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건은?"

길드장실에 울린 그 한마디가 송태원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제 잘못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성현제의 태도는 생각보다 싸늘했다.

"대답을 드리러 왔습니다."

"답?"

책상 앞으로 나아간 송태원은 성현제의 앞에 멈춰 섰다. 몇 걸음 더 나아가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도 성현제는 멀고 먼 사람으로만 느껴졌다. 싸늘하게 식은 표정과 날이 선 눈빛까지 당장 달려들어 누구 하나 죽인다 해도 아무렇지 않을 얼굴이었다. 저도 모르게 침을 삼키며 송태원은 질문에 답했다.

"예전에 하셨던 말씀에 대한 답입니다."

"끝난 이야기 아니었나?"

성현제는 거치적거린다는 듯 손을 내둘렀다. 질척이는 건 질색이네만. 작게 덧붙이는 한마디가 다시금 칼이 되어 그의 심장을 겨눴다.

"벌써 1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내가 자넬 아낄 거라 생각하나?"

송태원은 그와 제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느꼈다. 예상했지만 사뭇 더 냉랭한 성현제를 앞에 두고 남자는 자책할 수밖에 없었다. 늦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성현제의 고백을 거절한 바로 그 순간부터 그가 터트린 사고 수십 건을 수습하느라 3개월은 걸렸고 심술부리듯 이어지는 길드 간의 마찰과 밀입국 헌터 등과 같은 뒤가 구린 사건들만이 줄을 이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나고 나니 성현제는 각관실에는 얼굴조차 내비치지 않는 귀한 몸이 되어 있었다.

그간 성현제를 찾아갈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하지만 얼굴을 마주하고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망설였다. 기다리겠다 한 것은 상대였으나 그것도 몇 주, 몇 달이었지 1년을 말한 것은 아닐 터였다. 죄송합니다만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뻔한 거절을 듣기 위해 마음을 전한 것도 아닐 터였다. 굳이 성현제를 찾아온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방법이 좀 잘못되긴 했지만 세성 길드장이 실장님을 얼마나 아꼈는데요. 아쉽다는 듯이 나왔던 각관실 직원의 그 한마디에 송태원은 깨달았다. 괴롭힘에 가까운 그 관심 역시 애정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 사실을. 밥을 사주겠다며 사람을 끌고 가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가 날지도 모른다며 미리 연락을 해온 적도 있었다. 잠깐 걷자며 바쁜 사람을 불러낸 것은 물론이고 뜬금없이 드라이브를 하러 가자며 야근하던 그를 불러낸 것도 성현제였다.

그가 직접 매주던 조수석의 안전벨트는 물론이고, 같이 갔던 식당이나 산책로까지 서울 곳곳에 그와 함께한 기억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송태원은 한국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그러나 할 수 없었다. 그게 전부 애정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 각오는 하고 왔지만 이제 두 번 다시는 볼 수 없을 것이란 생각에 더 설움이 몰려왔다.

"죄송합니다. 그 말씀 먼저 드리고 싶었습니다."

성현제는 의자에 꼿꼿이 앉아 송태원을 보고 있었다. 계속해 보라는 듯 다리를 꼬고 무릎 위에 차분히 놓이는 겹쳐지는 손을 보며 남자는 그저 서러웠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달라질 수 있었을까. 그저 늘 한국에서 최고의 정점에 선 그대로 있어 주기를, 그런 그에게 자신이 누가 되지 않기를 바랐던 것뿐이었는데. 무슨 말을 꺼내든 변명이 될 뿐이라 송태원은 말하기를 주저했다. 그래도 똑바로 금빛 눈동자를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이런 말로 세성 길드장님의 마음 돌릴 수 없다는 것 알고 있습니다. 그간 죄송했습니다."

90도로 고개를 숙이는 인사에도 성현제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기세에 눌린 것은 아니었지만 송태원은 제 몸이 작아지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늦었지만 그때 제게 해주셨던 말씀처럼 저도 그저 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

막상 입을 떼려니 좋아합니다의 그 첫 글자조차 뗄 수가 없었다. 숨을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가도 턱 하니 막혀오는 숨에 호흡이 버거워졌다. 공문을 읽듯 한마디 하면 되는 것뿐인데. 그런데도 왜....

"...좋아합니다."

힘겹게 나간 한마디와 함께 눈을 깜빡이자 눈치 없는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괜히 더 감정에 북받쳐서 꼴사나온 모습 보이고 싶지 않은데. 처음 한마디가 어려웠던 것이 무색하게 그 다음번은 좀 더 쉽게 내뱉을 수 있었다.

"좋아합니다. 성현제 씨. 흡, 죄송합니다. 제가... 당신을... 좋아해서...."

1년 치의 고민이 담긴 그 말에 마음이 넘쳐흘렀다. 손등과 손바닥으로 훔쳐 봤지만, 이미 터져버린 눈물은 멈출 수 없었다. 이제야 깨달은 제자신에 대한 후회에 그럼에도 염치없이 마음을 고백하는 자신이 견딜 수 없었다. 어디론가 그 누구도 모르게 사라져 버릴 수 있다면 그렇게 했을 텐데. 커다란 몸은 숨을 쥐구멍 하나 찾지 못한 채 성현제 앞에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송태원이 울먹이며 고개를 떨군 그때, 성현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려 실룩거리는 입꼬리는 입을 꾹 다문 채 참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언제 다가왔는지 코앞까지 와서는 손을 내민 그 모습에 송태원은 잠자코 손수건을 받아들었다. 눈가를 훔치는 그 틈을 타 세성 길드장은 송태원을 감싸안았다. 

오래도 걸렸네, 송 실장. 지난 1년이 얼마나 길었는지 자네가 알 리 없지. 그래도 이리 귀엽게 울어 줄 줄은 몰랐는데. 성현제는 제 어깨에 기댄 송태원의 등을 토닥였다. 송태원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던 헌터들까지 물리고 일절 관심이 없는 척 지내왔던 1년의 보상이 손에 쥐어지는 순간이었다. 너른 등을 쓸어내리며 성현제는 어떻게 그를 집으로 데려갈지 생각했다. 이제야 손에 넣었으니 참았던 만큼 더 예뻐해 줘야겠지. 안긴 사람 몰래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성현제는 듬직한 몸을 더 꽉 껴안았다.





헉 고백하면서 우는 거 넘 찌질해 보이지만 송 실장님이면 완전 오케입니다.
귀여워서 당장 잡아먹고 싶은 거 참으면서 받아줄 듯.
이제야 넘어왔다면서 입가는 실룩거리는데 웃으면서
짐짓 안 웃는 척 위로해주는 성현제 < 란 트윗에서 시작한 글.
앞뒤로 뭐 추가하고 하니까 느낌이 좀 달라졌지만 그래두 만족ㅎ
셀프 전력 느낌으로 해봐씁니다 총총


글 쓰는 사람 Free! 소스마코 / 내스급 현제태원 / 베스타 규혁도윤 E-mail: sleep_ck@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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