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는 늘 네 생각이 났다. 아직 눅눅한 여름이었다. 나는 늘 열대야를 핑계로 네 생각을 했다.


다 괜찮다고 했다. 너는 잊지 않는다고 했으면서. 너는 거짓말을 할 때, 괜히 손바닥의 상처를 만지작거렸다. 그런 네 모습을 볼때면 나는 썩은 동앗줄을 잡고 있는 것처럼 불안했다. 나는 네게 얼마만큼의 슬픔이 남아있는지 도무지 계산이 안됐다. 그렇게 똑똑하던 나는 왜 네 앞에만 서면 셈을 못하는 아이처럼 멍청해지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한 건, 나는 그런 슬픔이 너를 잠식해버릴 것 같아서 가끔은 겁이 났다.


너는 내게 나의 마음이 사랑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하지만 그저 잉크가 번지듯 자연스럽게 늘 머릿 속에 네가 있었다. 그뿐이다. 정말, 그뿐이었다. 내가 언제부터 네게 눈을 뗄 수 없었던 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 생각났다. 어느날 네가 엄마 손을 잡고 걸어가던 소년을 보고 한 말이.


"스캐맨더 씨."

"응?"

"저렇게 당연한 듯 웃을 수 있다는 건 참 큰 행복인 것 같아요."


너에겐 당연하지 않은 일. '나, 아니면 그들.' 그렇게 깊고 진한 구분선을 하나 그은 채로 사는 너를 그 날 나는 처음 봤다. 멍한 표정으로 널 쳐다보고 있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부러운 듯 소년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너의 옆얼굴을 보면서 나는 많은 생각을 했다.


그날부터였던 것 같다. 너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 조금씩 신경쓰며 살았던 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에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전할 때도 나는 아닌 척 눈을 내리깔며 너의 표정을 살폈다. 그러다 네게 손톱만큼의 기쁨이라도 보일 때면 나는 그보다 더 큰 기쁨으로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네 행복은 벌써 완벽해서는 안됐다. 내가 네 곁에 머물 수 있는 아주 작은 변명거리 하나 정도는 필요했으니까. 가끔은 이런 내가 꽃에 꼬이는 벌 같다고 생각했다. 꽃의 번식을 도와준다는 구실로 찾아와 꿀을 가져가는 얌체같은 벌. 사실은 꽃이 보고 싶은 거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 나를 반기는 꽃봉오리 안에 들어가 내 욕심을 채우면서 이 모든 것은 너를 위함이라고 속삭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네가 내게서 기쁨을 먹고 더욱 더 깊이 뿌리 내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럼 불쌍한 나의 꽃은 이곳에 발이 묶여 도망가지도 못하겠지. 너는 이런 내게 다시 한 번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다시 한 번 너에게 거짓말을 하겠지. 그저 너를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야.


나는 너처럼 거짓말을 할 때에 저도 모르게 상처를 쓰다듬지도 않고, 어색한 웃음을 짓지도 않는다. 그러니 너는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나에게 속아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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