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급하게 진료실 침상에서 진료 데스크 쪽으로 몸을 옮긴다. 상체를 굽혀 서랍을 열고 뭘 찾는 시늉을 한다. 데스크 밑에는 작고 빨간 버튼이 거꾸로 매달려 있다. 그는 그대로 상판 아래를 더듬어 남자의 눈에 띄지 않도록 신속하게 비상 호출 버튼을 누른다. 그러고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태연히 고개를 들고 때마침 주사기와 해열제를 갖고 들어온 간호사에게 눈짓한다. 눈치 빠른 간호사는 무언의 신호를 정확히 캐치하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경찰이 당장 출동한다 해도 도착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주사기를 받아 든 의사는 과하게 표정을 구기고 간호사를 나무라는 시늉을 했다. 경찰이 올 때까지 남은 시간은 약 십오 분 남짓, 그때까지 여기서 벌어날 일들은 전부 연극이다. 두 사람에게만 빼고.


“잘못 가져왔잖아. 더 큰 바늘로 갖고 와야지. 장난해? 급한 거 안 보여?”

“죄송해요. 다시 갖고 오겠습니다.”


짧은 거짓 대화 후 간호사가 잰걸음으로 진료실을 나가고 의사는 남자를 곁눈질한다. 남자는 팔짱을 끼고서 다리를 불안한 것처럼 떨고 있지만,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 챈 듯하다. 다만 초조하게 아랫입술을 물어뜯고 있을 뿐이다.


“맞는 주사기 갖고 오면 바로 놔 드릴게요. 별거 아니네요. 주사 한 대 맞으면 나아요.”


의사는 남자를 향해 부러 너스레를 떨었다. 천연덕스러운 겉모습과는 다르게 입술이 바짝바짝 마른다. 인간의 본능이, 이들에게 뭔가 일어나고 있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별 거 아니란 말을 듣고도 승연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럼, 안 죽어요? 괜찮아져요?


“안 죽어요. 원래 고양이들은 이렇게 가끔 열이 나기도 하고 그래요.”


다시 진료실 문이 열리고 좀 전의 간호사가 더 굵은 바늘로 패키징 된 주사기를 갖고 들어온다. 선생님, 채혈용 찾으신 거 맞죠…. 간호사는 의사의 옆으로 바짝 붙어, 옆에 선 미친 남자에게 들리지 않게끔 속삭였다. 의사가 고개를 끄덕인다. 비장한 표정으로 주사기를 받아 들고 우석에게 다가간다. 남자의 눈치를 살피고 가위를 든다. 남자는 별 거 아니라는 말에 어느 정도 안심이 되긴 했는지 기세가 잠잠해져 있었다. 의사가 조심스럽게 가위를 들어 우석의 아래팔을 칭칭 동여맨 청테이프를 잘라냈다. 팔 사이 가운데가 두 쪽으로 갈리고 우석의 가슴 위로 마른 팔이 힘없이 툭 떨어졌다.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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