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잠
Written by. Maria






-요즘, 잠을 잘 못 자요.

이 시간 까지 안자도 괜찮으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이었다. 이러고 있으면, 시간이 잘 가서 좋아요. 보쿠토 씨야 말로, 괜찮으세요? 피곤하면 전화 이만 해요. 보쿠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나도 아카아시랑 이러고 있는 거 좋아.

-몸은 어떠세요?

나야 늘 괜찮지. 보쿠토가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나 이내 그의 얼굴엔 심각함이 가득 떠오른다. 잠을 잘 못 자다니. 괜찮은 거야? 무슨 고민이라도 있어? 노트북 화면 너머 아카아시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냥요. 제가 예민해서 그런 것 같아요. 보쿠토는 찰나의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 예민하다니? 하지만 아카아시는 그 물음엔 대답하지 않았다.
6개월 전지훈련이었다. 짧게는 3일에서 길게는 한 달. 훈련 탓에 떨어져 있었던 적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리도 길게 떨어져 있었던 건 처음이다. 한 쪽에서 달을 보면 다른 한 쪽에선 해를 본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이내 적응했다. ‘보고 싶다’라는 감정은 거리마저 익숙하게 만들었다. 일과가 끝나면 익숙하게 노트북을 켰다. 아카아시는 자기가 늦게 잠들어서 참 다행이란 말을 여러 번 했다. 누구 하나가 조금은 희생해야 하는 관계가, 보쿠토는 싫었다. 돌아가면 내가 뭐든 해 줄게. 화상통화를 마무리 할 때쯤엔 늘 그리 말했다.  

“보쿠토 씨.”
-응?
“피곤하세요?”
-아, 아니야. 근데 정말 시간 늦지 않았어? 이제 그만 자야 하지 않아?

아카아시, 거기 이미 새벽 3시 아니야? 너무 늦게 자면 내일 힘들잖아. 이제 그만 자. 금안에 잔뜩 녹아있는 걱정을 모른 척 할 정도로 아카아시는 모질지 못 했다. 조금만 더 통화하고 싶다는 말을 해 봐도, 이미 단호해진 그에겐 통하지 않을 것이다. 안녕히 주무세요. 내일 또 봐요. 응, 내일 또 봐. 사랑해. 네, 저도요. 익숙하게 인사를 하고 노트북을 덮는다. 눈이 아프다. 그의 얼굴을 보는 건 좋지만, 계속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는 건 적잖이 무리가 간다. 쓰고 있던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두고, 몸을 일으켰다. 한숨을 쉰다. 휴대폰을 켰다. 3시 5분이다. 정말 자야 한다. 이젠 슬슬, 몸에 무리가 오기 시작한다. 자신이 제일 잘 알고 있다. 아카아시는 욕실 불을 켰다. 온 집에 불을 다 켜 놓고 있다. 거실에도, 부엌에도, 욕실에도.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가 세수를 했다. 한숨을 푹 쉬며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았다. 잠을 못 자서 눈 밑이 푹 꺼져있다. 파르스름하게 변한 눈 아랫부분을 꾹꾹 눌렀다. 밥도 제대로 먹질 못해 볼도 푹 꺼졌다. 노트북 화질이 안 좋아서 다행이다. 이런 세세한 변화까진 그가 화면으로 알아채지 못할 테니까. 아카아시는 욕실 불을 끄고 나오려다 멈칫 한다. 불을 끄지 않으면 잘 수 없는데. 하지만 불을 끄면.

불을 끄면.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자지 않아 정말 쓰러질 것 같다. 아카아시는 심호흡을 했다. 거실 불을 껐다. 발걸음을 옮긴다. 부엌 불을 껐다. 대신 부엌과 욕실 사이에 있는 작은 장식장 위에 있는 무드 등을 켰다. 그리고 욕실 불을 껐다. 한 번 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쉰다. 방문을 닫고, 잠갔다. 불을 끄기 전 침대 옆에 있는 작은 스탠드를 켰다. 탁, 작은 소리와 함께 방 안이 희미한 오렌지 빛으로 물들었다. 아카아시는 침대에 조심스레 몸을 파묻었다. 오늘은 부디 아무 일도 없길 바라며.

“….”

옅은 잠에 빠졌을 때였다. 아카아시는 시선을 느꼈다. 어디선가 저를 바라보는 시선이었다. 아카아시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방 안은 여전히 오렌지 빛이었다. 침대 옆을 더듬어 휴대폰을 열었다. 3시 30분이었다. 아카아시는 이불을 뒤집어썼다. 이번에도 시선은, 책상 아래에서 느껴졌다.

처음, 그 기묘한 시선을 느낀 것은 이주일 전이었다. 자정까지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했다. 곧 중간고사였고, 보쿠토도 그것을 알아 굳이 연락하지 않았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잘 자고, 잘 챙겨 먹고. 그에게서 온 라O 메시지에 답을 하며 아카아시는 불도 켜지 않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대로 그냥 자버릴까. 너무 피곤해서 몸을 일으키는 것도 힘들었다. 눈이 서서히 어둠에 익숙해졌다. 아카아시는 멍하니 책상을 바라봤다. 넓은 책상. 컴퓨터가 있고, 작은 책장이 있고. 서랍이 있고. 살짝 빼진 의자. 그리고 책상 밑의 공간에도 책을 넣어 두었다. 빛이 닿지 않아, 더욱 새카맣게 보이는 공간.
끼익, 의자가 밀리는 소리가 났다. 아무도 앉지 않았는데. 순간 오싹, 돋는 소름에 아카아시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에이, 설마. 움직이지 않았잖아. 오늘 하루 종일 도서관에 있다 보니 환청을 듣는 모양이었다. 공부를 너무 많이 한 모양이다. 욕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그리고 다시 문을 열었다. 밝은 욕실에 있다 어두운 방으로 돌아오니 또 다시 눈이 한참을 어둠속에서 헤맸다.
내 방이 이렇게 어두웠던가…? 앞을 더듬거리며 침대에 앉았다. 이제 그만 자야겠다. 너무 피곤해서 이러는 게 틀림없다. 아카아시는 이불을 덮었다. 보쿠토 씨, 저 잘게요. 답장을 꾹꾹 눌렀다. 휴대폰을 내려놓고 눈을 감았다.

지잉-. 진동소리가 들렸다. 아마 보쿠토가 답장을 보낸 것일 터였다. 램프가 깜빡인다. 휴대폰을 뒤집는다. 다시 주변이 어둡다. 목이 말랐다. 물을 마실 생각으로 몸을 일으켰다. 아카아시의 눈이 저절로 책상 밑을 향했다. 한층 더, 검고 어두웠다.
어렸을 적, 보았던 괴담이 떠올랐다. 책상 밑에서 귀신이 나온단 얘기였나. 하긴, 저렇게 어두우면 뭔가 나와도 이상하진 않겠다. 아카아시는 눈을 깜박였다. 시선이 고정된다. 새카맣다. 아주, 까맣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몸을 일으켰다. 쭈뼛, 온 몸의 털이 곤두선다.

시선이 따라왔다.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다. 그 무언가는 저 곳에 있다. 저 곳. 책상 밑에 있다. 있을까? 있지 않을까? 그러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있나? 있나보다. 불안은 확신으로 굳어갔다. 있다. 있는 것 같아. 있어. 아카아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나름 담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무언가와 실제로 마주하려고 하자 보통이 아닌 용기가 필요했다.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움직여 전등을 켰다. 방 안이 밝아졌다. 시선이 사라졌다. 아카아시는 마른 침을 삼켰다. 책상 의자를 똑바로 집어넣고, 황급히 물을 마시고 다시 불을 껐다. 시선은 사라졌지만 아까의 공포는 그대로였다.

처음엔 책상 밑에서 시작한 시선은 이내 집안 곳곳 어두운 곳에 똬리를 틀었다. 그 시선은 언제나 틈새에 있었다. 좁고, 깊고, 어두운 틈새. 마치 그 틈에 공포라는 씨앗이 뿌리내려 싹을 틔우는 것 처럼. 집안의 틈이란 틈엔 전부 다 시선이 있는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틈새를 바라보는 게 두려웠다. 만약 쳐다보다, 그 안에서 두 개의 동공이라도 마주치면 어떡하지? 공포는 상상을 불러왔고, 상상은 더 큰 공포를 불러왔다. 보쿠토 씨, 보쿠토 씨.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가 있을 때도 이랬던가? 아니야, 그가 있을땐 이러지 않았어.
결국 시선은 불면을 불러왔다. 잘 수 없었다. 자려고 누울 때 마다 새까만 어둠 속에 파묻혀 있던 시선이 아카아시를 쳐다봤으니까. 무서워요 보쿠토 씨. 무서워요. 언제 돌아오세요? 차마 말 못하고. 그와 통화하는 시간만 기다린다. 집이 너무 무서워 해 지기 전 모든 집의 불을 켜놓고 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어두운 곳을 만든다. 조명을 더 들일까. 무서웠다. 집이 전부 밝아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기절하듯 억지로 잠을 청하다가, 다시 깨어나면 시선이 느껴진다. 끈질긴 시선에 결국 구토를 한 적도 있었다. 집 안에선 제대로 식사도 하지 못 했다. 피가 마른다는 건 이런 걸까. 아카아시가 떨었다. 하루하루, 보쿠토만 기다렸다. 선배, 선배 언제 돌아오세요. 선배.

앞으로 남은 2개월. 버틸 수 있을까. 너무 마른 것 같다는 동기들의 말에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죽을 지도 모른다. 아카아시는 강의실에 앉아 멍하니 칠판을 바라보았다. 그때였다. 어두운 틈. 강의실의 어두운 틈새. 집 안에서 부터 지독하게 저를 따라오던 시선.

그 시선이다.

“아카아시?!”
“죄, 죄송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모두의 시선이 꽂힌다. 징그럽다. 눈동자들이 징그럽다. 동공이 흔들렸다. 정신이 혼미하다. 교수 옆에서 시선이 저를 보고 있다. 어디까지나 따라 붙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아카아시는 결국 정신과를 방문했다. 신경쇠약 판정을 받았다. 어두운 틈새에서 저를 훑고 있는 시선에 대해선 말하지 않았다. 보쿠토에겐 비밀로 했다. 대신, 처음 그와 화상통화를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다.









지옥 같은 2개월이 지났다. 보쿠토는 바로 아카아시의 집으로 향했다. 요즘 점점, 화면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아카아시가 쇠약해졌다. 공부가 힘들어서 그런 거라곤 했는데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 거야? 잠은? 매일 하는 말이었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으며 웃기만 했다. 언제부터 네가 그렇게 부서질 것 같은 웃음을 지었는지, 알 수 없었다.

“아카아시!”

현관문을 열었다. 집 안엔 불이 켜져 있었다. 대낮이었는데도. 보쿠토는 불을 껐다. 모두 껐다. 그러자 방 안에서 안 돼! 하는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보쿠토 씨…?”

무슨 일인가 했다. 꿈이라도 꾸는 건가. 이렇게 바짝 마른 사람이 아카아시라니.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꽉 끌어안았다. 기다림이 너를 그렇게 만들었니. 내가, 너를 그렇게 만들었어?

“보쿠토 씨….”
“아카아시. 좀 자자 일단.”
“….”

그의 청록색 눈동자가 흐릿해졌다. 이상하네요. 보쿠토 씨가 없었을 땐, 불을 켜도 불이 꺼진 것 처럼 어두웠는데. 모든 곳에서 저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는데. 이상해요. 지금은 불도 다 껐는데. 너무 환해요.

“어서 오세요.”
“응, 다녀왔어.”
“좀 자도 될까요?”

보쿠토가 아카아시를 안아 올렸다. 침대에 눕히고, 그의 몸을 끌어안았다. 그는 며칠을 못 잔 사람처럼 금세 깊은 잠에 빠졌다. 사람이 너무 그리우면, 병에 걸릴 수 있구나. 아카아시는 잠들기 전, 더는 느껴지지 않는 시선에 희미하게 웃음을 흘렸다. 아, 내 모든 불안은 당신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었군요. 무엇이 있었던 걸까요. 아마 사실은, 아무것도 없었던 거겠죠. 네? 보쿠토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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