! 지금 온 사람들이 찾고 난리가 났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도하는 대뜸 소년에게 그렇게 말하였다. 가게 주인은 눈을 뻐끔거렸다. 그리고는 자신이 귀를 잡아당기고 있는 소년을 바라보았다.

“어허, 지금 어디 손을 놀리고 있는 게요? 감히 황자마마께!”

“화, 황자마마?”

남자의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도하는 이 기세를 더 밀어 붙였다.

“오늘 황자마마께서 도성에 도착하셨다는 소문 듣지 못하였소? 마마는 원래 검소하시고 또한 민중의 삶을 살피는 것을 좋아하셔 이렇게 평복을 하고 종종 돌아다니십니다. 오늘도 그러던 중에 갑자기 사라지셔서... 그런데 왜 저희 마마를 붙잡고 계신지요?”

도하는 최대한 힘을 주어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손도 이미 놓고 공손히 모았다. 도하의 말이 진짜인지 알 수도 없으면서 어느 새 속아 넘어가버린 지 오래였다. 그는 이제 꼼짝없이 죽겠구나하고 속으로 온갖 신을 다 불러대었다. 도하는 속으로 박수를 쳤다. 자신의 연기는 예술이었고 그에게 먹혀들었다. 이제 적당히 봐주는 척만 하면 되었다.

“원래 같으면 참형을 당해도 모자라지만, 우리 마마께서는 관대하시니 그대를 용서해주실 것이오. 보아하니 도둑을 잡는 것 같은데 관아에 가서 신고를 하는 게 빠르지 않겠소?”

“그... 그... 망극하옵니다. 쇠, 쇤네.”

소년은 멀뚱히 남자를 쳐다보았다. 도하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도움이 되지를 않네. 한숨이 절로 나오는 것을 참고 크게 외쳤다.

“어서 가보시오!”

“네!”

그는 마치 도하도 상전이라도 된 듯 잔뜩 겁을 먹어서는 줄행랑을 쳤다. 아마도 시간이 지나면 제가 어린아이 놀음에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누가 도하같이 어린 아이를 황자의 시종으로 쓴단 말인가. 나중에 씩씩댈 주인을 생각하니 살짝은 미안해진 도하였다.

“그러게 누가 증거도 없이 함부로 의심하래?”

“... 어찌 알았느냐? 너는 누구지?”

뚱딴지같은 소리에 도하는 소년을 쳐다보았다. 왜인지 모르게 계속 관심을 끄는 머리색. 그 선을 타고 시선을 옮기면 약간은 노란 빛의 눈동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때서야 도하는 소년의 얼굴을 마주하였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저렇게 예쁜 사람은 처음이었다.

“예쁘다.”

소년의 얼굴의 굳었다. 도하는 자신이 생각을 말로 뱉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망했던지 괜히 입술을 잘근 씹으며 발로 흙을 차는 쓸데없는 행동으로 무안함을 대신하였다.

“내가 물은 것에 대답을 하거라.”

무안함도 잠시, 어처구니가 없어졌다. 이게 지금 잠시 상전 취급했다고 자신이 정말 상전인 줄 착각하나? 도하는 달갑지 않은 표정으로 소년을 보았다.

“뭐? 뭘 알아?”

“내가 황자인 것을 어찌 알았냐는 말이다.”

도하는 잠시 귀를 의심하였다. 뭐라고? 그렇게 되물을 뻔하였다. 너무도 당당히 말하고 있어 어쩌면 자신이 지금 이상한 것인가 하고 생각하게 될 만치 그는 태연하였다. 무뚝뚝한 표정은 한 치의 거짓말도 없다는 듯 위풍당당한 모습에 힘을 실어주었다.

‘황자마마는 노란 눈동자에 약간 어두운 갈색에 회빛깔을 더한 머리색을 하셨대요. 외모도 출중하시고. 그 또래 아이들의 환심을 한 번에 사로잡으신다나 봐요.’ 문득 나루의 말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저 별 관심 없이 들었던 이야기가 어떻게 이렇게도 명확히 떠오를까.

“지, 진짜 화... 황자....”

도하는 입을 떡 벌렸다. 황자가 진짜로 여기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안 해 보았는데. 뇌가 움직이기를 정지하였다.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만 같았다.

그야말로 황실 모독죄였다. 물론 진짜 황자긴 했지만 여튼 사칭을 한 것이니 꼼짝없이 잡혀가도 할 말이 없었다. 왕자라는 신분이 목숨은 보장해주겠지만 어쩌면 이 나라에 위기를 가져올 지도 몰랐다. 도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장난이야. 닮았지?”

소년이 희미하게 웃었다. 도하는 눈을 깜빡 거렸다. 지금 농락을 당한 것인가? 도하의 황당함을 알기라도 한 듯 소년은 뒤이어 말했다.

“나보고 황자라길래 진짜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해서 장난 좀 쳐 봤어.”

“이씨! 야!”

도하는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저 것이 내 정체를 알았다가는 기함을 할 것이다. 도하는 그리 생각하였다. 감히 왕자에게 농을 치다니. 삼대가 멸하고도 남았다.

“하지만 황자나 황자의 시종을 사칭하지는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그거 황실모독죄니까.”

“이게 구해줬더니!”

“고마워.”

소년이 또 다시 희미하게 웃었다. 웃는 낯에 침을 못 뱉는 다는 말이 있다더니 정말이었다. 그의 웃는 모습을 보자니 화낼 수가 없었다. 마치 홀리기라도 한 마냥. 도하는 그의 미소에 멀뚱하니 시선을 주었다. 소년은 시선을 눈치 챘는지 금방 미소를 숨겨버렸다. 아, 아쉽다. 도하는 조금 더 그 미소가 보고 싶었다.

“아이고 마...도련님! 여기 계셨습니까?”

골목을 나가는 길목 쪽에서 한 여자가 튀어 나왔다. 그리고는 소년이 다친 곳이라도 있을까 노심초사했다는 티를 팍팍 내며 여기저기를 살폈다. 도하는 안중에도 없어보였다. 소년은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질문에 답하였다.

“그냥 좀 구경하다 일에 휘말려서. 해결은 잘 됐으니 걱정 안 해도 돼.”

“그러게 평민 분장은 왜 하셔서!”

아무래 평민 분장을 한 것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하긴 옷이 너무 새 것이었다. 어쨌든 사람이 왔으니 적어도 아까 그 가게주인이 저 아이를 찾는다 손 치더라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이면 되었다. 도하는 슬슬 궁으로 돌아갈까 싶었다. 시간도 늦었고 무엇보다 오늘은 충분히 바깥 구경을 즐겼다.

두 사람을 뒤로 한 채 걷던 도하는 아, 하고 뒤를 돌아 다시 소년에게로 다가왔다. 시종으로 보이는 여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도하는 그러거나 말거나 씩 웃으며 소년에게 말하였다.

“충고 해주었으니 나도 하나 해주지. 그런 꼬락서니로 평민분장이라고 했다가는 아마 금방 네가 평민이 아닌 걸 알아보고 불한당들이 달려들 거다. 조금 더 더러워 져.”

도하는 자신의 할 말을 마쳤다는 듯 쌩하니 골목을 빠져나갔다. 소년의 반응을 보고 싶기는 했지만 그랬다가는 아무도 붙잡지 않았지만 스스로 붙잡힐 것만 같아, 그런 기분이 들어 일부러 보지 않았다.

오랜만에 궁으로 가는 길이 유독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지는 도하였다.

 

“마마, 뭘 멀뚱히 보고 계십니까?”

전씨가 속삭였다. 시우는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 듯 아, 하고 작은 소리를 내뱉었다.

이상한 아이였다. 자신이 황자인 줄도 몰라놓고 황자라고 속인 것이 참으로 대담하였다. 가게 주인이 시우를 처음 잡은 순간, 사실 조금 놀라긴 했어도 별로 곤란한 처지는 아니었다. 어차피 전씨는 자신을 찾으러 올 것이고 그 뒤는 이 자가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겠지. 그런 생각으로 조금만 상대하고 있어주자 싶었다. 그런데 웬 것이 달려와 쫑알거리더니 가게 주인을 멀리 내쫓아 버린 것 아닌가.

조금 신기했다. 아니 어쩌면 많이 신기했다. 10살이 되는 지금까지 여러 나라들을 전전하며 많은 이들을 봐왔다. 황제는 시우가 어디 한 나라에 오래 있는 꼴을 못 보았다. 1년을 채우면 곧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을 명하는 전령이 닿았다. 명목상은 그 나라의 교육이 황자의 성질과 맞지 않으니 더 많은 세상을 구경하라는 황제의 참된 사랑. 물론 다 거짓말이다. 그저 그는 혹여나 황자가 그 나라에서 뿌리라도 내려 반란을 일으키면 어쩌나 두려웠던 것이다. 안에 두면 안에서 반란을 일으킬까 걱정하더니, 정작 밖으로 내돌면 그건 그것대로 걱정이었나 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속국들에도 전부 소문이 돌았다. 황자가 황제에게 내쳐져 떠돌이 신세라는 내용이었다. 틀린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다.

한두 번을 그러고 나니 이제는 알아서 짐을 꾸리는 것에 익숙해졌다. 이번 ‘화홍’이 여섯 번째였다. 다행히도 연수국과 같은 말을 쓰는 나라라 굳이 말을 배울 필요는 없었다. 두 번째로 갔었던 ‘여선’은 말이 달라 기껏 두 달쯤 독학으로 다 떼어 놓았더니 익숙해진 후로부터 얼마 쓰지도 못하고 떠나야만 하였다. 그것이 시우가 겨우 여섯 살에서 일곱 살로 넘어가던 해였다.

시우는 담담했지만 전씨는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적어도 말은 통하는 나라로 보내주어야 할 것이 아닌가. 시우가 독학으로 말을 조잘거리던 것을 매일같이 지켜본 전씨는 꽤나 억울하였다. 그러나 어쩔 도리는 없었다. 그저 속상하여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시우는 그런 전씨를 오래토록 지켜보았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전령이 내려왔다. 궁녀 전씨는 상궁으로 그 직위를 올린다는 황제의 직인이 찍힌 전령이었다. 국외로 나가 있는 상태에서 내명부의 사람이 승진을 하는 것은 유례에 없는 일이었다. 물론 상궁이래봤자 하는 일은 변함이 없었지만, 어쨌든 이제 상궁이라는 직함을 달 수 있었다. 그녀는 기분이 미묘하였다.

“이제는 적어도 말은 통하는 나라로 갈 거야.”

자신이 모시는 황자는 담담히 그렇게만 말하였다. 그녀는 잠시 마지막으로 그가 오랜만에 썼던 서신을 떠올렸다. 그는 결코 서신을 쓰지는 않았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연수국에 보내기 위하여 붓을 들었다. 전씨는 그 내용을 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 내용에는 자신을 위한 이야기들이 들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전씨는 더욱 시우를 열심히 모셨다. 예전에도 열심히 모셨지만, 무언가 애정이 더하였다. 시우가 자신이 예상하는 바를 행했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어쩌면 단순한 착각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렇게 믿고 싶었다.

“숙소로 돌아가자.”

“예.”

전씨는 생각에 잠겼던 것을 떨쳐내고 시우의 뒤를 따랐다. 열 살짜리는 퍽 열 살답지 않았다. 조용하고 담담하였다. 그러나 전씨만은 그가 슬프다는 것을 알 고 있었다. 처음 보았던 그 똘망거리던 눈이 이제는 물을 머금은 채 약간 쳐져있었다. 다들 그를 무표정이라 하였지만 그는 표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굳어 버린 것이다. 다섯 살의 그 충격에서 여전히 갇혀버린 사람이었다.

길은 어느 새 한적하였다. 시간도 시간이거니와, 그들이 묵는 숙소는 고급자제들이나 가는 곳이었다. 여기서 하루를 묵고 내일 입궁을 한다. 왕과 인사를 적당히 나누고 준비된 가옥을 소개받는다. 그것이 내일의 일정이었다.

시우가 새 나라에 도착하면 주로 하는 일은 그냥 그 집안에 박혀 사는 것이었다. 다른 교육의 지원 따위는 없었다. 시우는 그것에 큰 불만을 품지 않았다. 그저 먹고 살만하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가끔 책이나 사보는 것이 전부, 공부는 하지 않았다. 그의 공부는 다섯 살을 기점으로 멈추었다.

시우는 자신이 영특함을 조금 늦게 깨달았다. 그리고 제가 이렇게 떠돌게 된 것이 자신의 머리 때문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의 삶은 무료하기 짝이 없었다. 하루를 사는 것이 지겨웠다.

 

“오늘 달이 밝은데 구경이나 해보시는 것은 어떤지요?”

씻고서도 잠이 오질 않아 뜬 눈으로 천장만 바라보는 시우에게 전씨가 슬쩍 물었다. 시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전망이 좋은 방이어서 창을 여니 정말 달이 환히 떠있었다. 보기 드문 커다란 보름달이 밤하늘에 떡하니 박혀있었다.

그러나 곧 그의 시선은 옆으로 옮겨갔다. 달보다도 하늘에서 유독 빛나 보이는 별 하나가 시선을 끌었다. 달이 저렇게 크건만 별이 더 빛났다. 밤하늘에서 가장 아름답게 반짝이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려, 그는 답지 않게 전씨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저 별 예쁘지 않아?”

“어디요?”

전씨가 시우의 등 뒤로 다가와 창밖을 바라다보았다.

“저기, 달 조금 옆에. 달빛이 옆에 있는데도 저렇게 밝게 빛날 수 있나?”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다 똑같은 별 같은데요.”

어찌된 것일까. 자신의 눈에는 저렇게도 밝은데. 시우는 흘긋 뒤를 바라보았다. 뒤에 대기하고 있는 시종 하나가 눈에 띄었다.

“이리 와 보거라.”

“예, 마마.”

벌써 2년을 모시는 분이건만 자신을 부른 것은 처음이었다. 시종은 혹시 제 목이라도 칠까 싶어 눈치를 살살 보며 숨소리도 없이 다가갔다. 그런 그의 겁먹은 표정이 무색하게, 시우는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것이 무엇이냐.”

시종은 속을 쓸어내리는 한 편 그가 가리킨 하늘을 쳐다보았다. 속으로는 정말 쓸데없는 것을 물어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시간에 잠이라도 한켠 더 자면 내일이 개운하겠건만. 속으로 꿍얼대었지만 그것을 꺼내놓지는 않았다.

“쇤네 눈에는 달이 제일 빛나는 뎁쇼.”

시우는 되었다며 시종을 물렸다. 그는 다시 뒷걸음질 쳐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멀리서 고개를 숙인 채 섰다. 전씨는 그의 의중을 이해할 수 없어 그저 밤하늘만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저렇게 아이 같지 않은 면을 볼 때 마다 흠칫하였다. 성년식이란 말이 무색하였다. 그는 이미 성년이나 다름없었다. 육체가 정신이 자라는 속도를 따라 가주질 않을 뿐. 그가 연수국에서 이대로 자랐더라면 큰 인재가 되어있을 것이었다.

전씨의 복잡한 마음을 알기나 하는지 시우는 하늘로부터 눈을 떼질 못하였다. 그 별 하나가 자꾸만 마음에 걸려 고개를 돌리려다가도 다시 눈이 갔다. 그리고 왜일까, 아까전의 소년이 같이 떠올랐다. 별을 닮았다는 말이 썩 잘 어울린다. 무언가가 특별하게 닮은 것은 아니었다. 그냥 저 별을 보자니 그 아이가 눈에 아른거렸다.

“이름이라도 물어볼 걸.”

“네?”

“아니야. 이제 그만 볼래. 창은 계속 열어 놔 줘.”

시우는 뒤돌아 잠자리에 다시 누웠다. 전씨는 초봄의 찬 공기가 걱정되었지만, 이불이 두터우니 괜찮겠거니 하며 물러났다. 문이 닫기고 시우는 혼자가 되었다. 그는 오지 않는 잠에 창문을 바라보았지만 그 자리에서는 별이 잘 보이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서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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