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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남자가 높다란 고층 건물의 옥상 위에 위태롭게 서 있다. 난간 위에 올라서있는 남자는 금방이라도 중심을 잃고 아래로 떨어질 것만 같다. 남자는 양화대교 위에도 있었고, 어딘가의 바닷속에 어린 동생과 함께 있었고, 이번에는 옥상 위에 있다. 남자는 생각했다. 머리 위로 새가 날았다. 역광 덕에 새는 검정색이 되었다. 어쩌면 원래 색이 검은색일 수도 있었다. 너무 오랜만에 바깥에 나온 탓인지 머리가 계속 어지러웠다. 열사병인가? 아니 영양실조인가. 어쨌든 빈혈이 일고 있는 것 만큼은 틀림 없었다. 태양이 너무 따가워서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마지막으로 그가 봤던 것은 새였다. 그리고 그건 양화대교 위에서도 그랬고, 그 아래에서도 그랬고 바닷속에서도 그랬고, 몸부림 치는 어린것의 몸을 꽉 붙잡고 있을 때도 그랬다. 숨이 더 이상 쉬어지지 않아도 마지막으로 보았던 것은 그 새의 모습이었고, 마지막으로 들었던 것은 그 새의 울음소리였고, 마지막으로 느꼈던 것은 그 새가 부럽다는 기분이었다.

 은빛의 경화수월을 머리위로 올려다 본 바닷속에서도 그랬고 검은 한강물을 향해 빗방울 처럼 톡 몸을 던질 때도 그랬고 창살 사이로 보이는 노란 태양빛을 보며 팔목에 상처를 냈을 때도 그랬다. 언제나 부러웠다. 남자는 그 새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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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개는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조금 불안하기도 했다. 완전히 도박이었다. 전에 아무개와 식당에서 마주쳤던 고객은 아무개가 일하는 호빠, 뿐만 아니라 그 상가의 주인이었다. 정확히는 그 고객의 아버지가. 그런 그녀에게 밉보여 버렸으니, 그 후의 처분은 더 말할 것 까지도 없었다. 마담이 아무개에게 당분간은 쉬라고 말했다. 그 사이에 그녀의 화가 사그라든다면 다행지겠지만 아니라면 결과는 뻔하다. 솔직히 승산이 전혀 없는 싸움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아무개는 여전히 7할 정도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어차피 잃을 것도 없었다.

 햇머리가 뉘였뉘였 강물에 걸쳐 떠오를 때 쯤에 아무개는 집을 나섰다. 리크는 아직도 속편하게 자는 중이었다. 몸을 씻고 검은 정장을 입고 발걸음을 옮겼다.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매일듣는 소리. 하지만 오늘로 끝이다. 어젯밤에 아무개는 리크에게 아침 일찍 담판을 짓고 오겠노라고 선언했다. 그가 준 힌트는 분명 터무니 없는 것이었지만 승기는 있었다. 어잿밤에 그의 힌트를 들었다. 그 대가로써 비싼 와인 한병을 대접해야 했다. 하지만 얻은 것은 컸다.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띵동. 초인종에서는 식상한 벨소리가 흘렀다. 대답은 없었다. 하지만 분명 집에 있을 터였다. 그리고 한번 더 초인종을 누르면 문이 열릴 것을 아무개는 확신했다. 

띵동. 언뜻 보기에도 부자가 살법한 대저택의 대문이 열렸다. 그 문 뒤에는 그 고객이 나왔다. 이미 침대에 누울 채비를 끝마친 상태인 것 같았다. 시간은 벌써 오후 10시가 넘어가고 있다.

  “안녕.”

 아무개가 인사를 건냈다. 그가 입을 닫기 무섭게 그녀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왜 왔어? 이제서 아쉽더니?”

  “아니, 그런건 아니고.”

 역시 부잣집 아가씨는 아니다. 집착이 행동에 묻어있었다. 온몸에 그 냄새가 베어있었다. 온실 속의 화초에게서는 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그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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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르크 마개와 와인병의 머리 사이에서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난다. 동시에 와인향이 올라왔다. 확실히 몇십만원 짜리 하는 와인은 때깔부터가 다른가보다. 

“그래서, 힌트라는게 뭔데?”

 아무개가 와인잔에 와인을 따르며 물었다. 

 “두가지 있어.”

 리크가 그 잔을 받아들고는 말했다. 와인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그러자 그 안에 있던 붉은 와인도 같이 출렁였다.

“하나는 관점에 관한 이야기고 하나는 역사에 관한 이야기야.”

 비싼 와인을 음미하지도 않고 바로 입속으로 집어넣었다. 리크는 한번 더 아무개에게 잔을 내밀었다. 말을 멈췄다. 더 따르라는 의미였다. 

 와인잔이 다시 1/4정도가 채워지자 그는 설명을 이어갔다.

“사건이라는건,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상황이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거야. 누가, 언제, 어디에서, 왜. 뭐 그런것들.”

“그래서?”

 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아무개는 일부러 이를 부득부득 가는 시늉을 하며 술을 따랐다.

“강점이 약점이 될 수도 있다는거야. 상대의 무기를 빼았으면 오히려 전세가 뒤바뀐다 이거지. 양날의 검이 주인을 베는 건 그리 드문 일이 아니라고? .......첫번째 힌트는 이게 끝이야.”

“.............”

 엎을 뻔 했다. 힌트고 뭐고 때려 치고 그게 무슨 힌트냐. 그정도는 누구라도 말할 수 있겠다. 내 동생도 그정도는 알겠다. 따져 묻고 싶었다. 삼십만원을 호가하는 오퍼스 원 와인이 아까워 지는 순간이었다. 이럴거면 샤또 딸보나 돔 페리뇽 빈티지 쯤으로 준비할 걸 그랬다. 하지만 두번째 힌트를 위해서 참았다. 참으면서 다시 잔에 와인을 채웠다. 이번에는 아무개 자신의 잔에도 채웠다. 

“두번째 힌트는 역사. 그것도 사람의. 이건 전에 한번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사람이라는건 제각각 걸어온 길이라는게 남기 마련이거든? 그걸 알고 있으면 그 사람과의 대결에서 적어도 질 일은 없어. 아까 말했던 약점이 보이려면 이걸 알아야 돼. 그 사람의 역사. 그 사람의 주변에 있는 것들 이용할 수 있을만 한 무기. 그러면 그 사람의 사고 자체를 꿰뚫어 볼 수 있어.”

“요약하자면?”

 더 정확하고 구체적인 걸 원했다. 그래서 한 질문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더 모호한 대답이었다.

  “그 사람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거지. 말 몇마디로. 값싸지 않아? 설령 천만금에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 사람의 역사를 아는게 가능하다면 그 사람을 휘두를 수 있어. 네가 어떤 말을 하던 간에 그 사람은 네가 유도하는대로 움직여 줄거야. 확신해도 좋아.”

 잘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 뒤로 리크는 별 말 없이 양치를 하고 이불을 폈다. 그리고 누웠다. 이게 끝인가. 그는 잠든 리크를 발로 걷어 차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솔직히 그럴만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아주 살짝. 그리고 덤으로 마음 속으로 욕도 퍼부었다. ‘이 시발 내 술값 돌려내’ 하고. 하지만 기껏 얻은 힌트를 허투로 사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무개는 30만원을 공중분해 시켜버릴 정도로 낭비가 심한 남자가 아니였다. 

 

 ‘사람의 역사, 강점, 약점...’ 아무리 생각해도 이 세가지로 그녀를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았다. 사실 이 세가지가 의미하는 것도 몰랐다. 강점이라면 있긴 했다. 그녀의 아버지. 가게가 있는 상가를 소유하고 있는 그녀의 아버지가 그랬다. 하지만 그 잘난 아버지가 어떻게 약점이 될 수가 있단 말인가? 아무개더러 그를 직접 찾아가서 면전에 대고 딸을 잘 설득해 달라고 이야기라도 해보란 말인가. 어디 있는줄 알고, 누구인줄 알고 그런단 말인가. 그러다가 생각났다. 그녀의 약점. 강점이 약점으로 바뀌는 길을. 그리고 그녀 자신의 오만함이 낳을 허점을 찾아냈다. 자신이 완벽하게 우위에 서있다고 느끼는 상대를 완전히 찍어 누를 수 있는 한방. 그래. 밑져야 본전이다.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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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 말이 뭔데?”

퉁명스러운 말투로 그녀가 말했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정확하게. 그리고 날카롭게 그 무엇보다도 날카롭게 그녀의 약점을 파고들어야만 했다. 아래에 선 자가 이길 방법은 그것밖에 없었다. 가진것이 없으니, 대항 할 무기가 없으니 쓸 수 있는 전술.

 “이 마을에 쳐들어오려고 하는 거라면 그만두는게 좋아, 이 나의 팔천만의 부하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니까! (애니메이션 원피스9화中 우솝)” 같은 허세. 하지만 좀 더 고급스럽게. 그리고 설득력 있게. 미술관 바닥에 안경을 놓아둔 것처럼 은근하게. 그것을 믿도록 말없이 자꾸 강요하듯이.

“너희 집 사체썼잖아.”

“그게 무슨 상관인데?”

 또 아무개는 피식 웃었다.

“상관있지. 네가 날 직장에서 잘랐잖아?”

능청스럽게 말했다. 리크를 따라한 것이었다.

  “어. 내가 자르라고 시켰어. 거기 내 건물이야, 거기서 일하는 사람이 마음에 안든다는데 무슨 문제 있어?”

  “니 건물이 아니라 네 아빠 건물이겠지.”

  “어쨌든.”

 발끈한 모양이었다. 

 

“그런 이야기나 하러 온거면 난 이제 들어간다, 더 할 얘기 없는거 같네.”

“아, 그래? 그러면 그러시던가. 앞으로 빛더미에 덮여서 살게되도 나한텐 뭐라하지 말아라.”

“...뭐라고 했어?”

“왜? 가던 길 가, 할말 더 없는거 아니었어?”

 

 계속 리크를 따라했다. 계속 그럴 속셈이었다. 아무개는 자신이 악역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가, 다시 좋아졌다.

  “뭐라고 했냐고.”

 흘낏 눈을 굴렸다. 뜸을 들였다. 최대한 이야기에 몰입할 때까지.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나온 아무개의 말을 끝없이 신뢰할 때까지. 

“내가 나가면 그쪽 상가 사람들 다 빠질텐데, 그러면 너한테 남는게 있을까? 아, 빚?”

 명백히 그녀를 비꼬았다. 그리고 여유로운 표정을 흘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도 흔들리지 않았다. 지금 본인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닌지 잠시 황당해 하다가 말을 꺼낼 뿐이었다.

“지랄하지마. 어떻게든 자리 되찾아 보려고 수작부리는거 훤히 보이니까. 이렇게까지 추하게 굴어야겠냐? 그나마 있던 정나미도 뚝 떨어졌다. 그냥 꺼져라.”

 그녀가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한거 아닌가. 뭐 난 너한테 정같은거 애초부터 있지도 않았지만.’

“못 믿겠으면 확인해 보던가.”

  “꺼지라고 말 했어.”

 쾅. 호화로운 저택의 대문이 굳게 닫혔다. 여전히 아무개는 웃었다. 크게 웃다가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한번에 뱉었다.

  “호빠에서 노는 모델! 좋네!!”

 아무개는 입고온 코트 주머니에 손을 집어 넣었다. 승리를 확신했다. 입꼬리가 슥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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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일찍 집을 나선 아무개가 처음 도착한 장소는 그가 일하던 호빠 근처의 부동산이었다. 그리고 아무개는 그의 가게가 있는 상가의 시세와, 몇 년간의 시가 그래프를 요청했다. 그 부동산의 소유자인 윤경택은 이름을 검색하자 마자 인터넷에 바로 얼굴이 올라왔다. 그리고 대강의 그림이 그려졌다. 

 

 그녀의 아버지 윤경택은 하청업체의 사장이었다. 정확히는 ‘다 망해가는’ 하청업체였다. 거기까지는 그녀와의 데이트 도중 들었던 정보였다. 기업으로부터 일거리를 받아서 그것을 제작하는 공장. 주로 다루는 것은 쇠붙이 같은 것들. 건축에도 손을 댄 적이 있었지만 그것도 잠시 뿐이었다. 주식은 전성기의 몇배 이상 하락했다. 이제는 파산신청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아무개는 잘 알고 있었다. 그가 소유한 건물이 있었기 때문에. 그정도의 재산이 있는 한 파산신청에 승인이 나기는 어렵다. 그 상가는 그 소유주에게 있어서 애석하게도 애물단지 밖에는 더 되지 못했다.

 그녀 본인은 모델일을 하고 있다. 어쩔 때는 맥심의 화보에 찍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녀는 아무개로부터 보기에 충분히 그럴만 한 외모와 능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되려 아버지로부터 경제적으로 그녀가 독립해 있다는 사실은 상정외가 아닐 수 없었다. 부잣집 딸내미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세상물정 모르는 어리석은 아가씨 정도로 생각했었다. 자신의 일에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하는 초등학생 같은 아가씨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보는대로 어엿하게 잘 살고있지 않은가? 솔직히 처음 그 사실을 떠올렸을 때는 그것이 걸림돌이 될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아니었다.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그것을 찌를 수 있었다.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모두가 가지고 있는 약점. 그래. 책임감. 그게 있는 사람이라면 이야기는 쉬웠다. 벌써부터 압박감에 짓눌려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의 얼굴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상대의 왼 눈을 가리고 오른 눈을 가리고 행동하는 것은, 생각해 보면 아무개의 주특기였다. 아마 이때 그는 승리를 확신했었다.

억지에 과장을 더하고 허세와 허풍을 넣고 반죽한 뒤에 부풀려 실언과 망언이라는 오븐에 구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기술’이라는 조미료를 뿌렸다. 그렇게 이야기는 완성됐다. 부동산을 나왔다. 별것도 없었기에 시간은 오고가는 이동시간을 다 더해도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아직 낮이었다. 사실 이 과정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었다. 이 과정덕에 아무개가 그녀의 집을 찾아가는 것은 오후 10시가 넘어서야 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었다. 아무개의 모든 인맥을 동원하는 일이었다. 모든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그리고 그것이 안되는 사람은 찾아가서라도 만났다. 그 끝에 하나같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 

  “만원 줄 테니까 내가 전화와서 왠 여자가 받으면, 꼭 당연히 그렇다고 말해줘. 그러면 나중에 오만원 더 준다.” 라고 그랬다.

 간단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이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어차피 주소록에 있는 번호들은 여자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을 전부 삭제하고 나니 통틀어 300개가 넘던 번호가 채 20개도 남지 않았다.

 운전이 질리고 노란 중안선과 하얀 점선처럼 보이는 차선들이 전부 질릴 때 까지 운전대를 잡았다. 단 8명의 집을 방문하는데도 그랬다. 몇시간이나 왔다갔다 했다. 그러다가 도착했다. 저녁 10시가 넘어서야. 하늘이 까매져서야 그녀의 집 앞에 차를 세워 놓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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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이 열린다. 벌써 이 문은 2번째 열렸다. 그 뒤에는 그녀가 서 있었다. 

“진짜 찌질하게 이래야겠어?”

“찌질? 어. 나 원래 좀 찌질해, 그동안 그렇게 당해놓고도 아직도 몰랐어?”

 그래. 이거다. 완전히 악역이 되었다. 지금 그는 사악함 만으로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아무개는 올라간 입꼬리를 내리려고 애썼지만 계속 더 올라가기만 했다.

 

  “너희 아버지 사업. 그거 보니까 망해가더라? 파산신청을 왜 안하나 생각해봤는데, 크큭. 생각해보니까 그 상가 때문이지? 그래도 팔아버리자니 시세는 계속 올라가고 있고. 만약에 이것마저 떨어진다면 최악중에 최악일텐데 그치?”

결코 장사가 안되는 경우는 아니었다. 유흥거리긴 했지만 수익은 잘 나온다. 빈 자리도 없고 세를 밀리는 경우도 없었다. 확실한 것은 파산신청을 통해 매꿔지는 돈 보다는 그 상가를 통해 얻는 돈이 더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마저 떨어진다면 정말 빛더미밖에 남지 않는다. 이 부동산을 잽싸게 팔아버리고 파산신청을 하더라도 사업을 하는데에 들인 거대한 빛을 매꿀 수는 없을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일이 만약 자신이 애지중지 키워놓은 자식의 고집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면 그 상실감은 말할것도 없을 것이고, 그녀는 소위말하는 책임감이라는 막대한 양의 빛을 그때야말로 짊어지게 될 것이었다.

 책임감. 그게 뭐라고 그 사소한 감정덕에 거짓과 진실도 구분하지 못하고, 검산도 한번 해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을까. 아무개는 생각했다.

  “내가 나가면 거의 모든 호스트바 선배들 후배들이 따라 나갈거야. 그러지 않는 사람들은 내가 돈을 쥐어 주면서라도 나가게 만들거고. 나한테 그럴 능력이 있다는건 너도 잘 알고있지? 그러면 이 동네에서 긁어보은 선수들이 전부 나가겠네? 상가는 망할거고. 이야- 그건 참 가관이겠다 야.”

 거리의 부동산은 꾸준히 오르고 있다. 처음 그 상가를 구입할 즈음에는 거의 망해가는 귀퉁이 쯤의 자리에 처박힌, 아무도 방문하지 않을 것만 같던 곳이었다. 그마저도 사업이 번창할 시절에 보험삼아 사 놓은 것인데 요 몇 년새 그 거리가 유흥거리로 바뀌면서 갑자기 부동산의 시세가 오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로또를 맞은 셈이다. 그런 거리가 다시 폐가수준의 골목길로 변한다? 불가능했다. 설령 정말 선수들을 전부 데리고 나가더라도 새로운 선수들은 금방 다시 충당 될 것이 뻔했다. 그럼에도 아무개는 허세를 부렸다. 그녀가 느낄 책임감. 그것 하나만 믿고 싸웠다.

  “야.”

 그녀가 불렀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을 줘.”

“안돼. 여기서 지금 당장 대답하지 않으면 바로 실행에 옮길거야.”

 여기서 여지를 주면 안된다. 미리 준비해 놓은 트랩을 작동할 때가되었다. 말로만 풀어나갈 수는 없었다. 분명 증거가 필요하게 될 것이 뻔했다. 고생의 결실을, 그리고 돔 페리뇽 빈티지 한병 값의 차비와 이십만원 가량의 현금을.

“그러면 내가 널 어떻게 믿어?”

  “날 복직 시켜도 특히 너한테 디메리트는 없을텐데... 뭐 그래도 인증이 필요하다면야.”

 휴대폰을 꺼냈다. 연락처는 300개에서 20개로 줄어 있었다. 내밀었다. 고개를 까딱 하면서 확인해 보라고 했다.

 그녀가 께름찍한 표정으로 아무개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이걸로 뭐 하라고.”

“확인해 보라고. 내가 호스트바를 그만둔다면 그 상가가 어떻게 되는지. 그거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내가 복직할 이유가 되는 것 같은데.”

 그녀가 첫번째 연락처를 눌렀다. 받는다. 누구인지는 모른다. 통화음도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는 묻고, 전화속 누군가는 답한다. 그리고 몇만원 챙긴다. 그로부터 몇분간 그녀는 계속 묻고, 질문하고, 이유를 들어보려고도 해보고, 설득해보려고도 했다. 하지만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것이 지금것 아무개가 보아왔던 세상이었다. 어느 누구도 물질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 대가 없이는 그 누가 울면서 빌어도 통하지 않는다. 그걸 모르는 그녀는 어중간하게 성숙했다. 그래서 더 쉬웠다. 사람 상대하는게 일이었던 그에게는 너무 쉬웠다.

 

 몇번의 통화가 끝났다. 대략 55만원 썼다. 한숨부터 나와야 했지만 아직은 가슴에 담아두었다. 이건 비즈니스다. 참자. 그렇게 생각했다.

 곧이어 그녀가 이쪽을 노려본다. 째려봤고, 노골적으로 꼴아봤다. 그리고 자신의 휴대폰을 주모니에서 꺼내들었다. 전화를 걸었다. 마담이었다. 

“어, 바쁜데 미안해요. 저번에 걔 있잖아. 내일부터 복직시켜줘요. .......몰라요. 언제부터 그런거 신경썼다고 그래? 아무튼 그렇게 해요. 어. 그럼 알아들은걸로 알게.” 

 손을 내린 그녀가 다시 이쪽을 노려본다. 째려본다. 꼴아본다. 그리고 아무개의 휴대폰을 던진다. 문을 쾅 닫았고는 도도하게 걸어서 들어간다. 그래. 이제서야 아무개는 씰룩거리던 입꼬리를 내릴 수 있었다. 몸에 전율이 흐르다 못해 감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언제 또 이런 감각을 느껴볼 수 있을까. 

 리크가 말한 대로 전부 해결되었다. 강점인 아버지를 약점으로 바꾸었고, 그 사람의 역사를 알아내서 짓눌렀다. 발자국을 쫒아가 그림자를 밟았다. 그랬더니 알아서 그가 원하는 것을 내주었다. 지금쯤 아마 4번째 깃털이 돌아와 있을 것이라고 아무개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미 한껏 과열된 엔진에 시동을 넣었다. 차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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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싸게 그녀를 꺾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아마 그랬다. 차 안에서 아무개는 생각했다. 집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는다. 그 사이에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왜 굳이 이런 방법을 고수해가면서 모든 이들을 일일히 찾아다녔을까? 왜일까. 결국 원룸에 도착할 때 까지도 그 의문은 풀리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오니 리크가 하릴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도 저게 ‘미래의 자신’ 이라는 사실이 그다지 실감나지는 않았다. 

“왔냐? 잘 끝낸 모양이더라?”

“아, 뭐 그렇지. 이제 슬슬 이삿짐 옮기자. 생각보다 늦었다.”

 어, 대답하며 리크가 몸을 일으킨다. 아무개는 그의 손에 들려있는 깃털을 바라본다. 2개였다. 

“아 이거?”

“......왜 두개나 있지? 난 분명히 하나 일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너 걔 만난거 맞지? 윤지민.”

 리크가 친근하게 고객이었던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아, 설마. 

“그러면 두 개 맞아.”

 리크가 웃었다. 세상에서 가장 얄밉게 웃었다. 사악함에서 그를 따라가기에는 아직도 멀었구나. 라고 아무개는 생각했다.

 자홍에 가까운 빨강의 띈 깃털 하나와, 청금강의 깃털처럼 쭉 뻣은 파란 깃털 하나였다. 이제 다섯번 째 깃털까지가 그의 손에 들렸다. 드디어. 하나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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