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2014. 04. 22

 

 하늘은 파랗다, 개나리는 노랗다···. 우리는 색에 대한 명칭을 정하고, 이를 보편적인 상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다 같은 색을 보는 것일까? 우리는 하늘의 색은 파랗다고 배우지만, 우리가 같은 색을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타인이 파랗다고 말하는 색은 사실 나에게는 붉은 색으로 보일 수도 있다. 다만, 그 붉은 빛깔에 아주 어린 시절 파란색이라는 이름을 붙였기 때문에, 붉은 빛을 파란색이라고 인식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물론, 그렇다면 파랗다, 빨갛다는 의미가 없다. 하늘과 바다의 색은 분명 비슷한 색이지만, 그게 타인이 보는 색과 내가 보는 색이 같은지는 증명할 방법이 없다. 분명 그 색을 가리키며 그들과 나는 모두 파란색이라 주장하겠지만, 그건 그냥 보고 있는 색의 명칭일 뿐일지도 모르니까.

 어째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일까. 그건 분명 지금 내 상태가 이상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한 달 전? 일주일 전? 어쩌면 5분 전? 언제부터 내 감각기관이 이상해졌는지 눈치 챌 틈도 없이, 정신을 차려보니 이상해졌다는 느낌이다. 어떻게 이상해졌냐고 물으면, 내가 보는 시야에 이상이 생겼다. 빛을 수용하는 감각기관이 어느새 장미의 색, 그러니까 붉은 색만을 인지하게 되어버렸다. 아니, 그렇게 큰 변화를 어떻게 눈치 채지 못할 수가 있냐고? 그만큼 내 머릿속은 맛이 간 상태라는 것이겠지. 그러한 이유로, 내 시계(視界)는 빨간색 일색이다.

“···.”

전신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과학 실험실에서 쓰이는 인체 모형 같은, 새빨간 사람의 모습이다. 거울에 비친 움푹 파인 눈두덩과, 비쩍 마른 살갗, 윤기 없는 피부를 보고 있으면, 정말로 그로테스크한 모습 그 자체이다.

 내 몸에 생긴 이상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환각 증세까지 생겼다. 붉은 선글라스를 낀 것 같은 느낌으로 거리를 걷고 있으면, 시야의 어느 한 구석에서 꽃 한 송이가 피어난다. 정말로 갑작스럽게, 두더지잡기 게임에서 두더지가 튀어나오듯이 쏙- 하고, 석산을 닮은 꽃 한 송이가 튀어 오르는 것이다. 처음엔, 하수구 같은 곳에서 한 송이가 튀어나오더니 갈라진 벽 틈, 울타리와 흙의 경계선, 천장의 환기구에서 계속해서 꽃이 튀어나왔다. 꽃을 만지려 다가가면, 나왔던 구멍으로 다시 쏙- 하고 들어간다. 물론, 들여다보면 꽃은 없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역시 환각이다.

“뭐하는 거야?”

친한 사람이 내게 묻는다. 나는 그 새빨간 얼굴을 돌아보았다가, 기분이 나빠져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냐.”

그러면 그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너 요즘 이상해.”

“그래?”

아냐. 이상한 건 내가 아니다. 변해버린 건 너희들이다. 어째서 이 붉은 세계에서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지? 너희들은 미쳤어. 모두 다 돌아버린 자식들 밖에 없다고.

 

 

“뇌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습니다. 물론 눈 또한 정상입니다.”

어떠한 병원을 가보아도 정상이었다. 모두들 하나같이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라고 권장하지만, 난 내가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조금 눈이 피로할 뿐이니까. 병원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으니, 창밖으로 보이는 옆 차의 바퀴에서 또 빨간 꽃 한 송이가 튀어나온다. 꽃은 마치 나에게 인사를 하는 것 마냥 고개를 까딱 흔든다. 그 모습을 보고 구토가 나올 것 같아 고개를 치운다.

 날이 갈수록 점점 세계가 이상해져간다. 귓가에 삐-하는 소음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주변 사람들의 말에 노이즈가 끼기 시작했다. 시작했다는 것은 계속 진행되었다는 의미로, 또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느새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소음이 심해졌다는 일이다.

“■■■■■··· ■■■, ■■■이■ ■■냐?”

덕분에 나는 의사소통조차 할 수가 없어서,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행동하게 되었다. 이미 일상생활은 불가능하게 되었고, 정상적인 사고활동을 하는 것조차 버거워서, 어두운 방구석에서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일이 내 하루 일과가 되었다. 눈을 뜨면, 온통 꽃이었다. 붉은 꽃, 붉은 꽃, 붉은 꽃···. 수술이 꽃 밖으로 튀어나온 산형꽃차례. 이것들을 보고 있으면,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깨닫는다. 이것들은, 사람이 보아서는 안 될 것들이다. 사람이 보고 있으면 틀림없이 미쳐버리는 것들이다. 눈을 뜨고 있으면 구역질이 났다. 아무것도 볼 수 없고, 아무것도 들을 수 없었다.

 옆에서 진동이 울린다. 휴대폰이다.

[좀, 어때? 괜찮아? 나랑 같이 상담이라도 받으러가지 않을래?]

문자메시지. 나쁜 자식들. 나를 걱정해주는 척이라도 하면, 좋은 사람으로 보일 줄 알고? 더러운 위선에는 넘어가지 않는다. 그따위로 너희의 자존감을 채워줄 것이라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덕분에 보고 싶지 않은 것들을 잔뜩 보게 되어 기분이 매우 나빠진다. 이건 병일까? 아니면 그냥 스트레스가 쌓여 보게 된 환상 같은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일까?

 언제쯤 원래대로 돌아올 수가 있는 것일까. 인간은 미래를 사는 생물이다. 정확히 말하면 긍정적인 미래를 사는 생물이다.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으며, 긍정적인 미래를 갈구하며 현재를 산다. 하지만, 나는 미래를 살 수가 없다. 현재를 사는 사람이다. 조금씩 머리를 갉아먹는 꽃들과 구토감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내 일이다. 현재를 산다는 것은, 미래를 생각하지 않는 일이다. 즉, 나는 죽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살을 앞둔 사람은 자신의 고뇌를 호소한다고 한다. 그렇게 자신의 고통을 알아달라고, 자살을 행하려는 자신을 막아달라고 암시한다고 하지만, 그건 아마, 우울증이나 무기력증에서 오는 자살에 대한 이야기겠지. 나의 경우는, 자살이라기보다 안락사를 원하는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때문에 호소할 필요도, 호소할 수도 없다. 공감을 받을 수 없는 이야기니까. 호흡이 힘들고, 가만히 눈을 감고 앉아있는 것도 버거워서,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 있는데, 움직일 수 없다는 것···. 날개를 다친 것도 아닌데, 새장 속에 갇혀 있는 감각이란 이런 것일까. 고통 속에서 신음을 한다. 신음소리를 듣고, 내가 숨어있단 것을 깨달았는지 붉은 꽃이 내 눈꺼풀 사이로 고개를 내민다. 아, 그러고 보니 눈꺼풀도 ‘틈’이구나. 감은 눈꺼풀 사이로 붉은 석산이 고개를 흔들며 비웃는다.

 

 

 눈을 뜨고 보니, 고층 빌딩의 꼭대기에 있었다. 어떻게 올라왔는지, 어째서 올라왔는지 기억에 없다. 기억이 깔끔하게 누락되어 있다. 다만, 눈에 헝겊이 칭칭 감겨있고, 몸 여기저기가 쓰라린 걸로 보아, 눈을 감은 채 이곳저곳 부딪히며 올라온 것 같다. 다만 숨쉬기가 힘들고, 매서운 바람은, 꽤나 고층빌딩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해준다. 눈가에 손을 가져간다. 헝겊을 돌려내어 푼다. 눈꺼풀을 열자 새빨간 하늘이 보인다. 하늘이, 강물처럼, 흐르고 있었다. 손을 하늘에 가져다 댄다. 이 하늘은, 코키토스(Cocytus,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통곡의 강.)일까.

 그제야 나는 눈치를 채었다. 시야는 여전히 붉지만, 꽃이 보이지 않는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시야를 가득 채우던 붉은 꽃들이 피어나지 않는다. 건물의 펜스에도, 손가락과 손톱 사이에도, 환기구 구멍에도, 꽃들은 피지 않았다. 고개를 끄덕인다. 한결 낫군. 난간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부감(俯瞰)이 시리다. 촘촘하게 박혀있는 건물들의 모습이 따갑게 눈을 찌른다. 과연, 우리 집은 보이지 않는구나- 하고 시시한 감상도 해 본다. 고개를 난간 밖으로 쑥 내밀어본다. 건물의 바로 밑이 보인다. 붉은 꽃 한 송이가 피어있다. 벽 틈도 아니고, 구멍도 아닌, 저 멀리 보이는 바닥에 붉은 꽃 한 송이가 납작하게 피어있었다. 꽃 중앙에는, 사람의 형태가 보인다. 아아, 그렇구나. 나 역시도 피어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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