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레스 입는거 아니었어요?"

"소라가 제로의 제복 차림을 꼭 보고싶다고 해서. 개인사정으로 제로의 졸업식 때 소라가 귀국하지 못했었거든. 물론 제로도 소라의 졸업식에 가지 못했고."


오늘은 조직 일을 전부 마무리 지은 레이와 소라가 친구들과 아이를 데리고 웨딩사진을 찍는 날이다. 다만 둘 다 서로의 제복 차림을 직접 본 적이 없었기에 그 사진도 따로 포함하기로 한 것이다.


"와- 내가 이걸 못 봤다는 거야? 진짜 교수님 가만 안 둬..."

"더 어릴 때 모습으로 못 봐서 아쉽겠어-"

"아 그건 됐어.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거든. 우리 고모가 피부관리법을 궁금해 할 정도니까."

"그건 나도 궁금한데 이참에 가르쳐 주라, 후루야짱~"

"반장도 좀 배우는게 어때?"

"마츠다...너..."


모이면 어김없이 소란스러워지는 경찰학교 동기들은 모인 목적을 잊고 또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앞자리가 3이 된 사람들이 나이값도 못한다는 생각에 한심한 얼굴로 쳐다본다. 그걸 발견한 히로미츠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사과의 말을 건낸다.


"너희들 협조 안 할거면 하기와라 빼고 다 꺼져."

"어이쿠- 후루야짱 화났다~ 얼른 찍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하기와라의 말에 상황이 빠르게 정리되었고, 레이와 소라가 포즈를 잡게 만든 하기와라는 열심히 셔터를 눌러댄다. 레이의 동기들은 그새 재미가 들려 레이와 소라에게 이런저런 포즈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물론 도중에 도가 넘었을 땐 레이의 무시무시한 눈총을 받으며 한 발 물러섰지만.


"드디어 웨딩드레스인가..."

"저기, 아이짱. 혹시 소라의 드레스 본적있어?"

"아뇨. 코이즈미 상이 주문제작했다는 걸 혼자 시착하러 갔으니까요."

"코이즈미면 소라의 고등학교 친구라는 재벌 2세였나."

"드레스만 제작하고 식을 안하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텐데 용케도 맡겼네."

"아, 그거라면 아무로 토오루로는 면식이 있으니까 소라랑 같이 둘이서 만났는데 소라가 자기 입장상 공개 결혼식을 못하니까 누군 부르고 누군 안 부르고 할 바에 안 하는게 낫다고 얘기했데."

"잘도 이해해줬네. 걘 소라의 표면상의 소속 밖에 모르는거 아냐?"

"표면상의 소속도 기밀을 유지해야하는데 충분하니까."

"다들 무슨 얘길 그렇게 해?"


먼저 옷을 갈아입고 나온 건 레이였다. 외모가 워낙 눈에 띄는 편이라 직업상 정장을 입을 땐 무난한 무채색을 주로 입던 레이는 이번만큼은 밝은 계열의 쓰리피스 예복을 맞춰 입었다. 다소 어두운 피부색 때문에 너무 대비되지 않을까 걱정했던 레이지만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고 하는 만큼 괜한 걱정이었다.


"후루야짱, 나이스!"

"굉장한데? 역시 재벌의 맞춤옷은..."

"옷도 굉장하지만 저건 제로의 얼굴이 열일을 한게 아닐까?"

"뭐, 히로 나리의 말에 반박의 여지는 없네."

"무려 포와로의 매출을 책임지는 얼굴이었던 모양이니까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친구들의 외모칭찬은 익숙하지 않았던 레이가 쑥스러움에 뒷목에 손을 가져가며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그가 분위기에 익숙해졌을 때쯤 소라가 연푸른 레이스 장식의 하얀 머메이드 라인 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 사정상 타인의 도움 없이 드레스를 입을 수 있도록 디자인을 구성한 덕에 등쪽은 노출이 있는 편이었고 매듭은 허리 부근에서 묶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머리카락을 틀어올린 덕에 노출된 부분에 더 눈길이 가게 만들었다.


"뭐야. 왜 다들 말이 없어? 별로야?"

"...소라짱, 미쳤어."

"역시 여자들의 웨딩드레스는..."

"소라, 너무 예뻐."

"입는게 한 벌 뿐이라니 좀 아쉽게 느껴질 정도네."

"예쁘긴 하네, 뭐."


아이와 친구들의 긍정적인 반응을 확인한 소라가 그제서야 뒤쪽에 있던 레이의 모습을 확인하는데 놀라서 그대로 그자리에 멈춰서서는 눈만 깜박거린다. 시야를 방해하던 친구들이 옆으로 비켜서자 소라를 제대로 눈에 담을 수 있었던 레이 역시 비슷한 반응이었다.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예요? 놀란 건 알겠는데 그래선 제시간에 사진 다 못 찍어요."

"그치만! 저게 말이 돼?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생겼지? 미친거 아냐? 하나가 기를 쓰고 보여주지 않으려 하면서도 엄지나 치켜세운다 싶었는데...진짜 기절하겠네."

"소라...단어 선택이 엉망이 되고있어."

"팔불출 납셨네. 야, 제로. 너도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거냐? 새삼 반했다는 건 알겠는데 얼른 움직이지?"

"...공개 결혼식 못한게 다행, 아니, 그냥 결혼식 자체를 안 한게 다행일지도."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너 못해서 좀 아쉽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 모습을 다른 사람 보여준다고? 말도 안 되지. 아이는 그렇다 쳐도 너희들 다 꺼지라고 말하고 싶은데. 반하면 어떡하냐."

"하하! 결혼식 안 하길 다행이네~ 했으면 후루야짱이 소라짱 쳐다보는 하객들을 눈빛으로 죽였을 거야~ 그것보다 살벌한 결혼식은 없겠는걸?"

"둘 다 제정신이 아니네요. 그만하고 사진 찍게 움직이죠?"


아이의 재촉에 소라와 레이는 자리를 잡긴 했지만 서로의 모습에 너무 부끄러워 하는 탓에 자연스러운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더 소요되었다. 하지만 시간이 걸린 그 결과물은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다. 후에 액자에 넣을 사진을 다 같이 고르면서도 버릴 것 하나 없어 한참을 고민했을 정도였다. 어찌저찌 무사히 촬영을 마친 뒤 다같이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는데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를 먹을 때 쯤 아이가 불쑥 소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용케도 한 벌만 골랐네. 전에 만난 코이즈미 상의 성격을 생각하면 드레스든 턱시도든 한 두벌을 만든게 아닐 것 같았는데. 돈이 문제가 될 것도 아니고."

"그건 그렇네. 다른 건 너무 노출이 심했다거나 뭐 그런거였어?"

"아니. 예상대로 하나는 왕창 만들 생각이어서 내가 줄이고 줄여서 5벌 이상은 안 된다고 미리 못 박아둬서 그 정도만 만들었고 다 예뻤어. 어느 걸로 골라도 문제가 없을 정도로."

"응?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그때 생각보다 빨리 나오지 않았어? 정장인 나보다 시착 시간이 길었을 걸 생각하면 오히려 순수하게 고르는데 걸린 시간은 나보다 짧았을 것 같은데."


비록 고르는 모습을 보진 못했지만 방문은 같이 했기에 그때 일을 떠올리며 의문을 가진 레이. 실제로 소라는 다섯벌을 다 입긴 했으나 마지막으로 입었던 오늘의 드레스를 시착하고 조금의 고민도 없이 그 드레스로 하기로 결정했었다.


"오늘 입었던게 가장 마지막에 시착했던 건데 입고 거울을 보자마자 고민할 필요가 없었어."

"다 예뻤다면서?"

"예뻐서 고른거 아니야. 음...정확히는 예뻐서 고른건 맞는데 드레스가 예뻐서 고른건 아니었어."

"그럼 뭔데?"


레이의 물음에 소라는 그의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이내 웃음을 터뜨린다. 그에 레이는 맑게 웃는게 예쁘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이유를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린다. 소라는 여전히 웃는 얼굴로 레이의 눈가를 콕 집으며 답을 건낸다.


"눈. 레이의 그 푸른빛 눈동자가 예뻐서 고른거였어. 입고 거울을 보자마자 레이의 눈동자가 떠올랐거든. 나머지 드레스는 전부 흰색만 쓰거나 다른 색이 있어도 아주 옅은 분홍색 정도였거든."


소라의 대답에 레이가 얼굴은 물론 목과 귀끝까지 빨갛게 물들인건 당연했고, 아이와 그의 동기들도 얼빠진 얼굴을 해보였다.


"내가 대체 뭘 얻겠다고 여기 있는건지. 나 갈란다."

"마츠다 상, 가려면 저도 좀 데려다 주세요. 아무래도 이 부부는 둘 만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으니까요."

"소라 넌 어떻게 매번 플러팅 실력이...따로 배우는 건 아니지?"

"이거이거- 난 이제 명함도 못 내밀겠는데~"

"소라 진짜 굉장하다..."

"표현에 인색할 필요는 없잖아. 위험을 달고 살다보면 표현에 인색하는 건 결국 후회를 가져온다는 걸 깨닫게 되니까."

"소라..."


아이의 말대로 어느새 둘 만의 세계를 만들어 버린 소라와 레이는 주변 이들이 어떻게 쳐다보든 신경쓰지 않고 서로를 바라보며 웃기 바빴다. 소라는 자신이 후루야 소라임을 말할 수 있는 이가 손에 꼽을 정도이고 앞으로 수십년 간 대외적으론 후지미네 소라나 아무로 소라로만 살겠지만 그럼에도 행복했다. 그리고 그건 소라가 자신의 아내임을 당당히 말하고 다니지 못 할 레이도 마찬가지 였다.


"레이, 나중에 너 보직 바뀌면 꼭 다시 식 올리자. 그땐 후루야 레이랑 후루야 소라로."

"그래. 내가 열심히 할게. 빨리 승진해야 할 이유가 생겼네."

"난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으니까 무리는 금물이야. 알지?"

"알았어. 사랑해, 소라."

"나도 사랑해, 레이."


후에 전례 없는 빠른 승진으로 쿠로다보다 젊은 나이에 이사관 자리를 꿰찬 레이가 모두의 축복 아래에 소라와 결혼식을 올리게 된 건 제로 내부에서도 전설로 남게 되었다나 뭐라나.



세라 님 좋아요 감사합니다.

아니, 이게 이렇게 짧을 줄은 몰랐네요;; 그냥 합쳐서 올릴 걸 그랬나봐요...허허...여튼 소꿉친구 ver은 이걸로 완결입니다! 지금은 너의 이름은AU를 끄적거리는 중인데 좀처럼 진도가 안 나가네요. 이것도 아마 다 쓰고 나면 이번 에피소드랑 비슷하거나 조금 더 짧은 긴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몸이 바뀐 레이가 소라의 몸으로 동기들 구하는 동기조 생존 버전이 될 예정입니다 ㅎㅎ 그나마 이번 달이 여유가 있는 편인데 과연 이번 달 안에 연재를 할 수 있을 것인가...원래 시험기간에 공부 빼고 다 재밌는 것처럼 덕질 침체기가 오면 글을 쓰는 거 말고 다 재밌어져버립니다. 그래도 열심히 노력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더 보고 싶은 소재가 있으시다면 댓글로 남겨주세요. 글로 쓸 수 있으면 언젠가 여기에 올라오게 될 테고 여의치 않으면 트위터 썰이 되었다가 포스타입에 썰 백업 시리즈란에 올라가게 될 거랍니다. 그 외에 기타 궁금한 점은 언제든지 댓글로 남겨주시면 답변드립니다. 작가의 트위터 계정 디엠도 언제나 열려있답니다.

그럼 다음 언제가 될지 모르는 다음 에피소드에서 다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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