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레벌레 C급 센티넬 생존기 D+15

시즌 2 프롤로그

ㄴㅡㄹㅂㅣ




생생한 그날의 기억.




콰-콰-쾅.


모든 게 다 터지던 그날. 발밑은 물론 대기까지 남김없이 폭발한다. 모든 걸 다 포기한 내가 폭발에 몸을 맡긴다.


“이여주!!!!”


손이 당겨지는 느낌에 눈을 떠 뒤돌아봤다. 다급한 표정의 재민이 모든 걸 포기한 날 감싸 안는다.


어, 나재민은 이 일에 휘말리면 안 되는데. 나를 껴안는 온기에 정신이 번쩍 든다. 이미 제 주변으로 모든 것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안 돼. 너네는 다치면 안 돼…. 그건 내 계획에 없었단 말이야.


다급하게 재민을 품에 안아 능력을 사용했다. 내 능력. 그래비티.


가이딩이 빠져나가는 것도 생각하지 않고 모든 능력을 쏟아부었다. 오랜만에 사용하는 내 능력. 흥분감이 온몸을 감싼다.


그리고 그게 내 마지막 기억이었다.


허망한 얼굴로 허공을 바라보는 동혁을 본 나는 지금도 매일 그날의 꿈을 꾼다.
















“정신 못차려!”

“…”

“여주야, 대체 왜 이러는 거야.”

“…”


재현이 머리가 아프다는 듯 제 머리를 감싼다. 벌써 5년이 지났다. 여주가 멍하니 재현을 바라보고 있으면 저 멀리서 나재민이 달려온다.


“형! 제가 대신 할게요.”

“…그래. 재민이 네가 대신 애들 좀 봐주라. 이여주 너는 빨리 정신 차리고.”


재현이 걱정스레 여주를 쳐다보고는 훈련실에서 빠져나간다. 재민이 여주의 손을 잡고는 조용한 훈련실 밖으로 데려간다. 훈련실 내부는 위험한 것으로 가득했으니까.


“오늘도 그 꿈 꿨어?”

“…응.”


그 꿈. 이여주가 이동혁한테 큰 상처를 주고 사라졌던 그 날의 꿈. 나재민은 당시 폭발에 휘말려 기절한 상태라 기억이 없다. 그 기억은 여주와 동혁만이 가진 아픈 상처였다.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 조금만 더 기다리면 애들 보러 갈 수 있어.”

“…너는 내가 안 밉니?”


“…안 미워. 그러니까 빨리 정신 차리고 애들한테 돌아가자.”

“어떻게 내가 안 미워?”


애들하고 헤어지게 만들고, 내 멋대로 너를 반정부로 데려왔는데?


“너는 혼자잖아. 동혁이는… 황인준이랑 이제노가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사실 재민도 처음엔 여주를 원망했다. 그렇게 숨기던 게 결국은 반정부였다고? 지금껏 세뇌된 것들이 반정부를 싫어하라는 생각 때문에 잠깐은 미웠지만, 결국엔 제가 여주와 함께 이곳에 온 것에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조금만 버텨. 네가 지금 슬퍼할 때가 아니야. 직접 동혁이한테 사과해야지.”

“…그래야지.”


“이제 얼마 안 남았어. 애들하고 만날 시간이.”

“…응”


여주의 눈에 초점이 돌아온다. 재민이 여주의 어깨를 두어번 두드린 후 먼저 훈련실로 돌아온다.


“애들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오늘도 연습 열심히 하자.”


재민의 말에 훈련실 안에서 눈치만 보던 반정부 아이들이 큰 소리로 대답한다. 네!!!- 밝은 아이들의 목소리에 재민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 반정부가 꿈을 이루고. 여주와 제가 애들을 만나는 그 날까지.




















“정신 차려. 벌써 5년이 지났어.”

“야, 그만…”


“아니, 놔봐. 얘 하는 짓을 봐. 뭐 하는 거야 이게. 매년 이렇게 누워있을 거야?!”

“동혁이도 얼마나 마음이 불편하겠…”


“하, 그 반정부가 뭐가 그렇게 그립다고? 너 이거 상부에 알리면 포상이야, 알아?”

“인준아, 좀…”


인준의 분노에도 동혁은 여전히 이불 속에 누워있다. 5년 전 졸업심사. 그날 이후로 동혁은 웃음을 잃었다. 제 능력으로 애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기억 하나로 괴로워한 동혁은 그날 이후 제 능력을 사용하지 못했다. 더불어 가이딩도 잘 받지 않는 동혁 때문에 인준과 제노는 늘 동혁의 걱정에 마음이 불편했다.


동혁이 어느 날 갑자기 나쁜 생각이라도 할까 무서웠다. 가이딩이라도 받으면 걱정을 안 할 텐데. 매년 이맘때 즘이면 가이딩은 물론 음식도 제대로 먹으려 하지 않는 이동혁 때문에 둘의 걱정은 날로 늘어간다.


여전히 등을 돌리고 누워있는 동혁. 인준은 화가난듯 먼저 동혁의 방을 빠져나간다. 남아있는 제노가 동혁의 방 안에 가이딩을 채우며 말한다.


“정말 죽은 것도 아닌 것 같다며.”

“…”


“애들… 시체도 없었고 도영이형도 죽은 것 같지 않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진짜 죽은 거면 어떡해…? 그럼 나는…”


동혁이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다. 제노는 동혁의 등을 두드리며 동혁이 빨리 나아지길 바랄 뿐이다.


“형들이 말했잖아, 직접 죽은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살아있는 거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애들 찾으러 가자.”

“…”


그때 제노의 손목에서 빛나는 기어. 제노가 당황한 듯 동혁의 눈치를 본다.


“…괜찮아, 다녀와.”

“아…”


“그냥… 좀 자고 있을게. 피곤하다.”


센터에서 찾는 신호에 제노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럼, 나 다녀올게. 쉬고 있어.”


제노가 떨어지지 않는 발을 떼며 숙소를 나온다.  동혁을 지키기 위해서는 제가 더 많은 임무를 나가야했으니까.


“동혁이는 어때.”

“아… 늘 똑같죠. 그래도 작년보다는 더 나은 것 같아요.”


“그래… 다행이네. 일단 출발하자.”


센터에 오고 난 후 동혁과 인준을 포함한 셋은 도영과 정우가 있는팀  ‘NCT’에 들어갔다. 재민과 여주가 있었다면 그 둘도 같은 팀에 들어올 수 있었겠지만…


“가자, 제노야.”

“네, 형.”


도영의 부름에 제노가 빠르게 임무 차량에 탑승한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한참을 달려 도착한 곳은 센터에서 꽤 떨어진 외딴 황무지였다. 아무것도 없는 이곳엔 왜… 제노가 눈알을 굴려 고민한다.


“…여기서 나재민을 봤다는 사람이 있어.”

“네?!”


제노가 놀라 목소리가 높아졌다. 도영이 입 앞으로 손가락을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한다.


“오늘 너만 부른 거는 아무도 몰라야해. 인준이도 몰라야 하고, 동혁이도 몰라야해.”

“…네.”


“센터는 여기서 반정부가 나왔다는 이야기만 듣고 보낸 것 같은데. 예지 센티넬이 그러더라고. 여기서 재민이를 본 것 같다고.”

“…그럼 여주는요?”


“…여주는 모르겠어. 예지 센티넬이 여주는 모르니까.”

“…그럼 살아있다는,”


“그럴 확률이 높다는거지. 아직 확실하지는 않아. 혹시라도 단서가 있으면 찾고 싶어서.”

“…다행이다.”


제노가 안도의 한숨과 함께 뜻 모를 눈물을 쏟아낸다. 살아있다, 나재민이. 그렇다면 여주도 살아있겠지…. 도영은 눈물을 흘리는 제노에게 손수건을 건네며 주위를 둘러본다.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에 반정부는 왜 나타났을까. 그리고 반정부 사이에 있는 재민이라. 여주가 폭발에 휘말릴 때 같이 사라진 건 알았지만. 벌써 반정부에서 한자리를 꿰찬 것일까. 예전부터 센터에 반감을 갖고 있는 건 알았지만. 정말 재민이라면…


“뭐가 됐든…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네.”


그래야 동혁이도 괜찮아지고 재민이도 괜찮아지겠지. 그리고 여주도. 그리고 우리도.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엔 도영의 한숨과 제노의 울음소리만 가득하다.


















여주와 동혁이 5년 전 그날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동안 많은 게 바뀌었다.


인준과 제노는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한 뒤 자동으로 센터에 들어오게 됐다. 동혁은 심사 도중 기권으로 최하점을 받았지만 그동안 있었던 시험에서 높은 성적을 받았기 때문에 턱걸이로 센터에 입사하게 됐다. 


하지만 그 이후로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동혁으로 인해 센터에서 동혁에게 수많은 징계를 내렸지만 그 후에도 동혁은 나아지지 않았다.


소리 없는 폭발. 동혁은 제 화려한 능력에서 소리를 잃었다. 소리를 잃으면서 폭발도 힘을 잃었다. 제 등급인 S의 능력이 아닌 A, B를 겨우 웃도는 정도이다. 센터는 S등급의 이동혁이 제 역량을 펼치지 못하는 모습에 늘 불만이 많다.


도영의 입김으로 어떻게든 동혁의 파면까지는 막아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도영이 숨겨줄 순 없다.


여주는 반정부로 돌아가면 만나고 싶은 가족들을 만나 행복할 줄 알았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눈만 감으면 생각나는 동혁의 마지막 모습 때문에 숨 쉬며 버티는 시간이 모두 괴로웠다.


반정부는 여주가 없던 3년 동안 많은 준비를 해왔다. 세상을 센터 발밑으로 만들려던 계획을 가진 센터와 그들을 저지하려는 반정부.


센터는 민간인에게 반정부를 사회악으로 세뇌시켰다. 정부의 뜻에 따르지 않는 모든 이들을  더 억압하고 심한 경우엔 숨통을 끊었다. 그렇게 반정부 청소를 하려는 센터의 계획 아래 반정부는 더 숨어야했다. 여주가 학교에 있는 사이 그들은 조금씩 계획을 세웠고 여주가 돌아온 이후로도 그들은 만반의 준비를 끝마쳐야 했다.


적당한 때를 기다려야 했다.


센터가 가장 방심할 때. 센터가 가장 정상에 서 있을 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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