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



그 때 봤던 눈을 잊을 수가 없었다.

검은 눈이었다.

한 순간에 수많은 감정을 봤다.

경악, 두려움, 절규, 그리고......그런 것들.

그 눈이 옅은 갈색으로 변한다.

빛 아래서는 황금빛으로도 보이는 그런 색.

의아한 눈. 놀란 눈.


확신하는 눈.


「ㅡ내가 안 그랬어, 정말이야!!」


씨발.






“깼어요.”

“벌써?”

“빠른데요?”


될성부른 떡잎이네. 나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베이지 색 천장. 샹들리에. 왠 영어 문장. 비쌀 것 같은 벽시계.......시계? 나는 숫자 2를 가리키는 짧은 바늘을 보자마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순간적으로 구역질이 올라왔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팠다. 뒤통수에 드릴이 박혀 돌아가는 기분이었다. 휴대폰. 휴대폰 어딨어. 선반 위에 놓인 휴대폰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손을 뻗었다.


“집에는 연락해뒀어요.”


옆 테이블에서 노트북을 두드리던 여자가 말했다. 나는 작렬하는 두통에 오만상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폈다. 날 구해줬던 남녀 두 사람과 들어올 때 봤던 중년 남자. 거기에 검은 뿔테 안경을 쓴 젊은 남자까지 네 사람이었다. 밝은 곳에서 보니 더 확실했다. 전원 안면 없는 사람이다. 완벽한 타인. 가장 가까운 소파에 앉아 있던 중년 남자가 말했다.


“다리는 좀 어떻습니까. 다행히 깊게 박히진 않아서, 삼 일 정도 있으면 이상 없이 걸을 수 있을 겁니다.”

“......박히.....깊이, 뭐요?”

“테이저 건 맞았잖아요. 기억 안 나요?”


그게 뭔데. 나는 이 상황을 이해해보려 애썼지만 허사였다. 여자가 옆의 의자를 끌어다 내 앞에 앉았다. 정리를 좀 해야 될 것 같은데.


“정도은 씨가 있는 여기는 강남구에 있는 살롱 쿠이드라는 곳이예요. 도은 씨는 어젯밤에 습격을 당했고, 그 과정에서 오른쪽 다리에 테이저 건을 맞았죠. 바로 치료를 해야 했지만 병원은 이것저것 절차가 까다로워서 일단 이쪽으로 데려왔고, 마취 주사 놓고 테이저 심을 뽑았어요. 그 과정에서 잠시 기절한 것 같아요. 올 때 자꾸 집 걱정을 하길래 일단 신림동 친구집에서 자고 간다고 어머니 편으로 문자 보내뒀어요. 아, 휴대폰은 잠금장치를 해놓는 편이 좋겠어요. 비밀번호가 있어도 열긴 했겠지만 나쁜 사람들이 손대면 큰일이잖아요. 또 안 말한 게 있나? 일단 말해줄 수 있는 건 이 정도예요.”


나는 할 말을 잃은 채 앉아 있다가 머리를 짚었다. 이게 뭔데, 진짜. 그래도 말은 해야겠기에 일단 입을 열었다. 저기요,


“나쁜 사람이고 뭐고 남의 휴대폰 함부로 열어본 사람한테 들을 얘기는 아닌 것 같거든요. 말을......설명해주셔서 고맙긴 한데 내가 알아들은 건 여기 강남이라는 거밖에 없어요. 난 일단 당신들이 누군지도 모르고, 내가 왜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한테 개ㅆ.....그 총 같은 거까지 맞아가면서 납치를 당할 뻔했는지도 모르겠고, 거기에 당신들은 어떻게 가 있었는지도 모르겠고......왜 씨발 멀쩡히 집 가다가 이 꼴이 됐는지도 전혀, 1도 모르겠거든요.”


잠시 시선을 주고받던 네 사람은 중년 남자를 쳐다보았고, 소파에서 일어난 그는 탁자 위에 놓여 있던 서류철 같은 것을 집어들고 내게로 다가왔다. 붉게 빛나는 눈 위로 덮인 45라는 숫자가 검었다.


“저는 문복현이라고 합니다. 정도은 씨가 혼란스러워 하는 건 충분히 이해합니다. 여러 모로 좋은 상황은 아니었으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쪽에서도 이런 사태를 원하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도은 씨에게 접근할 생각이었지요. 상황이 상황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마는.”

“.......접근이라고요? 저한테? 왜......?”


안경 뒤로 보이는 눈이 휘어지며 날카로운 빛을 뿜었다. 짐작 가는 게 있으실 텐데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툭, 툭. 심박이 빨라지는 게 느껴졌다. 어떻게 알았냐고 물으신다면,


“오채연 어린이 실종사건.”

“!!!”

“그리고 3일 밤에 행당동에서 있었던 뺑소니 사고도 있지요. 대답이 되었습니까?”


한순간 머리가 새하얘졌다. 그걸......어떻게 알지. 뺑소니야 그렇다 쳐도 어떻게, 어떻게 그 때 일을 알고 있는 거지. 대체 뭐하는 놈들이야. 나를 그 때부터 지켜봤다는 건가? 경찰하고 연결되어 있는 거야? 그냥 연줄인가? 아니면 조직? 그런데 이제 와서 접근한다고? 왜?


“일단 이것부터 보십시오.”


그는 내게 파일에서 뽑은 종이 하나를 건넸다. 이게 뭐야. 표준근로계약ㅅ.......???? 나는 황당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다 서류를 마저 읽어내려갔다. 근로 기간, 근무 장소, 업무 내용.......임금......!?!!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잘못봤나?


“잘못 본 거 아닙니다.”

“이게......뭔데요. 왜 이걸......??”

“써 있잖습니까. 근로 계약서입니다. 여기 두 사람은, 정도은 씨를 스카웃하러 거기에 간 겁니다.”


머리가 벌써부터 삐걱댄다. 아니, 사실은 방금 전까지 계속 그랬다. 나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머리가 띵했지만 정신은 좀 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뭐???


“도은 씨도 이미 알고 있겠지만, 여기 있는 사람들은 저를 포함해서 모두 도은 씨와 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이쪽에서는 그런 사람들을 테이커(TAKER)라고 부르죠.”

“테이커.......”

“기본적으로 사람의 남은 수명을 볼 수 있고, 수명을 특정한 사람에게 옮기거나 빼앗는 것도 가능합니다. 강력한 힘이지요. 지금까지의 사례를 보면 발생 원인은 대체적으로 유전입니다. 도은 씨가 테이커라는 건 집안에 다른 테이커가 하나 이상은 있다는 겁니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뿔테 안경이 끼어들었다.


“하지만 같은 혈연이라도 애초에 태어날 확률이 극악이라 소수인 건 마찬가지죠. 발생 확률은 전체 인구의 0.0001%도 안 되니까.”

“숫자로 들으니까 새삼 진짜 적네.”

“그래도 76억 명 중에 76만이야. 5천만 중에 5000명이고.”


그야 흔할 리가 없겠다고는 생각했다. 그래도 한국에만 5000명이면......엄청 많은 거 아닌가. 어쩌면 우연히 한 명쯤은 마주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마주친 결과가 이 상황이지만...... 나는 종이를 내려놓으며 흘러내리는 머리를 쓸어넘겼다. 뭔가 말을 해보려 해도 입은 소리를 내지 못하고 뻐금거리다 다물리기를 반복했다. 긴 침묵이 흐르는 와중에도 누구 하나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덕분에 멍했던 머리가 조금씩 진정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머리를 있는 힘껏 갈겼다. 일단 정신을 차려야 한다. 정리도 뭐고 머리가 뒤죽박죽이지만 뭐라도, 뭐라도 생각을 해야 한다. 종이 위를 헤매던 시선이 G&T라는 로고에 가 박혔다.


“아직, 그, 뭐지, 아무튼 이해가 안 되긴 하는데 어쨌든......회사, 라는 거죠.”

“예.”

“제가 알기로 그, 회사의 존재목적은 이윤창출인데요.”

“그렇습니다.”

“혹시, 그, 수명을......사고 판다거나 뭐......그런 일로 수익을......?”

“그건 아닙니다.”


문복현의 시선이 벽으로 향했고, 나는 자연스레 아까 전에 스쳐가듯 봤던 영어 문장을 읽었다. All are equal in lifespan. 수명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여자가 노트북을 덮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긴 손가락에 끼워진 머리끈이 주우욱 늘어났다 줄어들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일종의 수금 대행업이예요. 사채업자 밑에서 돈 받아다 주는 덩치들 본 적 있죠? 우리가 그렇다는 건 아니니까 오해 말고요. 따로 비유할 게 없어서 쓰긴 했는데 그런 더러운 일은 아니고, 쉽게 말해 뺏긴 수명을 돌려주고 수수료 받는 일이예요.”

“뺏긴......수명이요?”

“힘을 가지면 사람은 보통 휘두르고 싶어하거든요. 왜, 칼을 뽑으면 무라도 벤다고 하잖아요. 어차피 눈치도 못 채는데, 긁어모을 만큼 긁어모으자 하는 사람들이 있죠. 돈이랑 똑같은 거예요. 수수료가 수명일 뿐이죠.”

“수명요? 수수료가?”

“무슨 일이든 대가는 필요한 법이니까요.”


세세한 부분까지 말하면 이야기가 복잡해지고, 대충 개괄적으로 말하면 이런 것이라며 문복현은 손깍지를 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쏟아져들어오는 정보를 정리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입이 바싹바싹 마르는 것을 느끼며 나는 침을 삼켰다. ......그러니까 주로 하는 일은,


“다른 테이커를 잡는다는 얘기네요. 그, 수명을 뺏을 수 있는 건......우리, 같은 사람들뿐일 것 같고.”


문복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종이를 들며 말했다. ......이건,


“위험수당이고요?”


말없이 뒤에 서 있던 남자가 휘파람을 불었다. 나는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문복현은 계약서를 꺼냈던 파일철을 펼쳐 내 앞으로 내밀었다. 나는 내 이력서와 그 안에 적힌 온갖 개인정보를 알아보았다. 담배를 피우는 아빠. 마트에서 장을 보는 엄마. 펍에서 당구대를 든 채 웃고 있는 오빠의 것까지, 어디서 구했고 찍혔는지도 모를 사진들이 클립으로 끼워져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을 보니 헛웃음만 나왔다.


“위험한 일인 건 사실입니다. 숨길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위험 수당인 것도 맞습니다. 하지만 강요하지는 않습니다. 도은 씨가 선택하시는 겁니다. 이 자료들을 가지고 있는 건 어디까지나 보호 차원입니다. 혹시 모를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고요. 어젯밤 같은 상황 말입니다.”

“......그, 하나 더 있어요. 그 사람들, 어떻게 알고 절 납치하려고 한 거죠?”

“그쪽도 그쪽 나름의 데이터베이스가 있는 거죠. 절대 눈뜨고 멍청하게 당할 작자들은 아니거든.“


뿔테안경을 손가락으로 들어올리며 남자가 말했다. 이번에는 우리 손이 더 빨랐던 것뿐이고요. 여자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고 보니 그 남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지금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흘러내리는 머리를 이마 위로 넘기며 침을 삼켰다. 손가락이 일렬 종대로 늘어선 사진들 위를 방황했다. 지끈거림에 눈이 절로 감겼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라더니.


“지금 바로 결정해달라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미 얼굴이 노출된 이상 어떤 식으로든 어제 같은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같은 사람은 많지 않으니까요.”


이 와중에도 깔끔한 사진 속 얼굴들이 조금은 어색하게 보여 웃겼다. 나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파일을 덮는 소리 뒤로 딸깍, 볼펜 뚜껑을 누르는 소리가 났다.






“일찍일찍 전화하고 그러지 문자가 뭐니? 다리는 왜 그래.”

“오다가 계단에서 굴렀어요.”


조심하라며 타박하는 엄마를 지나쳐 방문을 꽉 닫았다. 문에 기댄 등이 주르르 미끄러진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니 다리가 욱신거렸다. 바지를 걷어 보니 벌에 쏘인 것 같은, 붉은 구멍이 시퍼런 멍에 둘러싸여 있었다.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냈다. 원래 쓰던 것이 아닌, 검은색 폴더폰이었다.


『내일 아침 8시까지 같은 주소로 오시면 됩니다. 복장은 따로 상관 없습니다.』


손가락 끝에 묻은 파란 잉크가 눈에 띠었다. 침대에 몸을 던지니 졸음이 밀려왔다. 계약서에 쓰여 있던 숫자들과 조항들이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너무 충동적이었나. 하지만 나한테 나쁠 게 없었다. 일단 돈 많이 주고(위험수당인 것 같지만), 30분 거리고, 스카웃이라니 대우가 박할 거 같지도 않고...... 야근이나 휴일 출근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 돈 받으면 해볼 만하다. 해볼 만하지, 진짜로. 몸 튼튼하다는 게 몇 안 되는 장점이었으니 충분히 해볼 만했다. 이참에 원룸을 구해 살까 싶었다. 눈앞이 깜빡거리는 와중에 그 여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결과적으로 보면 누군가를 돕는 일이고, 살리는 일이기도 하죠. 딱히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요. 나는 귀에 더듬더듬 이어폰을 꽂은 채 눈을 감았다. ......됐어. 나는 중얼거렸다. 그거면 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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