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남자-쿠도 유사쿠의 독백


쿠도 유사쿠 x 후지미네 유키코 

+오키야 스바루


쿠도부부 유사유키




VECHI베키 





아내가 일본으로 돌아간지 사흘이 지났다. 메세지로 보낸, 제 작품이랍시고 낯선 남자의 얼굴과 가까이 바싹 붙은채 웃는 표정이 담긴 사진을 보고 답답해서 이마를 만졌다. 열은 나지 않았지만 묘하게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감정은 낯선 것이다.

사랑스러운 아내였다. 결혼한지는 거의 20년이 다 되어가고, 아들도 하나 있었다. 관계는 지금까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비록 아내가 직업을 그만두는 뼈아픈 결과가 있었지만 소설가로서 성공한 자신을 잘 내조해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토록 불안감이 들기 시작한 것은 꽤 최근이다.


남자의 이름은 아카이 슈이치. 어느날 갑자기 비밀스런 조직에 의해 몸이 작아진 아들이 데려온 FBI의 요원이다. 신변의 위협이 있기 때문에 현재 일본에 위치한 집에 거주하며 아내가 얼굴의 변장을 도와주고 있었다. 변장술이 뛰어난 아내의 실력 덕분에, 옆집에 살고있는 아가사 박사님의 발명품 음성 변조 초커까지 착용하고 나면 남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불투명한 목소리의 오키야 스바루. 그것이 남자가 만들어 낸 또 다른 신분이다.


머리도 좋고, 잘생긴데다 미국의 FBI요원이라니! 어쩜 이렇게 완벽한 남자일까나! 그렇게 수도 없이 옆에서 남자를 칭찬해대는 통에 눈을 도끼처럼 뜨고 흘겨 보았을 것이다. 연락처를 주고받아 간혹 메세지를 보내는것 같이도 보였다. 그러나 아내의 사생활이니 굳이 신경쓰려 하진 않았다.


그리고, 결전의 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날이 찾아왔다. 아들의 연락으로, 아내가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는 대신 일본에 들어가 있는 것은 자신이 되었다. 이번에야 말로 그 아카이 슈이치라는 남자의 정체를 찬찬히 뜯어봐 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엔 아내도 동행했다. 바로 자신의 얼굴을 오키야 스바루라는 가상의 인물로 변장시키게 하기 위함이었으며, 이후 바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위해 비행기를 타야했다. 제 얼굴을 주의깊게 보고 가짜 피부를 붙여주는 아내와 눈을 마주치는데, 은근히 그것을 피하는 것이 수상쩍었다. 

이후 그 남자와 대화하는것도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간혹 둘이 시선을 통하고 있는데, 미간을 찌푸리고 관계를 살폈으나 꽤 조심스러워보였다. 조금 짜증이 났다.

피부를 다 붙이지 않아 거울 앞에 앉아있는 저를 두고 아내는 자리를 떴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는 아내의 움직임은 잽쌌으며, 그 목적지 또한 화장실이 아니었다. 뒤를 밟은 경로는 서재로 향하는 복도였다. 문을 살짝 열어보니 놀랍게도 아카이 슈이치라는 남자와 아내의 거리가 한 뼘도 되지 않은채 서로를 어루만지고 있었다.


"사랑해요, 아카이씨..."

"부인,"

"역시 젊음이 좋군요. 당신의 이런 힘, 그이에게는 없어..."

"후지미네씨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어머, 정말... 난 몰라. 조금만 기다리면 그이와 갈라서고 당신과..."

"저는 지금의 후지미네씨도 좋습니다."


삼류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대사는 신경쓰이지도 않을만큼 화가 치밀어올랐다. 아마 자신이 글로 썼다면 저 따위의 대사를 적어 내려가진 않을 것이다. 증거를 잡았다는 기분이 이렇게나 더러운 적은 처음이었다. 아내가 불륜이라니. 믿을 수 없는 현실에 머리끝까지 피가 솟구치는것 같아 마음을 냉정하게 먹고 진정할 수 없었다. 이후 분장을 다시 이어나가면서도, 안면 근육이 파르르 떨리는 것을 몇 번이나 참았는지 모른다. 지금 당장이라도 대체 무슨 관계냐며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아무래도 중요한 순간을 앞두고 있으니 이 일이 끝난 뒤에 추궁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 그럼 나는 당신 대신 시상식에 참가하러 가볼게요─! 끝나고 나면 모두 모여서 뒷풀이라도 할까~"


분장했다는 자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찬물에 세수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언제나 추리소설의 대가인 코난 도일과 그 피조물인 홈즈를 동경해 왔고, 만일 그 세계관에 들어가 등장인물중 한 사람을 맡아야 한다면 당연히 제가 셜록 홈즈이며, 아내인 유키코는 아이린 애들러가 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나 지금 이 꼴은 무엇인가. 저는 홈즈는 커녕 보헤미안 스캔들에서 아이린 애들러에게 사랑을 구애하던 보헤미아의 국왕에 지나지 않았다. 사랑은 언제나 사람이 냉정하게 생각하기 힘들게 만드는 법이다.


"후..."

"왜 그래요 아빠? 연기는 역시 긴장되시는가 보죠?"

"그게 아니야."

"아빠가 그런 얼굴 하는거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보는데요."


그 말 대로였다. 아내와 결혼하기 위해 끊임없이 구애하던 그때의 조급한 순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어릴때의 그 얼굴을 하고 있는, 제 아내를 꼭 빼닮은 아들의 표정에 한숨이 나온다. 네가 있어도 유키코를 붙잡는것은 불가능 하려나. 결국 이렇게 헤어지는 것인가. 

이혼이라니, 이혼이라니! 법쪽으로 완전한 문외한은 아니었으니 어느정도 소송의 자신은 있었지만 그것을 원하는건 아니었다. 더군다나 이혼전문 변호사 키사키 에리가 동창인 제 아내의 편으로 붙는다면 설사 바람의 증거가 있다고 해도 승산의 확률이 적다. 아들은 어떻게 하지? 역시 20여년 전 배우일을 그만둔것이 크게 앙심으로 남아... 이렇게 감쪽같이 살아놓고 복수하는건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만이 맴돈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아니 그것보다 더 상황이 복잡한 아들은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머리가 아팠다. 그동안에 겪어왔던 창작의 고통보다도 더욱 극심한 두통이다.


"안되겠다 신이치. 네 엄마는 지금 바람을 피우고 있어."

"헤에─?"

"증거도 있다."

"심증? 물증?"

"아빠가 봤어."

"상대는요?"

"그 FBI요원이야..."

"설마~"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는듯한 아들의 표정에 열이 뻗쳐 얼굴이 뜨거웠다. 하, 이대로 일이 끝나고 그 요원이 도착하게 되면 멱살이라도 잡아야하나 고민했지만 나이도 많은데 항상 책상앞에 앉아 글만 쓰는 제가 그 큼지막한 덩치의 FBI를 이길리는 만무하다. 이런 걱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대로 작전을 시작할 때가 오고 말았다. 젠장, 복잡한 감정으로 쩔쩔매고 있는것은 저밖에 없다. 으득 이를 갈아버리며 작전을 훌륭하게 성공하기 위해 아랫층으로 향한다.




"신이치?"

"아, 몰라요. 피곤하다..."


작아진 몸의 아들은 책상위로 이마를 박고 푹 뻗어있다. 설마 그 택배 배달원이 정말로 목티까지 까 뒤집어 볼 줄은 생각치도 못했다. 물론 예상 범주 내에 있었기 때문에 음성변조 마스크를 준비해 주었지만, 쇄골까지 끄집어내린 목티는 모든것이 끝나고 나니 조금 늘어나 너덜너덜해져 있다.

게다가, 집중하기 힘들었던 요소는 역시 아카데미 시상식이었다. 제 얼굴을 뒤집어 쓰고선 '잘생기고 머리좋은 FBI요원'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아내의(자신의) 목소리가 무척이나 거슬렸다. 역시, 역시 이것은 바람이다. 제가 무엇을 그동안 잘못했는지 꼽아보자니 태어난지 얼마 안된 아들을 데리고 제가 있는 곳을 찾아오라는 둥, 너무 많은 일들이 있었던지라 후회만 가득하다. 피곤해서 책상위에 그대로 뻗어버린 아들을 그대로 두고 집에 돌아올, 아내의 남자를 기다렸다. 머지않아 가증스럽고 요망한 가정 파탄범이 도착했음을 알리는 초인종이 울렸다.


"이, 이자식..."

"쿠도 선생님?"


난데없이 멱살을 잡힌 얼굴은 놀랍게도 무슨 일이냐는듯이 묻는 뻔뻔한 표정이다. 저도 작은 키는 아니었으나 멱살잡힌 상대는 저보다도 훌쩍 웃도는 키인지라 더 위로 들어올리는것은 불가능했다. 이미 갈가리 뜯어내버린 '오키야 스바루'의 얼굴은 본래 피부에 꽤나 자극적이었던 지라 구석구석까지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어쩌면 드디어 과격하게 표정을 지을수 있었던 탓에 참아왔던 감정이 폭발하며 드러난것인지도 모른다.


"호오..."

"유키코를, 유키코를 어떻게 했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거짓말 하지마!"

"거짓말이 아닙니다. 쿠도 선생님."

"그런중도 모르고 소설의 주인공으로... 내가 무슨짓을..."

"아빠!"


어린아이 특유의 맹랑한 목소리가 자신을 멈춰 세웠다. 차마 자식의 앞에서까지 추태를 보일순 없었음으로 잡고 있던것을 내치듯 놓았다. 구겨진 옷깃을 툭툭 털며 정돈하는 모습이 뻔뻔스럽기 그지없다.


"엄마에요. 전화 받으세요."

"뭐?"


빨간색 스마트폰의 화면에는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분장까지 벗은 아내의 얼굴이 수신되고 있었다.


"짠~, 몰래카메라 입니다! 어때? 내 연기 어땠어? 보고있는거 알고 있었다고~!"

"엑."

"호오─, 과연 나이트 바론을 집필한 세계적 추리소설가 쿠도 유사쿠씨도 아내 앞에서는 바보가 되시는군요..."

"흠."

"여보 날 걱정한거야? 정말 이 대배우 후지미네 유키코가 그런 삼류 대사를 치는데도 눈치채지 못한거야?"

"사실, 중간부터 알고 있었다고나 할까..."

"에이~, 그런것 치곤 아빠 엄청 심각한 얼굴이었는데요?"

"변장해서 그렇게 보였던것 뿐이다."

"헤─에─."

"호오..."

"어머나~"

"그쯤 했으면 난 가보지."


전화기의 너머에서는 20년만에 드디어 속여 넘겼다며 깔깔대고 웃는 여자의 목소리만 울리고 있었다. 그래, 아내가 저 말고 다른 남자라니, 그럴리가 없지. 다행스러운 마음이 반, 뒤에서 흐르는 식은땀이 나머지 감정을 대신한다. 한숨을 쉬고 다시 보는 아내의 얼굴은 처음 만났을때처럼 여전히 아름답다. 씁쓸한 표정으로 끊는 전화 너머의 목소리만 야속할 뿐이다. 






VECHI베키

혐관이 가장 아름다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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