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는 카페에 달려 있는 시계를 확인했다. 4시 55분, 지금쯤 크로플을 구우면 딱 그 손님이 올 때 포장해서 나갈 수 있다. ... 근데 오늘은 얘기 들어야 하지 않나? 여주는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우선 크로와상 반죽 두 개를 와플기 위로 올려 꾹 눌렀다. 나도 먹고 싶은데... 오늘은 회식이니까. 여주는 침을 꼴딱 삼켰다.


5시. 본능적으로 매장 입구를 쳐다보자 그 손님이 들어왔다. 크로플에 늘 아이스 초코 시키는 손님. 여주가 개강 총회 날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는 사람. 여주는 환히 웃으면서 어서오세요, 라고 외쳤다. 손님은 살짝 묵례를 하고는 카운터 옆에 위치한 테이블에 앉았다. 여주는 후다닥 크로플을 접시에 올려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손님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자 여주는 눈웃음을 지었다.



" 서비스예요! "

" 아... "



어... 서비스 별로 안 좋아하나? 생각보다 좋지 않은 손님의 표정에 여주는 의아한 표정으로 손님을 쳐다봤다. 손님은 그제서야 여주의 눈빛을 확인했는지 빠르게 손사래를 치면서 말을 더듬었다. 제가, 몸 관리를 하느라.



" 네? "

" 제가 몸 관리를 하느라 두 개는 못 먹거든요... 그냥 두 개 같이 포장해주시면 안될까요? "

" 아, 그러면 그럴게요! "



여주는 손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크로플을 다시 챙겨 카운터 안으로 들어갔다. 기존에 포장해놓았던 크로플 옆에 가지런히 놓아두고는 아이스 초코를 만들었다. 몸 관리를 하는데 초코를 마시네... 여주는 그 손님이 생각보다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여주가 아이스 초코를 테이블 위에 올려두자 손님은 마스크를 벗고 아이스 초코를 한 모금 빨아들이고는 테이블에 내려놨다. 완전 귀엽게 생겼잖아?

여주는 성미가 급하고 호기심이 강했다. 손님이 주머니에서 웬 가루를 꺼내 아이스 초코를 타는 것을 보고 손님에게 말을 걸었다. 그 손님은... 햄스터처럼 놀랐다.



" 저기... "

" 네?! "

" 아. 아! 죄송해요! 그게 아니라... "

" 어... "

" 그 가루는 뭐예요? "

" 아, 프로틴이요. "



... 독한 사람이구나. 근데 이 사람한테 말 들어야 하는데. 여주가 마음을 숨기지 못한 채 손님 옆에서 배회하자 손님은 앞을 가리켰다. 손님 없는데 앉아서 들으실래요? 그 말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여주는 털썩 의자에 앉아 손님을 바라봤다. 늘 테이크 아웃 손님이라 마스크 위의 얼굴만 봤었는데 마스크를 벗으니 꽤 잘생겼다.

그치만 미모에 감탄하는 것도 여기까지였다. 여주는 궁금증을 해결해야 했다.



" 그, 저번 주 금요일에요. 저 토요일 대타인 것도 어떻게 아셨어요? "

" 건축학과세요? "

" 네? 네! "

" 도시삼겹살에서 개강총회 했죠? "

" 네!! "

" 저희 무용이 그 옆 테이블에서 개강총회 했거든요. "



퍼즐이 꿰맞춰졌다. 몸 관리를 하는 이유는 무용학과라서, 도시대생인 걸 안 이유는 같은 학교라서. 건축학과인 걸 안 이유는... 건축이 더럽게 시끄러워서. 그리고 내가 대타인 걸 안 이유는... 문득 여주는 도시대 고성방가로 신고 들어오는 거 아니냐 말했던 재민이 떠올랐다. 여주는 갑자기 얼굴이 붉어지는 기분이었다. 내가 진짜 개강총회 날 무슨 짓을 한 거지? 이렇게만 들어서는 절대 알 수가 없었다.

여주의 표정이 점차 복잡해지자 손님은 여주의 눈치를 살피다 입을 열었다.



" 아. 그, 알바님? 사장님?이 대타 하시는 걸 안 이유는요... 나가실 때. "

" 네... "

" 내가... 내일 대타를 한다고오, 술을 많이 마시면 안된다고오, 하면서 남자분한테 부축 받으시면서 나가셨거든요... "

" 갑자기 진짜 창피하네요... "



여주는 본심을 얘기하고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여주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손님은 당황하며 다시 손사래를 쳤다. 근데 저는 원래 평일에만 크로플 먹을 수 있는데, 주말에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연락 한 거예요. 먹고 싶었거든요. 손님이 여주를 위로하는 말을 들리지 않았다. 딱 하나만 귀에 들어왔다. 남자분?

건축학과는 남초과다. 여주를 부축할 남자는 한도 끝도 없이 많은데... 여주는 그 남자의 정체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 남자의 정체가 내심 동혁이길 바랬다. 좀 더 파헤쳐보기로 했다.



" 혹시... "

" 네? "



놀랄 때 모습 되게 햄스터 닮았네.



" 그 남자분 착장? 이런 거 기억 나세요? "

" 어... 카고팬츠? "



이건 나재민 이동혁 둘 다 입는 거다. 심지어 자주.



" 얼굴은요? "

" 아. 얼굴... "

" ... 기억 하세요? "

" 검정 머리에. "



검정 머리. 이동혁, 나재민 둘 다 검정색이잖아! (물론 동혁은 흑갈색, 재민은 블루블랙이긴 하다.)



" 안경 쓰셨어요. "



이동혁이다.







여주가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듯 고개를 끄덕이자 손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내일 또 올게요. 여주가 손님을 따라 자리에서 일어나다 입구에서 머리카락을 정리하며 들어오는 도영을 발견했다. 진짜 일찍 와줬네... 아니, 시티캣 회식이 그렇게 중요한가? 아니면 여림 언니가 저 오빠한테 그렇게 중요한 건가?



" 오빠! "

" 안녕~ 일찍 온다고 했는데. "

" 아까 바빠서 답장을 못 했어요. "



도영은 여주의 대답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카운터로 향하려다 멈췄다. 그리고.



" 지성이? "

" 쌤? "



손님과 아는 척을 했다.

뭐야, 지금 여기. 나 빼고 다 아는 세계관이야? 여주가 의아한 눈으로 두 남자를 번갈아보며 쳐다보자 도영은 웃으면서 그 손님, 아니 지성과 손을 잡았다. 너 도시대학교 왔어? 도영의 물음에 손님, 아니 지성이 고개를 끄덕이자 도영은 더 환히 웃었다. 내신은 잘 챙겼어?



" 쌤이 도와준 덕에 잘 했죠. "

" 그래도 너 1학년 성적이 있어서 걱정을 했단 말이지... 그러면 현대무용과인가? "

" 맞아요. "

" 근데 그걸 먹어? "



도영은 지성의 손에 들린 크로플 봉투를 가리켰다. 우리 매장에서 잘 나가는 메뉴이긴 한데... 지성이 먹기에는 너무 고칼로리의 간식이었다. 도영이 기억하는 지성은 하루종일 프로틴만 마시던 애였다. 이미 말랐는데 무용하기엔 부족하다며 어떻게든 몸을 말렸던 애인데... 크로플은 너무 그렇지 않나. 도영의 물음에 지성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 아뇨. "

" 응? "

" 나중에 먹으려고요. 치팅데이. "

" 나중에는 그냥 와서 달라고 해. 쌤 이름으로 달아놓고. "

" 쌤. 저 돈 있어요. "



어떻게 쌤 이름으로 먹어요. 지성의 대답에 도영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쌤, 저 연습 시간이라 이제 갈게요. 지성은 도영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밖으로 나갔다. 여주는 그런 둘의 대화에 끼지 않고 카운터로 들어갔다. 그리고 역시 궁금증을 참지 못했다. 오빠는 저 손님이랑 어떻게 알아요?



" 너는 어떻게 알아? "

" 저 손님 저 알바할 때마다 5시에 와서 크로플 시켜요. "

" 아. 그 크로플광. 그래서 나랑 못 마주쳤구나. "



여주는 4시부터 8시. 도영은 6시부터 10시. 당연히 도영은 지성을 한 번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지성은 늘 5시에 기가 커피를 찾았기 때문에.

도영은 그제서야 이해가 됐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성과 도영의 관계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다.



" 나 제대하고 지성이 고2 때부터 고3 1학기까지? 내가 내신 봐줬거든. "

" 오빠 과외도 해요? "

" 뭐... 나름 나쁘지 않게? 국어랑 영어 가르쳤어. 지성이가 잘 따라와 주기도 했고. "

" 이름이 지성이구나? "

" ... 너 크로플광 번호도 있다고 하지 않았어? "

" 네. 근데 크로플 아이스초코라고 저장했죠. "

" 너도 참 너다. "







바쁜 시간이 지나고 도영은 여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응? 여주가 가만히 도영을 쳐다보자 도영은 웃으면서 앞치마를 가리켰다. 그거 두고 가라고.



" 나 진짜 가요? "

" 어. "

" 지금 7신데? "

" 사람 말을 못 믿네. "



아니, 그게 아니라... 여주는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도영을 바라봤다. 아니 사장님 아들이라면서... 이래도 되는 거야? 여주의 표정에 답하듯 도영은 포스를 눌러 처리된 배달 기사를 잡으며 대답했다.



" 카페 이거 하나 아니야. "

" 네? "

" 시티대 옆에도 하나 있어. "

" 아... "



어쩐지. 서비스를 아끼질 않으시더라.







여주는 포차로 향하기 전 동혁에게 카톡을 보냈다. 분명 회식 전에 만나자고 했던 것 같은데... 회식을 안 온다고 한다면 날 만나지 않겠다는 건가? 여주가 앞치마를 벗으며 핸드폰을 빤히 쳐다보자 손님에게 아메리카노를 내밀던 도영이 여주에게 질문을 던졌다.



" 안 가? "

" 아. 갈 거예요. 잠깐... "



결국 여주는 동혁에게 카톡을 보냈다.



그러면 나 만나러 안 와?



여주가 전송한 카톡의 숫자는 금세 사라졌다. 동혁은 금세 답을 보냈다.



ㅇㅇ

별 거 아니었어



별 거 아니라니. 여주는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여주는 동혁이 이럴 때마다 실망감을 숨길 수가 없었다. 물론 여주와 동혁이 단순한 밴드부 동료, 그리고 건축과 동기라는 사실은 분명했지만... 그래도 그 많은 동기들 중에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는데. 여주의 바램을 배신하듯 동혁은 늘 친절하면서도 단호하게 굴었다. 늘 상냥한 재민과 지내던 여주에게 동혁의 태도는 너무 차갑게 느껴졌다.

에라이. 여주가 카운터 아래에 앞치마를 개어놓고 창고로 들어가 자켓을 꺼내입자 도영은 여주의 손에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쥐여줬다. 어?



" 아직 춥다- "

" 이거 플러팅으로 알아들을게요? "



여주의 장난스러운 말에 도영은 크게 웃었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은 듯 여주의 어깨를 밀었다. 아아, 밀지 마세요. 능청을 부리며 아메리카노를 챙기는 여주에 도영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빨리 가기나 해, 여림이 심심하겠다.

이상하게 제노도, 동혁도, 도영도. 여림 얘기를 한다. 여주는 묘하게 질투심을 느꼈다.





여주는 에어팟을 끼고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동아리 회식 장소인 4990 포차 앞으로 향했다. 언니... 예약 했으려나? 근데 수요일이라 사람 없을 지도. 근데 개총 단서 나온 거 언니 얘기해줘야 하려나? 언니 그런 얘기 듣는 거 짱 좋아하던데.

영양가 없는 생각을 하며 포차로 걸어가다 보니 포차 옆 골목에서 담배를 피고 있는 여림, 그리고... 여림 언니 친구, 정재현 씨. 여주는 일부러 그쪽으로 가는 발걸음 속도를 늦추고 에어팟을 귓속에서 빼 에어팟 케이스에 넣었다. 암만 봐도 그냥 친구는 아닌 것 같단 말이지...



" 회식 끝나면 연락 해. "

" 뭐라고? "

" 고요 속의 외침이냐... "



언니 헤드폰 끼고 있었구나... 여주는 골목 밖에 멈춰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원래 남의 대화 들으면 안 되는데... 안 듣기엔 너무 흥미로운 관계였다. 재현과 여림은.



" 회식 끝나면 연락 하라고. "

" 2차 가게? "

" 주여림 미쳤네. 작작 마셔. "

" 어쩔. 니가 내 아빠야? 아주 간섭 쩔어. 나 좀 그만 좋아해. "



진짜 보통 사이 아니라니까? 여주가 확신에 차 현장을 잡으려 하자 재현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렸다. 진짜 기가 찬다는 목소리.



" 돌았냐? "

" 안 돌았거든. "

" 연락 안 하면 도영이 형이든 영호 형이든 연락 할 거니까. "

" 시바... 그럴 거면 참여를 하든가. 김도랑 국장오빠 다 참여하는데 왜 너만 빠져. "

" 귀찮아. "

" ... 오키. 나 연락 안 되면 정우한테 연락해. 같은 아파트니까. "

" 니가 연락 하라고. "



근데 왜 저렇게 연락에 집착하지... 남자친구도 아니면서. 여주는 알리바이를 만들려 일부러 한 발자국 뒤로 움직이며 생각했다. 재현이 여림에게 하는 행동. 그러니까 여주한테 굳이 연락하고 만나서 여림의 일을 맡을 생각이 없냐 묻고, 술 마시면 꼭 연락하라고 당부하고. 아니 이건 너무 애인이잖아! 근데 여림의 목소리는 절대... 좋아하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정말 정말 귀찮다는 목소리.



" 아, 알았다고! "

" 나 간다. "

" 오냐. "



재현이 먼저 재떨이에 담배를 던지고는 골목에서 나왔다. 그리고 여주와 딱 눈이 마주쳤다. 헐, 나름 방금 온 척 한 건데... 여주가 재현과 눈이 마주친 이후 다시 재현과 눈을 맞추지 못하자 재현은 여주를 쳐다보다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지금 나 무시한 건가? 여주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서 있자 곧 골목에서 여림이 나와 여주를 발견하고 큰 소리로 외쳤다. 애기이!



" 강아지! "

" 언니... 내가 예솔이야? "

" 예솔이만큼 귀엽긴 하지. 근데 언니 담배 폈는데 괜찮아? "

" 우웅, 괜찮괜찮~ "



여주는 문득 궁금했다. 여림을 애인처럼 대하는 재현과 다르게 여림은... 딱히 재현을 위해 무엇을 한다거나 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는다. 그냥 재현을 동아리에 이름 올려놓은 정도? 솔직하게 여림이 얘기하지 않았더라면 재현의 존재를 몰랐을 거다. 전혀. 여주의 기억 속에서도 여림과 재현이 단 둘이 있는 건 거의 보지 못했다. 동아리 회식 때도 늘... 혼자 갔던 것 같은데? 여림은 늘 끝까지 남아 동아리 부원들을 전부 귀가시켰다. 즉, 저렇게 연락에 집착하는 재현 치고 한 번도 여림을 데리러 온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여림이 여주에게 들어가자며 팔을 내밀자 여주는 여림에게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궁금증을 해결했다.



" 근데에 언니. "

" 응. "

" 언니 저 분이랑 사귀는 거야? "



여림의 표정이 굳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하도 많이 들어서 질렸다는 그 얼굴. ... 내가 언니한테 실수한 건가? 여주가 은근히 여림의 눈치를 살피며 여림의 팔을 감싸자 여림은 표정을 풀고 고개를 저었다.



" 쟤 짝사랑하는 언니 있어. "

" 으엥. "

" 나도 좋아했던 오빠 있구... "



여림은 카운터로 가 예약했다며 알바생에게 말을 걸었다. 알바생이 안내해주는 구석 자리로 향하고 여림은 세팅된 좌석을 하나둘 세더니 자신의 앞머리를 쓸어올렸다. 근데 여림의 말이 이상했다. 재현은 짝사랑하는, 여림은 좋아'했던'. 재현은 현재진행형이었는데 여림은 과거형이다.

여주가 안쪽 자리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여림은 맞은 편에 앉아 조용히 얘기하려는 듯 자신의 볼 옆에 손을 두었다. 누가 봐도 호기심 가득한 여주의 얼굴에 여림은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아주면서 말을 이었다.



" 그리고 그 오빠 오늘 와. "

" 헐? "

" 마침 시간 된다고 해서 오라고 했지. "

" 우와... 어떤 분이길래? "

" 딱 밴드부 보컬의 정석이라고 해야 하나... 잘생기고 노래 잘하고 능력 있고. 작곡과였는데 졸업했어. "



암튼, 암튼! 여림은 여주가 물은 질문에 결론을 내리려는 듯 부사를 붙였다. 여주가 턱을 괸 채 여림을 쳐다보자 여림은 여주 앞에 종이컵을 두고 물을 따라주면서 말을 했다. 우리가 절대 애인은 될 수 없고.



" 걔가 나한테 좀 집착해. "

" 엥...? "

" 나도 뭐 그러려니 해... "



여주는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언니... 그걸 우리는 애인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그런 게 사회적 약속이라는 거거든요...









여림과 여주가 시티캣의 신입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곧 정우가 들어와 여주의 옆에 앉았다. 앗, 불편한 분...? 여주가 정우의 눈치를 슬쩍 보자 정우는 크게 웃었다. 여림쓰, 봐봐. 얘 나 낯가려!



" 여주 원래 낯 안 가리는데...? "

" 내가 부담스러워, 여주야? "

"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

" 정우가 너무 잘생겨서 그렇지. "



그때 영호가 도착해 여림의 옆에 앉으며 말을 했다. 뭐야, 언제 왔어? 여림이 영호의 존재를 확인하고 묻자 영호는 정우를 턱짓으로 가리켰다. 같이.



" 담배는? "

" 술 마시면 필 건데. 민수는? "

" 민수랑 쩡우랑 자리 바꿔야겠는데? 아닌가, 달회장 있으니까 괜찮으려나. "

" 도영이랑도 몇 번 봤으니까 괜찮아. "



차례로 여림, 영호, 정우, 그리고 다시 영호였다. 여주는 이 자리가 솔직하게 편하진 않았다. 갑자기 오지 않겠다고 선언한 동혁과 너무 익숙해 보이는 세 사람. 마치 오지 말아야 할 장소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주는 과거 시티캣 회식을 어림잡아 떠올렸다. 시티캣 활동이야 공연이 재밌기도 했었고 늘 이런 자리를 마다하지 않는 동혁 덕에 자신도 자연스럽게 모든 자리에 참석했다. 그러니까 여주는 지금 동혁이 없는 시티캣이 어색했다. 발 들였던 이유도 이동혁, 열심히 참여한 이유도 이동혁 때문이었으니까. 그리고 개총날 나를 부축했던 사람도 이동혁. 뭐 이렇게 엮여있지. 근데 왜 날 좋아하는 것 같진 않을까.


여주가 생각에 잠겨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자 여림은 여주의 눈치를 살피다 팔을 뻗어 여주를 톡톡 쳤다. 여주야!



" 응? 응? "

" 황도 먹을래? 민수는 좀 늦는다고 연락 왔네? "

" 어... 먹음 좋지? "

" 좋아. 그리고 이 사람은 시티캣 전전 부회장. 서영호. 건축! "

" 안녕. "



... 나는 건축학과에서 이렇게 잘생긴 선배를 본 적이 없는데. 여주가 영호를 보며 묵례를 살짝 하자 정우는 꺄르르 웃으면서 영호에게 말을 걸었다. 형 봤지. 정우의 호들갑에 영호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말한 대로... 영호는 정우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여주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영호를 쳐다보다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제노한테 온 카톡. 그리고 딸기쨈한테 온 카톡. 여주는 그제서야 제노가 회식에 참여하겠다는 얘기를 했다는 걸 기억해냈다. 손님이 많으니까 다 까먹네... 여주는 제노와의 카톡 창을 클릭했다. 여주의 위치를 묻는 제노의 카톡에 여주는 포차 안에 있다고 답을 보냈고 곧 제노가 모습을 드러냈다.



" 김여주. "

" 어, 진짜 왔네? "



여주를 부르는 제노의 목소리에 네 사람은 고개를 돌려 제노를 확인했다. 제노는 자신이 아는 얼굴-동혁이라든가 민수라든가-이 아닌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자 뻣뻣하게 굳더니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게 구는 제노에 여림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영호와 정우에게 변명 아닌 설명을 뱉었다.



" 여주 친구고 나랑 같이 댄동 했던 앤데 오늘 오고 싶다고 해서 오라고 했어. "



여림의 말에 영호와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림은 그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다 영호를 옆으로 밀었다. 오빠가 옆으로 가.



" 아주 회장 됐다고 날 내쫓지. "

" 아니. 제노는 정우랑 오빠를 모르잖아. 아는 내 옆이 낫지. 아니면 여주 옆에 앉을래, 제노야? "

" 상관 없긴 한데... 누나 옆에 앉을게요. "



영호가 한 자리 옆으로 가고 정우의 앞에 제노가 앉았다. 정우는 무언가를 기억해내려는 듯 제노를 한참 쳐다봤다. 제노가 점점 정우의 눈빛을 부담스러워할 무렵, 황도와 소주가 테이블에 차려지고 정우는 감탄사를 내뱉었으며 테이블을 탁 내려쳤다. 너가 걔구나?



" 여림쓰랑 내 귀에 캔디 춘 애. "

" ... 김정우 안 닥쳐? "

" 맞아요. "

" 아학, 그때 보수 캔디라고 난리 났던 게 너였구나!! "



정우는 깔깔 웃으면서 여주를 툭툭 쳤다. 이 오빠 웃을 때 사람 치는 스타일이었구나... 그러면서 여주는 왜 제노가 여림과 아는 사이였는지 깨달았다. 나 정말 이제노한테 관심이 없구나.

작년 축제 댄스동아리 무대에서 시티캣 일로 바빴던 여림이 유일하게 섰던 남녀 혼성 무대. 내 귀에 캔디. 그때 군대에서 막 제대했던 제노가 급하게 대타로 섰던 무대였다. 그리고 단 한 차례의 스킨십도 없어서 보수 캔디라고 에타에서 화제가 되었던 그 무대. 심지어 제노는 허리 위로 매너 손을 했었다. 이제노 놀림감 평생 갖고 가겠다며 재민이 맨 앞 열에서 촬영했는데 정작 제노와 여림이 웃음기 하나 없이 무대를 끝마쳐 아쉽다며 입맛을 다셨었다. 그걸 왜 내가 잊고 있었지.

정우는 창피함에 벽에 머리를 기대 자신의 시선을 피하는 여림을 보다가 자신의 아이클라우드 계정을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내 귀에 캔디 무대를 재생했다. 이거 맞지, 맞지!



" 김정우, 니가 왜 그걸 갖고 있어! "

" 내 사랑 정재현 씨가 보내줬지. "

" 씨바... 내가 정재현 죽이고 지옥 간다. "



여주는 황도를 숟가락에 올려 와작와작 씹어먹다 멈췄다. 또 그 이름이다. 정재현. 아무리 봐도 그냥 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정작 여림과 여림 주위의 사람들은 재현을 그냥 여림의 친구로 취급했다. 그런 게 친구면 난 친구 없는데...

여주가 생각에 잠겨 가만히 황도만 먹고 있자 여주를 바라보던 영호가 모두의 잔에 소주를 채웠다. 자자.



" 태일 형은 도영이랑 민수랑 올 것 같네. 형 조금 늦는다고 연락 왔어. 일단 우리끼리 짠. 반가워요~ "



영호의 주도하에 다섯 개의 잔이 부딪히고 망설임 없이 비워졌다.







... 이제노 나한테 관심 있어서 여기 온 건가? 여주는 어느새 자리를 바꿔 자신의 앞에 앉아 대화에 끼지 않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제노의 눈빛에 부담감을 느꼈다. 정작 여림과 정우는 시티캣의 존속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하고 있었고 간간히 영호는 너네 인기 많다니까, 하는 등의 말들로 여림과 정우를 안심시키고 있었다. 근데... 왜 이제노는 나를 계속 보고 있냐는 말이야.

여주는 이 곳에 오기 직전까지만 해도 개총 때 있었던 일의 단서들을 여림에게 얘기할 생각이었으나 제노의 눈빛에 그저 얌전히 콘치즈를 집어먹었다. 멍때리며 콘치즈를 입에 넣는 여주의 정신을 번쩍 들게 한 건 여림이고.



" 여주야! "

" 어, 어엉? "

" 너 금요일은 알바 아니지? 월수목이랬나? "

" 응. "

" 그러면 정우랑 동혁이랑 오전에 우리 박람회 부스 좀 지키자. "

" 언니는? "

" ... 나아는 금공강이라 좀 자야 하는데... 오후에 나랑 민수랑 정재랑 지킬 거야..."

" 재현이가 같이 해준대? "

" 끌고 나와야지. "



정재? 여주가 처음 듣는 이름에 어리둥절하자 영호가 여림에게 물었다. 또 정재현이네. 여주가 시간표를 보려 핸드폰을 한번 켜자 여림은 급하게 말을 이었다.



" 물론 너네 점심은 정우든 나든 사줄 거니까! 12시에 가면 돼! "

" 권력 남용하네, 주회장. "

" 그런 말을 DBS 국장한테 듣고 싶진 않네요. "



동아리 박람회를 해요? 제노의 물음에 여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림이 설명을 하려다 영호를 툭 쳤다. 오빠가 설명해줘.



" 시티캣이 인기는 많아도. 중앙 동아리라서 참여는 해야 하거든. "

" 아아. "

" 명목상이지. 오디션 보겠다고 하는 애들은 지금도 있을 건데... 원래 시티캣은 소수 정예거든. "

" 그래서 국장님이랑... "

" 뭐 여럿 이름 올려져 있는데 그건 그냥 소수 정예를 유지하기 위한 연막이지. 그렇게 서로 아는 사람들끼리 친해지고. 시티캣이 이렇게 정상적인 밴드부가 된 건 한... 6년 전 일이야. 그전에는 친목성 동아리였어. 나도 그렇게 알고 들어왔고. "


제노는 영호의 친절한 설명에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제노는 여주의 쪽으로 기본 안주를 밀어주며 여주에게 말을 걸었다.



" 나한테 얘기를 하지. "

" 엥. "

" 이름 빌려주는 거야, 문제는 안 되잖아. "



너랑 나랑 언제 그렇게 친했다고... 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여주는 고개를 저었다. 언니가 다 알아서 해결했어. 영호는 소주를 가볍게 털어놓고는 말을 이었다.



" 누가 시티캣에서 열정적으로 음악 붐을 일으켰지. "

" 내 욕 해? "



누군가 정우의 옆에 앉으며 영호에게 말을 걸었다. 여림은 순식간에 얼굴이 밝아져 그 상대에게 말을 걸었다. 태일 오빠! 아, 그 사람이 그 사람이구나. 여주는 태일의 존재를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 응, 안녕~ 일렉 맞지? "

"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

" 난 다 알지~ 동혁이는? "

" 안 온대. "



태일은 여주의 얼굴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여주는 단박에 태일이 여림의 그 짝사랑 상대였다는 것을 파악했다. 잘생기고 노래 잘하고, 밴드부 보컬의 정석. 누가 봐도 태일은 이상적인 선배 상이었다.

알바생이 태일의 앞에 잔을 내려놓고 영호는 태일의 잔을 채웠다. 여림은 태일의 눈치를 한번 보더니 자신의 옆에 앉은 제노를 가리켰다.



" 이 친구는 여주 친구. "

" 보수 캔디. 형, 알지. "

" 나는 우리 정우가 제발 닥쳤으면 좋겠는데. "

" 아아. 네가 그 보수 캔디구나~ 나는 직관했지. "



그 보수 캔디를 직접 봤다는 태일의 말에 여림은 급하게 소주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진짜 내 인생의 흑역사는 스무살이 끝인 줄 알았는데... 자신의 얼굴을 마른세수 하며 한숨을 뱉는 여림에 제노가 말을 걸었다.



" 누나는 제가 창피해요? "

" 아니아니. 제노야, 무슨 소리야. 네가 창피한 게 아니라... 이 인간들이 놀리는 게 진짜 킹받아서 그렇지. "

" 나는 잘 봤어, 이름이? "

" 이제노요. "

" 그래, 옥제노야. "



태일은 일부러 제노를 옥제노라고 부르며 제노와 악수를 했다. 여림의 표정이 굳어간다기 보다는 썩어가는 데도 오히려 웃으면서 제노와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런 상황을 보며 문득 여주는 자신이 1년 먼저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의 숨을 뱉었다. 여림 언니 정말 힘들겠다...



" 달회장님 왔네요? "

" 민수 안녕~ 도영이랑 같이 들어오네? "

" 형이랑 마주쳤어요, 앞에서. "



곧 민수와 도영이 들어와 영호의 옆에는 도영이, 태일의 옆에는 민수가 앉았다. 민수는 당연히 태일을 아는 듯 태일의 현재 상황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태일 역시 그런 민수의 질문에 웃으면서 대답을 했고. ... 나 진짜 안 온다고 할 걸... 동혁이 없으니 괜히 어색했다. 분명 친화력이 좋은 여주임에도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소외감을 느꼈다.

제노는 종이컵에 물을 따르다 조용한 여주에게 말을 걸었다. 김여주.



" 으엉? "

" 나재민이 얘기해? "

" 뭘? "

" 자퇴. "



여주는 고개를 저었다. 자퇴를 생각하는 것 같다는 제노의 말과 달리 재민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그냥 성실한 대학생. 심지어 재민은 수업 중에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교수님이 앞에서 강의를 하든 랩을 하든 핸드폰으로 쿠키런을 하는 여주와 다르게 말이다.

여주의 행동에 제노는 자신의 턱을 손으로 쓸었다. 아무래도 맞는 것 같은데. 그러나 제노는 여주에게 별 말을 하지 않고 태일과 민수, 그리고 정우가 얘기하는 것에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여주는 그런 제노를 가만히 쳐다보다 여림에게 팔을 뻗어 툭툭 쳤다. 그 얘기를 할 때가 됐다. 언니.



" 응? "

" 그 나 개총날 있었던 일 있잖아. "

" 뽀뽀 사건? "



여림의 말에 제노는 눈을 반짝였다. 어차피 이제노는 사건의 당사자가 아니니까. 사건의 용의자는 아무래도 이동혁, 아니면 나재민이니까. 들어도 되겠지, 뭐. 입도 무거운 앤데. 여림의 질문에 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순식간에 여림의 눈이 반짝거리고 여림을 턱을 괸 채로 여주를 쳐다보다 팔을 뻗어 영호의 옆에 앉은 도영을 톡톡 쳤다. 김도.



" 왜? "

" 여주 뽀뽀 사건 뭐 알아냈나 봐. "

" 진짜? "



도영이 여주와 눈을 맞추자 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의 응답에 도영은 여림의 옆에 앉은 제노를 한번, 여주의 옆에 앉은 정우를 한번 쳐다보더니 정우를 불렀다. 정우야.



" 나랑 자리 바꿔. "

" 아~ 나 움직이기 귀찮은데~ "

" 딸기초코프라페 만들어줄게. "

" 아~ 그러면 비켜드려야지, 기가커피 도련님. "



진짜. 도영이 어이없다는 듯 정우를 쳐다보자 정우는 웃으면서 숟가락과 소주잔을 든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영과 자리를 바꿨다. 자연스럽게 여주의 뽀뽀 사건에 관심 있는 무리. 태일의 현재 상황에 관심 있는 무리로 나눠지고 여주는 입을 열었다.



" 그 때 목격자한테 들은 건데... "








" 동혁이네. "

" 맞네. 동혁이? 그 친구겠네. "



차례로 여림, 도영이었다. 지성이가 얘기해준 거야? 도영의 물음에 여주는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동혁이 가능성이 높았다. 굳이 술 취해 주정을 부리는 사람을 부축해나간다? 뭔가 나가서 사고를 칠 가능성이 컸다. 혹여나 그 안에서 사고를 쳤다면 소문이 났을 거고, 친하지도 않은 동기들이 미끼를 물어 백퍼 연락을 했을 테니까.

여주는 동조하는 여림과 도영과 다르게 아무 말 하지 않는 제노를 쳐다봤다. 이 새끼... T라서 그런가 왜 아무 말도 안 하지. 여주는 제노를 쳐다보다 제노에게 말을 걸었다.



" 너는 누구 같애? "

" 나? "

" 어엉. "



제노는 여주를 쳐다보다 황도를 젓가락으로 푹 찔렀다. 시럽이 뚝뚝 떨어지는 것에 제노는 한 손으로 황도를 받친 채로 입 안에 복숭아를 넣었다. 자신에게 세 명의 시선이 쏟아지는 데도 별 의식하지 않은 채로 입술을 꾹 다물고 복숭아를 씹었다.

조용해진 이쪽 테이블에 정우가 뭐야? 하면서 아는 척을 하자 제노는 황도를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 누군 게 중요해? "

" 으엉? "

" 너는 그러면 뽀뽀한 사람이랑 사귈 거야? "

" 그으건 모르겠는데. "



여주의 불확실한 대답에 제노는 비워진 여주의 소주잔을 채웠다.



" 안 사귈 거면 묻어. 알아서 뭐해. "

" ... 그런가? "

" 그냥 취해서 실수한 거라고 생각하는 게 나을 듯. "



제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괜히 알아내서 그 사람이랑 담판을 짓는다고 해서 어떤 관계가 달라질 것도 아니고... 입 한번 맞췄다고 없던 애정이 피어날 것도 아니고. 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제노가 채운 잔을 비웠다.









술자리가 무르익었다. 여주의 뽀뽀 사건 브리핑이 끝나고 몇 차례 자리가 바뀌었다. 그리고 여주는 태일과 영호에 대해 어느 정도 알게 됐다. 태일은 현재 작곡가이며 클래식 작곡을 주로 하다 우연히 시작한 아이돌 음악 작업이 대박이 터져 현재 무지 바쁜 상황에다가 동혁이를 데려다가 녹음 시킨 장본인이고. 영호는 태일이 회장이던 시절 부회장을 맡아 업무적인 일을 모두 수행한 능력자였다. 심지어는 그 바쁘다는 방송부 일과 병행해 현재는 도시대 방송국 DBS 국장직을 맡고 있다는 점. 여주는 착착 일을 해내는 영호가 극한의 J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태일은 여주에게 녹음을 제안했다. 보컬 녹음은 아니지만 시티캣 무대 영상을 몇 번 봤고 여주의 일렉 실력을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심지어는 페이를 제안했다.



" 아니, 오빠. 저 그렇게 잘하지 않아요. "

" 말 편하게 해, 여주야. "

" 그러고 보니 나한테도 말 안 놓더라. "



나는 이제 같이 활동 할 건데. 정우가 툴툴거리며 말을 하자 여주는 호기롭게 소주를 원샷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말 다 놓는 걸로? 오키? 여주의 시원한 대답에 정우와 태일, 도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담타를 마치고 들어오던 여림과 영호는 여주의 큰 목소리에 의아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무슨 일?



" 내가 여주한테 일렉 녹음 제안 했거든. "

" 돈 제대로 주고 우리 애 쓰는 거지? "

" 오빠 돈 많다, 여림아. "

" 김도는 돈 안 줬으면서. "

" 그건 취미잖아~ "



태일의 대답에 여림은 의심의 눈초리를 한 채로 태일을 쳐다보다 여주에게 말을 걸었다. 진짜야, 애기? 여주가 세차게 고개를 끄덕이자 여림은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세지를 입 안에 넣었다.

태일은 여림이 자신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늦추자 그제야 하던 말을 이었다.



" 여주가 동혁이랑 친구라고? "

" 네! 아니, 어! 같은 과 동기. 대학교 와서 첨 봤어. "

" 그러면 여주도 건축이야? "

" 어엉. "

" 동혁이 진짜 재능 있는데. "



여주가 태일을 쳐다보자 태일은 부가 설명을 덧붙였다. 동혁이 노래에 재능이 있는데 절대 이쪽을 진로로 희망하지 않는다며. 여주는 동혁의 재능을 안타까워 하는 태일의 표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여주가 봐왔던 동혁, 그러니까 1학년 내내, 그리고 작년 하반기에 보컬로 시티캣에서 활동했던 동혁은 누가 봐도 노래에 재능이 있었다. 음색은 특이했고 가창력은 뛰어났다. 무대 한번 서면 팔로워가 무섭게 늘어날 정도로 파급력 역시 있었다.

그러니까 작곡가인 태일이 동혁을 탐내는 것은 당연했다. 나 같아도... 근데 이동혁이 하기 싫어하는 거 아닌가? 달회장이 곧 태일인데... 태일때문에 안 온다고 했으니까. 물론 맥락상. 여주는 동혁을 보호하려 능청을 떨었다.



" 근데 동혁이가 건축도 재능 있어. 완전 미쳤어. "

" 그래? "

" 응. 이동혁 1학년 때 과탑 먹었어. 그리고 벌써 강 교수님이 탐내. "

" 설마 내가 아는 그 까다로운 강 교수? "

" 어! "



영호는 여주의 말에 질문을 던졌고 여주는 단번에 yes 라는 대답을 했다. 그 정도로 까다로운 사람이야? 태일의 질문에 영호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교수 진짜 인성 쓰레기거든. 영호의 대답에 태일은 입맛을 다셨다. 아무리 그래도...

태일은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주에게 손을 내밀었다. 여주가 고개를 갸우뚱하자 태일은 웃으면서 여주 옆에 놓인 핸드폰을 가리켰다.



" 핸드폰 줘. "

" 왜? "

" 아니, 번호를 알아야 부르지~ 내가 여림이 통해서 연락할 순 없잖아. "

" 형, 이거 구식인 건 알지? "



태일이 여주의 핸드폰을 건네받고 자신의 번호를 입력하는데 정우가 태일에게 말을 걸었다. 번호 따는 게 구식이야? 태일의 물음에 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은 또 인스타 아이디 따는 게 유행이라고~



" 형 인스타 있잖아. "

" 근데 잘 안 들어가는데. "

" 떼잉... 그래도 오늘 거 일상계에 태그한다? 리스토리 해줘. "

" 맘대로 하든가~ "



정우는 핸드폰을 들어 단체 셀카를 찍으려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럽게 모두가 브이 자를 하고 사진이 찍히자 정우는 제노의 뒤로 와 제노에게 폰을 내밀었다. 옥제노 친구는 인스타 아이디 있어? 정우의 물음에 제노는 폰을 받아 자신의 아이디를 입력하고 여주에게 내밀었다.

옥제노 센스 있는데~ 여주가 핸드폰을 받아들여 자신의 인스타 아이디를 입력하고 정우에게 폰을 내밀자 정우는 주위를 둘러보며 착착 인스타 아이디를 입력하다 제노에게 말을 걸었다.



" 근데 제노친구. "

" 네? "

" 그때 댄동 활동 안 하지 않았어? 여림쓰가 급하게 파트너 바뀌었다고 했는데. "

" 아. 저 군휴학 중이었어요. "

" 근데 왜 굳이 여림쓰랑 춤을 췄을까, 으응? "



능청부리며 제노를 툭툭 치는 정우에 도영과 이야기를 하던 여림이 몸을 돌려 정우의 허리를 쳤다. 너 애한테 무슨 짓이야. 정색하며 정우를 올려다보는 여림에 정우는 여림의 어깨를 잡아 돌리면서 얘기했다. 궁금하잖아~

딱 봐도 여림 언니가 불편해하는 것 같은데... 여주의 시선과 달리 정우는 집요하게 제노에게 달라붙었다. 아니~ 굳이 다른 대타들도 있었을 텐데~ 제노 친구가 잘생겨서 그런가? 친밀감 있게 다가오며 말을 하는 정우에 제노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 그냥 기회다 싶었죠. "

" 으응?! "

" 누나랑 한번 무대 해보고 싶었어요. "



여림이 제노를 쳐다봤다. 전혀 이해가 안된다는 얼굴로. 여주는 제노를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이... 사심 가득한 멘트는 뭔데. 제노가 여림을 짝사랑하는 것 같은 그... 런? 제노는 여림과 여주 둘의 머릿속에 폭탄을 투척했다.








그런 제노의 멘트도 잠시 곧 하릴 없이 술자리의 언어들이 이어갔다. 여주와 영호가 건축과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도 하고, 영호와 제노가 실내디자인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하고. 단체로 과거 시티캣 무대들을 돌려보기도 하고. 시시콜콜한 시간들이 흘러가고 어느새 핸드폰은 새벽 1시를 가리켰다.

여림의 배려로 조금 술을 덜 마신 여주는 다행히 정신이 멀쩡했다. 여주 내일 알바도 있고 수업도 있으니까~ 하면서 은근히 사이다를 밀어주던 여림에게 여주는 속으로 감사를 표했다. 그리고 또 다시 뽀뽀 사건이 일어나면 이제는 자퇴밖에 답이 없으니까...


반면에 여림은 모두가 따라주는 술을 조금씩 마시다 보니 필름이 끊기기 직전에 다다랐다. 꾸벅꾸벅 졸고 있는 여림에 너무도 당연하게 정우가 카운터로 가 결제를 하고 여림의 폰을 꺼내 비번을 풀었다. 누나, 재현이 형한테 연락해. 정우의 말에 여림은 풀린 눈으로 핸드폰을 내려다보다 번호를 입력해 전화를 걸었다.

여림이 응, 응... 하며 가만히 전화를 하고 있고 태일과 영호, 도영, 민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호는 여주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번호를 달라는 영호의 말에 여주는 자신의 번호를 입력했다.

반면에 도영과 태일, 그리고 민수는.



" 여림이 정우가 데리고 갈 거지? "

" 우웅~ 같은 아파트니까. "

" 정우 심심하면 또 연락 하고. 인스타 태그 해도 돼. "

" 우리 달회장님 명성에 쩡우가 한번 업혀 가볼게요~ "

" 정우야, 내일 수업 때 봐. 누나 잘 챙기고. "

" 들어가~ "



차례차례 정우에게 인사를 건네고 술집을 빠져나갔다. 여주가 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주위만 두리번거리고 있자 영호가 폰을 받아들고는 입을 열었다.



" 여주랑 제노 친구도 이제 들어가. "

" 언니는요? "

" 정우가 데리고 갈 거야. "



근데 왜 그 정재현 씨는 연락 하라고 했지. 여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백을 챙기자 여림은 전화가 끊겼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가자!

여주는 처음 보는 여림의 취한 모습이었다. 그니까 작년, 여림이 회장으로 첫 부임했을 때는 여림은 무조건적으로 회식에서 술을 기피했다. 그때도 여림의 밴드부 동기는 있었음에도 절대 술을 마시지 않고 끝까지 모든 멤버들을 집에 돌려보냈었다. 반면에 늘 여주는 취해 여림이 잡아 결제까지 해주는 택시를 탔었다. 회식 장소에서 멀어봤자 10분 거리밖에 되지 않는데 여림은 굳이 굳이 여주를 택시에 태웠었다. 근데 언니가 취한 모습은 또 처음이었다.

여주와 제노가 술집을 나서려 하다 몸을 돌려 모습을 바라봤다. 비틀 거리는 여림을 영호가 잡고 정우는 여림의 크로스백을 자신의 목에 걸고 주위를 살폈다. 참 이상하네... 여주가 예상했던 그 정재현 씨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여주와 제노가 밖으로 나오자 제노는 가자, 하고 여주의 집 쪽으로 걸었다. 너희 집하고 우리 집은 반댄데. 여주의 말에 제노는 여주를 한번 쳐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 왜!



" 데려다주잖아. 여자애 취해가지구 혼자 걸으면. "

" 나 안 취했거든. "

" 그래도 새벽 1시는 오바야. "



여주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뽀뽀 사건에 대해 동혁에게 어떻게 말할까 고민할 시간을 제노가 원천 봉쇄했다. 애초에 여주는 모든 제노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열일곱부터 스물셋까지. 6년을 봐온 제노인데 여태의 세월 중에 가장 이해가 안될 모습이 바로 오늘이었다.

여주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멈춰 제노를 쳐다보자 제노는 앞으로 걷다 멈추고는 뒤 돌아 여주를 쳐다봤다. 왜 안 오는데.



" 너 오늘 이상하네. "

" 뭐가. "

" 안 오던 회식도 다 오고. 게다가 자기 동아리도 아닌데. "

" ... 나 간다. "



제노는 여주의 추리에 별 의미 없는 표정으로 다시 앞장서 걸었다. 아니, 내가 틀릴 리가 없는데! 아까와 달리 발걸음을 늦추지 않는 제노에 여주는 뛰어 제노와의 거리를 좁혔다.

빠른 여주의 걸음과 여주는 모르는 제노의 느린 걸음으로 거리가 완전히 좁혀지고 제노는 천천히 걷다가 입을 열었다.



" 근데 여림 누나랑. "

" 응? "

" 그... 정우 형이랑 사귀는 거야? "



내 추리가 틀렸을 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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