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네타리움. 천체 투영관도 안 되고 플라네타륨도 안 된다. 플라-네-타-리움. 자모음 하나하나가 공기를 막았다 터트렸다 하며 흐른다. 그 흐름이 꼭 시간의 경과 같고 별자리의 이동 같다. 우리가 계절별 별자리라고 부르는 것은 그 계절에 하늘의 중심부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를 말하는 거예요. 봄철 별자리라고 해서 여름에 완전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천구를 흉내 냈지만 턱없이 아담한 돔에 들어앉아 컴퓨터 그래픽으로 꾸며 낸 밤하늘의 상을 보고 눕는다. 디지털 이미지로 만들어낸 항성들은 위협 직전까지의 수준으로 선연히 빛난다. 해설자의 음성이 북두칠성에서 출발해 프로키온 베텔게우스 시리우스를 이으면 만들어지는 겨울철 대삼각형으로 나아가는 동안, 눈 한번 깜짝 않고 천장(하늘인 체하는)을 응시한다. 그러면서 모든 걸 듣는다. 특별히 귀를 기울이지 않아야지만 들리는 소리가 있다. 어린아이의 조심스러운 탄성이나 덜 어린 이의 저기 봐, 저기, 하고 주의를 끄는 말, 뒤로 젖혀지는 의자에 몸을 누인 사람들의 색색거리는 숨소리 등이 그렇다. 나 역시 인간이라는 사실이 수긍 가능한 방식으로 다가온다. 꼬리를 늘어뜨리고 온 우주를 유영하는 혜성처럼 살고 싶었던 적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나의 존재 자체가 무언가로 하여금 나를 압도할 구실을 내어 준다고 생각하면 현기증이 일었다. 그 끝도 없을 스케일보다는 나 자신의 무언가가 노출되었다는 사실이 더 아찔했다. 그 무언가는, 자존심, 자만, 존재, 목표 의식, 그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없겠으나 우주에 대해 생각하면 너무나도 쉽게 취급 주의 딱지가 붙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 내 자신을 진짜 우주 앞에 덩그러니 내놓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들 어떠셨나요, 즐겁게 보셨나요, 오늘을 계기로 밤하늘에서 별자리를 찾아보는 건 어떠실까요. 그러면, 나의 방어 기제는 다 소진된다. 터무니없이 작은 돔에는 다시 조명이 들어오고, 사람들이 제각기 웅성거리면서 떠날 때 가뿐하고 무력한 몸을 일으키면 그만이다. 다시 1 대 1 스케일의 세상으로 걸어 나가면 다음 격동 전까지 왜곡이나 축소 따위는 찾아오지 않을 것이다.

물 하(河), 때 시(時). 물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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