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룸메이트는 항상 신청한 대로 안 된다.






[2017 상반기(1학기) 생활관 방배정.exl]  Download


입술을 말아물고 다리를 달달 떨며, 눈동자를 좌우로 굴리던 재환이 이내 마우스를 달칵 클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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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3-L 김재환 경제학과 2학년
703-R 황민현 국어교육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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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L 정세운 경영학과 2학년
1401-R 이광현 경영학과 2학년




망연자실하게 빽빽히 들어찬 엑셀표를 뚫어져라 바라보던 재환이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머리를 싸매고 소리없는 아우성을 내질렀다. 대체, 왜. 어째서. 시바알. 물론 100% 될 거라는 생각은 애초에 없었다. 그래도 혹시, 70%의 확률로 룸메를 신청한 세운과 같은 방이 될 거라 믿었는데... 4학년.
그것도, 사대.
임용을 앞둔.
고시생.




시발, 망했다.




> 정세운


오후 2:03  야 나 룸메 망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왜 누군데 오후 2:03

난 그래도 동기랑 됨 ㄱㅇㄷ ㅎㅎㅎ 오후 2:03


오후 2:05  ㅎ 국교과

오후 2:05  4학년

오후 2:05  ㅈ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후 2:05

ㅊㅋㅊㅋ 오후 2:06

옆에서 같이 공부해 오후 2:06

과탑ㄱㄱㄱ 오후 2:06


오후 2:06  아시발 그냥 자취할래


응 아니야~ 1년 화이팅  오후 2:07





그리고 3월 1일, 재환은 슬리퍼를 질질 끌며 우체국에서 배송된-보내는 이 김재환, 받는 이 A대학교 슬기2관 703호 김재환- 커다란 박스를 생활관으로 옮기고 있었다.







2. 룸메이트는 꼭 나랑 안맞다.






제가 오기 전부터 미리 짐을 정리해 놓았던 민현은 '교원 임용 국어학 20개년 기출문제'를 풀고 있던 중 벌컥 문이 열리고 재환과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첫인사를 건네었다. 룸메가 미리 와있을 거라곤 예상치 못했던-놀랍게도 학기 시작 하루 전이었다.- 재환은 얼떨결에 마주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복도에서부터 질질 끌었던 슬리퍼를 조심스레 벗고 마사이족 워킹을 시작했다. 하필 짐 정리 하려고 하니까 공부하고 있을 건 또 뭐야. 머리속이 엉켜버린 재환은 침대 위에 짐짝만한 박스를 내려놓고는 그 옆에 털썩 앉아 멍을 때리려던 참이었다.




"아... 그 박스 더러울 텐데."


...?


"그거, 맨바닥에 올려놨던 거잖아. 바닥에 내리는 게 좋지 않을까?"


"아.. 네, 네."




2년 선배의 짬밥이 무서웠던 재환은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박스를 양 침대 사이에 내려두었다. 그와 동시에 민현과 재환 사이의 경로가 차단되었다. 여전히 고개를 제 쪽으로 돌리고 있는 민현에 재환은 새내기 때도 보지 않았던 눈치를 계속 보며 손톱만 깔짝거렸다.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지나칠 정도로 깔끔하게 정돈된 제 맞은 편의 침대와 책상을 힐끔거리던 재환은 정신이 아득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이 형, 왠지.... 민현이 곧 스탠드를 끄며 펼쳐져 있던 페이지에 인덱스 포스트잇을 부착하고는 책을 덮은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짐 풀어야 하지? 잠깐 나가 있을 테니까 정리 하고있어."




에코백에 차곡차곡 문제집을 집어넣은 민현이 더이상 정리할 것도 없어 보이는 책상을 먼지 하나 없을 정도로 치운 후에 나가자, 재환은 그제서야 한숨을 푸욱 내쉬며 침대로 벌러덩 엎어졌다. 어떻게 살지, 나 어쩌면 좋을까. 머리를 벅벅 긁으며 발을 동동 구르던 재환은 그렇게 저녁이 어둑해질 때까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재환이 잠에서 깬 건 12시, 학교 도서관에서 돌아온 민현이 재환을 깨워 함께 재환의 박스를 개봉하고 이리저리 엉켜있던 짐을 꺼내기 시작한 시각이었다.




재환아, 옷을 그렇게 구겨 넣으면 어떡해.


아니 재환아, 책 거꾸로 꼽았잖아.


재환아, 드라이기 선은 감아서...


재환아.


재...




재환은 그만 풀어놓은 짐을 모조리 박스에 던져놓고 집으로 내려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2-1. 룸메이트의 생활 패턴은 나랑 반대다.






대학교의 3월은 바쁘다. 4학년만 빼놓고. 특히 사범대의 4학년은 더더욱 제외다. 재환은 새내기를 맞이하느라 대면식이니 개강총회니 뭐니, 정신없이 술자리에 불려다녔다. 아- 정정, 술자리는 빠짐없이 자진해서 참석해 매번 고주망태가 되어 돌아왔다. 기숙사의 통금은 1시부터 5시, 즉 재환은 매번 5시에 출입키를 찍었다는 뜻이다. 시발, 돼써 나 내년부터어 자치하꺼니까 벌쩜 왕창 바다두 상간 업따니까아? 다 꼬부라진 혀로 주정을 부리던 재환은 막상 그 말을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비틀비틀, 동이 터올 즘에 과방을 나서 기숙사로 향했다. 덕분에 잠귀가 밝은 민현은 자동으로 기상 시간이 6시 30분에서 5시 30분으로 앞당겨졌다. 아침이 밝아오는 7시쯤 눈을 뜬 재환이 핑글핑글 도는 머리를 베개에 꼴아박고서 중얼거리면, 민현은 교육학 도서를 덮으며 수건을 챙겨 일어난다.




"아으.... 아, 형 언제 깼어요?"


"재환이 너 문 따고 들어올 때."


...


"어제는 다행히 화장실 가서 토했더라."


"....죄송해요, 진짜 적당히 마실게요."


"아냐 뭐, 지난 번처럼 못 걸을 정도만 아니면 됐지 뭐."


...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민현의 싱그러운 미소를 볼 때마다 재환은 으스슥 소름이 돋았다. 그러니까, 지난 번이라 함은 기숙사생이 재환밖에 없어 근처 자취하는 동기가 재환을 거의 들쳐매고서, 새벽 5시 34분 슬기2관 입구에서 민현에게 전화를 걸어 재환을 인수인계 했었던 때를 말했다. 재환이 아무말 없이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할 때, 민현 역시 재환의 말이 거짓말인 것쯤은 말 안해도 파악한 지 오래였다.




그리고 재환은, 4월이 되어서야 지난 달 제가 민현에게 끼쳤던 폐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중이었다. 제일 이른 수업이 3교시인 재환에게, 학교에서 1시간 떨어진 중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가는 민현의 6시 10분 알람은-심지어 5분 간격으로 반복 알람이다.- 견딜 수 없을 만큼 고역이었다. 그리고 민현은, 아이러니하게 매일 6시에 일어나 화장실에 들어가서는 40분이 다 되어서야 머리칼의 물기를 탈탈 털며 나온다. 재환은 진지하게 이 형이 나에게 엿을 먹이는 건가, 제 귀를 막으며 생각했다.






제 년짼 첫글! 시리즈로 쓰고싶은데 가능할 지 모르겠어요 ;ㅅ; 사실 보고싶었던 건 둘이 사귀면서, 화도 잘 안내고 조곤조곤 타이르는 타입인 민현이가 정말 빡돌아서 정색하고 재환아. 형 화나게 하지 말라고 했지, 하면서 재환이 잡아먹는...,,,, 아 요즘 왜이렇게 변태같은 거밖에 생각이 안날까요? 흑흑




연성/잡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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