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린 시절부터 바다를 두려워했다. 눈 시린 파란색 모든 것을 삼킬 것처럼 굉음을 내는 파도. 나는 그 모든 것이 두려워 사랑하는 형의 다리에 숨어있을 뿐이었다. 십몇 년이 지난 지금, 가을의 밤바다는 추운 한기를 내뿜으며 여전히 모든 것을 집어삼켜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시커먼 수면을 바라보고 있으면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찾아 헤매다 같이 침잠하고 싶어지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러고 싶었다. 그저 용기가 없어서 그러지 못할 뿐이었다. 새벽 4시, 오징어잡이 배만 빛을 내는 밤바다를 바라보는 나는 계속해서 눈물만 흘렸다.

돌아오지 않는


나는 오늘도 같은 시간, 같은 바다에 나갔다. 바다는 항상 굉음을 내며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나는 그저 저 먼 수평선을 바라보며 돌아오지 않는 자들을 그리워했다. 다정히 나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 같이 동화책을 읽어주던 따뜻한 음성, 졸린 나를 다정히 안아주던 품. 이 모든 감각을 그리워했다. 그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이 싸늘한 바다도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몇 시간을 바다만 바라보고 있을 때, 등 뒤로 부드러운 담요가 덮어졌다.


“그렇게 바다만 보고 있으면 너도 집어삼켜진다.”

“… 감사합니다.”

“아직도 그들을 그리워하고 있는 게야?”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 잊어라. 그래야 네 삶이 편해. 지금도 봐라. 아무것도 안 하고 매일 바다만 보고 있잖아.”

“하하.”

“바다는 모든 걸 집어삼키지. 하지만 도로 뱉어내진 못해. 그러니 포기하렴.”

“… 알아요.”

“… 적당히 보고 들어와라. 감기 걸린다.”


그녀가 한 말은 차가웠지만 건네준 코코아는 따뜻했다. 나는 그녀의 다정함에 감사를 표하며 다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바다는 다시 뱉어내지 않는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뿐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사랑하는 사람들을 삼킨 바다를 원망과 그리움의 눈빛으로 다시 바라보는 일뿐이었다.


*


내가 사랑하는 형들은 모두 바다로 들어갔다. 제일 처음 바다에 들어간 사람은 첫째 형이었다. 다정하던 첫째 형은 우리를 걱정하는 내용과 미안하다는 내용의 편지를 남기고 홀로 배를 탔다. 그리고 그 배에서 내린 사람 명단에 형은 없었다. 우린 모두 충격에 휩싸였고, 경찰을 동원해 형을 찾았지만 시체 하나도 건질 수 없었다.

두 번째는 둘째 형이었다. 첫째 형을 가장 그리워하며 바다를 매일 바라보던 형이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는 첫째 형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환하게 웃은 형의 얼굴은 어딘가 기괴했다. 이틀 후 형은 스스로 조용히 바다로 걸어 들어갔다. 편지도 신발도 남기지 않은 채 그저 발자국 하나 남기고 바다에 삼켜졌다.

마지막은 셋째 형이었다. 그 역시 계속 형들의 목소리가 들린다며 매일 괴로워했다. 결국 형은 바다로 배를 띄워 사라진 형들을 찾기 시작했다. 소리도 지르고 수영도 하고 모든 짓을 다해 그들을 찾았다. 그러나 그 대답에 응답한 것은 커다란 파도였다. 배가 뒤집히고 가라앉았다.

그렇게 나는 내 사랑하는 가족을 전부 바다에 빼앗겼다. 사람들은 바다에 홀렸다고 말했다. 바다가 형들을 홀려 바다로 부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바다의 저주를 받은 가족인 나도 곧 바다의 부름을 받게 될 거라고. 그 소문에서 귀를 막아 준 것이 그녀였다. 나이를 지긋이 먹은 그녀는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고 있던 사람이었다. 첫 만남에 그녀는 시체도 없이 진행되는 장례식장에서 나를 보고 혀를 찼다.


“매정한 놈들, 이 어린것을 왜 남겨두고 가버려.”


매정하게 말한 거와는 다르게 그녀는 혼자 남은 나를 거두어주었고, 소문을 피해 다른 곳으로 이사도 시켜주었다. 하지만 바다와 멀어질수록 나는 멍하니 벽을 바라보는 일이 많아졌다. 그녀는 혀를 차며 다시 모두를 집어삼킨 바다 곁으로 돌아왔다. 바다의 저주를 받은 아이가 돌아왔다며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지만 그녀는 그 말을 무시하고 내 귀를 막아주었다.


“저런 거 계속 들어봤자 네 놈 팔자만 꼬인다.”


하지만 그 소문을 안들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일까, 내 팔자가 꼬여서 내가 지금 이 상태가 된 것일까. 나는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며칠 전부터 바다에서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보고 싶어.’ 처음에는 그 목소리가 무엇인지 몰랐다. 날이 갈수록 선명해지는 목소리는 분명 형들의 목소리였다. 다정한 첫째 형, 단단한 둘째 형, 발랄한 셋째 형. 분명 그들의 목소리였다. 나는 점점 바다로 다가가기 시작했다. 한 발, 두 발. 그렇게 바짓단이 젖는 줄도 모르고 점점 앞으로 다가갔다. 몸의 절반이 바다에 삼켜졌을 무렵 큰 소리가 들렸다.


“미친놈! 진짜 바다에 홀린기가?”


옆 집에 살던 김 씨 아저씨였다. 나를 붙잡은 그의 손은 단단했다. 그는 강하게 나를 해안가로 끌어당겨 내 목숨을 구해주었다. 하마터면 나도 저 끔찍한 바닷속으로 삼켜질 뻔했다.


“... 감사합니다.”

“마을에 또 젊은 놈 제사 치르기 싫어서 그런기다! 앞으로 조심해라!”


내가 바다에 빠져 죽을 뻔했단 소식을 들은 그녀는 한걸음에 집에 도착해 내 얼굴을 살폈다. 그리고 무작정 바다에 들어간 것에 화를 내었다. 난 왜 무작정 바다로 들어갔을까. 알 수 없었다. 그저 목소리가 들렸고, 바다가, 형들이 나를 불렀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오늘도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평소와 다른 점은 바닷속에서 계속 형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서웠던 바다는 더 이상 무섭지 않았다. 그리움의 고향이 된 것처럼 벅차고 슬펐다. 보고 싶었다. 바다로 들어가 그들을 보고 싶었다. 계속해서 눈물이 났다. 어느새 나타난 그녀는 다정히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 바다에 끌려가면 전 형들을 만날 수 있나요?”

“헛소리. 이미 그 놈들은 저승길 갔다.”


그녀는 내 손에 따뜻한 홍차가 담긴 머그잔을 쥐어주고 자리를 떴다. 머그잔에 담긴 붉은 홍차가 고요히 나를 비췄다. 조용히 한 입도 마시지 않은 머그잔을 바닥에 두고 난 다시 바다를 바라봤다. 바다는 아까와 다르게 형들의 목소리를 들려주지 않고 고요해졌다. 난 벌써부터 들리지 않는 형들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그렇게 무섭고 증오스러웠던 바다가 따뜻해 보였다. 정말로 형들이 저 안에 없을까. 다시 들어가면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이 머릿속에 생기기 시작했다. 또 나는 누군가가 끌어당기듯 바다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바짓단이 다시 젖어들어갔다. 형들 기다려 내가 갈게. 우리 다시 만나자 바다 안에서.


‘우림아.’


그때 누군가 나를 불렀다. 바다에 들어가던 걸 멈추고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우림아.’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바다에 더 삼켜지기 전에 다급하게 해안가로 나왔다. 숨을 몰아 쉬면서 주저앉은 채 숨을 골랐다. 나를 부른 목소리가 첫째 형의 목소리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형이 날 살린 걸까. 나는 무릎을 끌어안고 펑펑 울어버렸다. 그들은 정말 돌아오지 않는 걸까. 난 그저 목놓아 울어버릴 뿐이었다.


“포기하고 싶어, 나 힘들어…. 형, 날 두고 가지 마…. 내가 어떡하길 바라는 건데!”


주저리주저리 듣지 못하는 사람에게 원망의 말을 뱉어내고 있었다. 그렇게 바다에 오랫동안 앉아 울고 있을 뿐이었다.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울 수밖에 없었다. 나는 힘이 없었고, 용기도 없었다. 죽을 용기도, 살 용기도. 그녀는 저 멀리서 걸어오며 울고 있는 나에게 말을 건넸다.


“돌아오지 않는 자들을 그리워해도 된다. 하지만 끌려가지 마라.”


바다는 해를 게걸스럽게 삼키고 있었다. 나는 삼켜지는 해를 보며 바다에 삼켜진 형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축축해진 몸을 떨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다를 등지고 집으로 향했다. 모래엔 나와 그녀의 발자국만이 흉터처럼 남았다. 남겨진 자들의 상처처럼. 



  • 펜션에서 바다 보면서 쓴 글이라 맥락이 없네용 ㅎㅎ 
  • 바다에 삼켜진 자들과 그걸 그리워하는 자를 쓰고 싶었는데 더 안떠올라서 얼레벌레 마무리 했습니다ㅎㅎ 

트위터: @i_am_mushro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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