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제가 너무 좋아서 막 덧붙인 설정이 많습니다... 모두 먼지매님 네코테루 아트 보자...(오열)

*간만에 너무 쓰고 싶어져서 마구 쓴 이야기...

*이 기회를 시점으로 다른 글도 쭉쭉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카라마츠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모습은 갓 내린 눈처럼 새하얀 털을 더럽혀도 눈부시게 웃던 당찬 고양이었다. 


흙투성이의 모습으로 제 아버지의 품에서 그 누구보다 행복하게 웃던 고양이. 저보다 두 배는 거대한 아버지의 어깨에 훌쩍 올라타고는 둥근 손톱을 세워 겨우 매달린 카라마츠를 번쩍 안아 올리며 신나게 웃던 그런 고양이. 그 누구보다 목욕을 좋아하던 고양이. 사실 자기는 고양이가 아니라 개가 아니었을까 하며 카라마츠에게 몰래 장난스럽게 속삭이던 그런 고양이.


카라마츠는 그런 어머니가 좋았고, 한참이나 작은 어머니에게 꼼짝도 못하는 아버지가 좋았고, 그런 자신의 일상이 좋았다. 그 무엇보다도 행복한 추억이었다. 침대 주위로 잔뜩 늘어진 손때 탄 나무장난감, 아버지가 따온 신선한 들꽃들로 만든 화관, 새하얀 종이에 그려져 잔뜩 널부러진 낙서들. 모험이 가득했던 해피엔딩투성이의 동화책들. 단지, 지금 떠올려보면 어머니와의 기억은 대부분 침대에서였지만.


그날도 어김없이 흰 피부를 새빨갛게 물들이며 앓아누운 어머니의 곁을 지키다 잠이 깬 카라마츠는 자리에 없는 어머니를 비몽사몽한 눈으로 찾아 헤맸다. 고요한 새벽. 야밤에 활동적이던 어머니는 남들이 잠들 새벽에 종종 사냥을 하러 나갔다. 이 식탁에는 고기가 부족하다나. 삼시세끼 고기도 좋지만 아버지가 키우는 야채도 나쁘진 않은데. 구운 새고기는 맛있지만. 느른히 나오는 하품을 삼키며 카라마츠는 식탁에 우두커니 앉아있던 아버지를 발견하곤 말을 걸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 갔어? 또 일찍 일어난 철없는 새를 사냥해오겠다고 나갔지?

-…….


잠시 침묵하던 아버지는 그런 카라마츠의 머릴 쓰다듬으며 어머니가 별이 되었다고 했다. 별? 그렇게 물으며 바라봤던 그 날의 별은 얼마나 예쁘던지. 


철없던 카라마츠는 아버지의 손을 이끌어 어머니의 별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었고, 아버지는 말없이 작디작은 카라마츠를 머리 위에 올리곤 유난히 하얗게 빛나던 별을 가리켰다. 그날 아버지의 머리 위에서 봤던 별은 하늘에서 무척이나 가까워보여서, 카라마츠는 어머니의 별을 다 커버린 지금도 곧잘 찾아내곤 했다.


-그런데 별이 되면 어떻게 다시 돌아와?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고, 카라마츠는 어쩐지 아버지의 무표정한 얼굴이 너무 슬퍼서 저도 모르게 펑펑 울었다. 그날부터 아버지는 얼굴을 보이지 않으려 하얀 가면을 쓰고 다녔고, 카라마츠가 어느 정도 열매를 키워내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되자 곧 어머니를 따라서 별이 되었다.



카라마츠는 외톨이였다. 인간들의 마을에서는 자신의 하얀 꼬리가 눈엣가시였고, 고양이들의 마을에선 귀도 없는 반쪽짜리 인간이 감히 고양이들의 세계에 끼어든다며 위협당하기 일수였다. 인간도 고양이도 아닌 어중간한 반수(半獸). 그렇게 던져진 돌멩이에 얻어맞고 도망치고 나서야 카라마츠는 스스로 모습을 숨기는 법을 배웠다. 


피투성이로 잔뜩 부어오른 이마에 얼기설기로 꾹꾹 붕대를 감고 잔뜩 솟아오르던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며 만들었던 고양이 귀 모양의 새하얀 터번. 그리고 적당히 재를 묻힌 얼룩진 회색빛 꼬리. 그제야 고양이들은 카라마츠에게서 미약하게 경계심을 거뒀고 무시했으며,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인간들은 카라마츠를 두려워하며 무시했다.


집으로 돌아와 하얀 귀가 달린 터번을 보며 종종 카라마츠는 부모님을 따라 별이 되고 싶었지만,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행복하게 살아달라던 아버지의 유언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이제 카라마츠에게 남은 행복한 것은 추억에 절여져있는 이 집과 아버지와 어머니가 가꾸던 밭 밖에 없었으므로. 


카라마츠는 고왔던 손이 터져가도록 밭을 일구고 과실을 키워 힘껏 살아갔다. 다행히 밭일에는 소질이 있었는지, 배부르지는 않지만 적당히 먹고 살만큼 벌었으니 다행일까. 아쉽게도 카라마츠의 몸은 꼬리를 제외하고 전부 인간의 것이었으므로, 인간의 몸과 체력으로 고양이들의 왕국에서 단련된 짐승들을 사냥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와 같았던지라, 본디 아버지만큼 컸을 몸은 어머니만큼이나 작디작을 수밖에 없었다.


하얀 고양이인 어머니의 가문은 대대로 왕가와 가약을 맺는 고귀한 가문이라고 했다. 검은 고양이 왕과 하얀 고양이의 여왕. 그렇게 단단하게 맺어진 왕가는 평생 태평천하를 누릴 것이라는 그런, 관례. 


그런 지체 높은 가문의 영애가 어째서 이 왕국에서 취급이 천민이나 다름없는 인간과 맺어지게 되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인간이 고귀한 혈통에 손을 댔다느니 영애가 부정을 타서 그렇다느니 그런 흉흉한 소문들이 돌았었지만, 카라마츠는 종종 어머니가 잠자리에서 속삭이던 연애담을 실컷 즐겨들었던지라 어머니에게 손을 대기는커녕 도망치기 바빴던 아버지가 어떻게 어머니에게 꼬셔졌는지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곤 해서 그런 헛소문들을 콧방귀를 끼며 무시하곤 했다. 


일부러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다른 사람의 입에서 제멋대로 잘리고 꿰매진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조용히 살아가다가 별이 되려고 했었는데.



"저기..."



움찔. 낮은 저음의 목소리에 있지도 않은 귀가 저절로 움직이는 기분이 들었다. 제 집의 다섯 배는 될법한 거대한 방의 구석. 멀찍이 떨어져서 저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짐승의 동공에 저절로 고개가 수그려졌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 울지 않으려 지금까지 애썼는데 저절로 눈물이 방울방울 흘러나왔다. 어쩐지 억울해져서 카라마츠는 강제로 하얘진 뽀송한 꼬리를 더 끌어안았다.


몸을 깊게 웅크리고 있던 상대는 꼬리를 조금 불안하게 흔들더니 숨을 크게 들이키고는 다가오려고 했고, 카라마츠는 히익, 숨을 급하게 들이키며 더더욱 나아갈 수도 없는 벽을 뚫어버릴 것처럼 방구석에 필사적으로 몸을 더 밀어 넣었다. 


길게 늘어진 그림자는 그런 카라마츠의 모습을 보곤 멈칫, 멈추더니 카라마츠의 흰 옷자락에 닿기 전에 다시 슬금슬금 뒤로 몸을 뒤로 뺐다. 잠시 카라마츠가 떠는 모습을 지켜보며 침묵하던 그림자는 조금 꼬리로 바닥을 툭툭 치다가 창문으로 훌쩍, 나가버렸고 카라마츠는 그제야 잔뜩 긴장으로 굳었던 몸을 조심스레 폈다. 한참이나 웅크려있었던지라 삭신이 지끈거리며 잔뜩 저린 감각을 몸에 불러내서, 급하게 도망가려던 카라마츠는 결국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렸다.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여긴 제대로 된 출입문도 없어서 나 같은 인간은 탈출도 못하지. 고양이들의 구조에 맞게 제대로 된 계단도 문도 없던 거대한 성은 높은 나무줄기와 사다리와 방이 잔뜩 이어진 예술적인 모양으로, 고양이의 몸이 아니라면 다니기도 어려울 정도라 그런 능력이 없는 카라마츠가 탈출하기도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도 제 발로 온 게 아니었다. 강제로 잡혀서 끌려온 것과 마찬가지지.


길을 걷다가 하얀 천에 강제로 휩싸여서 공중을 날아다니는 부유감과 진동에 멀미하며 어렴풋이 들었던 납치범들이 하던 이야기는 어머니의 가문의 씨가 말라 반쪽이라도 데려다 결혼을 시켜야한다는 원로회의 의견 때문에 탐탁지 않은 인간의 피가 섞였지만 어쩔 수 없으니 데려온 거라나 뭐라나. 흰 고양이라지만 인간의 피가 섞인 자식이라니 기분 나빠, 라고 중얼거리던 고양이의 면상에 천에서 풀려나자마자 잔뜩 토해줬으니 나쁜 비행은 아니었다.



"집에 가고 싶어."



그렇게 말하자 한번 터진 눈물이 어쩐지 그치지 않아서 카라마츠는 다시 펑펑 울다가 까무룩 잠이 들었다.



*



이치마츠는 고양이 나라의 왕이었다. 고귀하고 긍지 높은 고양이 나라의 왕. 원래대로라면 복도에 줄줄이 그려져 있는 저 끝도 없는 초상화들처럼 밤하늘같이 훌륭한 새까만 털을 자랑하는 훌륭한 고양이님이 왕이 되셔야겠지만 어쩌나.



"빌어먹은 회색 털가죽의 후계자 밖에 없어서 죄송하게 됐수다."


"이치마츠님! 왕이 비굴하면 안된다고 했잖아요! 당당히!"


"아예예~ 위험했네~ 위험했어~ 말이 헛나왔네, 죄송함다~"


"이치마츠님! 왕이 비아냥거리시면 안됩니다! 체통을 지키십쇼!"


"네네, 비굴해서 죄송합니다. 비아냥거려서 죄송합니다. 이런 쓰레기가 왕이라 죄송합니다."


""이치마츠님!!""


"앗, 까먹었던 업무가 생각났다. 히힉. 멍청한 왕이라서 죄송합니다. 지금 하러 갈게."


""도망치지 마십쇼, 이치마츠님!!!!!!!!""



쫓아다니며 체통을 지키느라니 자신감을 더 갖으라니 잔소리를 따박따박 날리는 삼색고양이와 상아빛 털의 터키쉬 앙고라의 맹공에 이치마츠는 훌쩍 창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보랏빛 망토자락이 날개마냥 허공에서 아름답게 휘날린다. 


풀썩, 매끄럽고 아름다울 정도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아득히 먼 저 땅바닥으로 착지한 망토자락이 곧이어 잽싸게 달려가는 모습을 다급하게 쳐다본 두 마리의 고양이들은 다시 한숨을 쉬고는 저 비굴한 왕을 쫓아갈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5층 이상으로는 다른 동족들은 준비없이 제대로 착지 못하는 거 알면서 저런 능력을 갖고도 저토록 자신감이 없는 왕이라니. 우리 왕 괜찮을까, 쵸로마츠형?"



터키쉬앙고라 토도마츠가 '아, 손톱관리 얼마 전에 받았는데'라며 울상을 짓고는 소매를 걷으며 푸념을 늘어놓자 삼색고양이 쵸로마츠는 눈에 걸린 외눈안경을 주머니에 집어넣으며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어. 빌어먹을 원로회가 그렇게 검은 털이 아니라고 기를 죽여 놓으니 저렇게 될 수밖에 없지."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한숨을 뱉던 둘은 이내 창문 밖으로 뛰어내릴 준비를 했다. 아마도 디딤대를 두세 번 더 밟아 내려가야 할 터이니 저 쓸데없이 능력 좋은 왕과의 거리는 한참이나 더 벌어지겠지. 아, 그러고 보니.



"이야기 들었어? 오늘."


"아, 그거."


"너는 사촌이었으니까 더 빨리 알았겠네. 토도마츠."


"그렇긴 하지만."



뚱한 얼굴로 대답한 토도마츠의 얼굴을 바라보던 쵸로마츠는 고개를 기울였다.



"왜?"


"아무리 관례라고 하지만, 밖에서 잘 살고 있던 외부인을 들이는 것은 기분 나쁘지 않아? 인간의 피도 섞였는데."


"…설마, 너 아직도 너한텐 말도 없이 나간 누님의 일로 꽁해있는 거야? 벌써 십년도 넘,"


"시, 시끄러워! 그런 거 아니거든요?!"



쵸로마츠는 풍성한 꼬리털과 수염을 화악 곤두세우며 동공을 날카롭게 조이곤 괜히 성을 내는 토도마츠를 슬쩍 바라보곤 고개를 흔들었다.



"토도마츠, 털 뿜지마. 기껏 다림질한 연미복이 더러워지니까."


"뭐래! 털갈이 시기는 끝났거든!? 참내, 흥이다!"



그렇게 대답하곤 훌쩍 창문 밖으로 뛰어내린 토도마츠의 뒷모습에 쵸로마츠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다시 흔들었다.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어쨌건 쵸로마츠는 원로회의 결정 쪽에 더 마음이 가있는 상태였으니까. 


토도마츠는 가문의 일에 조금 더 감정이 있겠지만, 쵸로마츠는 그저 나랏일만 잘 굴러가서 제 직장만 안전하다면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런 시대에 아직도 관례니 미신에 얽매여있는 노망난 고양이들의 생각은 통 모르겠지만. 


쵸로마츠는 애초에 보이는 것만을 믿는 편이었고, 제 주인은 검은 고양이가 아니었지만 곁에서 굳게 지켜온 바로는 훌륭한 한나라의 왕이었으므로.



"흠, 어쨌든 둘이 잘 지내서 짜증낼 일이 없으면 좋겠지."



회색 털의 왕이나 하얀 털의 반고양이나 서로 모자란 것은 비슷비슷하니 잘 지낼지도. 그렇게 대충 생각하며 훌쩍 창문 밖으로 몸을 던진 쵸로마츠는 미래에 제가 그 두 마리의 사이에 껴서 스트레스로 탈모가 오게 될 줄은 아직 모를 터였다.




졸리면 왜 더 글쓰고 싶을까

자몽하다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