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검색한 문장은 ‘부엉이가 술을 마셨을 때 어떻게’ 였다.





어디선가 부엉이의 구슬픈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카아시는 테라스 창으로부터 등을 돌린 채 초조한 동작으로 오른손 손가락 마디마디를 꾹꾹 눌렀다. 


그 날은 교수가 수업을 휴강 했었다. 




*




금요일 밤 수업이라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지옥의 입구에서 추는 탭댄스 비슷한 것이겠지만, 아카아시는 그런 것도 덤덤히 받아들일 수 있는 성미였다. 수강 신청이 있었던 날 조모가 갑자기 심하게 아팠고 인기가 있는 시간대의 수업은 모두 신청이 끝 난 뒤였다. 전공과목을 채워 넣고 남은 학점을 이리저리 끼워 맞추다보니 금요일 오후 7시 수업밖에 남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한숨을 쉬긴 했지만, 그래도 크게 서운해 하는 것 없이 그 수업을 신청했다.


그리고 개강 후 첫 수업, 교수가 수업을 휴강했다. 강의실까지 가는 길에 이번 주 수업은 쉰다는 문자가 왔다.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던 같은 과 친구가 신이 나서 만세를 외치며 아카아시를 끌고 술집으로 갔고 사람이 술을 마시는 게 아니라 술이 사람을 마실 지경까지 들이켰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인적도 차도 뜨문한 4차선 차도 한가운데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던 건 그렇게 늦게까지 술을 마셨기 때문이었다. 아카아시는 취기에 오락가락 하는 와중에도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새였다. 


아주 커다란 새가 죽은 듯이 날개를 아무렇게나 하고서 차도에 팽개쳐져 있었다. 그냥 지나쳐갈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그 차도 건너편에 아카아시의 자취방이 있었다. 아카아시는 술이 깨는 것을 느끼며 숨을 골랐다. 차도에 오가는 다른 차량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다. 아주 가까이 갔을 때야 아카아시는 자신이 왜 이 새를 알아보았는지 뒤늦게 알아차렸다. 새는 아주 큰 부엉이였다. 흐린 달빛 아래, 새카만 아스팔트 위에서 새만이 희게 빛났다.


‘죽었나……?’


몸을 굽히고 손을 슬쩍 대는데 가볍게 푸드덕거렸다가 다시 죽은 듯이 아스팔트 위로 엎어진다. 아카아시는 미간을 모았다. 새는 살아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이러고 있어서야 차에 치여 정말로 죽을지도 모른다. 아카아시는 마른침을 한 번 넘기고 일단은 새를 들어올렸다. 


새가 느릿느릿 눈을 감았다 떴따 하다가 이내 그의 손 위에서 푹 고꾸라졌다. 언뜻 보인 눈은 샛노란 빛이었고 그의 팔에 완전히 의지하고 있는 무게가 상당했다. 어딘가 다친 것 같지는 않았다. 아카아시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가 한숨을 한 번 내쉰 다음에 그 커다란 새를 챙겨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애완동물은 금지인 빌라였기 때문에 현관을 지날 때는 의식적으로 CCTV를 보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자신이 취한 와중에도 논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길바닥에 엎어져 있는 새를 안고 올 정도로 엉망인 것인지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수건을 하나 반으로 접어 깔고 그 위에 새를 올려놓은 다음, 아카아시는 최대한 차분하게 생각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보다 집안에도 진동하는 것 같은 이 술냄새는 아마도 자신이 퍼마신 술 탓인 게 분명했다. 아카아시는 일단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로 향했다. 


씻고 나와도 술냄새는 가시지 않았고 그건 그가 이 오밤중에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그렇게 많이 마셨나, 그렇게 생각하던 아카아시는 돌연 휙 고개를 돌려 기절한 듯 혹은 자고 있는 듯 수건 위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는 새를 쳐다보았다. 


아카아시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기울여 부엉이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술냄새는 새에게서 나고 있었다.


‘이 부엉이, 취한 거였나?’


어쩐지 너무 정신을 차리지 못하더라니……. 아카아시는 피곤함을 이기지 못해 미간을 꾹꾹 누르곤 책상 위의 노트북에 전원을 올렸다. 부드럽게 팬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화면에 빛이 비쳤다. 


자취방으로 돌아와서도 불을 켜지 않아서 실내를 밝히는 건 끄지 않은 욕실의 조명이 전부였다. 아카아시는 인터넷 브라우저를 켜고 재빨리 검색엔진에 접속했다. 그리고 입력했다. 


‘부엉이가 술을 마셨을 때 어떻게’ 


마땅히 검색되는 결과는 없었다. 아카아시는 눈앞이 빙글빙글 돌아서 이마를 감싸쥔 채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건 맹금류라고 하지 않던가? 실내에 두어도 괜찮나? 술을 마신 것도 괜찮으려나……. 이것 저것 생각하던 아카아시는 지쳐서 책상 위에 뻗어 엎드렸다. 다친 것도 아니고 단지 술에 취한 것이라면, 내일 일어나서 어떻게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아카아시는 팔에 머리를 댄 채 고개를 조금 돌려, 멀찍이 자고 있는 부엉이를 가만히 쳐다보았다. 술에 취해서일까. 느리게 눈을 깜박, 깜박, 하는데 마치 어떤 낯모를 사람이 누워 세상 모르고 자고 있는 듯이 보였다가 다음 순간엔 다시 정신없이 잠에 빠진 부엉이 한 마리만 누워 있었다. 



*



“아…….”


아카아시는 이게 꿈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꿈은 아니었고 비현실은 더욱 아니었으며, 지극히 그의 현실이었다. 부스스 눈을 떴을 땐 몸이 으슬으슬하고 허리가 아팠다. 책상 위에 엎드린 채 하룻밤 내내 자버렸다는 걸 그 때 알았다. 노트북의 모니터 화면이 켜져 있었다. 어제 검색했던 것이 그대로 떠 있다. 아카아시는 노트북을 덮으며 지끈거리는 허리를 두드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 때였다. 눈앞에 깃털이 하나 두둥실, 그의 앞에서 나선을 그리며 바닥으로 떨어진다. 아카아시는 미간을 가늘게 좁히고서 그 깃털을 향해 손을 뻗었다. 크고 날렵한 모양새의 깃털이었다. 아마도 새의…….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야 방의 모든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천지가 한 번 뒤집혀 탈탈 털렸다가 다시 바로잡으면 이런 모양새가 아닐까 싶은 모습이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날리는 건 새의 깃털만이 아니었다. 솜 뭉치가 훅 떠올랐다가 다시 가라앉았다. 아카아시는 어안이 벙벙하여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눈 앞의 풍경을 바라보기만 했다. 


-부우!


소음 하나 없이 공기를 부드럽게 가르는 것이, 귓가의 기척으로 느껴졌다 싶었을 땐 눈 앞에 부엉이 한 마리가 책상 위에 올라서 있었다. 날개를 접으며 그를 바라본다. 아카아시는 마른침을 삼켰다. 부엉이가 그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샛노란 눈동자였다.


아카아시는 일단 부엉이에게서 눈을 떼고 주위를 바라보았다. 이불은 침대에서 끌려나와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고 식기는 온통 쓰러져서 인사불성이었다. 그 중에 유리잔 하나는 기어코 박살이 나 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아카아시는 도대체 이 날리는 솜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떠다니고 굴러다니는 것을 붙잡던 아카아시는 그것이 자신의 어깨 위에도 지천으로 널려있는 걸 알아차렸다. 어깨와 등으로 손을 뻗어 더듬더듬 만져보자 하얀 뭉치가 뭉텅으로 잡혔다. 


“아, 베개…….”


그렇게 등 뒤로 고개를 돌렸을 때, 아카아시는 바닥에 떨어진 베개의 시체를 볼 수 있었다. 베개의 겉이 다 뜯어져 속이 훤히 드러나 있었다. 틀림없이 저 부엉이가 부리로 쪼아 저 꼴을 만들어 놓은 것이리라. 아카아시는 고개를 돌려 부엉이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같은 천진한 표정의 부엉이가 그를 보고 있다. 


아카아시는 마른 입술을 다시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엉이에게선 눈을 떼지 않은 채였다. 부엉이가 그를 올려다본다. 아카아시는 조심스레 뒤로 걸어 바닥에 떨어진 베개를 집어 들었다. 


가까이서 보자 베개는 더욱 처참한 형상이었다. 맹금류라는 표현이 새삼 머리 속에 떠올랐다. 아카아시는 천천히 방의 가장자리로 걸어 가며 침대 근처까지 다가갔다. 책상 위에서 아카아시를 바라만 보고 있던 부엉이가 폴짝 바닥으로 뛰어내리더니 아카아시를 따라 쫑쫑 다가왔다. 


아카아시는 일단 이불을 손에 쥐고, 그 다음에는 테라스 쪽의 창을 마저 열었다. 어젯밤 환기시킨다고 열어두었던 것이 생각났다. 


“안 나가나…….”


아카아시가 창가 쪽에서 어른거리고 있자 부엉이는 쫑쫑 걸어 아카아시에게 다가오기는 했지만 바깥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몰랐으면 어떻게 손을 뻗어서 만져보기라도 했을 텐데, 베개의 참상을 보고 나니 도저히 그럴 엄두는 나지 않았다. 저런 것에 손을 뜯기면 손목 채로 잘릴 거야, 아카아시는 덤덤한 표정으로 잘도 그런 생각을 했다.


“어쩌……지.”


가시지 않은 숙취와 불편한 자세로 잠들었던 피곤함 탓에 제대로 된 사고가 되지 않는 기분이었다. 묘하게 몽롱한 것이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기분이 되기도 하고, 이 와중에 다시 떠오르는 건 이 빌라에 애완동물은 안 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나가지 않는 것을 떠밀 자신은 없었다. 아카아시는 결국 다리에 닿은 침대에 앉아서 이불을 끌어안은 채 멍하니 바닥의 부엉이를 바라보기만 했다. 부엉이가 고개를 한 번 겨웃하더니 가뿐하게 날듯이 뛰어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가 기겁하고서 뒤로 물러서지 않은 건 간만의 숙취 때문이지 놀라지 않았기 때문은 아니었다. 부엉이가 부리로 그의 소매 끝자락을 잡아당겼다. 


“아.”


아카아시의 손 아래에 머리를 들이민 부엉이가 몇 번 그의 손에 부리며 머리를 부빈다. 새인데도 표정이 뚜렷했다. 결국 아카아시는 차마 부엉이를 바깥으로 내보내지 못하고서 스르르 침대에 무너지듯 드러누웠다. 


부엉이가 쫑쫑 다가오더니 또 고개를 갸웃하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금빛 눈동자가 기쁜 듯이 그의 어깨에 부리며 뺨을 부빈다. 아카아시는 베개가 없어 대충 이불을 구겨 베고서 당장 부엉이가 무얼 먹는지부터 알아보아야 겠다고 생각했지만, 닥쳐온 수마가 먼저였다. 가물가물 눈이 감긴다. 흐릿해지는 시야 속에서 낯선 얼굴의 남자가 그를 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간신히 또렷하게 만든 시야에는 여전히 부엉이가 그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카아시의 눈이 다시 감겼다. 부엉이가 낮게, 부우, 하고 울었다. 


*


이로부터 한 달간, 아카아시는 이 낯모를 부엉이와 나름대로 즐거운 생활을 영위했다. 갑자기 식비가 그의 통장 잔고를 배신하게 되었지만 아카아시는 특별히 탓을 하지는 않았고 부엉이에겐 보쿠토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빌라는 애완동물이 금지였지만 부엉이는 크게 시끄럽게 하지도 않는데다가 유난할 만큼 깔끔을 떨어 누군가에게 들킬 일은 없었다.


아카아시는 외출할 때면 항상 창문을 열어놓고 나갔는데, 처음엔 부엉이가 한시라도 빨리 돌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였고 이제는 언제라도 가고 싶을 때 갈 수 있도록 한 배려였다. 


마음이 바뀌었던 건 그가 그날 또 휴강한 수업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부엉이가 집에 없었던 그 날이다. 아무도 없는 적막한 실내가 이토록이나 고요한 줄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지금까지 죽 혼자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돌아갔다고 생각한 순간 부엉이가 열린 창으로 날아들어왔을 땐 말을 알아듣는 것 같은 이 부엉이에게 말로 하지는 않았지만 참기 어려울 만큼 반가웠다. 돌아온 그 부엉이가 쥐를 물고 와서 표현할 새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적절하겠다. 


그런데 이 한 달간 나름대로 잘 지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이 한밤중에 테라스에서 구슬픈 부엉이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들리고 아카아시가 테라스의 창을 닫고 잠근 것은, 지금 아카아시의 손에 들린 노트 한 권으로 설명할 수 있었다. 가운데에 선명하게 찍힌 자국이 있는 노트였다. 


부엉이와 지내는 한 달 간, 아카아시가 이 부엉이의 맹금류 속성에 대해 실감한 적은 많지 않았다. 기껏해야 두 번이 고작이다. 한 번은 처음 보았던 날 처참하게 찢겨나갔던 베개를 봤을 때, 다른 한 번은 부엉이가 쥐를 물어다 왔을 때였다. 부엉이는 오히려 무척이나 살가운 성격이었다. 아카아시가 특별히 다정하게 대한 것이 아닌데도 그에게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부리나 발톱으로 상처라도 내면 어쩔 줄 모르고서 그를 따라다녔다.


그렇게 한 달 즈음 되었을 때였다. 


책상 위에 노트북을 켜놓고서 영화 한편을 틀어두고 침대에 기대어 보던, 어느 평범한 밤이었다. 멍하니 화면만 보고 있는데 옆에 가만히 있던 부엉이의 기척이 바뀌는가 싶어 옆을 보자니 부엉이가 모니터가 아니라 그를 빤히 보고 있었다. 


-보쿠……!


이름을 부르려던 순간에 이불을 잡아 채 몸을 가린 건 아마도 살기 위한 생존 본능이 발휘한 순발력이 아니었는가 한다. 그리고 이불엔 구멍이 났다. 부엉이가 갑자기 달려든 것이다. 시도는 그 한 번 뿐이었고 실패한 것으로 인해 부엉이는 몹시나 기분이 처졌는지 그날 밤 내도록 머리를 푹 숙인 채 그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었지만, 아카아시는 도무지 그것을 달래줄 기분은 아니었다. 피식자가 포식자의 기분을 달래주는 경우가 세상 천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갑자기 이런 공격성을 띄는 것을 이해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해석할 길이 없었다. 동물병원에서는 부엉이같은 육식맹금조류가 갇혀 있어 그런 게 아니느냐 했지만 아카아시는 억울했다. 한 번도 가둬둔 적이 없었다. 새장도 없었고 창마저 항상 열어두었다. 날아가지 않는 건 부엉이의 의지였다. 


하다 못해 아카아시가 직접 부엉이를 데리고서 바깥에 내놓고 오기도 했다. 마음은 서운했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한밤중, 역 근처의 숲에서 장난감 하나를 가지고 신명나게 놀던 부엉이는 아카아시가 저를 두고 간 걸 눈치채자마자 곧장 하늘을 날아올랐다. 아카아시는 자신을 향해 날아오던 부엉이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창공을 가른다는 표현은 이 순간을 위해 존재해온 말이라고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그를 찾아 날아온 부엉이가 그의 옷이며 머리칼 할 것 없이 잡아 뜯고 난리를 피웠을 때는 그런 감동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아카아시는 그 날 다시 한 번 부엉이가 맹금류라는 걸 느꼈다. 가도 한복판에서 부엉이에게 습격을 당하다시피 했는데 마땅히 지나가는 사람도 없어서, 아카아시가 숨이라도 돌리며 겨우 겨우 자리에 섰을 땐 이미 어디 성한 곳 하나 남지 않은 뒤였다. 부엉이는 연신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부우 부우 울었다. 그 날갯죽지가 자꾸만 그의 다리며 어깨를 치고 지나간다. 아카아시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양팔을 벌렸다. 부엉이가 그의 품으로 날아들었다. 부리로 그의 팔을 한 번 쪼았다가 아카아시가 신음을 흘리자 또 미안한 듯이 울며 부볐다. 


이것으로 된 줄 알았는데 된 것이 아니었다. 이따금 부엉이는 그런 식으로 그를 습격했다. 부엉이가 아카아시를 노리는 순간은 그림으로 그린 듯이 기척부터 변하고 그 눈빛이 번뜩여 아카아시도 나름대로 피하고 방비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천성이 담대한 아카아시라고 해도 맹금류가 눈빛이 달라져 습격할 때는 간담이 서늘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오늘 참다 참다 못하여 부엉이가 잠깐 테라스로 쫑쫑거리며 나간 순간에 곧장 문을 닫아버렸다. 닫고도 무서워서 잠그기까지 했더니 부엉이가 저렇게 서럽게 울고 있었다.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는 부리로 유리창을 콕콕 두드리는 소리만 난다. 그렇게 아카아시는 계속 등을 돌리고 있는 채였다. 


‘서러운 건 이쪽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모자람 없이 먹이고 보살펴 주었다. 유난을 떨며 애틋하게 아껴준 것은 아니어도 함께 있을 때는 손이나 어깨에서 내려놓지 않았고 그건 부엉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랬는데 돌연 틈을 보인다 싶으면 습격을 하려고 드니 섭섭한 마음이 물씬인 것은 이쪽이건만!


한참 등을 돌리고 있던 아카아시는 문득 등 뒤가 조용해진 것을 알고 슬며시 고개를 돌렸다. 테라스의 창 너머엔 어느새 부엉이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카아시는 조심스레 창가로 다가갔다. 테라스 바닥에 깃털 하나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갔나…….’


곁에 있던 사람을 그렇게 공격하게 될 정도로 힘들었다면 보내주는 게 맞을 것이다. 아카아시는 그렇게 생각하며 쓸쓸해하는 스스로를 타일렀다. 조심스레 유리창의 잠금을 풀고 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깃털 하나를 기념으로 간직하는 것을 보고 위선이라고 비난할 것까지는 없을 일이다. 그가 테라스 바깥으로 손을 내뻗을 때였다.


어디선가 공기가 벼리는 느낌이 나고, 아카아시는 자신의 본능을 한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순식간에 몸을 뒤로 빼고 유리창을 급히 닫아버렸단 말이었다.


콰앙!


유리창이 창틀 채로 흔들린다. 아카아시는 아연한 얼굴로 정면을 바라보았다. 그가 닫아버린 창에 거센 소리를 내며 부딪힌 것은 예의 그 부엉이었다. 멀리서부터 돌격하다시피 날아와 갖다 박은 것이다. 테라스 바닥에서 휘청거리는가 싶더니 맥없이 푹 고꾸라진다. 이쯤 되니 기가 막히지도 않았다. 아카아시는 입만 열었다 닫았다 하다가 조심스레 창문을 열었다. 부엉이는 테라스 바닥에 엎어진 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아카아시는 팔을 뻗어 부엉이의 등허리께에 손을 올려보았다. 조그맣고 격렬한 박동이 아직 남아있었다. 아카아시는 그 길로 부엉이를 안아들고 동물병원을 향해 달려갔다.


*


동물병원의 의사는 아카아시의 말을 과장으로 듣는 눈치였다. 부엉이는 이상한 곳 없이 무사하니 걱정 말라고 웃었다. 주인의 관심을 끌고 싶어서 쓰러진 시늉을 한 것 같다는 말이었다. 이런 새들은 똑똑하지요, 그렇게 얘기하며. 아카아시는 이 부엉이가 유리창에 돌격하던 때의 소리를 녹음이라도 했어야 했다고 생각했지만 의사의 말에 반론을 표시하지는 않았다. 


의사의 품에서 정신을 차린 부엉이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곧장 아카아시를 향해 날아들었다. 아카아시는 서럽게 울음소리를 내며 그의 뺨이며 목에 제 얼굴을 부비는 부엉이를 쓰다듬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의사는 이렇게 애교 많은 개체는 또 처음보았다며 신기하다는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카아시는 부엉이 앞에 생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주었다. 부엉이는 몇 번 서러워하더니 그릇에 고개를 박고서 들줄을 모른다. 아카아시는 한참이나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보쿠토 씨.”


부엉이가 먹던 것을 그만두고 그를 바라본다. 이 영특한 부엉이는 아카아시의 말을 다 알아 듣는 듯이 굴었다. 


아카아시는 고기를 먹느라 피투성이가 된 보쿠토의 부리를 닦아주고는 고뇌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방금 전의 그 소동이며 난리는 이 부엉이가 그의 유리창을 박살을 내고서 안으로 들어오려 했다는 시도라고밖엔 해석할 수가 없었다. 


“여기가 좋습니까?”


부엉이가 몇 번 고개를 갸웃하더니 먹던 것도 관두고서 쫑쫑 그에게 다가왔다. 부리로 아카아시의 소매자락을 끌어내 팔을 벌리게 하더니 그 안에 쏙 들어가 안긴다. 아카아시는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그 뺨이며 부리를 천천히 쓰다듬어주었다. 


“좋으면 저한테 자꾸 달려들면 안 되죠.”


부엉이가 고개를 빼꼼 들고서 그를 바라보았다. 아카아시른 일부러 엄한 표정을 짓고서 고개를 흔들었다. 안 돼요. 부엉이가 그를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아카아시는 왠지 마음이 어색해 부엉이를 고기 접시 앞으로 밀어냈지만 부엉이는 그의 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안 그래야, 같이 있죠.”


부엉이가 부우, 하고 울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그런 거냐고 묻는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럴거죠? 그의 질문에 부엉이는 한참이나 소리 내지 않다가 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카아시는 천천히 그런 새의 등을 쓸었다. 부우우, 부엉이가 조그맣게 울었다. 


*


그 뒤로 부엉이가 아카아시에게 달려드는 일은 없었다. 아카아시는 진즉 설명하고 타이를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그 사이에도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 어느새 종강할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금요일 마지막 수업의 기말고사는 시험 시간이 한 시간 일렀다. 한 학기 내내 교수 얼굴을 보지 못하고 대신한 강사만 들어온 수업이었다. 시험을 다 치고 나온 아카아시는 어깨를 주물렀다. 이걸로 이번 학기는 끝이 났다. 친구가 술 한 잔 걸치러 가자고 그에게 제안했지만 아카아시는 고개를 저었다. 


“내일 할머니 뵈러 가야 돼서.”


나이 든 조모는 막내손자인 아카아시를 유달리 어여삐 여겨주었다. 요즘은 몸이 계속 좋지 않아 병원에 계시다는 연락을 받은 차였다. 동기는 아카아시의 말에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더는 붙잡지 않았다. 


자취방으로 돌아와 방문을 열자마자 부엉이가 그에게 날아들었다. 이 좁은 원룸에서 용케도 어디에 부딪히지 않고 날아온다. 아카아시는 그 날갯죽지를 손으로 쓸고 매만져주며 어떻게 말을 꺼낼지 고민했다. 


“보쿠토 씨.”


가방을 내려놓고 옷을 갈아입는 동안 떨어져있던 부엉이가 훌쩍 책상 위로 뛰어올랐다. 아카아시는 잔 흠집이 가득한 책상을 내려다보곤 조금 웃었다가 부엉이의 뺨을 매만져주었다. 


“며칠간만 혼자 있을 수 있죠?”


부엉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카아시는 자세한 것까지 알아들을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조모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새는 그의 말을 새겨듣는 눈치였다. 


“금방 올게요.”


새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의 어깨에 매달렸다. 꼭 사람이 팔을 둘러 목을 감싸는 것처럼 날개를 펼쳐서 그의 어깨를 덮어준다. 아카아시는 누군가에게 안긴다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하면서 그 날개의 깃에 고개를 묻었다. 


아카아시는 적당히 짐을 챙겨두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본디 야행성인 새도 오늘만은 얌전히 아카아시를 방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아카아시는 부엉이가 자신을 내버려둔 대가가 이것이라면 차라리 잠못자게 괴롭혔으면 하고 생각했다. 꼭 이 부엉이를 처음 집으로 데려왔던 그 날과도 같은 참사가 또 벌어져 있었다. 베갯솜이 지천에 날리고 있다 못해 이불 위에 수북했고 거기엔 또 처음 보는 꽃뭉치가 엉망으로…….


“꽃……?”


아카아시는 자신의 이불 위에 흩어져있는 솜과 꽃가지를 조심스럽게 그러모았다. 곁에서 잠들어 있던 부엉이가 기척에 몸을 일으켰다. 그를 보고서는 마치 칭찬해달라는 듯이 품으로 파고든다. 아카아시는 무언가 알 것도 같고 여전히 모를 듯도 하여 그저 부엉이를 쓰다듬다가 꽃과 솜뭉치를 챙겨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음 만났던 날 베갯솜이 흐드러지게 덮어주었던 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던 자신의 어깨였다. 


*


“아이고, 우리 손주 왔누!”


병실 문을 열고 들어간 아카아시는 조모의 안색이 생각보다는 좋아서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침대 곂으로 다가가자 조모가 주름진 손을 그에게 뻗었다. 아카아시는 조금 응석을 부리는 기분이 되어 그 손이 쓰다듬기 쉽도록 얼른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할머니.”

“내 바쁘니 오지 말라 하지 않았어.”

“그래도요. 몸은 좀 괜찮아요?”

“하나도 안 아프다니까. 느이 아범이랑 어멈이 수선을 피워서…….”


조모는 말은 그리 하여도 아끼는 손주의 얼굴을 본 것이 무척이나 반가운지, 아카아시의 뺨을 쓸다가 그 손을 잡고서 주위의 사람들에게 연신 제일 귀여워하는 막냇손주라며 자랑을 했다. 옆 침대에서 책을 보고 있던 중년 여자가 아카아시를 보며 훤칠한 청년이라고 조모에게 부럽다는 농담을 던졌다. 


“신색이 훤해졌구만, 우리 손주. 이제 다 컸어, 다 컸어.”


아카아시는 조모의 말에 희미하게 웃기만 했다. 예전에 다 컸어요. 그 말에 조모는 여전히 정정한 얼굴로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아카아시는 왠지 부끄러워 눈을 피하고는 가방에 챙겨온 꽃다발을 꺼냈다. 병원에 오는 길, 꽃집에 들러 꽃 몇송이를 더하고 최대한 그럴듯하게 포장해달라 해온 것이었다. 가운데에는 부엉이가 꺾어다주었던 꽃송이가 얌전히 들어있었다. 구석에 보이는 솜뭉치는 미처 떼어내지 못한 것이다.


“아이고 예뻐라……. 무에 이런 걸 또 챙겨왔어. 우리 케이지 이제 장가가도 되겠네!”

“대학 졸업도 아직인데 장가는요.”

“할미가 느만할 때는 네 아범이 학교에 갔어요!”

“그건 할머니 얘기고요.”

“그래서 장가 안 가려고? 응?”

“갈 거예요. 나중에요. 좋은 사람 생기면 가요.”


조모는 이런 소리에도 언제나 싫은 기색 하나 없는 어린 손주를, 언제나 못내 귀여워하였다. 


“좋은 사람 이미 생겼지 않누.”

“……네? 없어요, 없어요.”


아카아시는 조모의 말이 자신을 떠보려는 지레짐작이라 여기고는 웃는 낯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없어?”

“예. 없어요.”

“그럼 이 꽃은 뉘가 준 게야.”

“제가 가져왔죠.”

“그런 게 아니지 않누.”


조모의 말은 농담도 아니었고 그를 떠보는 것도 아니었다. 아카아시는 조금 당황해서 조모를 바라보았다. 조모는 아카아시가 건네주었던 꽃다발을 하나하나 쓰다듬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것을 보듯이 부드러운 눈길이었다. 아카아시는 입술을 달싹거리다 겨우 말할 수 있었다.


“제가 요즘에 새를 한 마리 키우게 됐는데……. 그 새가 물어다 준 것도 조금 섞여 있어요.”

“새? 새를 어쩌다가.”

“우연히 길에서 주웠는데…….”


아카아시는 조금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어 저의 손을 마주 쥐었다. 부엉이를 처음 주운 날은 금요일 밤이었다. 그 날 휴강하기는 했으나, 어쨌든 늦은 수업이 있었던 탓이다. 그 수업을 듣게 된 건 조모의 병간에 정신없이 바빴기 때문이었다. 그 조모가 꽃다발에 섞인 다른 것을 알아보았다는 게.


“똑똑해서 사람 말을 잘 알아듣더라니, 할머니 보러 간다니까 꽃을 꺾어준 것 같았어요. 그거 가져온 거예요.”

“새…….”


조모는 아카아시의 말을 새겨듣더니 차분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바라보다가 팔을 뻗어 아카아시의 어깨를 가볍게 쓸어보았다. 


“할머니?”

“새였구먼. 큰 새로구만.”

“어, 네…….”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엉이라고 말을 해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창을 열어뒀는데도 날아가질 않아서…….”

“우리 손주가 좋아서 그런 게지.”

“그런 걸까요?”


사이좋게 지내고는 있어요, 아카아시는 그렇게 말했다. 조모가 손을 뻗어 아카아시의 뺨을 쓸었다. 아카아시는 조모가 힘들지 않도록 허리를 굽혀주었다.


“날기 위해 태어난 생물이 날기를 포기하는 마음을 허투루 여기면 안 된단다, 케이지.”

“……네.”

“어여삐 여겨주려무나.”


이 할미에게도 마음써주는 착한 아이지 않니. 조모의 말에 아카아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네?”


창가 자리인 조모를 위하여 커튼을 정리해주고 병실의 침대 주위도 정리하며 떠날 채비를 하던 아카아시는 고개를 돌려 조모를 바라보았다. 조모가 침대에 몸을 기댄 채 아카아시를 올려다보며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이 할미도 조금만 더 힘을 내서 살아봐야겠어.”

“네?”

“우리 손주 장가드는 건 봐야겠구나.”

“더 오래 사셔야죠.”


저보다 더 오래요. 아카아시가 서둘러 조모에게 다가가 말했고 조모가 그런 손자의 응석에 부드러운 웃음을 그렸다. 오냐, 오냐. 내 오래오래 살아야지. 아카아시는 그로부터 몇 시간이 더 지나 조모가 설핏 잠에 들고 나서야 병실을 빠져나왔다. 


*


아카아시가 다시 자취방으로 들어왔을 때, 아카아시는 몇 시간동안은 거의 앞을 보지 못했다. 그동안 그가 본 건 자신의 시야를 가리는 날개였다. 부엉이는 요란하게 푸드덕거리며 그에게 달라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며칠 되었다고 무게가 가벼워진 것 같았다. 평소에는 먹지 말라고 해도 몰래 냉장고를 열고 고기를 꺼내먹어 사람 속을 썩이더니 이번엔 손도 대지 않은 눈치였다. 냉장고 문을 열자 고기가 그대로 있다. 아카아시는 앓는 소리를 삼켰고 부엉이는 한층 더 격렬하게 그에게 붙었다. 


“보쿠토 씨.”


떼어놓고서 붙여준 이름을 부른다. 부엉이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달처럼 둥근 눈이 그를 빤히 보다가 돌연 폴짝 뛰어 그에게 안겨들었다. 마치 응석부리는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왜 식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느냐 말할 수가 없어서 그저 부엉이가 부벼오는 부리에 뺨을 맞대었다. 


그 뒤의 일상은 특별할 것 없이 지난 4개월 동안 똑같았던 하루하루였다. 아카아시는 불을 끄고서 노트북 모니터에 영화를 틀었다. 종강하기 직전에 동기가 추천해주었던 것이다. 침대에 기대 앉아 있으려니 부엉이가 또 종종 걸어 그의 품에 안착했다. 아카아시는 무심결에 날개를 슥슥 쓸다가 아래를 쳐다 보았다. 동그란 눈이 갸웃하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날기 위해 태어난 생물이 날기를 포기하는 마음을 허투루 여기면 안 된단다.’


지나온 언젠가의 밤, 하늘을 가르던 그 소리 없고 묵직한 날갯짓이 떠올랐다. 이건 그런 식으로 나는 생물이었다. 그것이 그런 것을 모두 그만두고 여기에 있다.


-부우?


부엉이가 고개를 갸웃한다. 아카아시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곤 다시 시선을 들어 노트북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영상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영화는 마음 둘 곳 없는 소년과 소녀가 만나 사랑을 선언하는 내용이었다. 아카아시는 내용이 마음에 드는 것과는 별개로 어째서 흥행하지 못했는지는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린 아이들의 동화 같은, 그리고 조금은 마법같은 사랑이야기는 말 그대로 아이들의 것이다. 어른에게는 그 힘이 없다. 


 “저렇게 둘만 있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요. 그쵸?”


새가 그려진 아기자기한 텐트 안에서 소년과 소녀는 오직 둘 뿐이었다. 아카아시는 지금 이 자취방이 조금은 그 텐트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래쪽으로 고개를 내렸다. 사람 말을 꼭 알아 듣는 듯이 영특했던 부엉이는 평소와 달리 화면을 보고 있지 않았다. 계속 그를 보고 있었다. 아카아시가 고개를 내리는 동작에 부엉이의 부리가 그의 입술을 스쳤다. 부리의 날카로운 끝에 얇은 입술이 팟 찢겨나간 순간이었다.


“-우와아아아앗!”

“!”


무언가 번쩍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몸 위로 훅 체중이 쏠린다.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침대 위로 쓰러지듯 눕게 되었는데 바로 눈앞에 부엉이가 있었다. 부엉이가 아무리 크고 무겁다지만 이렇게까지 무겁던가? 당황하던 아카아시는 자신과 마주하고 있는 얼굴이 사람의 모습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


“어……?”

“우와아아! 드디어! 드디어! 아카아시! 드디어!”


노트북의 스피커에서는 소년과 소녀가 사랑의 서약을 하고, 아카아시의 위에는 처음보는 남자가 올라타고서는 그를 껴안고 그 뺨에 입을 맞추고 난리법석을 피우고 있다. 아카아시는 그대로 얼어붙어서 한 마디도 하지 못한 채 이 상황을 방치했지만 그렇다고 꿈에서 깨어나지는 못했다.


“아……?”


분명이 품에는 부엉이가 있었는데 갑자기 왜 낯선 남자가 순식간에 나타나서 그의 이름을 부르는가. 그 얼굴이 왜 꼭 그가 키우던 부엉이와 닮은 듯한 것인가. 이게 지금 어떻게 된 일인가…….


“아카아시! 나야! 나!”

“……보쿠토 씨……?”

“응! 응응!”


신이 나서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꼭 그가 키우던 부엉이 보쿠토였다. 아카아시는 아연실색하여 그 얼굴을 바라보기만 했다. 


“사람?”

“응! 사람!”

“사람…….”

“드디어 돌아왔다!”


활짝 웃는 얼굴은 익숙했다. 매일 보았으니까 그렇다. 매일 보았지 않던가. 그가 키우던 바로 그 부엉이, 그 표정이었다. 사람이라고? 사람이었다고? 


“사람이라고 지금…….”

“응! 응응! 아카아시 덕분에 돌아왔어! 앗, 아카아시. 입술 아프지…….”


남자가 금방 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아카아시의 입술 근처를 손으로 쓸었지만 아카아시는 그것까지는 신경 쓰지 못했다. 그리고 마침내 아카아시가 폭발했다.


“사람이었다고요!”

“어, 으, 으응, 그게…….”

“사람이었으면서! 다 알면서 쥐를 잡아왔습니까!?”

“……아.”


보쿠토가 어색하게 웃으며 그 땐 본능에 충실해서, 하며 어설픈 변명을 늘어놓다가 서둘러 입을 다물었다. 죄송했습니다……. 보쿠토가 사과를 하다가, 아카아시의 눈치를 살피는 듯이 흘끔거리다가, 또 히죽 웃고는 다시 몸을 날려 아카아시를 껴안았다. 


아카아시는 침대에 누운 채 천장의 무늬를 세어보았지만 이 사태를 어떻게 할 방법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



보쿠토는 본래가 반은 새이고 반은 사람이며, 원할 때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고 하였다. 사람의 모습으로는 번듯한 직장도 있다며 어깨를 으쓱했다. 아카아시는 남자의 얼굴 위로 티셔츠와 바지를 집어던졌다. 


“진짜야! 아카아시가 다니는 대학 교수인데…….”

“교수가 한 학기동안 수업을 쉬었다고요.”

“웅. 짤리지 않았으려나…….”

“아, 예……. ……무슨 수업이었는데요?”

“응?”


아카아시에게는 조금 헐겁던 티셔츠와 바지가 보쿠토에게는 꼭 맞았다. 티셔츠의 목으로 머리를 집어넣던 보쿠토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카아시는 재차 물었다. 무슨 수업하시는데요. 


한 학기 내내 교수가 수업에 들어오지 않아서, 내리 다른 강사가 대신했던 수업이 있지 않았나. 그가 한밤중에 보쿠토와 조우하게 만들었던 바로 그 수업. 금요일 밤의 바로 그.


“공학 철…….”

“아 네.”


아카아시는 말을 끊었다. 보쿠토는 고개를 갸웃하고는 금방 또 팔을 쭉 뻗어 아카아시에게 매달려왔다. 새의 모습이었을적 버릇인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무심결에 그 머리를 쓰다듬으려다가 겨우 떼어놓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원할 때 원하는 모습을 할 수 있다면서. 왜 줄곧 새 모습이었고 왜 지금 변한 겁니까?”

“아, 그게. 내가 마녀의 주먹밥을 훔쳐 먹었거든…….”

“……네?”

“걔가 너무 맛있게 먹길래 그만……. 그런데 들켜가지고,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저주 건 거 있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농담인지 알 수가 없다. 아카아시가 심각하게 듣고 있는데 보쿠토가 그간 쌓인 한을 풀듯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면서 사람으로 돌아오려면 기본 중의 기본만 하면 된다나. 근데 그게 뭔지 알아? 하아, 기본 중에 기본이기는 하다. 사랑하는 사람한테 키스받으면 돌아오는 거거든. 이거 근데 나 그 때는 사귀는 사람도 없었고 너무 기가 막혀가지고. 부엉이 꼴로 어떻게 뭘 해보냐. 완전 화가 나서 유키에, 아 그러니까 그 마녀 술창고를 다 털어서 술이 떡이 되게  마시고 뻗었지. 근데 눈을 뜨니까 처음 보는 곳에 처음 보는…….”

“아, 잠시, 잠시. 뭐라고요.”

“응? 처음 보는 곳에…….”

“저주를 풀려면 뭘 어떻게 해야 한다고요?”


아카아시는 그간에 보쿠토가 그를 향해 습격하려 든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떠올렸다. 그야 얼굴을 노리고서 부리가 달려드니까, 이런 쪽에 면역이 없는 보통 사람으로서는 겁을 먹는 게 당연한 일 아닌가? 


“앗……. 부, 부끄럽게.”

“키스를 받으면 된다고요?”

“으, 으응.”


지금까지 신이 나서 말을 늘어놓던 사람은 간데없고 뺨을 잔뜩 붉힌 사람만 있을 뿐이다. 아카아시는 허탈한 표정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그럼 달려들던 게 다…….”

“……그, 그치만 아카아시가 하지 말라고 한 뒤부터는 안 했다, 뭐! 방금도 내가 한 거 아니잖아!”

“안 하면 사람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가 하지 말랬다고 그만둡니까. 밤에 몰래라도 하던가요.”

“에, 그건 싫은걸.”


아카아시의 앞에 앉아있던 보쿠토가 팔을 쭉 뻗으며 샐쭉하게 말했다. 아카아시가 하지 말라는 건 하기 싫어, 그리고 몰래는 더 싫어, 나쁜 짓이잖아! 그렇게 말하던 보쿠토가 이윽고 눈을 접고 웃었다.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그리고 그냥, 괜찮았어. 어떤 모습이든 그냥 옆에 있기만 해도 좋았으니까…….”


순간 아카아시가 시선을 피했다. 그냥 키우던 새일 뿐이라고 생각해야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은 부엉이로 돌아갈 수 없습니까?”

“에, 너무 오랜만에 사람 되었는데!”

“그러시겠죠……. ……가족들이 걱정할테니 돌아가는 게.”

“이미 알고 있어, 이런 거~! 걱정 마!”


활짝 웃는 얼굴에서 쨍하는 풍경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아카아시는 차마 대화 사이에 자연스레 묻어버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금방 보쿠토가 난리법석을 피우며 연고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노트북에서는 영화가 끝이 나고 있었다. 소년과 소녀가 단 둘이 함께 지냈던 조그만 텐트가 있는 바닷가의 풍경이 흐려지고 있었다. 보쿠토가 아카아시의 입술 상처에 직접 연고를 발라주겠다며 고집을 피웠다. 아카아시는 스스로 하겠다며 손을 내뻗었다. 보쿠토가 새였을 적 버릇대로 아카아시 품에 안겨들었다가 그만 아카아시를 뒤로 넘어뜨리고 올라탄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보쿠토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지으며 아카아시의 뺨에 제 뺨을 부빈다. 아카아시가 한숨을 내쉬었다. 


노트북의 화면에서 바닷가의 풍경이 완전히 밤에 잠겼다가 주연배우들의 이름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rr_miel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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