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늘어졌더니 그 여파가 다음날까지 이어진다. 이번 주 들어 가장 여유로웠던 금요일과 토요일이었다. 그래서 하루 늦었다는 핑계.


나는 적당한 루틴이 있어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고정적인 시간대에 출퇴근한다거나 학원에 다니는 식으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상황 또는 내가 그걸 꼭 수행할 수밖에 없도록 조금 강제성을 부여하면 곧잘 몸에 익는다. 그 활동 자체가 모종의 운동이 되므로 건강한 삶이 유지되는 건데, 요즘 그런 운동에 뭐가 있을까 되짚으니 아마 운전면허학원 가는 일과 매일 커피 한 잔 마시는 일이 아닐까 싶다.


이번 주 수, 목요일 연달아 2시간씩 장내 기능 교육을 받았다. 사전에 예습한 덕에 곧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하루 쉬고 토요일에 시험을 치렀다. 2시 30분 예약했고 대기 15분여 만에 차에 탑승했다. 교육 때 선생님이 알려준 대로 차근차근 해나가니 어렵지 않았다. 100점 만점. 오히려 너무 간단해서 만만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나중에 아빠에게 소식을 전하며 들은 말마따나, 운전은 그리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말이다. 


오늘은 커피를 2시 반쯤 마셨다. 시간은 해 지기 전이면 대중없고 간단하게라도 무언가를 먹은 후 커피를 마시려 하는 게 나만의 질서다. 맛 들이고 있는 커피는 카누 디카페인 라떼에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섞어 마시는 것. 라떼인데 샷이 조금 진한 느낌이라고 보면 된다. 위장이 그리 튼튼하지 않음에도 그냥 아메리카노보다 우유가 섞인 게 훨씬 부담 없는 느낌이라 자주 그렇게 먹는다. 물론 그게 위장에 더 무리 간다는 얘기를 들었다만 포기가 안 된다. 


글감을 뭐로 잡을까 고민하며 컴퓨터를 켰다. 메인에 덩그러니 있는 폴더들을 보며 웹하드에 넣어야겠다 생각했다. 구글 드라이브보다 네이버 마이박스가 호환이 잘 돼서 용량을 만들 겸 정리했다. 2016년의 내 역사가 사진으로 흘러갔다. 그때의 내 얼굴과 그때 내가 심취했던 사람, 사물들, 그때 내가 먹은 여러 음식, 내가 간직하고 싶었던 이야기나 이미지까지. 지금은 굳이 남기지 않아도 되는 역사도 꽤 있어서 지웠지만 대개는 고스란히 남겨두었다. 불과 4년 전과 지금의 내 마음과 태도에 무게감이 다르다고 느낀다. 우울하지만 좋아하는 것에 열성을 다한(아마 그것밖에 할 게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나와, 평온하되 꾸준히 불을 지피는 것을 고민하는 지금의 나. 


벌써 12월도 말에 접어드니 슬슬 연말정산(돈 아님)을 시작해봐야겠다. 요즘 느끼는 건데 나는 회고를 정말이지 못한다. 그 말인즉 잘하고 싶은 게 점차 생기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싶었던 데서 나아가 감정이 없더라도 잘하고 싶은 게 생기고 있다. 배워가며 내 가능성을 더듬고 싶다. 사진에는 좋아하는 것만 남고 가능성은 남지 않는다. 하지만 사진에 가능성의 단서는 남아있다. 그때 내가 뭘 꿈꿨고 무엇들을 했는지는 알 수 있다. 그래도 알 수 없는 건 결국 내 몸에 남는다. 잊었을지라도 다시 불쑥 치솟을 때가 온다. 그 가능성이 점점 부푸는 시기가 지금이라 믿으며 오늘도 무사히.



하지 마 생각 안 나와 답 뭐할까 뭐할까 하다간 뭘 해도 불가능함

매일 알 수 없는 내일 내일이면 알게 돼 그때에 그냥 즐겨버리면 돼

그니까 우선 편히 눈 붙여 마음먹음 생각보다 쉬워 


애매하고 모호한 삶 사이를 헤집어 사람을 기록으로 남겨요. 프리랜서 인터뷰어 미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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