곱사등이 한 여자가 내리쬐는 햇빛을 봉긋한 등으로 밀며 뒷걸음질로 걸어간다. 햇빛은 더욱 강하게 타오르고, 여자는 햇빛을 이겨내기 위해 더욱 등을 공처럼 구부린다. 여자가 향하는 곳은 여자가 운영하고 있는 작은 술집이다. 남자는 언제나 그랬듯이, 술집 외부에 놓여진 나무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비워가며 여자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대낮부터 농도가 센 술을 마신 탓에, 남자의 얼굴은 타오르는 햇빛만큼 뜨겁고 벌겋게 달아올라 있을 것이고, 여자가 잔뜩 구부린 등으로 남자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면, 남자는 여자를 향해 입이 찢어질 듯이 웃으며 손짓할 것이다. 주위를 지나치던 수많은 사람들은 남자에게 다가가는 곱사등이의 여자를 쳐다보며 손가락질을 할 것이고, 여자는 이미 잔뜩 구부려진 등을 땅에 닿일 듯이 더 구부려가며 얼굴을 숨길 것이다. 하지만 여자는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남자를 향해 끝없이 걸어갈 것이라는 것을. 등을 공처럼 동그랗게 구부리고는, 마침내 남자의 품에 안길 것이라는 것을. 그러면 남자도 마치 동그란 축구공을 품 안에 안고있듯, 여자의 등을 쓰다듬어줄 것이었다. 

 

 남자는 여자가 예상한 대로, 술집 외부에 놓여져있는 나무테이블에 앉아 술잔을 비워가고 있었다. 남자는 이미 다 비워낸 술병 하나를 손에 들고 그녀에게 손짓했다. 짙고 두꺼운 속눈썹과, 볼에 난 주근깨, 어딘가 축 쳐져있는 입꼬리. 여자가 남자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중, 남자가 입을 열었다. 오늘부터 당신 집에 들어가서 살고 싶어. 

 남자는 그 축 쳐진 입꼬리로 여자에게 왜 자신이 여자의 집에 들어가야만 하는지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내가 우리 둘의 관계를 알고 있더군. 남자는 여자와의 관계를 아내가 알아낸 것이 신기하고 재미나다는 듯이 웃어대기 시작했다. 한참을 웃어대던 남자가 다시 정색을 하고는 여자를 향해 입을 연다. 그러니까 오늘부터 당신 집에 들어가고 싶다고.

 

  술집 안은 이미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술을 들이키고 있었다. 여자가 운영하는 술집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조금 멀리 위치해있었다. 술집 주변에 위치한 집이란, 여자가 거주하는 작은 오두막이 전부였다. 이 곳을 처음 오는 사람들은 모두 균형감각을 잃어버리곤 했다. 세상과 단절된 듯한 공간, 아무도 찾아내지 못할 것 같은 공간. 그런 곳에 여자의 술집이 덩그러니 놓여져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술집에 올 때마다 건너편의 오두막을 보며 이런 말을 건네고는 했다. 이런 곳에 집이 있다니 놀라워.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는 거지? 남자는 혼잣말처럼 말 끝을 흐리며 여자에게 질문했다. 여자는 남자의 말이 마치 ‘곱사등이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것이지?’ 처럼 들려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

  남자는 금세 사람들 틈에 자리를 잡고 새로운 술병을 까고 있다. 작은 술집 안은 술내음이 진동하고, 사람들은 술에 취해 알아듣지 못할 문장들과 욕설을 내뱉는다. 여자는 턱을 괴고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다. 여자의 시야로, 자신을 진득하게 바라보고 있는 몇 개의 눈동자가 느껴진다. 얼굴만 봐서는 흠잡을 데가 없는데 말이야, 등을 보면 하고 싶다는 생각이 없어져.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작은 정적이 일어난 술집 안은 몇 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의 시끄러운 웃음소리로 가득찬다. 건너편 테이블에 앉아 있던 남자가 여자에게 눈짓한다. 턱을 괴고 있던 여자도, 사람들을 바라보며 작게 미소짓는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술집 안은, 북적거림 없이 조용하다. 여자와 남자는 작은 테이블에 마주앉아 서로를 응시하고 있다. 남자가 말을 꺼낸다. 당신, 그 날 기억나? 내가 그 추운 날,당신을 만나러 이곳까지 찾아왔던 날 말이야.  

 남자는 햇빛 한 줄기 없이 비가 쏟아져 내리던 어느날 저녁, 여자의 술집에 불쑥 찾아왔다. 온몸에 비를 묻히고 나타난 남자는, 추위에 덜덜 떨고 있는 상태였다. 남자는 여자에게 농도가 가장 센 술을 요구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인 뒤, 남자가 요구한 술 대신 작은 찻잔을 따뜻한 물에 데우기 시작했다. 어느새 따뜻해진 찻잔에 미리 데워둔 우유를 따르고, 여자는 그 잔을 남자의 손에 쥐어주었다. 우유는 성급하게 마시면 안 돼요. 

 여자는 그 날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남자는 여자의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더니, 다시 말을 꺼낸다. 당신은 긴 속눈썹을 가졌군. 동그란 눈동자의 절반을 다 덮고 있는 그 속눈썹은, 사람 마음을 절이게 하지. 그 속눈썹을 조용히 내리갈 때면, 난 가끔 심장이 쿵쾅거리는 것이 느껴져. 남자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이어나간다. 당신은 사람을 끝없이 품어주는 힘이 있어. 그건 당신이 갖고 있는 최고의 재능이야. 

 

 여자는 남자의 얼굴을 바라볼 때면, 얼굴이 잊혀진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네 엄마의 둥근 등을 사랑했어. 난 아직까지 우리의 젊었을 때를 생각해. 네 엄마의 등은 혹이 달린 것이 아니라, 달이 달린 것이였어. 나는 네 엄마의 아름다운 얼굴만큼, 그 등 또한 사랑한거야. 아버지는 그 말을 마지막으로 여자를 떠났다. 그 날, 여자는 술에 취한 아버지가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나서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었다. 여자는 아버지가 나간 집에 우두커니 누워 아버지의 말을 다시 되새겨 보았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굽어진 등 또한 사랑했음에도, 어머니를 버렸다. 그는 여자의 등이 어머니의 잔뜩 굽어진 등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라고 했다. 

 그 이후 여자는 이따금 얼굴조차 모르는 어머니에 대한 꿈을 꿨다. 여자의 꿈 속에서, 어머니의 등에 달린 혹은 달이 떠오르는 박자에 맞추어 점점 커져만 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머니의 혹이 달만큼 커졌을 때, 혹이 펑하고 터지는 소리와 함께 여자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럴 때면 여자는 커튼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찡그리며 자신의 등을 매만져보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 여자는 남자와 몸이 마구잡이로 엉켜 움직일 수 없는 상태였다. 여자는 고개를 돌려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남자는 술에 잔뜩 취해 알아듣지 못할 단어들을 속삭이고 있었다. 순간 남자의 손이 여자의 등 위로 불쑥 튀어나와 있는 커다란 혹을 어루만졌다. 여자는 며칠 전 남자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떠올려냈다.

 당신에게서 이 등을 덜어내면 당신은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야. 당신의 이 잔뜩 굽어진 등이, 결국은 당신인거야. 남자는 여자의 양 볼을 자신의 커다란 손으로 감싸며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니 너무 좌절하지는 마. 만약 당신에게 이 등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당신을 사랑하지 못했을 거니까.

 

 하지만 여자는 알고 있었다. 아무도 내리지 않는 역을 무심히 지나치듯, 남자 또한 여자에게 정착하지 못하고 결국 떠나리라는 것을. 여자는 남자에게 그저, 이름 모를 하나의 기차역이라는 것을. 곱사등이가 사는 법이란 과연 그런 것이었다. 여자를 떠난 이들은 모두 그런 식으로 떠났다. 여자의 아버지도, 여자에게 처음으로 입을 맞추어주었던 중년의 남성도, 그리고 여자와 몸이 엉켜 있는 이 남자 또한 결국은 다시 기차에 몸을 싣고 떠날 것이었다. 

 

 여자는 남자와 잔뜩 엉켜있던 몸을 풀어내고 침대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한동안 잠꼬대를 해가며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마지막 모습을 몇 번 더 들여다보고는 집을 나섰다.

 곱사등이의 여자는 그렇게, 내리쬐는 햇빛을 봉긋한 등으로 밀며 남자에게서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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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쓴 글 중에 나는 이 글이 가장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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